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제사를 드리다
오늘의 말씀 : 사무엘하 6:15~23
외울 말씀 :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 2:1).”
한 마디 말 : 하나님께 마음껏 감사하세요.
찬양 : 우리함께 기뻐해
Ⅰ. 들어가기
혹시 가출해본 적 있나요? 전도사님은 가출을 마음먹어본 적은 있지만, 가출해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가출했던 한 여자아이를 알고 있어요. 물론 실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에요. 책 속에서 만난 아이에요.
이 아이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좀 엄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딸이 입는 옷과 듣는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치마가 왜 그렇게 짧으냐. 가요는 듣지 마라. 무슨 음악이 시끄럽기만 하냐.”는 둥 잔소리가 많으셨어요. 그 결과 말다툼이 잦았고, 그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였어요. 혼나고 나면, 아빠가 너무 미워서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집을 나가버린 거예요.
그리고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한 남자를 만났어요. 이 사장님은 좋은 옷도 사주고, 집도 마련해줬어요. 그리고 술집에서 일을 시켰어요. 하지만 이 소녀는 마음껏 즐기면서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그런데 1년이 지난 뒤에 병에 걸리고 말았어요. 사장님은 가차 없이 소녀를 길바닥에 내쫓았어요.
노숙자의 삶은 너무 힘들었어요. 춥고 배가 고프니까 집 생각이 났어요. 그러다 너무 배가 고파서 집에 전화했어요. 그런데 전화를 안 받아서 음성메시지를 남겼어요. “엄마, 아빠 저예요. 저 지금 집에 들어갈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버스 타면 밤 12시쯤 도착할 거예요.” 5시간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별 생각을 다 했어요. ‘혹시 음성메시지를 못 들으셨으면 어떡하지. 엄마, 아빠를 만나면 뭐라고 말할까?’ 그리고 버스에서 내렸는데 상상할 수도 없었던 장면이 펼쳐져 있었어요. 벽에는 “축 환영”이라고 써진 종이들이 붙어 있었고, 수많은 친척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나와서 환영해줬어요. 그리고 그 속에서 걸어 나오시는 아빠를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가까스로 “아빠 미안해요.”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아빠가 말을 막았어요.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엄마가 집에서 잔치를 준비해놨거든.”
Ⅱ.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용서받을 때의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요. 용서받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죄가 크면 클수록 더 그렇죠? 아마 하나님께 용서받아본 친구들은 잘 알 거예요. 나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어요. 이렇게 내 마음대로 즐기며 사는 것이 너무 좋아요. 그러다 어려움이 오면 그제야 하나님 생각이 나요. 죽도록 힘들면 그제야 하나님을 찾아요. 참, 염치가 없지요. 그래도 하나님은 탕자의 아빠처럼 용서해주시고 말없이 보듬어주세요. 이때의 감격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져요. ‘나 같은 놈을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구나. 어쩜 이리도 나를 잘 아시고, 내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져주실까.’ 백 번이라도 절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이라도 내어드리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정말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어요. 이러한 마음이 진짜 감사하는 마음이에요.
오늘이 추수감사절이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나요? 정말 감사 제사를 드리고 있나요? 별로 안 그런 것 같죠? 율동도 하는 둥 마는 둥. 찬양도 하는 둥 마는 둥. 입 따로 마음 따로. 우리는 지금 누구를 위해 여기에 앉아 있나요? 누구를 위해 과일 바구니를 만들었나요?
Ⅲ. 말씀보기
다윗은 하나님께서 입이 찢어지도록 좋아하실 만큼 예배를 잘했어요. 마음껏 감사했기 때문이에요. 21절 말씀을 보세요.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뛰면서 춤추며 하나님께 예배했어요. 그만큼 감사가 넘쳤어요. 이렇게 마음껏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무척 좋아하세요. 그러므로 우리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해야 해요.
그렇다면 다윗은 뭐가 이렇게 감사했을까요?
Ⅳ. 생각하기
남자 친구들, 옆 반 남자애한테 내 여자 친구를 빼앗긴다면 기분이 어떨까? 더럽겠지? 자존심 상하겠지?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보다 더 한 수치를 당했어요.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긴 거예요.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목숨보다 중요한 보물이에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상징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바보같이 언약궤를 빼앗겼어요.
