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선지서

분량이 차야 합니다 (렘 25:11-14)

공 상희 2010. 1. 23. 16:22

분량이 차야 합니다 (렘 25:11-14)

 


11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13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 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14 여러 나라와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 역꾼을 삼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

 

이 시간에 “분량이 차야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 드리기 전에 먼저 설교를 돕는 예화 하나를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작은 도시에 상가 삼 층에 세를 얻어서 교회를 개척한 어느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한지 얼마 안 되어 성도들이 없으니 예배당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건물 주인은 1층에서 포목장사를 하는데 자주 찾아와서 행패를 부립니다. 하루는 주인이 "하나님은 가난뱅이다. 월세도 못 주는 거만!" 라고 하면서 예배당을 휘젓고 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목사님은 늘 강단에 엎드려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봉고차가 그 상가 앞에 있는데 주인은 그 봉고차를 발로 차면서 비키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이놈의 똥차 좀 안 보이면 안 되나? 차를 빼요. 빼” 그러나 목사님은 아무 말도 않고 차를 저 쪽으로 빼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자리에 자기 그랜저 승용차를 대는 것이었습니다. 월세 내지 못한다고 개무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갑자기 고급 그렌저 승용차 3대가 그 앞에 서면서 아주 몸이 건장한 사람들이 튀어나오더니 차를 빼고 오는 목사님에게 두 줄로 서서 90도로 절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니 형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형님이 사라져 버리니까 우리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얼른 가시지요!" 그랬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이제 건달이 아니다. 나는 이제 목사가 되었으니까 너희들 앞으로 나를 찾아오지 마라."고 했습니다. 목사가 됐다 하니까 어쩔 수 없었던지 "예 알았습니다." 하고 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형님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연락을 주세요.” 하면서 깎듯이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포목 가게 주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그 후부터는 목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도 세상적으로 본다면 얼마든지 나름대로 누리고 살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그 세계에서 두목이었던 사람이 어찌 갖은 수모 당해 가면서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컸으면 그 악독한 옛 생활 다 청산하고 이제는 신앙생활도 부족하여 신학교까지 들어가 일생을 주를 위해 불태우기로 작정한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힘입니다. 은혜로 가득차면 변화되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구약 에스라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간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짓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해방령을 내린 멋진 왕은 바로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의 고레스 왕이지요.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라고까지 부른 하나님이 쓰신 귀한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때 제 1차로 귀환하는 수효는 약 오만 명 가량이었습니다. 그들은 돌아와 맨 먼저 그토록 숙원이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백성들이 돌아오고 예루살렘 성전은 건축되고 온 백성이 맘을 합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거역하며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패역과 우상숭배를 일삼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이 품 안에 돌아왔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하신 70년이 찬 후에 돌아오리라는 그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포로 귀환이 주는 의미가 귀합니다. 이 사건은 죄악의 포로생활하던 죄인들이 회개하여 돌아와 하나님께 몸과 마음 드려 예배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뜻과 그 영광을 위해 자기를 불태우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진리를 우리에게 교훈해 줍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이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누구보다 회개하여 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차야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해방을 갈망하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렘25:11에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아무리 갈망하고 원해도 70년이 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70년이 차야 하나님의 성전을 훼파하고 백성들을 잡아간 바벨론을 벌하시고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2-14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고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 70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7은 완전수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수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했습니다. 일곱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온전케 하시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거기다 구비된 만수 10을 곱하면 70이 되는데 이 수는 성령 충만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온전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틀림없는 말씀입니까? 이 때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고 세속을 멀리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중세의 유명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396~430년) 흔히 어거스틴이라 부르는 그 교부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인 모니카는 아들을 걱정하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방탕하여 사생자를 낳고 마니교라는 이단에 9년이나 몸담고 있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고통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방탕한 것만도 마음 아픈데 이단에까지 빠졌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아들 기도로 매일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어머니가 그 당시 감독인 암브로시우스에게 가서 부탁했습니다. “감독님, 제 아들이 이러 이러한 이단에 빠졌으니 제발 한 번 만나서 잘못된 점을 일깨워주십시오.” 그러자 암브로시우스는 “아니요, 그를 그냥 거기에 내버려두시오. 오직 그를 위해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저는 책을 읽다가 스스로 그 오류가 어떠한 것이며 그 불경건함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될 것이오.” 그래도 부탁하는 모니카에게 감독의 대답은 동일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한 마디의 말이 유명합니다. “이제 그만 가시오! 그대의 삶을 두고 이르노니, 눈물의 아들은 결코 망하지 않소. 그 아들을 위해서 그 정도의 눈물을 흘렸다면, 그가 멸망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눈물의 아들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명언 중의 명언입니다. 과연 어거스틴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의 분량이 하나님 앞에 가득 찰 때 그 응답은 임하고야 말았습니다. 어거스틴이 돌아왔을 뿐 아니라 참으로 귀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이 그 답입니다. 은혜의 분량이 차야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오기까지 바벨론에서 유대인들이 한 일이 있습니다.


1. 성경을 읽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하면서 이 모든 원인이 자신들의 잘못임을 깨닫게 되었고 율법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계급 즉 서기관제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각 회중들마다 자신의 성경 사본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베끼는 전문가들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들이 서기관입니다.


이처럼 은혜의 분량이 차려면 늘 영의 양식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시1:2-3에 복 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 시냇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에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2. 예배를 드렸습니다.


바벨론에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면 강가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곳곳마다 회당을 만들어 거기서 신앙을 이어갔습니다. 회당제도가 거기서 시작했습니다. 이 예배생활이 있었기에 바벨론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늘 예배해야 합니다. 교회의 공예배로는 부족합니다. 초대교회처럼 매일 예배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365일 예배하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구약 성막에서는 조석으로 소제를 드렸듯 지금도 그 분량만큼은 하나님을 섬겨야 충만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습니다.


3.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렘50:4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그와 함께 유다 자손이 돌아오”리라고 하셨습니다. 호1:11에서도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라고 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는 두 나라로 갈라졌지만 바벨론에서 하나가 되어 돌아와 통일 이스라엘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몸이 게을러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으면 결코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마음도 드려야 합니다. 몸도 드려야 합니다. 목소리도 드려야 합니다. 시간도 드려야 합니다. 힘도 드려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서로 싸우던 두 나라가 하나되어 돌아옴처럼 서로 용서하고 화목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똑 같은 처지가 되어 서로 용서하고 서로 위로하며 사랑했습니다. 용서해야 용서해 주십니다. 사랑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해야 합니다. 은혜의 분량은 곧 사랑의 분량이기 때문입니다. 막힌 것이 있어서는 풍성한 영적생활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4. 특별한 도움도 있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징계 받아 바벨론에 잡혀갔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은 바벨론의 두 번째 통치자의 도움입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왕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하나님의 이름에 함부로 말라고 엄한 조서를 내렸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은사로 도우시고 또 여러 일군들을 일으키셔서 돕고 계십니다. 은사 충만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은사가 됩니다. 은사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은사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깨닫고 회개하고 바로 하나님 앞에 돌아와 바로 예수 믿어 구원 받고 바로 섬겨 영광 돌리라고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주의 종을 세우신 목적도 그러합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더 온전히 자기 품 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더 이상 세상길에 방황하지 마세요. 형식적인 믿음에 살지 마세요. 더 믿고 더 사랑하고 더 예배하고 더 헌신해서 믿음의 분량이 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 믿고 하나님을 더 잘 경외하여 성령의 은혜로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