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5:21-32절, 135.144.256장.&
십자가의 처형을 받을 죄수가 자기의 사형대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로마의 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경우에 있어서도 역시 그 십자가를 예수 자신이 지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은 심히 피곤하셨습니다. 그 약하신 몸에 무거운 십자가 형틀을 지시고 얼마 가지 못하여 땅위에 쓰러지셨습니다.
이때 마침 길 가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 지나가다가 그 비참한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그를 붙잡아 억지로 십자가를 그에게 지웠습니다. 그가 남달리 군병들에게 붙들린 것은 누구보다도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쓰러지신 예수께 동정의 태도를 보인 까닭인 듯 합니다.
그가 비록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는 진실로 주님을 위하여 가장 귀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열두 사도가 지지 못한 십자가를 그가 지게 된 것은 그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예요 특권입니다. 성경 가운데 기록된 예수님의 십자가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아름답게 묘사된 그리스도인이 바로 시몬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울었지만 예수님의 아픔을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얼굴을 들고 있었지만 그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뒤에서 예수님이 지시고 간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한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아픔을 나누는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에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유대인의 정착촌에서 살다가 유대인의 명절에 참석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왔던 한 청년이 바로 시몬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로마 정부에 의해 정치적 반역자나 노예들은 상대로 행해진 가장 가혹한 사형 집행 수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의미는 곧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시간을 통하여 십자가는 희생, 봉사 그리고 거룩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빌2:8; 히12:2).
1.십자가는 누구나 져야 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순례자의 행렬에 끼어 예루 살렘으로 온시몬에게 있어 이 시간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아주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거룩하신 섭리 속에서는 우연한 것이 아니었겠지만 인간인 시몬 편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때때로 예기치 않는 일들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시몬은 그날 아침까지 그 자신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리라고는 생각조차도 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의 처형되는 광경을 구경하러 나온 수많은 시민들 사이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무 지쳐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지 못하는 것을 본 로마 병정이 그때 길가에 서 있던 시몬에게 강제로 십자가를 지웠던 것입니다. 하여튼 그것은 시몬 편에서 볼 때 아주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1)자기스스로나, 억지나 우리에게는 모두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십자가, 민족적인 십자가, 가정적인 십자가라는 여러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든지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2)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는 자는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시었습니다.
천국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지기 싫어하는 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워 주신 십자가라면 억지로라도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구레네 시몬처럼 축복 받을 것입니다. 오늘의 교인들은 십자가를 바라보기 좋아하고, 목에 금 십자가를 걸고 다니기를 좋아하며,
종각을 높이 세워 자랑하기는 좋아하지만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기는 싫어합니다. 우리는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라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럴 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3)십자가는 성도들에게 필수적입니다.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진 시몬에게 있어 그 십자가는 그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잠깐 뿐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12:26; 빌1:29).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1)고 고백함으로 주님을 위한 고난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답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십자가를 통한 고난입니다.
2.성도가 당연히 십자가를 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가 인류를 위한 봉사의 사역이었습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실 때부터 승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까지(계1:10-18)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요4:34) 생애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십자가 사건은 그리스도의 전 사역을 성취한 사건이었습니다.(요17:4). 그러므로 신자들이 겪는 십자가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남은 사역을 감당하는 일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보상하시고 축복하여 주십니다.(빌1:6).
2)신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제자 베드로(마26:69-75)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있었음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가능했던 것입니다.(요21:15-19).
3)후손들에게 모범이요 존경도 받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시몬을 소개하는 데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말씀을 기록하던 당시 그가 모든 이들이 알 수 있었던 덕망 있는 신자였음을 증명해 줍니다. 시몬의 집안은 분명 이 일을 계기로 믿음의 집안이 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롬16:13).
이처럼 십자가를 지는 삶은 그 자신에게 복이 되고 후세에 알려질 뿐 아니라 그로 인하여 자신과 후손도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고통은 오히려 축복이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4)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잠깐 동안이며(벧전5:10), 장차 받을 하늘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롬8:18; 벧전4:13).
