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설교

하나님의 본심

공 상희 2008. 7. 3. 17:48

하나님의 본심

예레미야애가 3:26~33

 

설교지원팀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본심(本心)을 묻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은 상 받게 하시고 착한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선민(選民) 이스라엘을 이방인들에게 유린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이냐는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1.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본심은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사람입니다. 실수도 하고 흠도 있었지만 중심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보통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시련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하나님의 본심을 묻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들 이삭을 바치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준다 약속해 놓고 25년을 질질 끌며 기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모자라 이삭을 바치라 합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인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아들을 아버지가 죽여 산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본심은, 아브라함 자신이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옛날 믿음이 아닙니다. 인생의 환란을 거듭해가면서 순전한 믿음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벗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해 주고 계심을 자신만 몰랐을 뿐입니다. 이삭을 죽이려 할 때 하나님께서 급히 그의 칼을 멈추게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지금까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몰랐다는 말입니까? 표현은 그렇지만 사실은 아브라함 자신에게 네 믿음이 이 정도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런저런 어려움을 준 본심은 네 믿음을 이만한 정상에 올라서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삭을 (고난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얼마나 높이셨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욱 그에 걸맞은 믿음으로 살 각오를 다지게 합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하나님의 본심은 때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생각지도 않던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

“왜 이러세요,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이런 물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믿음들이 나에게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평상시에는 내게 그런 믿음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믿음도 없고 열정도 없는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해가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내 속에 이런 믿음이 있었구나! 나는 믿음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구나! 이걸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었구나!”

하나님의 본심을 알게 되는 날, 우리는 세상을 다 얻은 사람들처럼 행복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눈물 흘리며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2. 욥에게 하나님의 본심은 하나님의 의(義)로 높이려 하신 것입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순전하다”(perfect)는 것은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함이 더할 나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 정도로 끝났습니다. 그냥 그의 충성과 헌신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욥은 달랐습니다. 욥은 정말 순전한 사람입니다. 그의 순전이 아까웠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구원 가능성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의 순전을 아브라함과 같은 순전으로 올리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그래서 수난이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전함과 욥의 순전함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전은 훨씬 고상합니다. 하나님께로 온 순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육과 연단에 의해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욥의 순전함은 세상적인 자기 의(義)로 온 것입니다. 욥기 1:1의“순전하고”라는 히브리어는 단지“정중하고 정직함”을 의미합니다. 욥은 선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교육과 다스림 속에서 살지 못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여자의 후손이 계시되었습니다.“복의 근원”-그것이 여자의 후손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가리켜“너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의(義)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가 된 것입니다. 구원받을 의(義)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속 자신을 계시하셨기에 그 정도의 고난으로 하나님의 수준인“순전함”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욥에게는 그런 게 없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동행이 없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정직을 쌓아올렸고 그것이 순전함을 이루었습니다. 그 정도로는 약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아브라함 수준의 순전함을 기대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식들이 죽임당하는 고난도의 고통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적인 고상한 순전함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의 본심을 몰랐기에 단지 죄의 문제로만 알고 공격한 것입니다. 욥도 하나님의 본심을 몰랐기에 죄가 없다고 항변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고 사람을 대상으로 애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전환을 합니다. 믿음을 계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심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게 된 욥은 그제야 메시야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그의 믿음이 친구들을 제압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안 사람이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는 사람들을 제압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더 순전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칭의의 은혜를 입었기에 칭의에 근거해 더 높은 성화(聖化)의 단계로 올라 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높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본심을 감추시고 보금자리를 어지럽힙니다. 그러는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딸들임을 보여주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을 아는 일입니다.

 

3.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본심은 그들을 정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 끝에 예언사역을 했습니다. 유대가 망하며 예루살렘은 초토화가 될 것을 예언했지만 성(城)이 망하게 되었을 때 그 참상은 비참하였고 하나님의 본심을 알 길 없는 선지자는 탄식합니다(4:1,2).

하나님의 본심은 때로는 너무 깊이 감추어져 선지자들조차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며 반문합니다. 본심이 무어냐고? 이런 생각에 파묻혀 있던 그에게 문득 한 회상(回想)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날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도 수많은 고난과 파멸과 멸망이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430년은 국가 자체가 상실된 것으로 알려진 세월입니다. 광야 40년 세월은 죽을 때까지 질질 끌고 다니실 작정으로 보였습니다. 가나안 입성 350년은 참으로 비참하게 살았던 세월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방인들의 손에, 적들의 손에 넘겨주었다가도 때가 되면 구원해 주셨습니다. 구원해 주심과 함께 좋은 것들을 얻게 하셨습니다. 애굽 430년의 긴 세월은 큰 민족으로 만드셨고, 광야 40년은 새로운 세대로 변모시켰습니다. 가나안 350년은 사사들을 통해서 왕정의 길로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이걸 깨달은 것입니다. 갑자기 그의 중심에 회상(回想)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은혜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연하게 고난을 주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번의 고난은 그들을 죄에서 정결하기 하심이 목적이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멈추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33절“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무엇이 본심이냐? 우리로 행복하게 하시려는 것이 늘 하나님의 본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소망의 선지자가 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회상들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세월 보여주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인도하심과 공급에 대한 회상의 고백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본심을 압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 때에야 우리 믿음이 주님과의 동행을 허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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