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영적 전쟁 (에베소서6:10-13)
오늘 6월 둘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6월은 국가적으로 6. 25 전쟁의 아픔을 되새기며 호국 보훈의 달로 정하고 기념하는 기간입니다. 엊그제 6일은 나라를 위하여 몸 바쳐 희생한 분들의 헌신과 정신을 기념하고 희생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현충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사람들로 주목을 받는 북한의 김정일과 그의 추종자들은 백성들의 복지나 평화보다는 독재정권의 체제 유지와 생존을 위한 핵무기 개발에 전력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호전적인 사람들을 머리맡에 두고 살아야 하는 우리는 늘 전쟁의 위험 속에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외국을 나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양한 목적과 이유로 조국을 떠나 외국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은 비록 몸은 떠나 있을지라도 부모형제가 살고 있는 내 조국의 안보와 평안을 위해 늘 기도해야 할 것이며 또 다시 6. 25와 같은 동족간의 불행한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를 위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세상 어디선가 벌어지는 끔직한 전쟁의 소식을 듣고 살아갑니다. 피 흘리고 죽고 쫓기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전쟁 난민이 배고픔과 공포에 떠는 것을 보고 듣습니다. 철모르는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전쟁에 휘말려 생명을 잃고 불구가 되며 고아로 살게 됩니다.
총과 대포를 사용하는 것만이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싸움에는 종류도 많습니다. 땅이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인 싸움,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지는 기독교와 회교도들간의 종교적 싸움이 있고 종족간의 싸움과 인종간의 싸움, 사상과 이념의 싸움도 있습니다. 국가 공권력이 선포하는 범죄와 폭력, 마약과의 전쟁이 있고 심지어 복잡한 시내에서는 주차 전쟁까지 있습니다. 그 뿐인가요?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존경쟁도 일종의 전쟁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책상에 앉아 책과 씨름하면서 조금 더 쉬고 싶고 편하고 싶어하는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건강과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 먹기를 절제하며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치 전투하는 마음으로 식탁에 앉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싸움은 쉼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말 그대로 전쟁터요 우리는 날마다 전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쓰면서 사람들이 세상에서 만나는 그 어떤 싸움보다도 심각하고 중요한 영적인 싸움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타락한 문화 속에 살아가는 에베소 지역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현장에서 겪는 많은 고난과 갈등을 잘 알고 있던 바울은 먹고사는 문제나 정치 권력의 문제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신앙적인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하여 그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있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영적인 전투를 의미합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음과 동시에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마귀의 종노릇하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악한 영들의 도전을 피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이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죄와 멸망의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로 옮겨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단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죄악의 길로 돌아서게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신실한 하나님 자녀로 살고자 하는 마음과 이것을 훼방하는 사단의 유혹이 우리 속에 함께 존재하며 다툽니다.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과 주님을 영접하기 이전의 어두운 세력이 끊임없이 씨름을 합니다. 전에는 아무런 가책이 없이 자연스럽게 하던 일들이 예수 믿고 말씀에 비춰 보니 부끄러운 일인 줄 깨닫고 새롭게 살고픈 결심이 생깁니다. 내 속에서 두 세력이 충돌하여 나로 하여금 그 어느 한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게 합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이런 싸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군사로 부름을 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영접한 순간부터 그리스도께 부름 받은 영적 군사가 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얻을 그 상급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에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딤후 2:3)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 부름 받고 예수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단한 이후로는 자신의 일생을 영적 전쟁으로 인식하고 전투적인 자세로 살아갔으며, 일생의 마침표를 찍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싸움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습니다. 운동경기와 같은 경쟁은 때로는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지만 어떤 싸움은 꼭 이겨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패배는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살인무기를 사용하여 벌어지는 나라들간의 전쟁이 그렇고 영적인 전쟁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전쟁은 휴전과 화해가 있으며 어제의 원수가 내일은 동지가 되어 모이고 흩어지기도 하지만, 영적인 전쟁에서는 결코 화해나 평화 조약이 없습니다. 휴전도 없이 우리의 삶이 마치는 그 날까지 싸움은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결과는 영원한 멸망이 아니면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싸움이기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우리에게 영적인 싸움의 의미와 대처 방법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누구이며 우리가 어떻게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영적 군사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깨달아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1. 우리의 대적은 누구인가?
