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감사하라
본문: 시 118: 28- 29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휘테라는 설교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주일 설교할 때마다 그 주에 있었던 일 중에 꼭 한가지씩 감사할 조건을 찾아 감사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한번은 그 지역에 큰 태풍이 몰아쳐서 많은 피해를 입고 최악의 한 주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자 성도들은 오늘 아침만은 목사님이 감사할 조건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 날 아침에도 여전히 감사기도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감사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주간과 같은 최악의 재난이 항상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현대인들은 가장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는 풍요로움과 편리함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늘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꼭 현재 없는 것을 찾아서 불평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어진 삶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진정한 행복은 바로 감사에서 시작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 23)
두 천사가 지상에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각각 성도들의 기도를 담기 위해 바구니를 가지고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곳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들은 학교이건 교회이건 오막살이건 성이건 가리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얼마 안 되어 한 천사의 바구니는 성도의 기도로 가득 차 무거워졌으나 다른 천사의 것은 아직도 비어 있었습니다. 바구니를 가득 채운 천사는 '이것을 주십시오. 저것을 원합니다'하는 탄원의 기도를 바구니에 받아 담았고, 다른 천사는 감사의 기도를 모았던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4:4)
어느 날 벙어리가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내 입을 열어 주시면 내가 죽는 날까지 목청이 터지도록 감사하는 찬송을 부르고 평생을 전도하겠습니다.”그러나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낙망한 나머지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그 때 마침 길가에 있는 개천에 어떤 사람이 빠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얼른 가서 건져주고 보니 그는 장님이었습니다. 이 벙어리는 그때에야 하나님이 자기를 소경되지 않게 하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고 힘써 전도하며 더욱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9:15)
기적은 감사할 때 일어납니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나고, 감사 기도해야 기도가 응답된다는 설교를 들은 어느 여집사가 한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매일 같이 술이 만취되어 늦게 귀가하는 술고래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집사는 나도 남편 문제로 인해 감사기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쉰 것입니다. 그 날도 인사불성이 되어 집안에 쓰러진 남편을 힘들게 끌어다가 겨우 눕혔습니다. 그 부인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하려고 하니 자기 신세가 처량하여 하나님께 기구한 자기 팔자타령만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는 왜 이런 남자와 결혼해서 이런 고생을 합니까?" 하며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감사 기도해야 응답이 온다는 목사님의 설교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감사 조건을 찾으려고 노력을 해도 감사조건을 찾을 수가 없어서 "하나님, 감사조건 없는 것을 감사드립니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래도 계속 감사조건을 찾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 있기는 있었습니다.
'옆에서 코골며 자는 남편을 쳐다보니 그래도 과부보다는 낫고, 언젠가는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 감사하고, 저토록 술에 취했어도 다른데 안 가고 집에 찾아오니 감사하고, 토요일은 술을 더 많이 마셔서 주일날 집을 지켜줘서 고맙고, 주일날 계속 자니 교회 나오는데 불편하지 않아 감사하고..."
그 부인은 계속해서 기쁨으로 감사하였습니다. 그때 자다가 갈증을 느낀 남편이 잠을 깨어보니 부인이 웃으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남편은 "여보, 한밤중에 잠은 안자고 미친 사람처럼 뭐 하는 거야. 뭐가 좋아서 그렇게 싱글벙글 웃는 거야?"
"여보,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래요." 하면서 자기가 이제껏 기도했던 감사조건을 다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에게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보, 내가 예수 믿는 게 소원이면, 오늘부터 예수 믿을께."
10년 동안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던 소원이 단 한 번의 감사기도로 이루어졌다고 그 여집사는 더 기쁜 감사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라"(골3:17)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장군은 1648년 의회군을 이끌고 왕당파를 물리친 후 공화국을 세웠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정치가였으며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경건한 신앙을 생활에 실천하려고 노력한 청교도였습니다. 그는 식사 때마다 이렇게 기도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먹을 것이 있어도 식욕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또한 식욕이 있어도 먹을 것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먹을 것과 식욕을 함께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두 곳입니다.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겸손하고 감사하는 심령입니다.
