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사9:1-7 1.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Unto us a child is born." 아기가 태어 나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에 십 여명의 아기들이 태어났습니다. 부모에게는 물론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고 온 교회에도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아기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 다 주고 친근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어른으로 오시지 않고 아기로 오셨습니다. 범죄한 우리 인간에게 무서운 존재가 아닌 친근한 존재로, 기쁨의 존재로 찾아 오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천사장의 모습으로 오셨다면 우리는 모두 무서워서 도망을 쳤을 것입니다. 사실 천사가 나타났을 때 요셉도 마리아도 양치던 목자들도 다 무서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실 때 무서운 존재로 오시지 않았고 가장 친근한 존재인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서워 말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2:10,12). 결국 들에서 양치던 목자들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기뻐하며 아기 예수께 달려가서 경배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도 아기를 보고 두려워하는 대신 기뻐하며 가까이 달려가서 경배했습니다. 예수님은 범죄한 우리 인간들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아기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인간의 운명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참여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운명을 처음부터 모두 짊어지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여관에서 배척 받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자 마자 애굽으로 피난 가는 경험도 했습니다. 소년 시절에는 노동의 수고와 가난의 고통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운명을 처음부터 모두 짊어지시기 위해서 갓난 아기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얼마나 황송하고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2.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Unto us a son is given." 예수님이 아기로 오시되 특별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보통 아기가 아닌 특별한 아기로 즉 아들로 오셨습니다. 누구의 아들로 오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왕권이 주어졌습니다.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하늘과 땅을 다스릴 왕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들을 무시하는 것은 곧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권위를 가진 아버지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들은 아들인데 아버지와 꼭 같은 권위와 능력을 가지신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을 기묘자(Wonderful)라 모사(Counselor)라 전능하신 하나님(Mighty God)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Everlasting Father)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은 아들인 동시에 아버지였고 이간인 동시에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는데 예수님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이것이 신비로운 일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이고 기묘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3.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His name is called Prince of Peace." "평화의 왕자라 할 것임이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죄악과 전쟁과 사망의 땅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남태평양 이리안자야 사위 부족 가운데 평화의 아기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사위 부족은 전쟁을 좋아하는 난폭한 종족이었습니다. 전쟁을 너무 좋아하는 부족이었지만 전쟁에 지쳐서 부족들간에 얼마동안 전쟁을 쉬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부족들은 서로 속이고 싸우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상대방 부족 추장의 아이를 서로 데려다가 키웠습니다. 그 아이를 가리켜 평화의 아이 즉 peace child 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자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간의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정착하기위한 평화의 왕자로 오셨습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고 인간들과 인간들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평화의 왕자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들을 원수로 만들었던 사탄과 죄악의 새력을 깨뜨러 부시고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He is our peace."(엡2:14)라고 표현했습니다. 평화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흑암과 사망의 땅에 평화와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9:2). 예수님은 빛으로 생명으로 평화로 구원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라"(사9:4).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즉 세상의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오늘 아침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모습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둘째는 아들로 오셨습니다. 셋째는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아기 예수께, 아들 예수께, 평강의 왕 예수께 가까이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일입니다. 권중국 장로님은 사업으로 그렇게 바쁘지만 손자를 보기 위해서 이틀에 한번씩 찾아가서 한 시간 이상 아기를 보고 온다고 합니다. 아마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그렇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께 달려오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손자 손녀 보러 가는 시간은 힘들지 않은데 아기 예수님에게 달려오는 시간이 힘든다면 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들에서 양치던 목자들은 이른 새벽에 달려가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했고 동방의 박사들은 먼 길을 달려와서 캄캄한 밤에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아기 예수께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드려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의 기쁨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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