유쾌하게 되는 비결 (행3:19-21) 요약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영육 간에 유쾌하게 사는 것을 원하신다. 그런데 이 유쾌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유쾌한 날이 오게 되는가? 그 날은 회개할 때 온다. 진실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의 평강은 물론 무거운 짐을 풀어주신다. 또 그 날은 기도생활의 회복에서 온다. 그것을 기도 부족으로 시험이 오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갈 때 갈릴리 바다도 잔잔했고 악신도 나갔듯이 믿음에 서서 불행을 용납지 말아야 한다. 강해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합니다. 그 고난에는 육체적인 고난과 마음의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게 되고 그래서 늘 괴로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성도들은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참으로 유쾌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좋으신 아버지께서 어찌 우리에게 유쾌함을 외면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시간에는 “유쾌하게 되는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먼저 유쾌하게 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보는 개역성경에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위로의 때”, 표준새번역 개정판에서는 “편히 쉴 때”,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새로워지는 때”라고 했습니다. 영어성경에서는 대개 “새롭게 되는 날, 회복되는 날”(the time of refreshing)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기도가 응답되고 문제를 해결 받고 영육간에 여러 면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때입니다. 이 날을 선지서에서는 여호와의 날이라고도 했고, 신약에서는 은혜의 날이라고도 칭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죄와 사단과 악과 저주를 멸하시고 우리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고 해결해 주시고 형통케 하시며 귀한 일군 삼아 주시는 성령이 임하시는 날입니다. 그럼 이 유쾌하게 되는 날은 어디서 옵니까? 본문 19절에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날이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하고 어떻게 유쾌함이 있겠습니까? 유쾌하게 되는 날은 위에 계신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약1:16-17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셨습니다. 여기 속지 말라는 말씀대로 사람들이 늘 속아요. 특히 자기 생각으로 속는데 모든 문제의 해결은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임한다는 사실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님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울지만 마시고 모든 문제 해결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모든 문제를 사람의 생각으로 풀려고 하기 때문에 풀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할 때 유쾌하게 되는 날이 옵니까? 이것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본문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의 배경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성전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낫게 해 주면서 이 기적을 본 유대인들에게 전파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배경을 통해서 유쾌하게 되는 날이 어떻게 임하는가를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유쾌하게 되는 날은 회개할 때라고 말씀합니다. 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과 나라에 무슨 문제가 있을 때 모두 하나님 앞에 모여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유쾌한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대하 7:14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하셨습니다. 선지자 요엘도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2:12-13) 외쳤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마음을 모아서 진심으로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만큼 좋은 약은 없어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도 하나님께서 멸하시려고 했다가 요나의 전도를 듣고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보사 돌이키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께서 성경이 하라하는 대로만 해 보세요. 그러면 저는 성경 말씀으로 여러분의 평탄한 일생을 보장해 드릴 수 있어요. 벧전3:10-11에도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전한 사람이 베드로라는 점에서 그는 노년까지도 시종일관 회개해야 한다고 선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보혈로 씻어 심령에 죄 없이 함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입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가만 두면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고난의 역경에 버려두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매한 우리 인간은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 기회로 삼지 않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안 됩니다. 1904년 영국의 웨일즈에서는 판사들이 자신들의 흰 장갑을 반납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웨일즈에 일어난 대부흥운동으로 인해 사람들이 회개하여 별로 재판할 사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강간 사건도 없었고 횡령이나 착복이나 강도와 살인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거의 십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했고 수많은 광부들이 변화를 받아 욕을 하지 않자 조랑말들이 그들의 지시를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회의 술 소비량이 반으로 줄었고 레드놀셔 주와 메리오네셔 주의 사생아 출산률도 44%로 하락했습니다. 신앙회복만 되어 보세요. 좋으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아까우시겠습니까? 2. 본문 배경을 볼 때 기도생활이 회복될 때입니다. 행3:1에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그랬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낫는 기적이 언제 있었습니까? 기도 시간이 되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 있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기도의 위력입니다. 기도생활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할 때 이스라엘에도 축복이 왔습니다. 3.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나갈 때 유쾌함이 옵니다. 앉은뱅이를 어떻게 고쳤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으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 할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환경을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갈릴바다도 잔잔하게 될 줄 믿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마르고 산도 옮겨질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믿음대로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불행을 용납하지 마시고 더욱 아름다운 꿈을 꾸시고 예수 이름으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쾌함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실망하지 마세요. 소망 가지세요. 진실로 회개하세요. 진실로 기도회복을 이루세요. 진실로 예수 이름으로 싸워 나가세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영육 간에 가장 유쾌한 복으로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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