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처럼 쓰임 받자 (삼상 3:19-4:1)
이 시간에 “사무엘처럼 쓰임 받자”라는 제목입니다. 1837년 2월 5일. 미국 메사츄세츠 노스필드에서 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드와이트 무디는 바울 이후에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크게 쓰임 받은 하나님의 일군으로 평가되고 있을 정도로 위대한 전도자입니다. 보이는 바대로는 오순절의 베드로보다 수십배 수백배 더 큰 역사를 이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이런 책도 나왔듯이 사람들은 학식도 없고 비천하기 그지없는 무디가 어떻게 그토록 성령에 사로잡혀 귀하고 크게 쓰임을 받았는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무디를 쓰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하심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에 합한 다윗을 쓰신 것처럼 한 편으로는 무디가 하나님의 맘에 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일할 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손발이 잘 맞는 것입니다. 속담에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해먹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실 때 하나님과 손발이 맞지 않는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한다고 동분서주하지만 하나님과 상관없이 혼자서 뛰다가 지쳐서 쓰러지는 자들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일군을 소개해 줍니다.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고 할 만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사무엘처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1. 기도가 축적되었습니다.
삼상1:20에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기도해서 얻은 아들입니다. 성경에서 위대한 인물들은 대개 기도해서 얻은 자녀들입니다. 창세기 족보를 보면 에녹이라든지 노아라든지 이삭이라든지 사무엘이라든지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해서 수고로이 낳은 자녀들입니다. 기도가 축적되었습니다. 한나가 자식 때문에 얼마나 고통 받고 부르짖습니까? 사무엘은 이렇게 기도해서 낳은 아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려면 기도가 차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이 이끄시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생활이 충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성령께서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도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 없이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기도한 만큼 성령이 임하십니다. 은혜 운동 좋아요. 그러나 기도 없이 하려다가 얼마나 악령이 시험이 큽니까? 뿌리 없는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하나님께 뿌리박지 못하면 하나님께 쓰일 수 없습니다.
2.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삼상1:28에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한나는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고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그를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나실인으로 드렸는데 나실인은 서약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의 평생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나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활 외에는 하지 않고 다른 사생활을 하려면 허락 받고 할 만큼 드려져야 합니다. 자기 계획과 자기 생활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인지 나를 위해 사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면 쓰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D.L. 무디를 쓰신 이유에 대한 기록을 보니까 그의 280파운드의 육체 한온스, 한온스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었고 그의 실존의 전부 그의 소유의 전부가 하나님께 속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만큼 하나님께 드려져 있었습니다. 무디의 친구 헨리 바알레이씨는 증언하기를 무디는 늘 "나는 하나님이 완전히 헌신한 사람을 쓰셔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 싶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사생애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공생애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께 바쳐졌고 하나님 앞에서 자랐으며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3.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삼상3:1을 보면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사무엘이 쓰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음성은 없었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과 듣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 땅 차이입니다. 하나님 생각과 자기 생각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육의 음성으로만 가득 차 있으면 육신의 일만 도모합니다. 그래서는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만 사람의 음성인 줄 알고 엘리에게 달려갑니다. 이런 일이 몇 차례 계속되자 엘리는 여호와께서 부르신 것을 깨닫고 여호와의 음성이라고 사무엘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은 없으신지 생각하며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기도하고 주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자기 질문에 대하여 답을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경험하려면 묻는 기도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대개 예언은 내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확증입니다. 오늘날의 예언은 대개가 확증입니다. 그래서 예언을 들으면 그동안 내가 늘 생각하던 그것을 말합니다. 내가 생각한 것 같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던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도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인 줄만 알고 그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음성은 우리 소원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마음 가득히 들리느냐 그리고 얼마나 주님의 음성으로 깨닫느냐는 다릅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생애를 불태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동족에 대한 소명이었습니다. 잘못된 자기 백성들에게 외쳐야 한다는 사명이었습니다. 음성을 들어야 하나님의 동역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성령으로 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함께 일 할 수 있습니다.
4. 쓰임 받기를 기다렸습니다.
삼상3:10에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대답했습니다. 여기 사무엘의 입장은 종입니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셨고 사람들은 그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매 순간 순간 하나님이 나를 쓰시도록 대기하는 자세여야 합니다. 어떤 분은 설교를 준비하면서 말씀을 주시기를 종일 책상에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세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말씀의 종으로 쓰셨습니다. 우리는 전도하거나 봉사하거나 말씀 전하거나 집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거리에서 어디서나 “종이 여기 있나이다. 나를 사용하소서”하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잠시 침묵으로 시험하시다가 사용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고 주님이 앞서 가시고 할 일을 생각나게 하시고 만날 자를 만나게 하시고 주님이 친히 역사하십니다.
후일에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에 왕을 구했습니다. 이방 나라와 같이 왕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반대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려야지 사람이 다스려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주가 누군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왕 되어 하나님을 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능력 받아서 세상을 주름 잡는 일군이 되려고 하는 것은 기본이 잘못입니다. 우리는 오직 쓰임 받으려 해야지 하나님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는 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5.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때 사무엘은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무엘상 7장을 보면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에 모아 회개시키고 제단을 쌓으며 민족대부흥운동을 일으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오지만 쉴 사이 없이 기도하여 물리칩니다. 그리고 온 땅을 순회하며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6. 끝까지 깨끗했습니다.
삼상12:2-3에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그 때 백성들은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주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깨끗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세속도 안 됩니다. 욕심도 안 됩니다. 교만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시지 욕심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아버지께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도 사명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사무엘처럼 기도하고 헌신하며 음성 듣고 겸손하며 깨끗하고 충성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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