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마음 (눅 15:11~32)
논지 :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고 싶어 하십니다.
문제제기 - 세대간의 갈등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부모님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세대간의 갈등이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을 보면서, 어떤 마음가짐과 삶의 형식으로 오늘을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고 다짐하는 시간되기를 소망합니다.
들어가는 말
얼마 전 정말 멋있는 광경의 목격자가 되는 영광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중 3은 됐을 듯한 어떤 학생이 길에서 아빠를 만났습니다. 그 아빠에게 달려가서 매달리며, 아빠에게 뽀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빠 또한 얼마나 반갑게 안아주는지, 그 모습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십대의 아들과 그 아버지의 관계가 정말 아름다웠고, 이 땅의 그 무엇보다도 멋있어 보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그분께서는 자녀 된 우리와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아빠와 아들의 다정한 관계처럼 우리는 아빠 되신 하나님을 찾고, 그분에게 달려가 매달리며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한 사람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 돌아오면, 자비한 아빠 되시는 우리 하나님은 하늘 문 밖으로 달려 나와 우리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배설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요구하는 아들
유산의 상속이라고 하는 것은, 물려줄 사람의 죽음 이후에나 있어야 할 일입니다. 아버지의 생전에 이것을 요구한다고 하는 것은 그 아버지를 매우 슬프게 만드는 일이며, 아들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아들이 있다고 했을 때, 그 아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향해서 책망과 비난의 말들을 퍼 붇겠죠!
이런 현실 속에서 둘째 아들은 더 이상 아버지의 집에,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동네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려받은 모든 재물을 정리해서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는 먼 나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를 멀리 떠나 자유롭게(?)살게 된 아들
어디를 가든지, 돈이 있으면 그 돈의 힘으로 인해 얼마동안은 근심걱정 없이 편히 지낼 수 있습니다. 돈이 있는 동안에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고, 어느 정도의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얼마나 오래 갈까요?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아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공부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일에 대비해서 오늘 직장생활을 한 것도 아닙니다. 있는 돈을 가지고 방탕한 생활을 했을 뿐입니다. 돈으로 사귄 친구는 진정한 친구일 수 없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일정 기간 동안 편히 살기는 했겠지만, 돈이 떨어지면서 친구도 떨어져 나갔고, 이제는 먹을 양식도 다 떨어져 돼지사료를 구걸하고 있는 불쌍한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재산을 물려준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그 몫을 떼어서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당신의 살아생전에 유산의 상속을 요구하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그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 마음은 행복이었을까요, 아니면 서운함이었을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시면서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인정해 주는 자상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버릇없는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으며, 아들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고 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집을 떠났다고 해도 집에 있는 아버지는 그 자녀의 안전과 건강을 염려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의 생활
유산을 받아가지고 먼 나라로 떠난 아들은 그 재물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내어준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아들은, 지금 있는 자신의 재물만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쓰고 즐기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하루하루 노는 일에만 최선을 다한 아들은 내일이면 돈이 다 떨어질 것이라고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재물을 다 허랑방탕하게 써버린 아들은 이제 돼지치기의 자리로 내려앉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에 보니까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으나 이것도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많은 돈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했던 아들은 이제 돼지나 먹을 음식도 없어서 배를 주리고 있는 참으로 불쌍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아들을 문 밖에서 기다리는 아버지
아들이 떠나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버지는 오늘도 변함없이 문 밖에 나와서 아들이 떠나갔던 길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바람이 불어도, 한 낮의 햇볕이 아무리 뜨거울지라도 아버지는 문 밖에서 오늘도 변함없이 아들의 귀환(歸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났습니다. 오늘도 아버지는 캄캄해진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발걸음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대문을 잠갔을까요, 아니면 열어 놓았을까요? 본문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아마도 열어놓고 지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밤사이 혹시나 아들이 돌아왔다가 잠긴 문을 보고 발걸음을 돌릴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보이는 듯 합니다.
