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발전하는 신앙의 5대 요소 (잠 28:18-28)

공 상희 2008. 10. 16. 09:42

발전하는 신앙의 5대 요소 (잠 28:18-28)

 

[요약] 기독교 신앙은 겨자씨와 같아서 처음에는 무시당하고 밟히지만 나중에는 보배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이 더욱 발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자세로 신앙해야 할까? 먼저 성실한 마음이다. 적당히 대충이어서는 안 된다. 진리의 마음이다. 비 진리에는 진정한 영적 실재가 없다. 회개하는 마음이다. 마음의 변화 없는 영적 전진은 없다. 믿음의 마음이다. 하나님이 은혜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은 믿음의 최고봉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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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발전하는 신앙의 5대 요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는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또 하나님께 사랑 받고 사람에게도 칭송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을 때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습니다. 처음에 찬사를 받다가 하나님께 버림 받은 사울과 처음에는 비참했으나 나중에 잘 된 다윗 중 어느 편이 더 좋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다윗입니다. 처음에 찬사를 받다가 나중에 버림 받는 것보다 처음에 어려움 당해도 나중에 사랑을 받을 때 그 사랑은 더 크고 변치 않으며 온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이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은 처음에는 무시당하고 밟히지만 나중에는 보배로 인정을 받습니다. 성경에 위대한 사람들도 대부분 나중에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신앙은 겨자씨와 같아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라면 새가 깃들일 큰 나무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보면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의 원리 뿐 아니라 성공하는 신앙을 배우게 됩니다.

어떤 마음으로 신앙해야 믿음이 발전하고 나중에 더욱 크게 될까요?

1. 성실한 마음입니다.


18절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여기 ‘사곡히 행한다’는 말은 마음이 비뚤어진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성실의 반대말입니다. 성실하고 참되게 신앙생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소홀히 하면 어디선가 그 표시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거나 부족한 것이 죄입니다. 복음 진리에 서서 감사함이 부족하다든지, 염려를 내려놓고 안식함이 부족하다든지, 기도가 부족하다든지, 말씀 묵상이 부족하다든지, 교회출석이나 성도의 교제나 전도나 충성에 부족하다든지 그러면 안 됩니다. 집을 짓는 것과 같아요. 건성으로 적당하게 대충 그래서는 금이 가고 비가 새고 무너지게 됩니다.

19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여기 ‘방탕을 좇는 자’의 원어의 의미는 ‘환상을 좇는 자’ 즉 ‘판타지를 좇는 자’를 말합니다. 아라비아 사람들은 무역을 하여 큰 이익을 얻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데도 그런 환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즘 로토나 경마나 카지노로 돈 벌겠다는 비슷한 생각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먹을 것이 많으려면 그런 환상에 빠지지 말고 성실하게 토지를 경작하라고 말씀합니다. 카지노로 성공할 확률이 1000분의 1이라면 토지를 경작하여 먹을 확률은 차이는 있겠지만 100%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인 ‘비전(vision)’과 허황된 판타지(fantasy)는 얼른 보면 비슷합니다. 어떻게 구별합니까? 성실함의 차이로 구분합니다. 같은 환상을 가져도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은 비전이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판타지를 좇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환상일지라도 성실하지 않으면 그것은 판타지를 좇는 것이 되고 맙니다. 심지 않고 거두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성실하게 말씀 읽고 기도하며 순종해 나가면 나중에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2. 진리의 마음입니다.

20절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충성된 자”란 원문의 의미는 ‘정의롭고 바른 사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불로소득하지 않고 바르게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속히 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편법으로 부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형벌이 따르게 됩니다. 지금 감옥에 있는 경제사범들 중 상당수가 속히 부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앨리스 파이크(Alice Pike)란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월마트에 가서 여러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총 1675달러였습니다. 그리고 1백만 달러짜리 가짜 지폐로 돈을 지불해 위폐를 세탁하려다 체포되었습니다. 그렇게 돈을 지불하면서 99만 8325달러의 거스름돈을 받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불법으로 돈 버려는 사람의 인생의 종착역은 감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진리가 아닌 불법이나 편법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요10:1에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라고 했고, 8절에서는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했어요. 그러므로 예수 말고 잘못된 방법이나 잘못된 신앙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바른 진리만이 나중이 더욱 창대하는 됩니다.