한 청교도적인 농부가 하루는 늘 무신론을 주장하는 어떤 지식인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농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식인이 농담조로 그것은 18세기 인간들의 낡은 유물이니까 내버리는 것이 어떠냐고 응수했습니다. 농부는 하는 수 없이 혼자 기도한 다음, "우리 집에도 당신 같은 식구가 하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지식인이 "그것 참 다행이군요. 내 동료가 있어 기쁩니다. 누군가요? 대학에 다니는 자제분인가요?"하고 묻자 농부가 "아니오 우리 집 돼지들이지요."라며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돼지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현대인의 마음에는 감사함이 메마르기 쉽고 모든 것이 자신의 힘으로 되어진 양 교만하기 쉽습니다. 로마의 키케로도 감사는 최고의 덕이요, 모든 덕의 어머니라고 했거니와 성경은 범사에 주를 인정하며, 감사하라(잠3:6, 살전5:18)고 했으며,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하였습니다. 감사를 아는 참 인간이 됩시다.(시50:23, 딤전4:4, 엡5:4)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방군의 한 병사가 죽어가면서 목사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는 이 병사가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병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 어머니께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목사가 무엇을 감사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게 좋은 어머니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제가 기독교인인 것, 이렇게 죽을 수 있는 것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에 대해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것은 믿음과 깨달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깨닫는 사람에게 기도가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크로스비라는 여자는 앞못보는 소경으로서 9,000여 편에 달하는 찬송시를 쓴 사람입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등 은혜로운 찬송시를 많이 쓴 사람으로서 식모의 불찰로 소경이 되었으나 어려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를 듣고 영의 눈이 열려서 기도하는 중에 신령한 노래를 많이 썼습니다. 그는 아홉 살 때 기도하기를 "만약에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 해도 나는 안 받으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 터인데,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내 눈을 멀게 한 그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그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불평, 원망 대신에 감사와 자족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25)
어느 부인은 남편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늘 술시중을 해야 합니다. 더구나 술이 만취되어 들어오는 날이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곤 해서 그 시중들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남편이 어지럽혀 놓은 것들을 다 정리하고 나서 잠든 남편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 신세타령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는 언제까지 이 모양으로 살아야 합니까?"
구슬피 울며 탄식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성령이 감동하사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하셨지...'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감사할 일은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좌우지간 감사합니다." 순간 스스로 마음이 감동되어 '그래도 과부 신세보다야 낫지 않은가? 지금은 저 꼴이지만, 언젠가는 사람이 될는지도 모르지. 고주망태가 되어서도 제 집 찾아오는 것 하나는 신통하다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니 감사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랍니다. 토요일은 특히 술을 많이 마셔서 주일날은 꼼짝 못하고 누워서 집을 보면서 아내보고 교회 나가라고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이렇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웃고 있는데, 남편이 눈을 떴습니다. 밤중에 혼자 앉아 실실 웃고 있는 아내를 보자 남편이 놀라서 묻습니다. "왜 웃는 거요?"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그 부인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을 하나하나 이야기합니다. 남편이 다 듣더니 "나도 예수 믿어줄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제 그 부인은 간증합니다. "내가 10년을 기도하여도 응답이 없으시던 하나님께서 한 번의 감사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습니다. 감사함으로 모든 사정을 아뢰어 보십시오. 그리할 때 당신에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어느 날 저녁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식탁에 올랐을 때 여섯 살 된 아들이 신이 나서 저녁 식사기도를 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과 그 날 재미있게 보냈던 것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린 후 그 애는 잠시 멈췄다가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주 착한 꼬마 애를 이 집에 보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주 착한 아이라고? 어디 있는데?" 내가 놀라 물었습니다. "바로 여기 있잖아." 그 애는 씩 웃으며 자기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난 하나님께 나에 대해 감사를 드린 거야."
그 날 밤 침대에 들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 애 말이 맞아.'
우리들은 모두 우리를 지으신 분이 붙여준 딱지를 달고 이 땅에 왔습니다. 거기에는 '창조주께서 개별적으로 정교하게 지으심' 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갑자기 난 가슴이 메어져 왔습니다. 오랜 세월 감사의 기도를 드려오면서 왜 나는 한번도 나에 대해 감사를 드려보지 못했을까! 나는 비눗물이 뚝뚝 떨어지는 두 손을 마주잡고 그 자리에서 조용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저를 이토록 훌륭하게 만들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들도 자신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성경의 인물에서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할 뿐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값진 별명까지 얻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있기까지 어려울 때마다 그를 도왔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성경은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삶의 굴곡이 유난히 많았던 다윗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아비가일입니다. 사울왕의 시기로 광야와 동굴에서 살던 시절에도 다윗은 유격대를 조직하여 자기 민족을 보호하고자 나름대로 열의를 다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큼 민족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어느 날 다윗은 자신이 보호하는 지역에 살고 있던 나발에게 음식 지원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부자였던 나발은 다윗의 청을 거절하며 무시하는 발언까지 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은 분을 참지 못하며 나발의 가족을 공격하기 위하여 400명의 부하들에게 무장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때 분노의 칼을 들고 달려오는 400명의 남성들을 가로막은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 이었습니다. 그녀는 나발이 다윗을 후대하지 않은 것은 바로 자신의 잘못이라며 용서를 구한 후 준비해둔 음식을 다윗과 부하들에게 대접합니다. 그리고 원수 갚는 일로 피를 흘리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신 것이라는 지혜의 말로 다윗의 분노를 누그러뜨립니다. 다윗에게는 이 여인을 만난 것이 잊을 수 없는 감사의 조건이었습니다. 다윗은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원수를 갚지 않도록 자신을 설득해준 아비가일의 지혜에 대하여 감사를 표합니다. 이처럼 다윗이라는 유명한 한 사람의 인생 뒤에는 수없이 많은 실패와 어둠의 그림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적절하게 그를 도와준 무명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윗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도와준 고마운 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멀리 있어서 찾아가기 어렵다 할지라도 전화 한통, 카드 한 장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은 어떨까요?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 겸비한 자의 열매가 아닐까요?