문소리라도 들리는 듯 하면 맨 발로 뛰어나와 문 밖을 살피는 것이 이 밤도 깊은 잠을 자기는 틀린 모양입니다. 집을 떠난 아들의 평안을 소원하며,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혹시나 오늘은...!?’이라고 하는 마음으로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걸인이 된 아들의 생활
그 밤에 방탕한 생활로 아버지의 유산을 탕진(蕩盡)해 버린 아들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돼지우리의 한 켠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생각했고, 아버지 집에서 부족할 것 없이 지냈던 때를 떠올렸으며, 먹을 것이 풍족했던 하인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되었고, 이제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명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해 달라고 당당하게 아버지와 맛 섰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다시는 아버지 앞에 설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탄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불행한 현실 속에서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는 명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아버지 집의 품꾼의 하나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름을 가지고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먹을 것이 풍족한 하인으로 생활하는 것을 통해서 빚을 갚을 수 있으리라고 하는 생각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돼지우리를 떠나 아버지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재회(齋會)
오늘도 하루 종일 문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저 멀리서 힘겹게 걸어오고 있는 아들을 발견합니다. 그 아들이 집을 떠날 때와는 매우 다른 행색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입고 있던 옷은 낡을 대로 낡았으며, 돼지사료도 제대로 못 먹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아들의 행색과 그 몸에서 나는 냄새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뭐했는지를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기뻐하고, 기뻐하면서 받아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살아생전에 유산을 상속해 달라고 했던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아들이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도 않았습니다. 아무 탈 없이 몸 건강하게 돌아와 아버지 앞에 머리 숙인 아들을 얼싸 안았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기뻐하십니다. 한 영혼의 살아남을 기뻐하시면서 잔치를 배설해 놓고 그 영혼의 무사귀환을 축하해 주시는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적용
얼마 전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요. 그런데 이 아이가 심장에 병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얼굴색은 창백했으며, 그 입을 열어 젖병을 빨지 못했습니다. 숨쉬는 것도 힘들어했죠.
이 아이의 현재가 힘들다는 것을 발견하고 난 후에 병원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기의 현재를 검사하고 치료해줄 장비가 없어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결과는 심장에 붙어 있는 관상동맥이 막혀 있다는 것이었으며, 이것을 위해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저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그 무엇과도 그 아들을 바꿀 수 없으며, 또 바꾸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은 병이 있는 딸에게로 달려갑니다. 이미 건강한 자녀도 사랑하지만, 연약한 자녀를 향해 더 마음을 쓰게 되었으며, 그 아이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소원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금 건강하고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죽음을 향해,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가던 영혼이 돌아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기뻐하시고, 감출 수 없는 행복함에 춤을 추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기뻐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큰 아들은, 믿음 안에 있었던 어떤 사람은, 주님의 전에 충성되었던 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이미 그분의 뜻 안에 있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잔치를 열어줄 정도까지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돌아온 영혼을 기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우리는 혹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분의 기뻐하심을 시샘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떠나갔던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그토록 기뻐했던 아버지와 함께 오늘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빠의 마음은 단 한 명의 자녀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와 행복하게 되길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 소원 가운데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한 희생 재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그리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우리의 하늘 아빠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향한 아빠의 마음을 살피면서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의 삶을 헌신 할 수 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정기 목사)
논지 :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고 싶어 하십니다.
문제제기 - 세대간의 갈등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부모님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세대간의 갈등이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을 보면서, 어떤 마음가짐과 삶의 형식으로 오늘을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고 다짐하는 시간되기를 소망합니다.
들어가는 말
얼마 전 정말 멋있는 광경의 목격자가 되는 영광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중 3은 됐을 듯한 어떤 학생이 길에서 아빠를 만났습니다. 그 아빠에게 달려가서 매달리며, 아빠에게 뽀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빠 또한 얼마나 반갑게 안아주는지, 그 모습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십대의 아들과 그 아버지의 관계가 정말 아름다웠고, 이 땅의 그 무엇보다도 멋있어 보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그분께서는 자녀 된 우리와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아빠와 아들의 다정한 관계처럼 우리는 아빠 되신 하나님을 찾고, 그분에게 달려가 매달리며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한 사람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 돌아오면, 자비한 아빠 되시는 우리 하나님은 하늘 문 밖으로 달려 나와 우리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배설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요구하는 아들
유산의 상속이라고 하는 것은, 물려줄 사람의 죽음 이후에나 있어야 할 일입니다. 아버지의 생전에 이것을 요구한다고 하는 것은 그 아버지를 매우 슬프게 만드는 일이며, 아들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아들이 있다고 했을 때, 그 아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향해서 책망과 비난의 말들을 퍼 붇겠죠!
