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의 은혜가 나타날 때 (딛 2:11-14)
[요약]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양육의 목표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라남은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육하시는 은혜가 나타날 때 가능하다. 하나님의 양육의 은혜가 나타나면 먼저 마음이 깨끗이 씻어진다.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에 우러나서 공경하게 되며, 천국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으로 가득하게 되며, 각 분야의 일군으로 충성된 자가 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양육의 은혜를 받음이 중요하다. 이 은혜는 곧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성령으로 충만하는 것이다.
이 시간에 “양육의 은혜가 나타날 때”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놀라운 양육의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양육의 목표가 어떤 것일까요? 엡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범사에 그리스도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가 될 수 없고 예수가 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형제로서 손색함이 없는 그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한 일입니까?
우리나라의 유명한 송강 정철 선생의 훈민가에 이런 시조가 있지요? “아버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사라실가 하늘같은 가 업슨 은덕을 어데 다혀 갑사오리” 부모의 은혜가 커서 어떻게 다 갚을 수조차도 없다는 시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영원 전에 택하시고 독생자를 주시며 성령으로 부르시고 예수 믿어 거듭나게 하시고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고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마치 나일 강에 빠뜨려 죽을 수밖에 없던 모세가 건짐 받아 영광스런 애굽의 왕자가 되듯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영원한 영광과 함께 누리도록 양육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대한 최고의 보답은 그 분의 뜻대로 잘 자라드리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답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양육하시는 내용을 알아야 우리가 아버지의 뜻에 거슬리지 않고 잘 자라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양육의 은혜는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나타나는 하나님의 양육의 은혜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요?
1. 마음이 깨끗이 씻어집니다.
2절에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그랬습니다. 마치 갓난아이의 대소변을 어머니가 깨끗하게 해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양육하시는 은혜는 우리의 죄악의 잔재를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혹시 마음에 시험이 있거든 하나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30분 엎드려서 안 되면 한 시간, 한 시간 엎드려 안 되면 두 시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면서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주이심을 고백하고 그 발아래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주십니다.
제사장들이 성막에 들어갈 때 수족을 씻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매일 매일 해야 할 것은 살아가면서 오염된 마음과 행실의 수족을 씻는 일입니다. 이것을 씻지 않으면 주님과 상관없고 큰 영광 속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애굽 생각입니다. 그러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추억하고 동경하는 이스라엘을 노하시고 광야 40년을 통해서 세대교체를 단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온전히 떨어버리시기 위해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의 첫 성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고 모든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길갈은 ‘굴러가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사랑함이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14장을 보면 여자가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습니다. 이 여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데 마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연단 받듯, 그리고 제자들이 삼년 반 동안 훈련을 받듯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을 양육하시고 계십니다.
먹지 않아야 할 것을 먹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이처럼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그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양심의 고통도 크고 징계의 고통도 큽니다. 그래서 시32:3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잘 공경하게 됩니다.
12절에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이 멋진 생활이 은혜 받았을 때 이루어집니다. 여기 “근신”이라는 말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영적으로 깨어 절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로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흠 없이 행하는 것을, “경건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분만을 경외하며 그 분의 뜻을 좇아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대 교회로 성장한 분당 새예덴교회 소강석 목사의 장모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른한 살 나이에 혼자되어 삼남매를 기르면서 예수 믿기 시작하였는데 그 권사님이 처음 한 일이 교회당 청소였다고 합니다. 교회당이 허름할 뿐 아니라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지만 날마다 시간이 나면 교회당 청소를 하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교회 나와서 봉사하면 왜 그렇게 기쁘고 즐거운지 그 때 그 권사님 마음은 오로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상상할 수 없는 은혜와 은사를 주시고 소목사를 사위 삼아 기도로 돕는 큰 사명을 맡겨 주시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은혜 받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결코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11:2-3에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귀한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3. 소망의 은혜가 차고 넘칩니다.
13절에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랬습니다. 천국과 재림의 소망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지상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았지만 갈 때 가지고 가는 사람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천국과 예수님 재림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천국의 소망이 없으면 그것만큼 비참하고 불행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이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없는 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으면 사도 바울과 같이 지상과 천국 사이에서 갈등할 만큼 행복한 존재가 됩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한 손양원 목사님의 주님 고대가 속에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믿음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해 머리 들고 멀리 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그러면서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간구합니다. 이 얼마나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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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재림하시면 먼저 구출(Deliverance)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통, 시련, 억울함의 매임에서 완전히 구출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변화(Change)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고통도 죄악도 죽음도 없는 영광스런 몸, 거룩한 몸, 의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다음은 상급(Reward)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온갖 아름다운 면류관 등 상상할 수 없는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재결합(Reunion)의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앞서간 기족과 성도들을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지금 오시면 안 된다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형태로든 임하셔야 됩니다. 주님이 임하셔야 내가 변화되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됩니다. 주님을 고대하는 자에게 주님은 현재 성령으로 임하시고 장차 불원간에는 재림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4. 충성된 일군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14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은혜 받아야 일군 된다는 말씀입니다. 각계각층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일군 만드는 것이 우리를 향한 양육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마음에 우러나서 하게 됩니다.
덴마크의 <윌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안과 의사였습니다. 그는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의 아내이며 빈민구제를 위하여 일생을 바친 캐서린 부스(1829-1890)의 전기를 읽고 감격하여 복음 전도를 위해 헌신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의 재능을 아낀 주변 사람들이 매우 애석하게 여기며 만류했으나 그는 지위나 명예를 다 내던지고 런던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선교부에서 "당신은 어디고 가고 싶은가요?" 라고 묻자 그는 "세계에서 가장 힘든 곳으로 보내 주십시오." 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소원대로 그는 자바 섬에 보내졌습니다. 그곳은 눈병 환자가 매우 많은 곳으로, 인구의 5분의 1이 눈병으로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곳에 큰 안과 병원을 설립하고 전도라는 목적 아래 토인들의 눈병을 치료했습니다. 그는 30년간을 봉사하고 노령으로 은퇴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고치는 동시에 그들 마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는 자녀로 만들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여왕은 최고 훈장을 그에게 내려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이런 위대한 사명감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과일장수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열심히 전도했지만 도무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아주머니가 어느 날부터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교인들이 놀라 물었습니다. “성도님, 그렇게 전도하여도 안 나오더니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어요?” 그 아주머니 대답이 일주일에 세 번씩 가게에 들러 과일을 사가는 신사가 있었는데 그 분은 항상 못생기고 좋지 않은 사과만 골라가더랍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지금 당장 먹을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면서 좋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팔라고 하더랍니다. 미안해서 사과를 몇 개 주었지만 손을 흔들면서 받지 않아 그 분에 대해 조금씩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어느 날 그 신사가 조그만 소리로 말하더랍니다. “예수를 믿으세요.” 그 소리에 그 분이 믿는 예수님이라면 믿고 싶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사가 이렇게 한 이유는 성령의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몸이 자라고 지혜가 자라며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양육하시는 은혜가 나타나 머리 되신 예수님처럼 자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늘 주님을 의지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양육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여 죄를 버리며 하나님을 공경하고 천국과 재림의 소망 가지고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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