대제사장이나 왕들에게 씌여지는 면류관(레8:9; 삼하12:30)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함께 한 자들에게도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는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의미합니다.(히2:9).
3.구레네 시몬은 원치 않은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시몬은 속된 말로 재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고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시몬은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보다 건장하게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의 일에 뽑힘을 받았다는 것은 어딘가 그 일을 맡길 만하고 믿음직하기 때문에 선택을 받는 것입니다. 맡겨진 일들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십자가를 회피하지 맙시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발을 옮기려고 하니 너무나 무거워서 발을 옮겨 놓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일어서서 한 발자국씩 움직이기 시작하시니 능히 옮길 수 있었고 또 같이 동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시몬은 우연하게 그리고 비록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십자가를 짐으로 주님의 고난을 잠시라도 덜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어려운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주님의 공생애기의 절정기에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게 되었고, 또 십자가에 달리시는 모습과 십자가상의 일곱 마디의 말씀 그리고 그때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몸소 체험하고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주이심으로 믿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4.시몬이 십자가를 진 광경을 본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특별히 구레네 시몬을 통해서 크 게 회개한 한 사도가 바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전날 밤에 "모든 사람이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부인했고 주님을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갈 때 베드로는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서야 할 그 자리에 구레네 시몬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주님의 뒤를 따랐던 베드로 그러나 마지막 십자가 뒤에는 베드로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구레네 시몬이 서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평소에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따르고 있었더라면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그 자리에 네가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한 알의 밀알처럼 떨어진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고 주님이 고난 당한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며, 주님이 아파하는 자리에 내가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드디어 베드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그의 길을 돌이킵니다. "내가 주님의 뒤를 따라야지"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처형당하는 원형 극장에 수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나를 거꾸로 매시오. 나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제자, 나는 예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한 제자니 예수님처럼 매달릴 자격이 없습니다. 나를 거꾸로 매다시오" 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드디어 그의 발을 위로 가게하고 그의 머리를 밑으로 향하게 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뒤를 따라 고난의 길을 걸어간 수많은 종들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매일매일 창 너머 석양 노을이 짙어질 때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찬송을 했습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신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밝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간악한 유대 병정 포악한 로마 병정 걸음마다 자국마다 갖은 포악 지셨구나 십자가의 고개턱이 제아무리 어려워도 주님 가신 길이오니 내게 어찌 못 가오랴 주님 제자 베드로는 거꾸로도 갔사오니 고생이라 못 가오며 죽음인들 못 가오랴"
지금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형틀에 자기를 매어서 자기를 매장시키고 자기를 처형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리스도를 우러러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힘들어도 구레네 시몬 같이 모범을 보여봅시다.