이런 현실 속에서 둘째 아들은 더 이상 아버지의 집에,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동네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려받은 모든 재물을 정리해서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는 먼 나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를 멀리 떠나 자유롭게(?)살게 된 아들
어디를 가든지, 돈이 있으면 그 돈의 힘으로 인해 얼마동안은 근심걱정 없이 편히 지낼 수 있습니다. 돈이 있는 동안에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고, 어느 정도의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얼마나 오래 갈까요?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아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공부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일에 대비해서 오늘 직장생활을 한 것도 아닙니다. 있는 돈을 가지고 방탕한 생활을 했을 뿐입니다. 돈으로 사귄 친구는 진정한 친구일 수 없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일정 기간 동안 편히 살기는 했겠지만, 돈이 떨어지면서 친구도 떨어져 나갔고, 이제는 먹을 양식도 다 떨어져 돼지사료를 구걸하고 있는 불쌍한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재산을 물려준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그 몫을 떼어서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당신의 살아생전에 유산의 상속을 요구하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그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 마음은 행복이었을까요, 아니면 서운함이었을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시면서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인정해 주는 자상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버릇없는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으며, 아들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고 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집을 떠났다고 해도 집에 있는 아버지는 그 자녀의 안전과 건강을 염려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의 생활
유산을 받아가지고 먼 나라로 떠난 아들은 그 재물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내어준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아들은, 지금 있는 자신의 재물만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쓰고 즐기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하루하루 노는 일에만 최선을 다한 아들은 내일이면 돈이 다 떨어질 것이라고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재물을 다 허랑방탕하게 써버린 아들은 이제 돼지치기의 자리로 내려앉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에 보니까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으나 이것도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많은 돈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했던 아들은 이제 돼지나 먹을 음식도 없어서 배를 주리고 있는 참으로 불쌍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아들을 문 밖에서 기다리는 아버지
아들이 떠나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버지는 오늘도 변함없이 문 밖에 나와서 아들이 떠나갔던 길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바람이 불어도, 한 낮의 햇볕이 아무리 뜨거울지라도 아버지는 문 밖에서 오늘도 변함없이 아들의 귀환(歸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났습니다. 오늘도 아버지는 캄캄해진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발걸음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대문을 잠갔을까요, 아니면 열어 놓았을까요? 본문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아마도 열어놓고 지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밤사이 혹시나 아들이 돌아왔다가 잠긴 문을 보고 발걸음을 돌릴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보이는 듯 합니다.
문소리라도 들리는 듯 하면 맨 발로 뛰어나와 문 밖을 살피는 것이 이 밤도 깊은 잠을 자기는 틀린 모양입니다. 집을 떠난 아들의 평안을 소원하며,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혹시나 오늘은...!?’이라고 하는 마음으로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걸인이 된 아들의 생활
그 밤에 방탕한 생활로 아버지의 유산을 탕진(蕩盡)해 버린 아들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돼지우리의 한 켠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생각했고, 아버지 집에서 부족할 것 없이 지냈던 때를 떠올렸으며, 먹을 것이 풍족했던 하인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되었고, 이제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명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해 달라고 당당하게 아버지와 맛 섰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다시는 아버지 앞에 설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탄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불행한 현실 속에서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는 명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아버지 집의 품꾼의 하나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름을 가지고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먹을 것이 풍족한 하인으로 생활하는 것을 통해서 빚을 갚을 수 있으리라고 하는 생각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돼지우리를 떠나 아버지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재회(齋會)
오늘도 하루 종일 문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저 멀리서 힘겹게 걸어오고 있는 아들을 발견합니다. 그 아들이 집을 떠날 때와는 매우 다른 행색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입고 있던 옷은 낡을 대로 낡았으며, 돼지사료도 제대로 못 먹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아들의 행색과 그 몸에서 나는 냄새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뭐했는지를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기뻐하고, 기뻐하면서 받아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살아생전에 유산을 상속해 달라고 했던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아들이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도 않았습니다. 아무 탈 없이 몸 건강하게 돌아와 아버지 앞에 머리 숙인 아들을 얼싸 안았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기뻐하십니다. 한 영혼의 살아남을 기뻐하시면서 잔치를 배설해 놓고 그 영혼의 무사귀환을 축하해 주시는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적용
얼마 전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요. 그런데 이 아이가 심장에 병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얼굴색은 창백했으며, 그 입을 열어 젖병을 빨지 못했습니다. 숨쉬는 것도 힘들어했죠.
이 아이의 현재가 힘들다는 것을 발견하고 난 후에 병원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기의 현재를 검사하고 치료해줄 장비가 없어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결과는 심장에 붙어 있는 관상동맥이 막혀 있다는 것이었으며, 이것을 위해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저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그 무엇과도 그 아들을 바꿀 수 없으며, 또 바꾸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은 병이 있는 딸에게로 달려갑니다. 이미 건강한 자녀도 사랑하지만, 연약한 자녀를 향해 더 마음을 쓰게 되었으며, 그 아이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소원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금 건강하고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죽음을 향해,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가던 영혼이 돌아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기뻐하시고, 감출 수 없는 행복함에 춤을 추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기뻐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큰 아들은, 믿음 안에 있었던 어떤 사람은, 주님의 전에 충성되었던 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이미 그분의 뜻 안에 있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잔치를 열어줄 정도까지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돌아온 영혼을 기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우리는 혹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분의 기뻐하심을 시샘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떠나갔던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그토록 기뻐했던 아버지와 함께 오늘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빠의 마음은 단 한 명의 자녀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와 행복하게 되길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 소원 가운데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한 희생 재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그리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우리의 하늘 아빠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향한 아빠의 마음을 살피면서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의 삶을 헌신 할 수 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정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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