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달설교

어버이의 사명 (엡 6:4)

공 상희 2010. 5. 9. 09:40

어버이의 사명 (엡 6:4)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이 시간 “어버이의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유명한 기독교 명상가 C. S. 루이스는 인간의 성숙의 단계에 대해서 이런 명쾌한 설명을 했습니다. “인간은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톨게에 의해서 양육되고, 필로스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간단히 설명하면 에로스는 남녀 간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스톨게는 부모자식이나 형제 같은 혈연적인 관계의 사랑입니다. 필로스는 우정이나 국가와 같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오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가페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 절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루이스의 말대로 인간은 육체적인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지만 점점 희생적인 사랑으로 완성되어 간다고 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 어버이로서의 사명에 부끄러움은 없었는지 다시 한 번 반성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명은 무엇일까요?

1.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엡6:4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아이들 마음에 분을 심지 말라는 뜻입니다. 언제 아이들이 노여워합니까?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지 않을 때입니다.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입니다.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면 그것이 일생 마음의 상처로 남게 됩니다.

혹은 가혹하게 했을 때입니다. 어떤 사람은 날마다 술에 만취되어 돌아와 아이들을 괴롭힙니다. 이런 일을 당한 어떤 아이는 부모에 대한 원한을 갖게 됩니다. 부모는 엄한듯하면서도 친구와 같아야 합니다. 삼강오륜에도 부자유친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옛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지나치게 엄하기만 하면 자녀들에게 배척 당합니다. 어떤 이는 나이가 40이 넘었어도 아버지가 무섭데요. 혹은 편애할 때입니다. 큰 애만 사랑한다든지 작은애만 사랑한다든지 이런 것도 상처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부부 끼리만 좋아하지 자녀들에게 무관심합니다. 가만 보면 그런 사람 있어요. 부부 간에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자녀들에게는 그것의 절반도 안 해요. 그래도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녀를 노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실망을 주지 않도록 살자는 말입니다.

2. 주의 교양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본문 4절의 “양육”은 양육 교육 훈련 징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책벌도 하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속담에도 "어릴 적 버릇이,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어요. 너무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면 안 됩니다. 아이를 통제 불능할 정도로 방치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그것이 잘하는 것 아닙니다. 잘못할 때는 징계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절제 없이 TV 보거나 게임이나 오락 같은 것에 몰두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방치하는 부모는 자녀들을 마귀에게 헌납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아이는 전화를 절제하지 못하여 핸드폰 요금이 매달 수십만 원씩 나옵니다.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입니까? 씀씀이가 헤퍼서 성공한 것 보지 못했습니다. 미래에 함께 불행해 지지 않으려면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이들에게 채찍을 들라고 했습니다. 잠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매는 자녀를 바로 잡아 줍니다. 그런데 매로 치라고 했지 손찌검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치면 마음에 상처가 생깁니다. 손으로 직접 때리지는 마십시오. 우리의 손은 어루만져 주는 손이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이 어머니를 만나자고 그랬습니다. 자식이 마지막 가는 길에 어머니를 사랑해서 만나기를 원하는 줄 알고 갔습니다. 면회실에서 아들이 엄마 손 좀 내밀어 달라고 하더니 어머니 손가락을 깨물어 부러뜨렸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에 니가 이럴 수가 있느냐” 그러자 아들 하는 말이 “제가 사형선고를 받고 형틀로 가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압니까? 제가 어릴 때 자그마한 물건 훔쳐올 때 어머니가 그것을 꾸짖어 때렸더라면 제 손버릇이 나빠지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건을 훔쳐올 때마다 어머니는 오히려 그것을 칭찬해주고 물건 훔쳤다고 이웃이 쫓아오면 눈에 불을 켜고 나를 변호하고 이웃을 대적했습니다. 어머니가 내게 도벽을 가르쳐주어 이제는 살인강도가 되어 형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교육 등한으로 자녀들이 지옥불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더 큰 범죄가 될 것입니다.

