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흔적 (갈 6:15-18)
이 시간 “가장 아름다운 흔적”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아름답기를 바라고 멋있게 보이기를 바라는 것이 공통된 심리일 것입니다. 스스로 미워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자기 몸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흔적들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들 중에는 자기 몸을 과시하거나 혹은 호기심으로 나름대로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문신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것은 멋이 아니라 제가 보기에는 흉측하기 짝이 없는 실패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실속파들은 그런 문신보다는 미용이나 몸매 가꾸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남성들은 우람하고 듬직한 근육질 만들기에 여념이 없고, 여성들은 S라인의 몸매를 위해 종일 러닝머신 위에서 살거나 살을 빼려고 건강도 무시한체 음식을 거부하며 아름다운 얼굴을 위해 성형외과 문턱이 닳을 정도라고 합니다.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은 어쩔 수 없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육체의 흔적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유대인들도 육체의 흔적인 할례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할례란 요즘 말로 포경수술인데 이 할례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표식이었기 때문에 이 표식은 그들에게 대단한 자부심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스라엘 남자들은 세 가지 기본적인 감사를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신이 동물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난 것, 다음은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난 것, 다음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난 것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 표시가 할례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할례를 받아도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 앞에 자랑스러운 흔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진정 자랑스러운 흔적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니까 예수님을 닮은 흔적입니다. 그럼 예수의 흔적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바울 사도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한 그 “흔적”은 헬라어로 <στιγμα,스티그마>입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노예에게 낙인을 찍었는데 그 낙인을 스티그마라고 합니다. 이 흔적은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흔적이지요. 그런데 이 ‘스티그마’란 단어는 ‘스티조’란 단어에서 파생했는데 그 뜻은 “찌르다”는 뜻입니다. 즉 찔림을 받아서 생긴 흉터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흔적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고난 당하신 주님의 흔적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흔적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가져야 할 예수님의 흔적은 어떤 것일까요?
1. 우리가 가져야 할 예수님의 흔적은 무릎의 흔적입니다.
눅22:41에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무릎기도가 잘 나타나있는 부분입니다. 주님처럼 기도 많이 하셨던 분은 없습니다. 주님의 일생은 낮에는 전도하시고 밤에는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무릎과 발등은 굳은살이 박이고 또 박혔을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낙타 무릎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무릎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95:6에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랬고, 행20:36에 바울도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지도자들은 낙타의 무릎의 소유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주의 동생 야고보의 무릎은 늘 기도를 쉬지 않아 낙타무릎 같았다고 전해지며 의인 야고보로 불렸습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어떤 자들은 우리가 죄인이냐? 무릎을 꿇게, 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무릎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낙타무릎을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흔적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기도 많이 하자는 말입니다. 전병욱 목사는 ‘낙타무릎’이라는 책에서 “명심하십시오. 행동보다 기도가 앞서야 합니다. 엎드리는 것이 진정한 용감함입니다. 기도 없으면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몸에 예수 흔적을 가져야 한다면 먼저 낙타 무릎의 흔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갑절로 기도하여 진정한 새해가 하나님 앞으로부터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가 지녀야 할 예수님의 흔적은 여러 고난의 흔적입니다.
사53:5애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에는 많은 고난의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몇 해 전에 상영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기억하시지요? 채찍으로 한번 내려칠 때마다 살점이 떨어집니다. 피투성이가 됩니다.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고개를 돌릴만큼 고난의 장면이 생생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흔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요20:20에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님은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랑의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주를 위해 살다 보면 예수를 위한 고난의 흔적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납니다. 저도 예배당 짓다가 전기 대패로 손가락을 끓기도 했고, 나무를 잘못 밟아 나무가 머리를 여지없이 강타한 적도 있고, 못을 박다가 엄지손가락을 때려 멍들고 피가 난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교회 나간다고 남편에게 맞아 머리가 찢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 비하면 이것은 흔적이라고도 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하다가 서른아홉 번씩 맞는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한 번만 맞아도 병신이 된다는 그 매를 수없이 맞았습니다. 그러니 그의 온 몸은 흉터로 뒤덮여 있었을 것입니다. 손목과 발목에는 쇠로 만든 착고에 채인 흉터들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전도할 때 유대인들이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행14:19). 이게 다 바울 사도가 가진 예수님의 스티그마였습니다. 그의 흔적들은 예수님을 위해 사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들이었습니다.
세상의 영웅들도 그 얼굴에 흔적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알렉산더 대왕의 얼굴의 상처는 너무나도 흉해서 그의 초상화를 그리기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알렉산더의 얼굴은 전쟁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무섭고 잔인할 뿐 그대로는 덕과 용맹을 갖춘 영웅의 모습을 갖춘 만족할 만한 작품을 그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그러한 데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우리에게 예수의 작은 흔적조차 없다면 그것은 잘못 믿은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못 먹고, 예수 때문에 병들고, 예수 때문에 매도 맞아보고, 예수 때문에 가난도 해보고, 예수 때문에 핍박도 받고, 예수 때문에 옥에도 들어가는 그 흔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중세기의 유명한 성자인 프랜시스는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랑하여 주님의 고난을 더 알기 원했고 또 그 흔적을 가지길 원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동굴에서 기도할 때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웠습니다. 동굴 바닥에서 마구 뒹굴었습니다.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손과 발에 못 자국과 허리에는 창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그 자국에서는 진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프란시스처럼 마음으로 육체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그 흔적을 갖길 바랍니다.
3. 우리가 가져야 할 예수님의 흔적은 그 심장의 흔적입니다.
죄인을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을 심장이라고 볼 때 주님의 심장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찢어지고 또 찢어졌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내가 죽으면 심장을 열어보라 그러면 심장에 구멍이 뚫려 있을 것이다고 했는데 정말 열어보았더니 구멍이 수없이 뚫려 있더랍니다. 이것은 동물실험에서도 입증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심장도 정상은 아니셨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 예수의 심장을 가졌습니다. 빌1:8을 보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습니다. 고전2:16에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했습니다. 바울의 기도를 보더라도 그가 예수님의 찢어진 심장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어요. 자기 동족 구원을 위해서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요.
고후 11장의 바울의 고백에서도 그것이 잘 나타납니다. 고후11:28에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3-28) 이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바울이 가진 예수님의 심장입니다.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흔적입니다.
하이디 베이커의 간증을 보면 입신하여 어느 거대한 방에 들어갔는데 그 방은 놀랍게도 하나님 아버지의 심장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심장은 계속 고동치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분의 심장은 거대한 칼에 베임을 당한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고통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 거룩한 상처덩이로부터 고통이 자기에게 전달되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큰 상처였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사람들이 죄를 짓기 시작하던 날 부터 아버지의 심장에 생기게 된 구멍이란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악마에 끌려 세상에 나가 범죄할 때 아버지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진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쾌락을 위해 나갔지만 아버지의 심장은 찢어질 듯 아픈 고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디 베이커는 “아버지, 제가 그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저들을 제가 아버지께로 데려 오도록 해주세요.” 기도했습니다. 이 아픈 예수님의 마음의 상처의 흔적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풍체도 없으시고 몸에는 고난의 흔적 투성이었지만 아버지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우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우리의 중심입니다. 얼마나 주를 사랑하며 주를 위해서 사셨습니까? 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주님을 위해 가장 많이 희생한 그 흔적들일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몸과 마음에 예수의 흔적을 많이 가집시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칭찬 받는 가장 멋진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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