3.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23절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사람들은 경책보다 아첨하는 소리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첨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게 투자하면 망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듣기 싫은 소리 하기 싫어서 잘해보라고만 한다면 그것이 사랑일까요? 그것은 나중에 크게 원망 들을 일입니다. 그러나 바른 지도는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습니다.

부모의 유산을 탐하는 것도 죄라고 경책해야 합니다. 24절에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케 하는 자의 동류니라.” 요즘 불효자식들이 부모의 유산을 탐하여 빨리 죽기를 바라고 더 많이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고 외쳐야 합니다. 말라기 3장 8-9절의 교훈처럼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물질도 하나님의 영광도 하나님의 주권도 하나님의 시간도 내가 도적질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진리를 누구에게 먼저 경책해야 합니까?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합니다. 늘 자신을 말씀으로 경책하는 사람은 그 믿음이 날로 커질 것입니다. 회개 없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회개 없이 큰 믿음에 이를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잘못은 회개 없이 신앙생활하려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도 아니고 죽은 종교일 뿐입니다.

4. 믿음의 마음입니다.

25절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우리가 탐욕을 품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채우심을 믿지 못하면 탐하게 되고 범죄하게 됩니다. 히13:5-6에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의 삶만이 아니라 우리 영혼에도 은혜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시27:13-14에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의 속성과 신실한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이걸 알지 못하고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보면 불만 불평하게 됩니다.

어떤 마을에서 한 평생 함께 살던 두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아주 부지런하고 늘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게으를 뿐만 아니라 언제나 불만과 불평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 사람에게 거처할 집을 안내해주셨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옛날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더욱 감사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불평만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감사의 사람은 날마다 그 집이 더 아름답게 변화되어 갑니다. 그러나 불평의 사람의 집은 반대로 온갖 지저분한 오물과 쓰레기로 가득차고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지붕에서는 비가 새고 벽은 금이 가고 허물어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의 감사는 더욱 많아졌고 불평하는 사람의 불평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 두 사람에게 똑같은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아름다운 천국을 건설했고 다른 한 사람은 지옥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면서 불평하는 자에게 “천국을 오해하지 마라. 천국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의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땅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애시 당초 천국의 논리였다. 천국의 논리대로 살면 지옥 같은 곳도 천국으로 변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천국을 거저주어도 지옥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바로 너와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기에 너에게는 결코 천국의 땅 한 평이라도 내줄 수가 없다.” 라고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내 믿음대로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바른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5.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27절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하나님이 뜻을 따라 주기를 좋아하면 하나님께서 더욱 풍성하게 해주십니다. 구제와 선교는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기 때문에 100배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소비가 더 많아지니 타인보다 못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더욱 창대하게 해주십니다.

우리 심령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면 영적으로 더욱 풍성해집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위해 힘쓰는 사람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은 사랑으로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엡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벧후1:7에 믿음의 최고봉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 안에서 사랑 덩어리로 이루어질 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십니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이런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가 멸망한다.” 그런데 지금 지구 꿀벌의 36%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양봉업자들도 꿀벌이 줄어들고 있다고 야단입니다. 공해 때문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 핸드폰의 전자파 때문에 벌들이 집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도 있습니다. 예수님 오실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믿음 잘 지키고 맡겨주신 사명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말세에는 기도하고 전도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아우구스투스 스트롱(Augustus Strong)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전도자를 길러내지 않는다면 교회는 무엇 때문에 있는가? 그들을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교육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그들을 태워 운송하지 않는다면 상업이란 무엇 때문에 있는가? 그들을 파송하지 않는다면 돈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전도의 목적을 완수하지 않는다면,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삶 그 자체는 무엇을 위해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베들레헴 말구유에 목수의 아들로 가장 낮게 오셨지만 나중은 인류를 구원하시고 가장 높이 되셨습니다. 지금은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나중에 더욱 인정받고 사랑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를 구주로 잘 믿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서 믿음에 성실함과 진리와 회개와 믿음과 사랑함에 더욱 힘써서 점점 영육 간에 잘 되어 하나님과 온 백성들에게 사랑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한국강해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