본문 11절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는 구절에서 영적 전쟁의 적군이 누구인지 밝혀져 있습니다. 이 싸움은 결코 주먹이나 이 세상의 어떤 최첨단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존재들을 대항하는 영적 투쟁이다. 더 구체적으로 그 대상은 누구입니까? 12절의 말씀처럼 세상의 악한 것들을 주관하는 어두움의 세력과 그것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악한 영들입니다. 곧 사단 또는 마귀를 의미한다. 이 사단은 에덴 동산에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교묘한 방법으로 접근하여 유혹하여 무너뜨린 이래로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접근하여 그가 이루실 구원사역을 방해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교활하고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계속해서 인류 역사 가운데 거짓과 위선과 위협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몰아갑니다.
우리는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야 그 악한 계략에 맞설 수 있고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로이드 죤스 목사님은 "현대 교회가 허약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마귀의 존재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하거나 무시하려는 경향 때문" 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우리의 대적자요 비방자요 불화살을 쏘는 원수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바울이 사단을 가리켜 '정사와 권세' 라고 표현했듯이 사단은 사악하고 파괴적인 힘으로 사람에게 들어와 악으로 이끌어 갈 뿐 아니라 파멸로 마치게 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라고 한 것처럼 사단은 기회만 있으면 우리를 한 입에 삼키려고 굶주린 사자같이 으르렁거리며 우리 주위를 맴도는 강력한 대적입니다. 한편 사단은 매우 간교하고 교활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귀의 궤계' 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만일 마귀가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정말 머리에 뿔이 달린 흉칙한 모습으로 삼지창을 들고 다가온다면 알아채고 다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빛의 천사처럼 가장하여 미소를 띄고 우리에게 다가와서 결국에는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때로는 가까운 형제나 친구처럼 접근해 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접근했던 것처럼 우리의 사정을 아주 잘 이해해 주고 동정해주는 친구로 가장하여 속삭임으로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이간질시키기도 합니다.
사탄은 사람을 유혹할 때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칩니다. 첫째 단계는 "누구나 하는 것이니까." 두 번째 단계는 "작은 것이니까." 세 번째 단계는 "아직 젊으니까" 그리고 네 번째 단계는 "딱 한 번만이니까." 입니다. 이처럼 사탄의 유혹은 교묘하여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라도 유혹 당한다면 죄의 마음은 점점 커지게 되고 무감각하게 되고 맙니다.
사단은 불신자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수많은 핑계들을 고안해 냅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교묘하고도 무서운 것은 바로 복음에 대한 무관심일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들려오는 유혹들이 무엇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도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지 않은가? "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별로 나은 것이 없더라."
"세상에는 종교가 많은데 꼭 예수만 믿어야 하는가?"
"예수 믿으면 너무 하지 말라는 것들이 많아서 세상사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교회에서 돈을 너무 많이 요구해서 부담스러워서 못 가겠다."
"성경이 너무 난해하고 가끔 읽어 봐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믿기는 믿는데 좀 더 있다가 나중에 믿게 되면 믿겠다."
그러다가 일단 예수를 믿게 되면 그때부터는 새로운 작전으로 다가옵니다.
"믿기는 믿되 광신도처럼 너무 그렇게 깊이 빠지지는 말라."
"교회는 다녀도 젊음과 건강을 즐기려면 세상을 등지고 살 수 없으니 좀 자유롭게 살아라."
"성경에는 모순이 많다. 무턱대고 다 믿지 말고, 따지든지 아니면 대강 믿어라."
"교인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유별나게 살지 말고 세상의 흐름대로 적당히 사는 것이 편하다."
"교회를 깊이 알고 나면 실망한다. 그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다니는 것이 안전하다."
그 외에도 별의 별 변명과 근거 없는 이유들을 조작해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이 사단입니다.
