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밧 과부로 본 위기극복 (왕상 17:8-16)
이 시간 “사르밧 과부로 본 위기극복”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세계경제는 미국 발 금융위기로 인해서 심각한 경제 공황에 빠져 있습니다. 금융상식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알려진 바로는 이번 세계적 금융위기의 원인은 미국의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즉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의 부실 사태로 미국 제 2위의 금융회사가 무너지면서 여기에 투자했던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금융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붕괴되면서 일어난 경제위기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 경제도 지금 심각한 위기 가운데 처해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누구보다 우리 성도들께서는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시돈과 이스라엘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하늘은 비를 그치고 땅은 이슬을 그쳤습니다. 그러기를 무려 3년 6개월, 그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개울도 마르고 강도 마르고 샘조차 말랐습니다. 그래서 양식은 물론 마실 물조차 없었습니다. 지금도 일부 나라에서 그렇지만 옛날 우리나라도 흉년 만나 얼마나 고통을 당했습니까? 그래서 무엇보다 지구 온난화로 오는 물 부족사태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원인은 아합과 이세벨로 인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긴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때 저 이방 땅 베니게 서해안의 시돈 남방 13km 지점 산 위에 있는 사르밧이라는 마을에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이 사르밧 과부 역시 혹독한 기근을 당해 아들과 함께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해먹고 죽음을 기다리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땔감을 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찾아온 엘리야를 대접함으로 기근이 다가도록 통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위기를 극복한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간단하게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이 사건은 영육 간에 위기를 당한 우리에게 귀한 메시지를 줍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엘리야를 대접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 엘리야를 비유적으로 말하라 한다면 예수님이나 성령님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를 대접했듯 우리가 주님을 진실로 모시게 될 때 그 영혼에는 풍족함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바로 모신 사람은 궁핍은 사라지고 풍요로운 잔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주님을 형식이 아니라 진실로 모셔 보세요. 그럼 우리 주님으로부터 풍족하게 먹고도 남는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위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위기를 깨달아야 합니다.
12절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 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사르밧 과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를 깨달았습니다.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나뭇가지를 주었을 것입니다. 나이 많은 자기보다 사랑하는 아들이 더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이처럼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너무나 평범한 말 같지만 사람들이 위기를 깨닫지 못하기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2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쓰나미 즉 지진성 해일이 있었을 때 그 직전에 어떻게 알았는지 해안에 살던 쥐라든지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줄지어 언덕으로 대피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한 체 물놀이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빈곤하고 심각한 문제 가운데 있어도 대부분 그것을 느끼지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이 착각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더 큰 문제였습니다.
가장 무서운 병은 몸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병입니다. 감각을 느끼지 못하니 상처 나고 데이고 터져도 대처하지 못합니다. 알고 보면 몸의 고통도 은혜입니다. 고통이 올 때 조용히 그 고통을 느끼면 뇌에서 호르몬을 보내 치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짐승들은 고통이 오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인간은 고통이 오면 안절부절 못하고 당황합니다. 그래서 자연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아픔을 느끼세요. 문제는 병들었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할 때인데 이 때는 적당히 눌러서 3-4분간 아픔을 느끼세요. 아픔을 조용히 느끼면 그 사이에 통증은 줄어들고 상당 부분 자연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뇌로 하여금 병이 있음을 자각시키는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자가치료법입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잘못 때문에 내 영혼이 죽고 이것으로 인해 온갖 시험이 다가오고 이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나와 모두가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 아래서 먼저 위기를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의 빛 가운데 자기를 깨달아야 합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말씀을 보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빛으로 자기 위기를 깨달아야 합니다. 국가의 위기를 느끼고 부르짖던 이사야는 자신의 위기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탄식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제단 숯불로 악을 제함 받았고 큰 사명을 받았습니다. 요일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교훈합니다.
2. 반드시 몫을 드려야 합니다.
13절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 말씀을 자세히 보세요. 엘리야가 다 달란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했어요. 그 중의 일부 몫만 먼저 달라는 것입니다. 그 몫은 큰 몫이 아니라 작은 몫입니다.