어느 대학 도서관에 고서를 기증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증한 책은 보관 상태도 나쁘고 글자도 초서가 많아 어떤 것은 알아 볼 수조차 없어서 사서는 자못 화가 났습니다. “책을 기증하려면 좀 좋은 것을 기증하지. 꼭 걸레쪽 같이 아무 쓸모 없는 것을 도서 기증이랍시고 할게 뭐야?” 하면서 불평하였습니다. 마침 이 말을 들은 도서관장은 그 사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노인에게 가서 사과를 하든가 못하겠거든 사표를 쓰시오. 당신 하나 때문에 우리 대학의 인상이 나빠지고 도서관의 장서를 확보하는 데에 지장이 있을 것이니 그런 해를 끼치는 사람을 어찌 학교 직원으로 둘 수 있겠소?” 이 말을 들은 사서는 크게 잘못을 빌고 영감님을 찾아가서 사과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영감님은 대단히 감동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 당신이나 당신네 도서관 관장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사실 진짜 좋은 책은 집에 두었는데 그것마저 기증하겠소. 감사하는지, 불평하는지 나는 당신네 대학의 태도를 주시하고 있었소. 당신들의 태도는 참으로 나의 마음을 흐믓하게 합니다. 며칠 후에 내가 학교로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감사는 항상 우리를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참된 예배에로 인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이고, 우리의 예배를 열며 닫는 열쇠도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함이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예배당, 좋은 오르간, 좋은 찬양대, 그리고 청산유수 같은 기도가 있어도 우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아무리 성경공부 많이 하고 새벽기도 열심히 하고 헌금 많이 하고 봉사 잘 해도 진정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살5:18)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토록 크고 놀라운 은혜를 많이 받고도 쉽게 잊고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배역을 거듭한 백성은 사실은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모습은 곧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정치도 우리에게 분노와 짜증밖에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경제도 암울하기만 하며, 사회는 날로 탁하고 무서워져 가는 요즈음은 도무지 감사할 일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는 만유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시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사실은 온통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차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하루를 주셨습니다. 해를 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숨쉴 수 있는 공기를 주셨습니다.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민권을 주셨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을 주셨습니다. 교회에 나올 수 있는 자유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의 사하심을 주셨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복된 삶을 주셨습니다. 이것만 생각해도 감사할 일로 넘칩니다. 자녀들이 공부 잘 못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자녀들이 찬송할 줄 알고 기도할 줄 안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건강하고 잘 뛰어다닐 줄 알기만 해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모두 일류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섭섭해하지 마세요. 다른 집 부모들 주눅 들게 하는 사람 안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애들이 속 썩인다고 화내지 마세요. 애가 없어서 속 썩는 사람들도 있음을 아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애가 없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애들 때문에 속 썩는 사람들 보시고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눈만 잘 뜨고 살핀다면 감사할 제목은 우리 주위와 삶 속에 너무나 많습니다. 아무리 어떻다 해도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여 예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 해도 만유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 가운데 지켜주시고 인도하시지 않으셨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지금 예배드리고 있다면 그것은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오늘 시편 95편 마지막 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노하심을 자초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안식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살지 맙시다. 하나님께 감사해야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삽시다. 이스라엘 백성같이 그렇게 많은 크고 놀라운 은혜를 받고서도 깨닫지 못하고 조금 무슨 일만 있으면 하나님께 불평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 되지 맙시다.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는 그 숱한 사랑과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감사의 찬송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너무나 감사해서 즐거이 부르는 노래와 외치는 소리가 오늘뿐 아니라 언제나 이 교회와 우리 각 가정에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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