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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극복하는 믿음 본문: 여호수아6:1~5
한 교육학자는 자신의 세 아들에게서 각기 다른 세 가지 태도를 관찰하였습니다. 아이가 기어다닐 무렵, 앞에 장애물이 있을 때 큰 아이는 멈추어 주저 앉아버립니다. 둘째 아이는 장애물을 피해서 다른 데로 기어갔습니다. 셋째 아이는 장애물을 밀어젖히고 전진했습니다. 여기 서로 다른 태도에 흥미를 느낀 교육학자는 기어다니는 또래의 아이들도 실험했는데 역시 세 종류의 태도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첫째 유형은 체념형으로 가장 소극적이며 비생산적입니다.
둘째는 도피형인데 어른의 용어로 말하면 냉소주의자 방관주의자 책임회피자 그리고 동정과 인정을 받으려는 삶의 자세입니다.
셋째 아이가 가정 적극적인데 이 아이는 장애물을 젖히고 나아갔습니다. 동기를 분석해보았더니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무엇인가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기분 나쁘다는 감정을 가지고 투쟁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장애물을 장난감 삼아 놀면서 밀어젖히고 나가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물을 만났을 때 위 세 가지 유형 중 어느 쪽 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 여리고성이라는 요새를 만나게 됩니다. 기대는 무너지고 실망이 찾아옵니다. 아울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주저앉는 절망적인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여리고성 같은 문제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 문제들은 우리를 좌절시키기도 합니다.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적 앞에서 여리고성 같은 문제를 만날 때면 두려워집니다. 고통스러워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게 됩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 앞에, 감당하기 어렵고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음에도 반드시 나아가야 할 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믿음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할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믿음은 어떤 믿음 이였을까요?
첫째 생각을 하나님 주신 약속에 두는 믿음입니다.
여리고성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여리고 성은 두 겹으로 쌓여있어서 성벽의 꼭대기에는 두 대의 마차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고. 두께가 6m 가량 되어서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40년전 정탐꾼들이 말했던대로 여리고 성안에 사는 백성은 크고 장대해서, 현실적으로도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이 보잘 것 없었습니다. 본문 여호수아 6장 1절에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성문이 닫힌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망이 막힌 것을 상징적으로 설명해줍니다. 이렇게 눈으로 보고 확인할 때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도무지 우리 능력이나 힘으로는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에 도전한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 주신 약속의 말씀에 자신들의 생각을 맞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6장 2절 이하에 하나님의 약속은 두 가지입니다.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이스라엘 손에 붙였다는 것과 여리고 성이 무너지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이 약속에 생각을 맞출 때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손에 여리고 성이 달렸고, 여리고 성은 반드시 무너지지라는 약속을 믿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 오늘 자신의 삶 속에서 여리고성처럼 거대한 벽에 부딪힌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와 함께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주님의 약속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이 약속이 있으니,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의 약속을 믿고, 붙들고, 선포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믿음은 생각의 기초를 하나님주신 약속에 둔 믿음입니다.
둘째로 여리고를 무너뜨린 믿음은 행동의 기준을 하나님 말씀 순종에 두는 믿음입니다.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지침을 말씀해주십니다. 여호수아 6장 2절 이하를 보면 매일 한번씩 성 주위를 돌되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을 돌 때 제사장 일곱은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하고, 마지막 날 일곱 번째에 제사장이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소리가 들릴 때에 온 백성이 큰 소리로 외쳐 부르라고 말씀합니다. 그럴 때 성이 무너질 것 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길갈을 출발해서 여리고성을 한 바퀴 도는데 모두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2시간동안 성을 도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순종하는데 있었습니다.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성을 돌아야만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계산에 근거한다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돌았습니다.
여러분! 성을 7번 돌았다고 무너집니까? 7번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한 성서학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한 번의 순종이 상황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온전한 순종은 반드시 상황을 바꾼다.’ 누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아니 몇 번쯤은 말씀대로 용기를 내어 순종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은 한 두 번이 아니라 온전한 순종이요 끝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 이성과 반대되더라도 말씀대로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열심을 내지만 삶의 변화가 없고,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구원의 즐거움이 없다면 순종부분을 점검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린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셋째 여리고를 무너뜨린 믿음은 침묵으로 하나 되는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를 7일에 걸쳐 13번을 도는 동안 지켜야 할 독특한 명령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6장 10절 말씀에 보면“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찌니라 ”라는 말씀 이 있습니다. 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침묵하라 고했을까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는 특징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동안 불평과 원망의 역사였습니다. 조금만 불편해도 기회만 있으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난공불낙인 여리고성 앞에서 이제 또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 입장에서 말하기 시작했을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던 불평과 원망과 의심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지금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데스바네야 에서 불평하던 20세 이상 된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게 만든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불평 불만하는 백성의 특징을 잘 알기에 여호수아는 침묵하도록 하였습니다. 침묵은 불신앙에서 나오는 의심과 불평을 중단시킵니다. 우리는 혹여 불평불만이 생기더라도 오직 하나님께만 토로해야합니다.
또 하나 침묵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나아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일곱 제사장들은 언약궤 앞에서 진행하며 각각 나팔을 불도록 명령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광야생활을 통해서 나팔 부는 것과 또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민10:1-8). 나팔소리는 그것을 따르는 자들에게 승리를 확신시켜주는 기쁨과 자유의 소리였습니다. 또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이 나팔소리는 언약궤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억 속에 있는 승리를 되새기게 했습니다. 그들의 침묵은 바로 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침묵은 우리에게 분별력을 갖게 해줍니다. 침묵은 나의 기대와 바램, 욕망의 소리를 잠재우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침묵 중에 걸아가면서 무엇을 묵상했을까요? 여리고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함께 언약궤와 나팔 그리고 제사장들의 모습은 지난날 불가능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을 묵상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함께 함성을 질렀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믿음 안에서 하나 됨의 소리입니다. 그리고 이미 자신들에게 여리고를 주셨음을 확신하는 믿음의 소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인 나팔소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순종의 함성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성전 건축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가야할 길이며 해결되어야 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약속인데,
혹시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해결하지 못 할, 그래서 포기해야만 하는 크고 장대한 여리고성을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 너무나 큰 절벽으로 다가와 있는 성전 건축의 여러가지 문제를 향해 주님은 여리고가 무너진 것처럼 분명히 해결될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믿음이란 세상에 대하여 눈을 감고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현실을 보던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 약속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우리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그리고 온전히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침묵하며 우리 불신앙의 소리, 육의 소리가 아닌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통해서 나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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