3.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여기 훈계는 원문에 말로 하는 충고를 의미합니다. 징계의 매는 어릴 때만 가능합니다. 큰 아이를 매로 때릴 수는 없습니다. 대신 충고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어린이에게 마땅히 갈 길을 가르치라. 그리하면 백발이 되어도 그가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공부도 중요하지만 신앙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 자고 일어나면 공부타령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공부에 몸서리를 칩니다. 그러나 신앙 교육이 앞서지 않으면 세상의 습관 다 배우고 잘못된 사고가 형성되어 그 인생 자체가 불행해집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교육할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인생을 가르치고 영원한 내세를 가르치고 죄가 무엇인지 알려 줘야합니다. 삶의 초점을 현세적이고 일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며 영원에 삶의 초점을 두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이것을 늘 들려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마음 속 깊이 박히게 됩니다. 나중에 크면 잘 믿겠지 이런 생각을 가지면 실패합니다. 자라면 자신이 더 현명한 줄 알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불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글이 있었더군요. 요즘 부모님 모시는 것을 귀찮다는 젊은이들의 행위는 자식들을 왕자 공주로 키운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냐 오냐 키운 자식은 불효하고 매 맞고 자란 아이가 효도하더라는 말도 있지요. 부모는 일생 자식 하인 노릇하며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살았지만 자랄 때 대접받는 법만 배운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어찌 부모 공양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부모 모시고 사는 자녀들은 상 받아야 마땅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강단에서 축복할 때마다 효도하는 자손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4. 기도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부모는 가정에 제사장입니다. 부모의 기도가 쉴 때 자녀는 하나님의 지원이 끊깁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아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긴 것처럼 부모는 자손들을 위해 그치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울면서 자기를 따르는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해 울라”(눅23:28)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녀들이 세상에서 시험을 당하며 삽니다. 이들을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1-32) 지금 주님이 이 기도를 하고 계시지만 이제 그 일을 부모들도 하자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육신적으로만 사랑하면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영혼으로 사랑해야지 육신으로 사랑하면 우상입니다. 사람들이 자식 우상 너무나 많이 섬기고 있어요. 너무 그리워하고 너무 애지중지 사랑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보시고 대신 만족해하시고 하나님이 그 귀여움 다 받으라고 하세요.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이 자손에게 복 주실 수 없습니다.

5. 진정한 복을 자손에게 물려줍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5:9-10에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에게서 보듯이 자손은 조상의 복을 따먹고 삽니다.

의인의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시144:12-15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로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시37:25-26에도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했어요. 신앙생활 충성생활 잘해야 합니다. 어려워도 충성하세요. 그 마음을 보시고 그 모습을 보세요. 하나님이 나와 자손에게 복을 주십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집수리를 하기 위해 벽을 뜯었습니다. 일본집의 벽은 "오가베"라고 해서 나무를 얼기설기 외를 역은 후에 흙으로 맞벽을 치는데 그래서 벽 사이에 공간이 있는데 벽을 뜯다보니 그 틈에 도마뱀 한 마리가 대못에 꼬리 윗부분이 찍힌 채 살아 있더랍니다. 주인이 놀라 살펴보니 그 대못은 10년 전에 그가 집을 지을 때 박았던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옴짝달싹 못하는 공간 속에서 10년이나 어떻게 살아 왔나"싶어 넋을 놓고 바라만 보는데, 때마침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기어 들어와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을 먹이더랍니다. 그러니까 벽 속에 갇혀버린 도마뱀을 위하여 또 한 마리의 도마뱀이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먹이를 물어 나른 것입니다. 동물일지라도 어미와 자식 간에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하더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을 진정 사랑하십니다. 우리 육신의 어버이들도 자녀들을 진정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자녀 사랑은 바로 내가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자녀 우상 삼지 않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날마다 축복하여 자자손손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 복된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