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 (고전10:31-33)

공 상희 2009. 2. 19. 15:43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 (고전10:31-33) 

 어떤 사람이 길을 가고 있는 1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하고 질문을 했더니 세 가지 공통적인 대답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한 대답은 ‘그럭저럭 삽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마지못해 삽니다'이고, 세 번째는 ‘죽지 못해 삽니다'입니다. 이와 같이 대답하는 사람들은 삶의 목표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분명한 삶의 목적이 있으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예일대학교에서 전교생들에게 장래 목표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전체 학생의 3%만이 자신이 왜 공부를 하는지, 나중에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한 삶의 목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학생들을 20년 후에 다시 조사해보니, 학교를 다닐 때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3%는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사회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 질문에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던 학생들은 ‘그럭저럭, 마지못해, 죽지 못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삶의 목표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세 가지 삶의 목표가 나타나 있습니다.

1. 삶의 첫 번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본문에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제일의 목적이 바로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목표를 하나님께 영광을 위한데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해야 할까, 안해야 할까 여부를 결정하는 첫 번째 요건이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 가리느냐 이것을 한번 살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먹어야 하고 살아야 하고 자식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삶의 목표는 먹기 위해서도 돈 벌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또 자식을 낳고 키워 성공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삶의 방법은 각각 다를 수 있으나 공동된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도들이 잘못해서 사람들에게 욕먹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한 모든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소설가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 1615~1691)는 왜 인생이 기쁨이 없는가에 대해 “성도에게 기쁨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건 하나님 자신의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 곧 내가 살고 내가 복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공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바로 나를 위한 삶이요 그것이 바로 성공하는 최선의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아낌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이 꼴을 넣을 때마다 기도하던 전통은 아마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이영무 선수가 그 원조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때 이영무 선수가 대표 팀을 떠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감독이 꼴 넣을 때 기도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신앙생활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홍기 감독의 권유로 다시 복귀하면서 다시 꼴을 성공시킬 때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이영무 선수는 이제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다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라운드에 우리 기독교 선수들이 월등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도 우리 선수들이 잘 싸워서 종합 9위를 차지하여 국위를 선양했는데 금메달 리스트들 중에 75%가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태권도 금메달을 땄을 때에도! 레슬링을 이겼을 때에도 축구 한 꼴을 넣었을 때에도 그들은 어김없이 무릎을 끓고 기도하는 모습과 두 손을 번쩍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이제는 심심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모습들을 싫어하는 감독이나 코치들이 기독교 선수들을 뛰지 못하게 한 일도 있었지만 믿는 선수들이 월등하게 실적을 올리는 것을 볼 때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2. 삶의 또 다른 목표는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입니다.

본문에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나의 유익보다 모든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은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남에게 유익도 손해도 주지 않은 개미와 같은 사람, 혹은 거미와 같이 남에게 손해만 주는 사람, 혹은 꿀벌과 같이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꿀벌과 같이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전10:23-24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 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즉 나에게 유익하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유익해도 남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혹 부끄러움은 없는가? 혹은 이것이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행동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원성을 들으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속담에 “공부해서 남 주느냐?”는 말이 있는데 이제 우리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서도 해야 하지만 남 주기 위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남 위해 살다보면 나도 삽니다. 오늘날 문제가 나만 살겠다고 무슨 짓이든 다 하는 데서 온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나도 죽고 남도 죽는 길입니다. 자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말이 있지요? 요즘 기상이변으로 국내외에 대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태풍 나비는 물론 미국의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미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히말리야 산맥을 넘던 썬다씽이 가다가 얼어 죽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같이 가던 사람은 혼자 살겠다고 앞서 갔고 썬다씽은 그냥 갈 수 없어 그 사람을 업고 고개를 넘어 가는데 온기 때문인지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혼자만 살겠다고 앞서 간 사람은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지만 어떤 사람이 천국을 갔더니 특이한 점은 서로 잘되게 하려고 힘쓰다 모두 배 부르는데 지옥은 서로 자기만 배 부르려고 하다가 하나도 먹지 못하더랍니다.

미국의 신문기자 필립 옌씨는 40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무려 8천여 명의 유명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인터뷰 끝에 그가 깨달은 바를 그의 회고록에서 인생에는 Star형과 Servant형이 있다고 술회했습니다. 스타형은 기회만 있으면 자기 자랑만 하는 껍데기뿐이지만, 써브엔트형은 그저 어떻게든 섬기려는 자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사과가 둘 있으면 큰 것은 남 먹도록 하고, 어떻든 기회만 있으면 섬기려는 마음으로 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하늘의 스타가 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높임을 받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율법을 다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성도의 몸으로 이웃 중에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우리는 지체된 교회를 위해서도 힘써야 합니다. 프랑스의 신학자, 종교개혁자 칼뱅(Jean Calvin ; 1509~1564)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들은 교회를 어머니로 섬겨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철학자 칼 힐티(Karl Hilty ; 1833~1909)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고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불행의 연속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교회를 가까이 하며 맡겨주신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지체를 돌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부족한 면을 사랑 없이 심판하지 말고 내 임무로 생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삶의 또 하나의 목표는 영혼 구원을 위한 삶입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일찍 영생을 소유한 성도들이니 그 은혜에 감사해서라도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는 일에 목표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나만 천국 가겠다는 것은 가장 비양심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을 발견한 과학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 약을 발견했는데도 혼자만 알고 있다면 그것을 어찌 선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왕하 7장을 보면 아람군대의 포위로 사마리아성이 굶주려 죽어갈 때 아람군대가 물러간 것을 문둥병자 두 사람이 먼저 알고 가서 전리품을 취해 먹고 마시다가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 것이라 하면서 소식을 전합니다.

복음 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때문에 지옥 간다면 그 책임이 뉘 것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고전9:16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6:39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 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는 될지언정 무슨 일이 있든지 복음의 방해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그들을 보면서 전도하지 못한 것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더 잘 믿었더라면 나를 보고 이미 예수 믿었을 텐데 하며 죄송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생각은 이미 바울이 했습니다. 바울도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내가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돈 벌어서 뭐할래? 복음 전도할거야!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를 위해 살고자 할 때는 죽지만 주님을 위해서 죽고자 하면 삽니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나도 높아집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살면 하나님께서 귀히 쓰십니다. 우리들이 남은여생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봉사 그리고 전도의 이 세 가지 목표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