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사 35:1-10절, 123.109.115.장*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온 인류에게 기쁨과 소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주로 오셨습니다. 그는 임마누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는 자에게 위로를, 병든 자에게 고침이 되시고, 실망한 자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주시고 사죄의 은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탄은 그저 즐기는 것도 아니고 크리스마스 튜리도 아니고 백화점의 바겐세일도 아닙니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구원운동의 절정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탄에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셔야 하며 그리스도께 모든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성탄을 맞이해서 우리들에게는 평화와 은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본문은 지난번에 말씀드린대로 장차 메시야가 올 것을 예언하신 내용입니다. 그가 오실 것이며 광야와 메마른 땅 사막이 변해서 레바론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으로 꽃피울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이신 그리스도를 만날 때 인생은 변화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오시면 약한 손, 떨리는 무릎, 겁내는 자에게 무능하고 할 수 없는 자에게 용기와 능력과 확신을 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인즉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5절에서 10절 말씀을 생각코자 합니다.
1.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셔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5 절에서 감격과 확신에 찬 어조로 "그 때에"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바로 예수님의 오실 때 곧 주님의 성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 600년 전에 장차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면서 그는 감격해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세상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심으로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시지만 낮고 천한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그는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려 놓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을 되받기라도 하듯이 로마서 3:21절에 "이제는"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거를 받은 것이라,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구속운동의 절정입니다.
단순히 성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 아닙니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문자 그대로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소경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했습니까? 물론 소경을 불쌍히 여겨서 이지만,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던 대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독특한 것입니다. 그는 육신의 눈만을 뜨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그를 믿는 자에게 영혼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리의 신령한 눈을 뜨게 하시며,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육신의 소경만 소경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실제로 눈 뜬 장님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장님의 눈을 고쳐 주실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나라의 기이한 것을 보게해 주십니다. 또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귀머거리의 귀가 열려 듣게 되는 것은 이적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이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게 됩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오묘한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들어도 그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나의 생명의 구주가 된 후부터 그의 음성을 듣게 되고 그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권능과 이적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혈기 마른 자를 고치시고 연약한 자들을 고치셔서 뛰게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능하고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그의 삶을 감격과 기쁨과 확신으로 가득하게 뛰놀게 해 주십니다. 또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벙어리처럼 말못하고 노래함으로써 우리의 작은 입술을 열어서 주의 말씀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이적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세상은 변하고 우리도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라고 했습니다. 참 흥미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이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광야에서 물이 솟겠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한국에서 석유가 펑펑 솟아지겠다는 소식보다 더욱 놀라운 소식입니다. 그 지역에서 광야에서 물이 솟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막에서 시내가 흐른다면 이는 오아시스입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기갈을 해결해 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이 되시며, 나의 길이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갈한 심령 속에 사막에 흐르는 생수처럼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가 오시지 않았다면 인간은 아무 소망이 없이, 사망의 그늘에 있을뻔 하였습니다. 그리고 8, 9절 말씀은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의 방법을 보여 주십니다. 메시야가 탄생하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 곧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본문대로 보면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선 우리는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메시야가 오셔서 펼쳐질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하던 우리로 하여금 낙심케 하는 듯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실 우리는 깨끗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거룩한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볼 때는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는 참으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죄를 가지고 설 수 없습니다. 인생은 하나 같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거룩한 길을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 후반부에는 다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구원의 은총이 있습니다.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해도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은 지나갈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구속주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어도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길을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길되신 분입니다. 길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조건은 우리의 의가 아닙니다. 9절 끝의 말씀대로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왜 성경은 메시야의 오심과 구속을 연관시킵니까? 그 이유는 메시야는 바로 구원의 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이사야 선지자가 600여년 전에 이미 말씀한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이심을 선포한 사실에 우리의 가슴이 뛰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성탄절(聖誕節)을 교회(敎會)의 절기(節氣)와 행사(行事)에 그치고 우리끼리 들떠 있는 것은 성탄의 의미를 바로 모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10절의 말씀은 장차 메시야가 오셔서 궁극적으로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과 구원의 영화를 노래한 참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메시지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희락을 펴시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도록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애통하는 세상, 절망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용기와 확신과 소망을 주시며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하실 줄믿습니다. 6,7절에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사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사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구속사적으로보면 이같은 땅의 치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광된 회복과 더불어 자연 만물도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에서부터 해방되어,
함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복과 구속의 날에 시온의 땅에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물의 풍성함"입니다. 언제나 물의 결핍 때문에 고통받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물의 풍성함은 가장 큰 축복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광야도, 사막도, 메마른 땅도 다 물이 없어서 쓸모없는 곳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물이 넘침으로써. 이 모든 환경이 바뀝니다. 물이 얼마나 풍부하면 갈대 같은 식물들도 자라겠습니까? 땅까지도 완전히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성육신 하심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는 축복이 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구속력에서 자유함을 얻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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