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거울
본문 : 고전10:1-12
이 시간에는 “경계의 거울”이라는 제목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 자동차들이 왕래하는 고속도로, 소들이 다니는 논둑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길 등 육안으로 보이는 물질적인 길입니다. 그런가 하면 보이지 않는 길이 있는데 예를 들면 스승에게는 사도가 있고 정치가에게는 정도가 있고 상인에게는 상도가 있고 신사에게는 신사도가 있고 무사에게는 무사도가 있고 사명자에게는 사명자의 길이 있고 신자에게는 신앙의 길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보이는 길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길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공의 길과 실패의 길, 천국길의 길과 지옥의 길, 축복의 길과 멸망길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을 만나고 기쁨과 보람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어둡고 쓰고 비참한 결과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우리에게 교훈 주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통하여 경계의 거울을 삼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놀랍게 받은 민족이지만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한 일을 더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징계를 받았고 그 결과 200만으로 추산되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방황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왜 성경에 기록하여 놓았을까요? 그것은 본문 11절에 나와 있는 대로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경계의 거울로 삼으라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우상숭배입니다.
7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출 32장의 내용을 말씀한 것입니다. 출 32장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더디 내려옴을 보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길 때 하나님께서 노하사 이스라엘 민족을 진멸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미련하고 악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노하셨을까요? 그 때 모세가 중보 기도로 그 일을 말리고 자기를 따르는 레위지파를 이끌고 백성들 가운데 우상숭배자를 골라 3,000명을 죽이니 그제야 여호와의 노가 그쳤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이건 결코 이스라엘이나 교훈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요 우리에게도 그대로 실제로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만들면 하나님이 노하십니다. 그리고 우상숭배 할 때 그 심령이 죽는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그래서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제일 계명이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그 다음이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라입니다. 그래서 출20:5-6에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 뿐인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긴다든가 다른 신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한다면 될 일입니까? 우리가 지금부터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의 은혜로 살 텐데 말입니다. 이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혹시 그런 마음 있다면 모세처럼 레위지파를 이끌고 칼로 쳤던 것처럼 말씀의 칼로 그 마음 다 죽이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간음입니다.
8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이 경고는 민 25장의 말씀으로서 이스라엘이 모압에 이르렀을 때 모압 여자들로 더불어 간음했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타락하다보니 온 세상이 간음세계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알려진 윤락종사자만 해도 수십만 명에 이릅니다. 일반 성인 남자는 물론이고 아직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가정주부나 노인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타락하고 타락한 세상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가만있어도 문자 혹은 메일 혹은 전화 혹은 현수막이나 벽보나 각종 매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직접 간접 음란이 쳐들어오는 현실입니다. 현실도 이러한데 마음으로는 얼마나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음욕도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간음할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나 죽이셨습니다. 이것은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채찍 맞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죽는다는 교훈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아 큰일을 하다가도 그러면 영적으로 죽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도 파괴되고 그 앞길도 막히고 맙니다. 그래도 회개치 않으면 그 육체도 치십니다.
우리 성도님들 특히 우리 젊은이들에게 부탁합니다. 조심하십시다. 누구든 큰소리칠 일이 아닙니다. 다윗도 삼손도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여선지 안나는 혼자되었으나 일생을 주야에 금식하며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함으로 극복했습니다. 자신의 청춘을 주를 위해 드릴 때 그것도 하나님께 큰 제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근신하고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말세를 만나 우리에게 경계로 기록하셨다 했는데 그 뜻은 말세의 현상과 아울러 이렇게 될 때 끝장난다는 뜻도 있습니다.
3. 조심할 것은 하나님을 시험함입니다.
9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이 말씀의 내용은 민 21장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헬몬산에서 행진하여 에돔 땅으로 들어가려 할 때 백성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의심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시험했습니다. 그러다가 불뱀에게 물려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 때 그것을 보는 자는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대 믿을 분이지 시험할 분이 아닙니다. 의심하면 그것이 습관이 됩니다. 내 사전에서 이심이라는 말은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냐 가짜냐 진짜냐 가짜냐 늘 의심하면 어떻게 됩니까? 꼭 불뱀에 물린 사람처럼 됩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지 못하면 꼭 불뱀에 물린 사람 같이 놀라고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드러누워 고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곁에 계신 것을 못 믿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좋은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받지 못합니까? 의심하고 반신반의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정말 내세 천국이 있을까 의심하지 마십시오. 천국을 확실히 믿고 기뻐하세요. 기도할 때도 믿고 하세요. 정말 기도 응답이 있을까 의심하지 말고 평안한 심정으로 믿고 감사함으로 기도하세요. 우환이 반복되는 가정은 우환아 다시는 오지 말아라 명령하십시오. 저는 사고가 연속되는 마을 보고 너무 분해서 다시는 사고는 나지 말지어다 명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명령하고 절대 의심하지 말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믿고 담대히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학생들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이 도우실거야 나는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거야 누가 뭐래도 그렇게 하실거냐 이렇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셨습니다.
4.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10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이 경고의 말씀은 신 16장 고라당의 사건을 말씀함입니다. 고라가 누굽니까? 레위지파 제사장입니다. 그가 고라와 250명이 당을 짓고 모세를 대항하여 원망하다가 땅이 갈라지고 땅속에 생매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너만 하나님 종이냐 우리도 하나님의 종이다 너만 최고냐 우리들도 총회에 뽑힌 일군이다. 너만 듣느냐 우리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하면서 대항할 때 땅이 갈라져 고라와 함께 한 사람들이 빠져 매장이 되고 향로에서 불이 나와 250인을 사르고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어 일만 사천칠백 명이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나서서 교만하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매장된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여기 마음의 염병이 무엇일까요? 마음의 열병 속상함입니다. 속상해서 견딜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진리는 같습니다. 일점일획이라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런 일로 경계의 거울을 삼아 악을 즐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12절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경고합니다. 방심하면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즉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도우시니 용기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경계의 거울을 삼으신 것을 기억하시고 우상 숭배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서로 원망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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