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힘을 주는 세 말씀 (고후 13:13)

공 상희 2009. 6. 9. 11:18

힘을 주는 세 말씀 (고후 13:13) 
 

 

이 시간 “힘을 주는 세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간혹 뉴스를 듣다가 지나친 기대인지는 몰라도 무슨 기쁜 소식은 없나 하는 기대 섞인 생각을 합니다. 가령 경제가 풀리게 되었다, 남북 간의 경색이 풀리고 통일 되게 되었다, 혹은 난치병을 고치는 신약이 개발되었다, 아무개의 선행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 그런 소식입니다. 온통 불신과 사고의 흉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를 만나도 요즘 좀체 힘과 용기를 얻는 말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 사람들은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테네군이 마라톤 평원에서 강력한 페르시아군을 극적으로 무찔렀을 때 아테네의 전령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약 42㎞를 달려와 그리스의 대승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 군이 페르시아를 이겼다.”라고 외치며 피로에 지쳐 죽었습니다. 이 감동적 스토리는 근대 마라톤 경주의 기원이 됩니다. 그런데 아테네의 전령의 소식보다 더 힘을 주고 더 실재적이며 나와 관계된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힘을 주는 세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는 복음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런 표어를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그 표어가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이 복음이에요.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얼마나 사랑하실까요? 독생자 예수를 주실 만큼 사랑하십니다.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이 다른 것인들 주시지 않겠습니까? 롬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좋은 관념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기대하면 모든 좋은 것으로 가득히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믿는 한 우리는 영원히 안전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을 믿으면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8:37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했습니다. 시145: 8~9에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 도다” 했습니다.

그 뿐입니까? 시103:1~ 5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그러므로 상황이 어떻든 좋으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시고 끝까지 믿으세요. 이 사랑을 믿어 우리 얼굴이 빛날 정도가 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사로 가득차 있을 것입니다.

어느 부인이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남편은 군인인데 심한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술에 만취되어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어 자녀들을 데리고 떠날 결심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어떤 말씀이라도 좋지만 그 사람과 같이 살라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이젠 도저히 못 살겠어요.” 그러자 목사는 “부인께서 남편과 같이 사시든지 살지 않으시든지 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그런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아름답게 해주실 것을 믿고 범사에 감사를 드리세요.” 사람 같지도 않은 남편을 감사하라니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상담을 받고 돌아온 부인은 갈등하다가 마침내 순종하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며 이 문제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부인은 이런 남편을 주신 것을 감사하다면서 모든 문제를 감사함으로 기도했습니다.

2주 후에 그 부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너무 너무 신기해요. 제 남편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요. 2주일 내내 한 번도 술을 마시지 않았어요. 혹시 목사님이 남편을 만나신 것 아닌가요?” “아닌데요.” “그렇다면 기적이에요.” “제가 교회 사무실에 갔던 날, 제 남편이 퇴근해서는 7년 만에 처음으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지 않았어요. 대신 거실로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목사님이 남편에게 무슨 말씀이라도 하신 줄 알았어요.” 그러면서 감격에 울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사랑의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복음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하세요. 이 믿음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행복과 희망과 기적으로 가득하게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복음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고통과 저주를 다 담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시므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생명을 주시고 하늘 영광에 속한 놀라운 자로 우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예수 안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어느 누가 내 빚을 갚아 주어도 복된 소식인데 주님이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지 않으신 것이 없습니다.

죄로 인해 방황하십니까? 질고로 인해 고통하십니까? 평안함이 없습니까? 벧전2:24-25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하셨습니다.

사53:5-6에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저주도 담당하셨습니다. 질고도 담당하시고 약함도 담당하셨습니다. 가난도 담당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그 부분도 담당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 안에서 이루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공로를 생각하면서 조급하고 거칠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주님의 이루신 복음을 생각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안함이 다가옵니다. 기적이 다가옵니다.

 

잠4:20-22에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여기 "건강이 됨이니라"는 처방약이라는 것입니다. 치유의 복음을 믿으세요. 치료가 옵니다. 말씀대로 행하세요. 강건이 옵니다.

3.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성령의 교통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교통'이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인데 교통, 교제라는 뜻도 됩니다. 교통하실 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요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하셨습니다. 알고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습니다.

 

이 성령의 임재가 없다면 그 믿음은 허상에 지나고 말 것입니다. 성령께서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에게 적용시켜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온갖 아름다운 선물을 가득 싣고 이삭의 아내 될 사람 리브가를 찾아온 것처럼 성령은 믿는 자에게 찾아오시며 곧 복음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을 때 아버지 사랑을 체험하고 성령 받을 때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성령 없이는 천국도 영생도 믿음도 기적도 행복도 형통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임하셨고 또 더 충만히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임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이 나에게 계신다고 믿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토록 받기 위해 갈망하던 성령께서 믿는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령 임재의 경험은 이 임하심을 믿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거룩한 두려움의 떨림이 있을 때까지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179장 후렴에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음을 믿는 것이 복음이란 말입니다. 아니 나도 모르게 언제 나에게 오셨단 말입니까? 그러나 믿는 자에게 성령이 함께 하세요. 그래서 기쁜 소식입니다. 나에게 함께 하신 성령님을 알아야 은혜생활이 시작됩니다. 이제 그것을 믿고 거기에 준해서 살아야 합니다. 성령과 함께 동거 동행 동역해야 합니다. 함께 계신 성령님을 인정하고 여쭈며 언행심사를 조심하며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자기를 나타내시며 더욱 충만하신 임재로 경험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이 막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고 순종하며 예배하고 기도하고 맡기고 순종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외식적이고 형식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함께 하심을 한 순간도 잊지 마시고 의식하면서 경건함으로 살기 바랍니다. 성령의 임재를 믿고 거기에 준해서 살 때 생명과 행복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힘을 주는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조건이 없습니다. 그냥 믿어도 됩니다. 믿는 대로 결과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온갖 복을 다 가지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다 이루셨으니 그럼 끝난 것일까요? 이제 시작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그것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복음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감사하며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여 복음이 실재가 되어 여러분의 삶에 기적으로 채워지는 복된 삶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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