우리의 문제도 작은 몫만 드리면 다 해결 됩니다. 24시간 엎드려 기도하고 성경보고 전도하고 가진 것 모두 드려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념상으로는 다 바쳐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해야 하지만 실재로 다 바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문서 교회에 다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교회에서 교인들의 믿음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 위험한 실험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니 가진 문서 다 바치라 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교인들이 다 바치더랍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믿음을 칭찬하고 축복하면서 다시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교인들입니다. 그 목사의 그 교인들입니다. 소유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명령이 있다면 모르지만 우리에게 관리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봉사하고 나도 감사하며 쓰라고 주신 것이지 실제 다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혹 다 바쳐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안 하시겠습니까? 저라면 하겠네요.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에게 돌릴 작은 몫만 먼저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가 성령 충만 받는데 하루 24시간 엎드려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루의 십분의 일만 엎드려도 넘치고 넘치는 영적 충만이 있습니다. 더 줄여서 하루 24분의 1만이라도 제대로 드리기만 한다면 심령의 가난은 없습니다. 그런데 먼저 바치라는 것은 우선순위는 물론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형식으로 드리지 말고 제대로 드려보세요. 한 시간이라도 드리지 않기 때문에 빈곤한 것입니다.
물질 문제가 있습니까? 해결의 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물질의 십분의 일, 시간의 십분의 일만 확실히 드려보세요. 십일조생활 철저히 하되 시간의 십분의 일을 말씀과 기도의 시간으로 드리세요. 말씀을 대할 때는 성령님께 배우겠다는 심정으로 보시고 기도할 때는 묻는 기도를 많이 하세요. 그러면 머지않아 영혼의 문제는 물론 물질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잠16:3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했습니다. 십일조를 하되 기도가 부족하거나 기도는 하되 드림이 부족하면 안 됩니다. 축복을 심고 기도해야 싹이 나는 것입니다. 무조건 내 뜻대로 해달라고 하지 말고 묻는 기도를 해야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이 경영하시면 무슨 위기가 있겠습니까? 위기가 와도 더 잘 됩니다. 우리 주님이 가나 혼인집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르밧 과부가 구하는 엘리야에게 '원 세상에 벼룩에게 간을 빼달라고 하지, 우리도 모자라요.' 하면서 배척했다면 그는 기근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는 하라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제 추측인데요. 사르밧 과부가 믿음이 커서라기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하라는 대로 순종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역시 믿음으로 라면 더욱 좋고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이래도 이 상태 저래도 이 상태라면 잠자코 성경의 지시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3. 계속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15-16절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해서 기적적인 도움을 받았고 가나긴 기근이 다가도록 양식과 물이 끊어지지 않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계속하여 엘리야를 공궤했다는 것입니다. 8-9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하신대로 기근이 끝나도록 계속하여 엘리야를 공궤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없어 작게 공궤할 수밖에 없었지만 기적이 나고부터는 다르게 공궤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하여 공궤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교훈합니까? 계속하여 변함없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자만해서도 안 됩니다.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기만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면 더 잘해야 합니다. 선교도 담당해야 합니다. 미자립 교역자나 은퇴 교역자도 도와야 합니다.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선교도 해야 이슬람교가 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단문제 사역자들을 도와야 이단도 막을 수 있습니다. 사회 요소요소에 선행을 해야 합니다. 내가 못하면 품을 사서라도 선행을 해야 합니다.
들어오는 건 허용하나 나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많은데요. 저축만이 관리는 아닙니다. 저축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선의 관리입니다. 고후8:5에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 일을 계속하십시오. 사르밧 과부가 이제는 살겠다고 엘리야를 소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적은 그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황금에 눈이 어두워 황금의 알을 낳는 닭을 잡았더니 황금이 없더랍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없겠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교훈을 받으십시다.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이런 복을 받았다면 선민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희망을 가집시다. 용기를 가집시다. 주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의 마음이 더 간절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성령께서 탄식하시며 부르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위기를 깨달으세요. 하나님께 드릴 몫을 드리세요. 그리고 계속하여 순종하여 애굽의 요셉과 같이 이 세상 다하도록 아름답게 하나님의 일하며 섬기는 귀한 사명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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