교회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십자가를 지면 누군가 그의 뒤를 따르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즉 베드로처럼 뒤따라서 십자가를 지고 주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5.목적과 의사와는 관계없이 진 십자가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우연히 그 자리를 지나갔을 뿐입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전혀 생각 없이 그 형장에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등에 짊어졌던 그 무거운 십자가가 그에게 대신 지워졌습니다. 아마 그는 그날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잘못 걸렸구나 어쩌다가 내가 걸렸나 내가 저 예수의 형틀에 매여 죽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올라가면서 그의 심정은 착잡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랐던 수많은 무리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십자가를 지고 따랐던 이 한 청년을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서 찾고 계십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떡을 얻어먹고, 병을 고치고, 기적을 보고, 환호하면서 따랐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무리들이 그렇게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 사건을 통해서 그들에게 위대한 신앙의 은총이 임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보고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탄생하신 예수님을 보았던 동방의 학자들도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병을 고침 받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보면서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하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보고 믿는 사람만이 진정한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병을 고치는 예수를 믿었다고 하더라도 십자가를 믿지 못하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6.억지로 진 십자가가 복된 십자가가 된 것은 무엇입니까? 1)온 천하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진 큰 명예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실 때에 수만 군중이 따라왔고 그 가운데는 눈물을 흘리며 따라갔건만 로마 군인이 십자가를 대신 질 사람을 찾을 때에,
"내가 지겠습니다" 하고 나선 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짊어지고 가시는 십자가는 죄인들만이 지는 십자가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십자가요, 수치의 십자가요, 치욕과 괴로운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구레네 시몬만은 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서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을 온 천하 만민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준행한 사람이니 이 십자가는 구레네 시몬에게는 복된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2)그 가족까지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복된 십자가였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서 골고다에 내려놓고 예수께서 못 박히시는 고난을 다 목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시며 온갖 고통 속에서 헤매일 때에 로마 군병은 이 비참한 광경을 보다 못해 쓸개 탄 포도주를(마27:34) 가져다 예수의 입에 넣었으나 예수는 받지 않으시고 그 십자가의 고통을 온전히 받으신 것입니다.또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원수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의 오른편 십자가에 달려 있는 강도가 회개할 때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 하시며 은혜를 베푸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운명하실 때 천지가 캄캄해지고 땅이 흔들리자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저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하는 모든 광경을 다 보았던 것입니다.
7.유대교 율법적 가정이 기독교 가정이 되었으니 복입니다. 시몬은 북아프리카 지방에서 유대교의 전통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왔던 것으로 이는 유대교의 율법을 많이 준수한 자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믿는 가정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 억지로 진 시몬의 골고다에서 경험한 일들의 결과는 놀랍게 나타났습니다. 그는 그날 그 자리에서 큰 변화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길로 지기 집으로 가서 가족들까지도 모두 변화를 받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분명히 골고다에서 목도했던 일들을 자기 가족들에게 즉시 전하였고 그 결과로 온 가족이 신자가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시몬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였고(막15:21), 사도 바울에 의하면 루포의 어머니 곧 시몬의 아내는 사도 바울로부터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이다"라는 말을 들을 만큼 후에 훌륭한 신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만 보아도 시몬이 그후 즉시 지기 가족들까지도 신자들로 만들었던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자기의 가족을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명하시는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고 평안하게 교회를 다니기 때문입니다. 이 시몬의 일을 본다면 우리의 가정이 주님을 믿지 아니하는 문제를 우리가 먼저 주를 믿는 자로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그 전부가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된 것입니다.(눅1:-20; 요 20:30-31; 21:25). 그렇다면 예수님 생애의 절정 중에서도 절정인 골고다 현장의 목격자인 시몬이 어찌 자기가 보았던 것들을 낱낱이 증언치 않았겠습니까?
제일 먼저 들려준 것이 바로 그 가족을 구원에 이르게 했고, 로마 교회의 기둥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이 기도해서 주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하고 바른 신앙 생활을 하여 큰 축복을 받고 이와 같은 일들을 가족과 형제들에게 알려 주므로 주님을 영접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곧 가정이 축복을 받는 일이니, 이제 바로 전도하려는 자세로 주님을 찾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일은 복음서에 짤막하게 한 구 절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이상과 같은 엄청난 하늘의 축복들이 들어 있어 우리를 경탄케 만들고도 남는 것입니다.
실로 시몬은 그때 분명히 로마 군병들에게 운이 나쁘게 붙들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결과로 상상할 수 없는 광경 곧 예수께서 거룩하게 죽어 가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자신이 먼저 큰 변화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들까지도 훌륭한 신자가 되는 큰 축복들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타의에 의해 십자가를 진 후 받은 놀라운 대가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만약 그분의 십자가를 즐겨 진다면 그 결과로 얼마나 큰 축복을 받겠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속해 있는 이 교회가 어려움에 처하였다고 할 때에 자원하여 십자가를 앞서 짐으로 다른 사람들이 따라 올 수 있는 일꾼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은 내가 먼저 하려는 섬기는 자세는 주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마음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드는 기독 학생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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