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자리
대하7:12-16
이 시간에 함께 나눌 말씀은 “가장 좋은 자리”라는 제목입니다. 사람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그 힘과 특전은 크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길거리의 교통순경도 그냥 평범한 자리에 있을 때와 교통대에 있을 때 그 힘의 차이는 달라집니다. 일반 자리에 있을 때는 그렇게 큰 힘이 없지만 교통대에 있으면 수백 수천대의 차들이 그 순경의 손의 움직임에 꼼짝없이 따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그 특권은 다릅니다. 일반 위치냐 대통령의 위치냐? 백성의 위치냐 왕자의 위치냐 그 차이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에도 자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 이 세상에 자리하고 있느냐? 하나님 앞에 있느냐?는 다릅니다. 만약 하나님 앞에 있다면 그에게는 은혜가 오고 축복이 오고 형통이 오고 사랑이 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에 그 마음이 있다면 그에게는 탕자와 같이 온갖 고난과 결핍과 배반과 고독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장 좋은 자리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자리가 곧 어디일까요? 곧 우리 하나님 앞입니다. 우리 예수님 앞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발아래서 말씀 듣는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하셨습니다(눅10:42). 여러분 몸이 교회에 나온 것도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진정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복이 옵니다. 그 하나님 앞이 얼마나 축복된 곳인가를 성전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본문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성전에 나오는 자들에게 여러 가지의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 나오면 어떤 복을 주십니까?
1. 기도의 응답을 주십니다.
15절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여러분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 문제가 생기면 회개하지 않고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가 하나님의 영광이 걸린 중요한 문제였을지라도 회개하지 않았을 때는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삼상 7장을 보면 블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큰 우뢰를 발하여 블레셋 군대를 물리쳐 주셨습니다. 잘 아셔야 합니다. 진정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 하나님 앞이란 회개의 자리요 신앙의 자리요 믿음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래서 요엘 선지자는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욜2:12-13)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앞에 나가면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14절 “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이처럼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래서 히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외쳤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전에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누리려면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교리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멀리하서 교리로 위안 삼고 그것에 안주하여 그것이 전부고 그것이 최고고 그것이 실재인양 살아간다면 그는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성령으로 적용되고 믿어지고 씻어집니다. 그래서 요한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리에 안주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정한 용서의 삶을 누려야 합니다.
3. 하나님 앞의 자리는 재앙이 제거되는 자리입니다.
13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당시 비 오지 않고 메뚜기 떼가 나타나는 것은 큰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럴지라도 하나님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면 그 재앙을 거두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앙을 당하면 선지자를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했습니다. 전쟁이 닥칠 때도 그랬고, 기근이 올 때도 그랬고, 질병이 유행할 때도 그랬습니다. 6.25 전쟁 때도 저 부산 근방까지 인민군에게 점령당했을 때 온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분명 재앙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복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복을 몰고 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요셉과 같은 사람입니다. 요셉은 가는 곳마다 형통한 자가 되어 그 곳에 복이 임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도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잘 경외하면 재앙은 물러가고 복이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성읍에서도 복 받고 들어서도 복 받고 나가도 들어가도 복이 임합니다.
4. 하나님 앞에 나오면 병을 고쳐 주십니다.
13절 하 반절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이 말씀은 병을 고쳐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열병은 과거에는 아주 무서운 돌림병이었습니다. 유럽에 흑사병이 돌아 수백만 명이 죽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도 하나님 성전에 나와 기도하면 없애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후와 조건을 조그만 바꾸어 주셔도 다 해결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이 곧 치료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영육 간의 질고에 시달리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살면 다 해결이 됩니다. 폭포나 숲이 의사라고 합니다. 숲 속에 있으면 음이온이 나와서 병을 치료한답니다. 어떤 끈적거리는 피도 숲 속에 있으면 다 정상이 된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숲도 이렇게 치료하거늘 하나님 앞에서 살 때 얼마나 치료의능력이 강하겠습니까?
그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온 자는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출15:26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 자리가 숲보다 더 큰 건강의 자리입니다.
5. 하나님 앞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자리입니다.
16절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이 말씀은 성전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겠다는 뜻이지만 달리 말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에게 관심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스바냐 선지자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했습니다.
그리고 시91:14-16에도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세요. 구원 받은 성도는 모두 하나님 앞에 있지 않습니까? 그 자리에서 구원을 노래하고 영광을 노래하고 승리를 노래하고 영생을 노래합니다. 그 앞에서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갈수록 생명수 샘이 넘치고 생명과가 넘칩니다. 그 앞에 나아가면 우리의 상한 마음도 다 치료해 주십니다. 그래서 14절에 “그 땅을 고칠지라” 우리 근본을 바꾸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몸은 교회 나왔으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습니까? 우리의 영적인 수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애굽입니까? 광야입니까? 가나안입니까? 아니면 성전 안입니까? 성전 밖입니까? 우리 모두 진실로 회개하고 사모하여 하나님의 품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 많이 받고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