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부활절연합예배 설교)
부활의 큰 기쁨 (마 28:5-10)
이 시간 "부활의 큰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어떤 종교도 기독교를 흉내 내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부활의 교리입니다. 타종교가 기독교를 모방하는 것이 많지만 이건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부활이란 다시 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고 그를 믿는 자들도 다시 살게 됩니다.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산다는 것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우리 구주 예수님이 다시 사셨을 뿐 아니라, 믿는 우리가 다시 살되 영원히 쇠하거나 죽지 않을 신비한 영광스런 몸으로 다시 산다는 사실, 이걸 안다면 날마다 노래하고 춤을 추어도 그 감격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감격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새벽에 부활의 소식을 들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새벽에 부활의 기쁨을 크게 느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8절 말씀을 보면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 그랬습니다. 그들은 천사로부터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듣고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 가운데서 부활의 기쁨이 더울 큰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굴까요?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새벽에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그 마음의 기쁨과 감격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여러분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부활의 감격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어떻게 이런 부활의 큰 감격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그걸 우리는 마리아에게서 봅니다.
1. 죄악의 고통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막달라 마리아를 가리켜 일곱 귀신에 들린 자라고 말씀합니다. 막16:9 부활의 기록에도 그랬습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를 소개하면서 그가 일곱 귀신에 들렸던 자라고 말씀합니다. 마라이라는 이름이 많긴 많습니다. 그러나 그냥 막달라 마리아라고 해도 구분이 되는데 왜 귀신 들렸던 마리아라고 했을까요? 그것도 일곱 귀신,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이 말씀에는 그만큼 엄청난 죄악의 고통을 경험한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죄악에 넘어지고 저 죄악에 넘어지고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서 그를 구원해 줄 자는 세상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우리보다 더 죄가 많다고 해석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본질을 드러내신다면 우리도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눅7:47에 그가 많이 사함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죄를 알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진정 죄악의 방황과 고통을 아는 사람이 부활의 감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활의 감격은 죄의 절망과 비례합니다. 죄의 고통과 절망을 안 만큼 부활의 기쁨은 더합니다. 예수 믿고 그 끈질기고 지독한 죄악에서 해방 받다니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누구나 율법 아래서 보면 마리아 같습니다. 누구나 율법 아래 진노의 백성이며 지옥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인생이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알기 전 율법 아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안의 생명의 성령으로 이겨지는 것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의 피로 양심의 자유가 누려지고 부활의 영으로 죄와 마귀와 슬픔이 이겨지는 은혜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처럼 죄악과 악령의 횡포를 알 때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인생의 슬픔을 알아야 합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주님의 죽으심을 가장 슬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의 훌륭한 점은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다는 점입니다. 막 16장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막16:1-3) 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죽으심에 크게 연민하고 슬퍼했습니다.
그 여인들은 부활신앙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누구보다 주님의 죽음을 맘 아파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지신 주님의 뒤를 따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온갖 장애와 위험을 무릅쓰고 아직 어두운 이른 아침에 시체에 바를 향유를 가지고 무덤에 왔고, 주님의 시체를 찾지 못하자 흐느껴 울었습니다.
요20:15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했듯 마리아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는 장례식에서 보면 압니다. 거짓으로 곡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사랑한 사람은 다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앞에 마리아의 슬픔이 컸기에 부활의 감격도 컸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인생의 죽음과 저주와 슬픔을 아는 자만이 부활의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의 문제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서 깨끗하게 해결해 버리신 그 사실을 안다면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정 인생이 무엇이며 인생의 그 고통이 무엇인가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인생공부 잘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공부는 잘했는데 허무만 외치다 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득도가 아닙니다. 부활의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만이 부활의 진리를 감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3. 주님의 부활을 체험해야 합니다.
마28:9-10에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제자들과 다른 여인들도 부활의 소식을 들었지만 빈 무덤만 본 사람과 직접 만난 사람이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놀랍고 복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이라는 말씀입니다. 엡2:5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죽으실 때 우리도 죽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다시 살았고 주님이 높이 되실 때 우리도 예수와 함께 하늘의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울 신학의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명은 예수 안에 있어요. 우리 몸은 땅에 속했어도 우리 영혼은 하늘에 속했습니다. 예수 안에 감춰 있습니다. 그래서 골3:1-4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는 위에 계신 주님에게서 우리 생명을 받습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는 성령으로 부활생명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지만 우리 영혼은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며 더 풍성히 누리고 죄를 이기고 저주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원수를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사망을 이기며 죽음의 공포를 이기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 생명은 이기는 생명입니다. 이기지 못할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죄도 사망도 미움도 마귀도 절망도 질병도 그 무엇도 이기지 못한 것 없습니다. 승리의 생명입니다. 영광의 생명입니다. 권능의 생명입니다. 행복의 생명입니다. 이 부활의 은혜를 체험한 자는 다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생명이 나타나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 받고 온전히 승리했습니다. 변화되었고 사랑했으며 능력 있었으며 핍박도 죽음도 사자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우리 육체마저 영광의 형체로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아침에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려고 예수님 다시 사셨습니다. 고통 가운데 계십니까? 실망하지 마세요.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죄악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인생의 죽음과 수고와 슬픔이 크면 클수록, 부활하신 그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부활의 기쁨은 더욱 충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풍성한 부활생명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이기고 부활의 큰 기쁨 속에 살아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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