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현재적 의미 (고전 15:1-2)
이 시간에 “부활의 현재적 의미”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프랑스 황제 루이 14세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는 "짐이 곧 국가다" 라고 외치면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완성하고 프랑스 권위를 만방에 떨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 신교를 방해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박해의 손길을 뻗쳐 세오졸프라를 체포하여 파리탑의 감옥에 감금했습니다. 때마침 부활절이 되어 루이 14세는 황제의 복장을 갖추고 호화찬란한 부활절 행렬을 거느리고 파리 시가를 행진하였습니다.
높은 감옥의 탑 위에서 이 행렬을 바라본 세오졸프는 하늘의 영감을 받아 부활절 찬송을 힘차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하셨다. 세상 사람 찬양하니 천사 화답하도다." 이렇게 찬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황제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이 찬송 소리는 의기양양하게 행진해 가던 루이 14세의 양심을 때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왕의 왕이 되신다는 사실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황제는 부활 축제 행렬을 세우고 감옥으로 들어가 세오졸프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잘못을 빌고 그를 석방하여 자유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 부활주일에 여러분에게도 여러 가지 기쁨의 일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 문제들이 해결되고 어려운 일들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전도의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슬픔을 당한 해군 가족들에게 평강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위대해도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부활을 축하해도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부활의 현재적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부활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예수만이 참 구주
먼저 부활의 현재적 의미는 예수만이 참 구주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활로서 예수만이 참 구주이심을 천하에 보여주셨습니다. 요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고는 신앙의 대상이 없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말고는 구원자가 없습니다. 그 예수가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 구주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의 교주가 죽어 다시 산 적이 있습니까? 불교의 석가도 죽었습니다. 이슬람교의 마호메트도 죽었습니다. 유교의 공자도 죽었습니다. 다시 살아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자칭 하나님 자칭 예수도 다 죽었습니다. 죽으면 살아난다더니 시체에서 썩은 냄새만 나니 갖다가 묻었습니다. 다 죽은 신만 섬기고 있어요.
얼마 전 모 월간지 정윤석기자의 “[르포] 본사 기자, 자칭 재림주들의 무덤을 찾아가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하나님이라더니, 땅 속서 썩고 있네?”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기자는 자칭 하나님 자칭 재림주들의 묘소를 일일이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그들의 거짓을 천하에 드러냈습니다.
지금 이방종교들이 기독교를 얼마나 모방하는지 모릅니다. 그들도 우리 주일날 모입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주일학교를 합니다. 그들도 방송포교를 합니다. 원불교에서 여성들이 입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 복장 있지요? 그것이 본래는 우리 기독교의 전도부인들이 입던 옷이었습니다. 심지어 불교의 한 종파인 정토종에서는 은혜로 용서 받는 교리를 만들어 가르칩니다. 석가만 믿으면 그 은혜로 다 용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한국 이슬람에서는 알라를 하나님이라는 명칭으로 번역했습니다. 모두 기독교 모방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 없는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는 대상은 없거나 있다면 귀신이거나 혹은 죽고 다시 살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살아있다 해도 점점 죽음을 향해 늙어가고 있습니다. 속히 미혹의 영에서 벗어나 깨달아야 합니다. 부활의 현재적 의미는 우리에게 분명한 신앙선택권을 준다는 점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가 믿을 살아계신 참 구주라는 것입니다. 죽은 종교를 믿으시겠습니까? 다시 사신 예수를 믿으시겠습니까?
2. 영혼의 구원
다음 부활의 현재적 의미는 영혼의 구원입니다. 예수님 살았다면서 아무 체험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부활의 예수를 체험해야 합니다. 고전15:1-2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이처럼 살아계신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이 마음에 찾아오실 때 그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변화시키십니다. 얼마나 부활의 주님께 마음의 자리를 마련해 드리느냐에 따라 그 변화의 분량이 다릅니다. 온전히 예수를 내 마음에 모시고 사랑하세요.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심을 믿으세요. 우리 삶에 주님이 계심을 믿으세요. 함께 하심을 의식하면서 항상 경외하는 맘으로 사세요. 주님을 믿고 인정하면 주님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벧전1:8-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했습니다. 이런 현재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다시 사신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영혼은 부활합니다. 이 부활체험이 중요합니다. 예수 모신 거듭난 영혼만이 하나님 나라에 가기 때문입니다.
예수 만남은 예수를 나를 피로 사신 주로 믿을 때 만납니다. 그를 경외하며 겸손할 때 더욱 깊이 만납니다. 주님을 부르면서도 교만하다면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부르면서도 매사에 경배하는 삶이 없으면 역시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예수 만난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적 예수 만남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단지 종교일 뿐입니다.
유명한 간증자 세브란스 병원 황수관 박사,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종교적 신앙은 했지만 큰 변화가 없었는데 나이 40을 넘긴 9월 어느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서 한없이 눈물 흘리며 자신의 위선과 교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진정 예수 만나 변화 받고 날마다 웃으며 전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연세대 교수가 된 것도 전도하다가 추천 받아서 교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면 주님이 나를 지배하실 수 있도록 더욱 겸손과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3. 승리적 전도
그리고 부활의 현재적 의미 또 하나는 승리적 전도입니다. 승리적 전도는 막16:20에 나타납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제자들의 전도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살아계신 예수를 전해야 전도가 됩니다. 표적을 부인하는 것이 보수신앙 아닙니다. 성경대로 하는 것이 보수신앙입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전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들도 말로만 전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예수 이름으로 고칠 때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그 완악한 핍박자요 율법주의자 사울도 부활하신 예수 만나 회개했습니다.
불신자들에게 이야기하려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배제하고 땅의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전제하고 하늘의 이야기를 하니 어떻게 통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보여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랑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고, 이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된 삶을 통해 성령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활의 예수를 전하고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어느 유명 방송국 기자가 교회를 비판하기 위해 취재 차 교회로 왔습니다. 그런 사람을 전도할 길은 말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는 무릎에 관절염을 앓고 있었습니다. 목사가 그의 다리를 만지자 그 순간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비판하러 왔다가 예수 믿고 돌아갔습니다.
차범근 감독 아시죠? 그가 국가대표를 거쳐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여 프랑크푸르트 팀에서 11번을 달고 뛰면서 차붐이라는 애칭을 얻었고, 80년 세계축구 베스트 11에 들었으며 키커지 선정 80년대 가장 위대한 선수로 인정받는 등 넘볼 수 없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차선수가 그렇게 된 이면에 하나님의 이적이 있었습니다. 1977년 국가대표 시절 오래 앓던 무릎 통증이 안수기도로 치유되었습니다. 무릎 통증 때문에 선수생활을 더 해야 마냐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독일로 보내주시고 세계적인 믿음의 선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기자들이 몰려와 차선수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차범근선수는 하나님 빼고는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이적이 있습니다. 귀신도 이적을 행합니다. 혹은 사람에게 잠재한 능력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적이라고 똑 같은 이적이 아닙니다. 애굽 술사들도 지팡이로 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뱀을 모세의 뱀이 먹어 치웠습니다. 세계 복음화는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데 있습니다. 부활만 확실히 전한다면 이슬람교의 확산 겁낼 것 없습니다. 불교의 확산 역시 겁나지 않습니다. 죽은 종교가 어떻게 살아계신 주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참 부활신앙을 갖고 있느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하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다시 사셨습니다. 이 부활의 현재성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참 부활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예수만이 나의 참 구주이시고 부활의 예수 모셔 거듭남을 경험하고 기도함으로 그 부활의 예수로 일하시게 하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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