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위하여 사는 사람
[2007.01.29 16:14]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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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431장 ‘내 주여 뜻대로’/묵상: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신앙고백:사도신경/본문:로마서 14장 7∼9절 말씀:여기 돈이 있습니다. 이 돈이 좋은 것일까요,아니면 나쁜 것일까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물건도 사용하는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똑같은 칼도 사람을 살리기 위한 수술용 칼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살인용 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건은 무엇을 위해 사용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목적이 중요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좋고 나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해,누구를 위해 사느냐에 따라 의인이 될 수도 있고 죄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위하여’란 말이 네 번 나옵니다. 짧은 세 구절 속에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 사실 ‘위하여’란 말은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도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둘 중에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사느냐,아니면 주를 위하여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과 후의 큰 차이점은 ‘위하여’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나를 위하여 살았지만 이제는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으니 우리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 중에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오직 주를 위하여 사는 자만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대부분은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힘입니다. 초대교회 순교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엄마와 어린 아들이 로마의 원형경기장 중앙에 섰습니다. 로마 병사는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묻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하면 너와 네 아들을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3일 동안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도록 하겠다.” 그러자 아이가 “엄마 무서워”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들아,조금만 참아 우리는 곧 좋은 곳에 간단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죽는 영광을 누리는 거란다.” 참된 신앙인은 생사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생사화복의 주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도,예배도,전도도,식사도,공부도,봉사도 오직 주를 위해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나님,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을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아멘. 주기도문 임용택 목사(영광제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