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가는 지름길 (출 13:17~22)
이 시간에 “천국 가는 지름길”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하루는 주일학교 교사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만약 제가 매일같이 교회에 나와 청소를 하고 여러분을 훌륭히 가르친다면 천당에 가게 될까요?” 아이들은 일제히 “아뇨”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제가 살고 있는 재산을 모두 팔아서 몽땅 교회에 바친다면 천당 가게 될까요?” 아이들은 역시 “아뇨”라고 대답했습니다. 참 똑똑한 아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천당에 갈 수 있지요?” 선생님이 듣고 싶은 대답은 예수 믿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앉아 있던 꼬마 하나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라 했을까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답을 했습니다. 큰 소리로 “죽어야 가죠.”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모두 깔깔 웃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성도가 죽으면 천국 갈 줄 믿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이 아이의 말대로 꼭 죽어야만 가는 것일까요? 늘 강조하지만 천국은 이 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무엇보다 강조하셨습니다. 눅17:21에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러시면서 눅17:20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눅17:20)라 하시며, 막9:1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구주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정권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령의 지배와 다스리심을 성령 충만이라 하는데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임합니다.
우리는 지금 애굽이라는 세속을 떠나 광야의 믿음의 과정을 통해 가나안이라는 천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천국이 속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백성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 가는 지름길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 가는 지름길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천국 가는 지름길은 무엇일까요?
1. 예수 믿음이 천국의 지름길입니다.
요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지름길이라니까 다른 길이 있는 줄 알지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율법으로도 안 됩니다. 노력으로도 안 됩니다. 선행으로도 안 됩니다. 다른 종교로도 안 됩니다. 명상으로도 안 됩니다.
요즘 기독교 안에 명상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이것은 도교나 불교나 이런 명상 종교의 혼합입니다. 명상운동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려는 시도가 천주교 영성단체 같은데서 활발한데 아주 위험한 운동입니다.
요즘은 기독교인들이 하는 Q,T도 우리가 배운 옛날 Q,T가 아니라고 합니다. Q,T에 명상기법을 가미시켜 그것을 영성운동이라고 하고 있답니다. 명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을 체험하려 하는 것은 악령에게 접신 당하기 쉬운 위험한 일입니다. 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을 넘어서 더 깊이 나가면 악신과 접신이 됩니다.
영국의 팀 죤스 목사는 말하기를 "요가가 힌두교와 불교의 철학을 바탕으로 인체의 다양한 움직임을 추구하는 수련이며 신비적 현상으로 무아적 경지에 이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 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로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기독교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요가가 인간의 수련과 노력을 강조하지만 기독교 복음은 온전해짐이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요가 말고도 좋은 스트레칭이 많이 있으니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온전이시고 천국이 되십니다. 주의 영이 함께 하실 때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모신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요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셨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천국으로 옮겼으니 이보다 더 지름길이 있겠습니까? 예수를 주로 믿고 그 아래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2. 영적 싸움이 천국의 지름길입니다.
다른 길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믿음으로 살자는 말입니다. 신앙고백이 전부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17절에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여기 가나안으로 최단코스가 소개됩니다. 이 코스는 블레셋 사람들이 거주하는 가사 지역을 통하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한 달 이상 걸리는 광야 길을 택하신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매우 호전적인 족속이었습니다. 때문에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전쟁을 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분명히 출애굽을 후회하고 서둘러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 확실합니다. 거기다 백성들의 믿음은 약합니다. 그 상황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블레셋과 싸운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름 길을 친히 가르쳐주셨다는 사실이 주는 교훈은 큽니다. 영적 싸움을 하면 천국이 임한다는 진리입니다. 신앙 고백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영적 싸움이란 시험을 이기는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쓸 사람들은 대개 이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신 종들을 보면 상상할 수 없는 큰 시험을 헤쳐 나왔습니다. 매일 말씀 보고 기도하지 않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시련 속에 살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세요. 그들은 빼앗기고 가두고 죽고 누명과 추방 당하고 온갖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랬지만 그 길이 은혜 받는 최단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속에서 신앙생활했기에 며칠 만에 능력 있는 성도로 해처럼 빛나는 성도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후회할 수밖에 없는 시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꼭 박해를 받아야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박해 받을 때 이상으로 신앙생활하면 됩니다. 목숨 바쳐 신앙생활하면 동일한 결과가 옵니다. 초신자들이 구역장의 인도로 기도원에 가서 단 기간에 신앙의 용사가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영적 싸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전쟁하지 않는 홍해의 광야 길로 갔다 할지라도 결국은 가나안에서 싸워야 합니다. 가나안은 싸우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박성만이 빼앗습니다.
마12:28에 보면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한 곳에 귀신은 물러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경외했던 제자들과 같이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예배로서 경외해 보세요. 나를 낮추며 하나님을 높여보세요. 감사해 보세요. 말씀에 순복해 보세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큽니다.
3. 교회생활이 천국의 지름길입니다.
역시 다른 길이 아니라 교회의 도움 받으면 더 잘 믿게 된다는 말입니다. 18-21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길이 아니라 차선책으로 홍해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홍해의 광야 길로 간다고 아주 먼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40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교회의 상징이기도 합입니다. 행7:38에 보면 스데반의 설교에서 “광야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율법을 받아 하나님 경외하는 법과 이웃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구원을 교회 출석으로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 잘 출석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최고의 방법입니다. 믿음이 스스로 혼자된 줄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전도를 통해서 교회의 양육을 통해서 주신 은혜였습니다. 교회 생활해야 큰 도움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양육을 돕는 일군과 지체들을 교회 안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엡4:11-12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논의 농사가 더 잘됩니까? 아니면 노천에서 농사가 잘됩니까? 농업전문가들의 돌봄을 받는 논농사가 더 잘됩니다. 간혹 똘 것으로 노천에서 나기도 하지만 보편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세운 일군들이 돕고 지체를 통해 얻는 보이지 않는 도움은 상상할 수 없이 큽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 깨닫는데도 오랜 세월이 흐르는데 교회의 도움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종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와 같은 일군이 없었으면 어떠했을까요? 애굽이 종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방황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 가는 길을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천국은 율법으로도 갈 수 없습니다. 노력으로도 못갑니다. 선행으로도 못갑니다. 명상으로도 못갑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예수님 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적극적인 영적생활과 충실한 교회생활을 통해 더욱 예수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잘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미래 천국만이 아니라 현세에서도 온전히 천국 생활하시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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