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오시면 됩니다 (고전 1:30-31)
이 시간에 “주님이 오시면 됩니다”라는 제목입니다. 한평생 기도로 살았던 고아의 아버지 조오지 뮬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오직 기도로 수천 명의 고아들을 길러냈고 10개의 학교를 세우고 189명의 선교사를 돕고 9,000명의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400만 부의 소책자와 수 만권의 성경을 선교지에 보냈습니다. 이 엄청난 사역의 비결은 다름 아닌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기도로 성공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날 그가 매일 장사하는데 16시간을 쓰는 사람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몸은 지쳐 병들어 있었고 영혼은 메말라 있었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도 떠난 지 오래였습니다. 그에게 뮬러는 당신이 살기를 원한다면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말씀과 기도에 더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이렇게 일해도 먹고 살기가 힘든데 그렇게 하면 나는 굶어죽고 말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뮬러는 이건 아니다. 이렇게 살아선 살아도 죽는다. 나부터 삶의 태도를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에 놀랍게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나 혼자 열심히 해도 주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주님이 오셔야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고 만사가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없는 삶은 헛 됩니다. 그래서 시 127편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했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물이 찢어질 만큼 채워 주시던 하나님의 도우심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 할 뿐 아니라 주님이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나는 일에 더욱 힘써야하겠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시되 그냥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온갖 아름다운 은혜와 복을 가지고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1:13) 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이 어떤 형태로든 오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다시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무관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막연한 종말관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오심의 시제는 이미 오셨고 오시고 계시며 또 온전히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기나긴 기차처럼 이미 왔지만 오고 있고 그리고 완전히 오는 것처럼 주님은 이미 도성인신하여 육체로 오셨을 뿐 아니라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또 충만히 오시고 계시며 그리고 영광의 모습으로 온전히 오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 주님의 오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1. 주님이 오시지 않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갈4:4-5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베들레헴 마구간에 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영원한 절망 속에서 아무도 구원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님이 각인의 심령에도 오셔야 합니다.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으면 그 영혼은 구원 받은 심령이 아닙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는 심령은 영원한 절망밖에는 없습니다.
2. 주님이 오시지 않으면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본문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온 심령에는 온갖 자랑할 만큼의 놀라운 축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는 죄인밖에는 없지만 주님이 성령으로 임하시면 모든 결함과 죄악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변화 받게 됩니다. 죄인 삭개오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찾아오시니까 변화 되었습니다. 욥이 어떻게 그 환난을 극복했을까요? 아무리 욥기를 읽어 보아도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 말고는 다른 답이 없습니다. 나약한 제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강하고 훌륭한 사도가 되었을까요? 역시 예수님이 그들 인격에 나타나신 것 말고는 다른 답이 없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성령으로 임하시면 지혜 없는 사람이 지혜가 생기고, 의롭지 않던 사람이 의로워지고, 거룩하지 않던 사람이 거룩해지고, 구원의 확신도 없던 사람이 구원을 누립니다. 혹시 고아처럼 느껴집니까? 인생길을 가는 동안 고아와 같이 고독하고 쓸쓸하고 도움이 없습니까? 주님이 성령으로 임하시면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하셨습니다.
더 이상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다 끝납니다. 주님은 오셨지만 이 시간에도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게 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임재의 경험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그 임재의 경험을 걷어 가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를 참되고 온전한 길로 인도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신 성도들은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전에는 하나님 없이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니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치 혼자 살 때와 결혼하여 살 때가 다른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부부만 살 때와 자녀들과 살 때가 다르고 부모님을 모시고 살 때는 더욱 다릅니다. 혼자 살 때는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며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둘이 살 때는 다릅니다. 서로 존중하며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자녀가 생기면 또 달라집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본받기 때문에 뭐 하나도 조심해야 합니다. 또 부모님과 함께 살면 더 달라집니다. 부모님이 계시면 부부간의 큰소리할 일도 참아야 하고 무엇을 할 때도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고 존중해야 하고 또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모신 사람들은 사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셨음에도 하나님이 곁에 안 계신 것처럼 살기 때문에 그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려면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함께 계신 것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하시니 내 맘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염려도 놓고, 함께 계시니 매사에 조심하고, 함께 계시니 늘 대화조로 기도하고, 함께 계시니 겸손하고, 함께 계시니 늘 예배하고, 함께 계시니 죄를 멀리하고, 함께 계시니 주님만 갈망하면서 늘 기쁘게 해드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 멀리만 계시는 것 같던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영혼과 육체와 삶 속에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임재와 임재가 나타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임재와 임재의 경험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자에게 영원히 함께 하시지만 임재가 나타나 경험하게 되면 그 축복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임재가 나타나면 내가 온전해지고 진정한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다.
정원 목사의 기도 업데이트라는 책에 '기도는 행복입니다.'라는 좋은 글이 있습니다. 잠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몹시 지치고 피곤했던 어느 날, 익숙하지 않은 거리에서 헤매다 어떤 교회에 들어갑니다. 나는 쓰러지듯 의자에 주저앉습니다. 나는 너무 지쳐있고 피곤하지만 왜 그렇게 피곤한지 지쳐 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몹시 슬프고 외롭습니다. 그러나 왜 그런지도 모릅니다. 나는 갑자기 내가 혼자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세상은 너무 피곤한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조용히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님”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다시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 예수님,,,” 갑자기 내가 울기 시작합니다. 웬일일까요? 내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내 심장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따뜻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하여튼 나는 흐느껴 웁니다. 그러나 왜 우는지는 모릅니다. 긴 의자에 팔을 기대고 나는 한참동안 엎드려 있습니다. 이제 내 마음은 가라앉고 평안합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나의 몸은 가볍고 나의 마음은 상쾌합니다. 나는 휘파람을 불면서 교회 문을 나섭니다. 내 안에 어떠한 일이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세상은 결코 피곤한 곳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내가 주를 부를 때 그 분이 나를 만지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나 행복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걸음걸이로 나는 집으로 옵니다. 기도는 행복입니다. 주님은 행복이십니다. 기도는 행복의 문입니다. 그 문을 열고 주님께서 오십니다." 라는 글입니다. 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3. 주님이 오시면 영원한 해방입니다.
고전15:51-53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라 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무덤에 있던 성도들의 몸이 영광의 형체로 부활하고 살아서 신앙생활하던 우리들은 육체의 죽음을 맛보지 않고 변화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재림하시면 이 우주와 만물조차도 새롭게 됩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것은 끝납니다. 고난도 끝나고, 죄악도 끝나고, 눈물도 끝나고, 수고도 끝나고, 병과 죽음도 끝나고 모든 저주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주님이 오심이 이렇게 좋은 것입니다.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다른 행운은 다 놓쳐도 우리 생전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는 행운만큼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북극의 얼음이 녹아 바닥을 드러내고 사철 얼음으로 덮여 있던 그린란드에 땅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과 인도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데 이들 두 나라 국민들만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이 지구는 산소고갈로 숨을 쉴 수도 없는 시대가 곧 오고 말 것입니다. 저는 주님이 오실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해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십시다. 그러나 지금 성령으로 임하시는 오시는 주님만 경험해도 우리는 사망의 절망을 온전히 이길 수 있고 그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떠한 가운데 계십니까? 주님이 오시면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온갖 행복을 다 가지시고 오셨고 오시고 계시며 또 온전히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예수님은 물론 지금 성령으로 임하시고 계신 주님을 더욱 사모하며 갈망하여 주님의 임재를 온전히 경험하며 사는 가장 행복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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