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부르심에 합당한 마음 (엡4:1-6)

공 상희 2009. 2. 26. 14:58

부르심에 합당한 마음 (엡4:1-6)

우리 한국교회사에 유명한 김익두 목사의 일화입니다. 그는 본래는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믿고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김익두 정말 변했을까? 라는 의아심을 품고 그를 시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를 향하여 돌멩이를 던져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가지에 찬물을 담아서 그에게 끼얹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김익두 목사님은 더 이상 옛날 그 김익두가 아니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철에 목사님이 무악재 고개를 넘어가고 있을 때 웬 술 취한 청년이 다가와 다짜고짜 시비를 걸더니 목사님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저 가만히 맞고만 계셨습니다. 한참 때리던 청년은 제 풀에 꺾였는지 때리던 손길을 멈추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청년의 팔을 꼭 쥐고 "이제 다 때렸습니까? 도대체 왜 나를 때렸습니까?" "네가 나보다 먼저 올라와 기분 나빠서 때렸다! 왜 어쩔래?" 그러나 목사님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청년을 용서하시고 그에게 전도하여 그 날로 예수 믿게 하였고 나중에는 교회의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면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한 마디로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1. 부르심에 합당한 마음은 겸손한 삶입니다.

"모든 겸손과" 그랬습니다. 겸손하되 모든 면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윗사람에게 겸손할 것은 당연하고 아랫사람에게도 겸손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강원도 예수원에서는 연장자가 손아래 사람들에게 형님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렇게 까지는 못할지라도 서로 높여주고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을 보세요. 겸손의 극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높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렇게 하셨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해야 할 것은 오직 겸손입니다.

2. 부르심에 합당한 마음은 온유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는 내 감정대로 행치 않고 자제하며 좋은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입니다. 가령 누가 내 눈을 실명시켰다고 하면 나도 그의 눈을 빼야 합니다. 이것이 인과응보 세상의 법이요 보통사람들의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중국 무협영화를 즐겨보는데 교육상으로는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무협지는 해를 끼친 원수를 갚는 것이 주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미워하고 모함하고 못 박아 죽이는 자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고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그들을 위해서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3. 부르심에 합당한 마음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쉽게 심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날에도 오래 참아주셨습니다(벧전3:20). 참고 참고 또 참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은 줄 아십니까? 벧후3:15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했듯 주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고전 13장에서 보면 오래 참는 것은 사랑의 첫째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려고 오래 참으셨습니다. 1950년대 말 우리나라에 오셨던 미국의 쟌 크레인(John Crane)이라는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총신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하시면서 종종 학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조선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조선이지 않습니까?" 조선 사람(Chosen people)을 영어로 쓰면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 우상 섬기고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박해했지만 하나님께서 오래 참아주셔서 많이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오래 참는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부르심에 합당한 마음은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여기 "용납하고"라는 말의 헬라어 원뜻은 담요를 던져준다는 말입니다. 그것으로 허물을 가리우라는 것입니다. 수치를 덮으라는 뜻입니다. 마치 셈과 야벳이 아버지의 수치를 덮었듯이 우리들도 사랑으로 덮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도 사랑하시는 아가페(Agape)의 사랑입니다. 이 아가페의 사랑으로 남을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된 점을 보지 아니하시고 그 허물을 다 덮어 주시고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아버지께서도 우리 허물을 덮어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한 소녀가 아버지와 함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다가 한 테러리스트가 쏜 총알이 아버지의 머리를 관통했습니다. 소녀는 범인을 찾아 복수할 생각으로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자가 되어 이스라엘 근무를 자청했습니다. 그녀는 법원 기록을 뒤져 12년 만에 범인의 소재를 확인했습니다. 테러범의 이름은 오마르 하티브…. 이제 드디어 복수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범인과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속에 갑자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용서하라. 진정한 복수는 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음성을 들은 그녀는 테러범과 가족들에게 내가 당신들을 죽이려고 했다고 오히려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범인의 가석방을 위해 청원서를 제출하는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로라 블루멘펠트, 전 워싱턴포스트지 기자의 이름입니다. 이 용서가 바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마음입니다.

5. 부르심에 합당한 마음은 서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3절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예수 믿는 성도는 이미 성령 안에서 하나입니다. 고전12:13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하나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된 것을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모두 일곱 가지로 하나 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처럼 이제 예수 안에서는 남녀의 차별도, 노소의 차별도, 인종의 차별도, 빈부의 차별도,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존중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큰 파티를 배설하고 이웃들을 초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에 마지막으로 수영대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집주인은 손님들에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수영장의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1등으로 헤엄쳐 온 사람에게는 큰 상을 주겠습니다.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상속자인 외동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특권을 주겠습니다. 두 번째는 내 재산의 절반을 주겠습니다. 세 번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값진 보석인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겠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금방이라도 뛰어들 것처럼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집주인은 사람들에게 "그런데 지금 이 수영장 안에는 열흘 동안 굶긴 악어 50마리가 들어있습니다. 또 물리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3분 내로 죽을 독뱀 100마리를 풀어놓았습니다. 거기다 이 속에는 독고기도 300마리나 들어있습니다. 피 냄새만 맡으면 공격합니다. 아마 5분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수영장에서 한 걸음씩 물러났습니다. 아무도 감히 뛰어들 용기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딱 한 사람이 용맹스럽게 뛰어들었습니다. 모두가 그의 용기를 보면서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는 필사적인 각오로 수영해서 무사히 도달했습니다. 집주인은 약속한 대로 그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내 등 뒤에서 나를 밀었는지 나는 그것부터 알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의 경주장에서 달음박질하고 있습니다. 달려갈 길을 다 마친 뒤에 우리에게는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큰 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십자가의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누가 등 뒤에서 우리를 밀어서 이 길을 걸어가게 하셨을까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에 합당한 자답게 언제나 겸손하십시다. 온유하십시다. 오래 참읍시다. 서로 용납하십시다. 하나 되십시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