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 출20:12
이 시간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목입니다. 십계명에 자녀를 사랑하는 말씀은 없지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있을까요? 그것은 일반적으로 사랑은 내리 사랑은 쉬워도 올려 하는 사랑은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 공경 속에 담겨 있는 또 다른 참 공경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은 곧 영원하신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성도에게는 낳아준 3가지의 부모가 있습니다.
1. 우리 영의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영의 아버지란 말씀이 히12:9에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또 우리를 낳아주셨다는 말씀이 요1:12과 약1:18에 있습니다. 요1:12-13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했고, 약1:18에는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했습니다.
기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도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요20:17) 하셨습니다. 주기도문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성경 곳곳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2. 지상의 부모가 계십니다.
너무나 잘 아시는 말씀이니 증거가 필요하겠습니까? 출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했고, 엡6:1-3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한 말씀이 육신의 부모를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모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가 없다면 멜기세덱이 없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히7:3). 그 외에는 부모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지상의 부모는 시간이 지나면 늙어 이 땅을 떠납니다.
3. 성경에 나오는 아버지가 있는데 믿음의 아버지입니다.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를 아버지라 했습니다. 고전4:15에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리고 그의 서신 곳곳에서 그가 기른 주의 일군들을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딤후2:1에는 디모데에게 “내 아들아”고 부릅니다. 딛1:4에서는 디도를 참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벧전5:13에서는 마가를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요한도 성도들을 자녀들이라고 부릅니다.
왜 아비일까요? 복음의 말씀으로 믿음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낳아준 부모도 있고 길러준 부모도 있습니다. 모세에게도 두 부모가 있었습니다. 낳아준 부모 길러준 부모, 그러므로 기도해 주는 사람도 믿음의 부모요, 전도해 준 사람도 믿음의 부모요, 말씀으로 길러 준 사람도 믿음의 부모입니다.
그런데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그들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3:7 보면 우리에게도 아브라함이 아버지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서 아브라함처럼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믿음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부모는 많을수록 좋아요. 막10:30에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했는데 만약 베드로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자기 부모와 장모 등 소수일 뿐이었겠지만 그가 주님의 말씀대로 버리고 주의 종이 되었을 때 그를 위해 기도한 믿음의 형제자매 부모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헤롯의 옥문이 열릴 만큼 아니었습니까?
그럼, 아버지에 대해서 성경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고, 육신의 부모에게 공경해야 합니다. 레19:32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했습니다. 엡6:2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리고 딤전5:17에서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모두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요일4:9-10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했습니다.
육의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어느 집에 딸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가 착실한 신랑감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전 날 아침상을 들고 나간 후 상을 치우던 어머니는 이상한 일을 보았습니다. 딸이 먹은 밥그릇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뒤집어서 보니 편지 한 장이 놓였습니다. 딸의 편지였습니다. 읽어보니
“어머님께 어머니 저를 낳아 키우시고 돌보시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저도 성숙하여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부모님의 사랑인 줄 알고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요구할 것이 있어 말씀드리니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3년간 직장에 다니면서 바친 돈 500만원과 동생들 업어주고 돌본 값 150만원 그리고 심부름 해드리고 일한 값 100만원 한계 750만원 시집갈 때 주시기 바랍니다. 모녀간이라도 돈거래는 분명히 하랬다고 내일 떠나가기 전에 주시기 바랍니다. 딸 드림” 이렇게 쓰여 있더랍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돌아온 딸의 밥상에도 편지 한 장이 놓여있었습니다. 보니까 아침에 보낸 딸의 편지에 대한 어머니의 답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에게” 어언 세월이 흘러 핏덩이 같던 네가 이제 커서 시집을 간다니 꿈만 같구나. 오늘 아침 준 편지는 잘 받아 보았고 네가 요청한 750만원도 주기로 했다. 그런데 나도 네게 청구할 것이 있으니 계산해 주기 바란다. 내가 너를 뱃속에 넣고 고생한 것 1000만원, 23년간 밥값 5,520만원, 옷해 입힌 값 1,200만원, 아플적 약 사 먹인 값 300만원, 공부시킨 값 3,200만원, 결혼 비용 3,000만원 도합 1억 4,220만원, 네가 청구한 750만원 빼니 1억 3,470만원이 모자라는구나. 네 말대로 돈거래는 분명히 하랬다고 내일 떠나기 전에 꼭 주고 가기 바란다. 엄마로부터“ 이 편지를 받은 딸이 그제야 자기 잘못을 뉘우쳤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 우리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 그러기에 우리는 공경해야 합니다.
그 다음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엡6:1-3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으로 잘 교육을 받은 성도들은 결혼을 해도 부모를 모시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자녀들이 노부모를 기피하려고 합니다. 특히 부모가 중병이 들면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다툽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잘 교육 받은 자녀들은 부모 모시는 것을 기쁨으로 압니다. 그러나 부모님 모셔서 손해 볼 것이 무엇입니까? 그만큼 든든한 봉사자와 후원자가 또 어디 있습니까?
육신의 부모에게 잘하면 복을 받아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부모님의 축복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 야곱이 복을 받았습니다. 부모는 효자나 불효자나 모두 동일하게 축복합니다. 그러나 그 복은 누구에게 임하느냐 효자에게 더 임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모두에게 복을 주시고 사랑하고 모두가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특별은총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에게만 임합니다. 일반은총은 악인에게도 임합니다. 그러나 특별은총은 하나님을 공경할 때만 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잘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부모에게 잘해서 복 받는 것은 결국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냐? 하나님 아버지를 잘 공경할 때 복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을 오해해서 고르반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르반이란 뜻은 '하나님께 드림' 곧 '하나님께 바치는 물건'을 가리키는 본래는 매우 신앙적 의미였습니다(레 2:1, 4, 12). 그러나 이 고르반을 맹세화시켜 계명보다 더 중시하여 악인들에 의해 부모공경 회피의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아무리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귀해도 부모공경은 공경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이 바빠서 효도하지 못한다는 핑계는 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부모공경이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귀한 신앙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지상의 부모에게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땅에서도 장수하고 하늘에서도 영생하고 잘 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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