교회에 대한 마귀의 공격은 오늘날도 쉼이 없습니다. 불같은 시련과 고난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여 믿음으로부터 떠나도록 훼방하기도 하지만 사단은 간교한 존재인지라 시대에 따라 그 전략 전술을 교묘하게 바꾸어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를 공략합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초기 성도들은 무서운 고난이 있을 때에 더 강해졌고, 피를 쏟는 박해를 받을 때에 교회가 더 부흥하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단은 지금은 그런 고난과 박해와 고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성도 스스로가 무너지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를 부유하게 하고 편안하게 해 줌으로써 스스로 곪고 썩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편안하고 신앙 때문에 더 이상 고생할 필요가 없어지자 사단이 주는 쾌락과 풍요 속에서 스스로 타락하고 곪아 무너져 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단은 지금도 다양한 방법으로 성도들과 교회를 공격하는 일에 지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사단은 실직할 염려가 없고, 은퇴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한가하게 지낼 시간이 없고, 항상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단을 이기셨지만 사단은 아직 자기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와 악한 힘을 뻗치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라도 미혹하여 넘어뜨림으로 자기의 포로가 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된 우리가 긴장을 늦추고 만족감에 도취되었을 때 곧 그 때가 위기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선한 싸움을 싸우라
사단의 이런 교묘한 술책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 성도들의 삶은 선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죄악으로 충만한 이 세상 문화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면 선한 싸움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선한 싸움을 포기하고 편안한 삶을 살기로 맘먹고 세상과 타협하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나는 점점 죄악과 어둠에 물들게 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무런 능력도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싸움을 포기한 순간 패배자로 전락해버리고 사단의 포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의로운 삶을 살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 신실한 성도로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그것은 치열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 어떤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고자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다툼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그러한 것처럼 나를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고 나에게 친절한 사람에게 친절 베풀며, 나를 싫어하고 껄끄러운 사람과는 관계를 단절하고 똑같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다투는 삶을 살아가기는 쉬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아무런 선한 싸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내게 보이신 사랑을 본받아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그들까지도 사랑하며 선을 베푸는 법을 배우며 살려고 하니까 내 자신의 내면에서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하신 명령을 순종하면서 살려고 하다보니 세상의 부정과 부패가 더 잘 보이게 됩니다. 어찌하든지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내 탐욕을 채우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남의 것을 탐내지 아니하고 정직하게 살고자 하면 선한 싸움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 혼자 정직하게 살려다 보니 나만 완전히 바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도저히 정직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직하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에 일어나는 치열한 선한 싸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서 살지 않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 시련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가는 길로 함께 어울려 가면 편할 수도 있고 눈에 띄지도 않겠지만 진실함으로 살려는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고독한 길을 가는 나그네들입니다. 동행자가 많지 않고 그 길이 좁고 험합니다. 지금도 사단은 온갖 회유책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편하게 살자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이니 적당히 타협하며 사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피하지 말고 싸워 이겨야만 하는 싸움,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중에 시련이 오고 시험이 닥쳐와 힘이 듭니까? 감사함으로 깨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자에게는 온갖 시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죽은 자에게는 싸움이 없습니다. 이미 사단의 포로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은 영혼보다는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영혼에 더 관심이 있고 넘어뜨리려고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3. 어떻게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까?
주의 군사는 무엇보다도 먼저 강건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였지만 그보다 먼저 주안에서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강한 군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싸움터에 나가는 군인은 무장을 하기 전에 먼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건해야 합니다. 군인이 아무리 최신 무기로 잘 무장을 하고 있다고 해도 잘 훈련되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무기의 개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군인들의 정신적 무장을 위한 훈련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능력과 용기는 사단과의 영적 싸움에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능력은 나 자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임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강한 군사로서 선한 싸움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와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그 분에게 자신을 맡기고 그 분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아갈 때, 즉 우리가 빛 되신 주안에 있을 때 그분으로 말미암아 강한 군사가 되어 어둠의 세력을 물리칩니다.
옛날에 전쟁을 할 때는 튼튼한 성과 갑옷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던 것처럼 우리들이 주안에 있으면 주님이 우리들의 보호자가 되십니다. 주님이 성벽이 되어 주시고 주님이 우리들의 갑옷이 되시는 것입니다. 사단의 무기가 아무리 날카롭고 강하다 할지라도 주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님께 도전을 해왔지만 주님은 넉넉히 이기신 분입니다. 40일 금식 후 광야에서 승리하셨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으며 죽음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무한한 능력의 원천이십니다. 그 능력이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게 하셨고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엡1:19-23). 사단과 싸워서 승리하신 주님 안에서만이 그 분의 뒤를 따라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의 군사는 주의 능력을 받을 때 강건해 질 수 있습니다. 그 힘의 능력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연합한 자들의 행동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주의 능력 힘입어 죄의 권세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싸움터에 나가는 성도들은 주님과 연합하는 삶을 위하여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히 섭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마귀의 도전에 답변할 말이 있고, 유혹과 죄가 틈타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 신앙을 살지게 하는 영적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인 기도 생활로 신앙이 강해지고, 주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믿음으로 단단히 무장하여 언제나 주님과 하나가 되는 삶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주님 안에 있으면 마귀가 이길 수 없을 만큼 강하지만 주님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연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군사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싸움에서 승리는 오직 주안에 있는 자들에게 허락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온 몸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또 가장 강력한 믿음의 무기로 무장하여 제대도 없고 면제도 없이 주님 오실 날까지 계속되는 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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