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어린양(성탄맞이)
박갑진 목사 [성경본문] 요 1:29-34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는 말씀은 세례요한이 유대 민중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 말씀입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들은 예언자의 음성을 듣지 못해 영적인 고갈을 느끼고 있었으며 수난에서 구원해 줄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난 선지자가 있었는데 이 분이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중은 이 요한을 보고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한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말씀을 전하고 세례를 베푸는 곳에는 많은 군중이 모여들었습니다. 그에게 환호를 보냈습니다.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환호하는 많은 군중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다만 주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있으니 나는 그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외쳤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선하게 쓰신 동물은 양입니다. 양은 선하고 유순하며 희생적인 짐승이었기에 예수님을 상징할 때에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말을 씁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란 말씀에는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어린양은 인간 구원을 위하여 희생하였습니다.
1) 에덴 동산에서 희생된 어린양이 있습니다.(창3:21)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들은 불순종하므로 범죄 했습니다. 범죄로 인하여 영의 눈은 어두워지고 육의 눈이 밝아져서 그들이 벌거벗고 있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수치를 가리려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은 얼마가지 못하고 말라 부스러졌습니다.
이런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양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희생당한 한 마리 양, 이 양의 죽음은 구속사적 의미를 계시해 주신 사건입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담과 하와가 당장 죽임을 당해야 했는데 오히려 하나님께서 양을 희생시켜 그들의 수치를 가려주셨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대속의 피였던 겁니다. 최초의 인간이 범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나 하나님은 양을 희생시키시고 인생을 용서하셨습니다. 피 흘린 양은 누구십니까?
2) 유월절에 피 흘린 어린양이 있습니다.(출12:1-14)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00여 년 동안 종살이로 시달렸습니다. 마음이 강퍅한 바로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놓아주지 않고 더욱 가혹하게 괴롭혔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방법으로 온 애굽 땅에서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기로 하신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여 전 이스라엘백성들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고 우슬초 묶음에 양의 피를 적셔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온 식구가 집안에 있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밤에 애굽전역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졌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문설주에 양의 피가 없는 모든 집에는 사람의 장자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애굽 천지는 일시에 초상집이 되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통하여 400년 종살이하던 애굽 땅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하게된 것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긴긴 종살이에서 해방을 얻고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어린양이 피를 통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는데 피 흘린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피를 문설주에 바른 건 우리들의 마음에 그 피가 있어야 할 걸 말합니다. 피를 보고 넘어간 건 예수의 피가 있는 자마다 심판에서 제외된다는 겁니다. 집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떠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3) 성전에서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번제나 속죄의 제물의 주 제물은 어린양이었습니다. 번제는 헌신의 표로서 각을 떠서 불태워 드리는 제사이며, 속죄제는 죄 용서를 위해서 피 흘려 드리는 제사입니다.
왜 하나님은 양을 잡아서 그 피를 흘림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습니까? 꼭 이런 의식이 필요했을까요?
이스라엘에는 특별히 l년에 한차례씩 대속죄일이 있습니다. 이 날에는 대제사장이 염소 두 마리를 골라서 한 마리는 이스라엘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번제로 드렸고, 다른 한 마리는 대제사장이 제물에 안수하며 자신과 온 민족의 죄를 자복한 후에 그 염소는 소위 <아사셀 염소>라고 해서 멀리 광야로 내보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고 먼 광야로 아주 가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광야에 버려진 염소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 광야에서 죽습니다.(레I6장).
피 흘려 죽임을 당하는 양, 아세셀 양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피 흘려 죽임 당하는 양으로 표현했습니다.
1. 흠 없는 어린양
하나님 앞에 드리는 어린양은 흠이 없어야했습니다. 눈이 상하지 않고 다리를 절지 않고 몸에 흠이 없는 양이라야만 했습니다. 벧전1:18-19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한 것이니라"라고 했는데 정녕 그리스도는 흠이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습니다.
홈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 받은 성도들은 흠 없는 양으로 살아야합니다. 빌2:15에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홈 없는 아들 딸,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합니다.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더럽고 오염된 심령들을 홈 없는 어린양의 피로 깨끗이 씻어 정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탐심과 편견으로 어두워져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엔 탐욕과 교만으로 얼룩진 흠이 있습니까? 우리의 손이 얼마나 부정하며 우리의 발이 세상을 향하여 미끄러져 가고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인격으로 변화 받기를 바랍니다.
2 온유한 어린양
양의 특색은 온유와 평화에 있습니다. 이사야는 사53:7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하며 어린양의 품성을 말했습니다.
어린양 예수님은 온유하셨고 평화로우셨습니다. 그는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으시는 온유를 지녔으며 원수도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온유는 비굴하거나 나약한 것이 아닙니다. 온유한 어린양 예수님은 마5:5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고 마11:29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어린양 예수님은 온유하셨고 겸손하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땅을 차지했습니다. 온유하신 예수님은 "내게 배우라 learn from me"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지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곤욕을 당할 때, 괴로울 때, 억울할 때 온유하며 잠잠하신 어린양 예수님에게 나는 어떻게 처신할까 배워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온유한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처신을 하고있지 않습니까? 강퍅해지고 거칠어지지 말아야합니다.
3 희생하는 어린양
하나님의 어린양은 희생양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어린양은 완전히 희생의 동물입니다. 희생하는 제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희생하는 일생이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희생하는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겁니다. 그에게는 일정한 거처가 없었고 주리시며 피곤하셨습니다. 요1:11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배척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리며 희생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성탄하셨습니다. 희생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막10:45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몇 일 후면 성탄절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죄를 지시고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내가 짐을 지고 책임을 다하며 희생하려는 어린양이 되려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교회에는 어린양을 찾고 있습니다. 모리아 산을 오르던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창22:7)라고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이 이삭의 질문을 오늘 우리도 하고있지 않습니까? 누가 이 제단을 위해서 번제할 어린양이 되겠습니까? 이삭은 자기가 번제할 양이 되어야 할 걸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삭 자신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어린양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는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묶였습니다. 불태워 죽임을 당하는 제단에 올라갔습니다. 그렇다면 이 제단을 위해서 결박을 당하고 희생을 해야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그 양이 누구입니까?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 앞에 어린양으로 드려졌던 제물이 된 것처럼 오늘 이 성전에는 제2의 이삭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필요합니다. 내가 선 그 자리에서 어린양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 신앙인의 자세이며 믿음의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피 흘렸습니다. 희생하셨습니다. 그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히9:22에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원합니다. 구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을 만나는 성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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