십자군전쟁을 기억하나요? 십자가를 들고 전쟁에 나가니 무조건 이기던가요? 1차 원정 때 예루살렘을 회복한 것 이외에는 모두 실패로 끝났어요. 실패한 전쟁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멍청한 짓을 했어요. 언약궤를 들고 전쟁에 나간 거예요. 당연히 크게 지고 언약궤까지 빼앗겼지요.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슬퍼했어요. 이것은 자녀가 부모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 큰 슬픔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잃어버린 언약궤를 다시 찾았어요. 그러니 얼마나 기뻐요? 애가 엄마를 잃어버려서 혼자 엉엉 울다가 엄마를 다시 만났어요. 그러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기쁘겠어요? 그래서 다윗이 기뻐하면서 언약궤를 옮겼어요.
하지만 한 번 실패했어요. 옮기는 방법이 잘못돼서 제사장 웃사가 죽고 말아요. 언약궤에 손을 댔거든요. 다윗이 크게 슬퍼했지요. 그리고 3달 뒤에 다시 옮겨와요. 그래서 드디어 예루살렘 성으로 가져와요. 다윗이 얼마나 기뻤겠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뛰놀았어요.
그런데 다윗의 아내 미갈이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참 한심하거든요. 왕이라는 사람이 체통을 지켜야지 그게 뭐냐고. 하지만 다윗은 오히려 당당했어요. 왜?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데 꼴사나워 보이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뛰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토록 사랑하셨어요. 그리고 이 예배를 기뻐 받으셨어요. 다윗이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하나님께 감사했기 때문이에요.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진짜 예배하는 모습이에요.
예배하는 사람의 마음은 행동으로 드러나게 돼 있어요. 마음껏 소리 내어 찬양하기도 하고, 힘을 다해 율동하기도 하고, 은혜에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의 모습을 한 번 보세요. 우중충 하잖아요. 왜 그래요? 감사가 없어서 그래요.
Ⅴ. 실천하기
헬렌 켈러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하지요?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할 제목이 많아요. 볼 수 있다는 것, 소리 내어 찬양할 수 있다는 것, 내 발로 걸어서 교회에 올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지요. 예배를 기쁨으로 드리기 위해서는 감사가 회복되어야 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마음껏 감사하는 예배를 좋아하세요.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세요. 일 년 동안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해보세요.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우리도 다윗처럼 마음껏 하나님께 감사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 사무엘하 6:15~23
외울 말씀 :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 2:1).”
한 마디 말 : 하나님께 마음껏 감사하세요.
찬양 : 우리함께 기뻐해
Ⅰ. 들어가기
혹시 가출해본 적 있나요? 전도사님은 가출을 마음먹어본 적은 있지만, 가출해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가출했던 한 여자아이를 알고 있어요. 물론 실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에요. 책 속에서 만난 아이에요.
이 아이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좀 엄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딸이 입는 옷과 듣는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치마가 왜 그렇게 짧으냐. 가요는 듣지 마라. 무슨 음악이 시끄럽기만 하냐.”는 둥 잔소리가 많으셨어요. 그 결과 말다툼이 잦았고, 그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였어요. 혼나고 나면, 아빠가 너무 미워서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집을 나가버린 거예요.
그리고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한 남자를 만났어요. 이 사장님은 좋은 옷도 사주고, 집도 마련해줬어요. 그리고 술집에서 일을 시켰어요. 하지만 이 소녀는 마음껏 즐기면서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그런데 1년이 지난 뒤에 병에 걸리고 말았어요. 사장님은 가차 없이 소녀를 길바닥에 내쫓았어요.
노숙자의 삶은 너무 힘들었어요. 춥고 배가 고프니까 집 생각이 났어요. 그러다 너무 배가 고파서 집에 전화했어요. 그런데 전화를 안 받아서 음성메시지를 남겼어요. “엄마, 아빠 저예요. 저 지금 집에 들어갈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버스 타면 밤 12시쯤 도착할 거예요.” 5시간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별 생각을 다 했어요. ‘혹시 음성메시지를 못 들으셨으면 어떡하지. 엄마, 아빠를 만나면 뭐라고 말할까?’ 그리고 버스에서 내렸는데 상상할 수도 없었던 장면이 펼쳐져 있었어요. 벽에는 “축 환영”이라고 써진 종이들이 붙어 있었고, 수많은 친척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나와서 환영해줬어요. 그리고 그 속에서 걸어 나오시는 아빠를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가까스로 “아빠 미안해요.”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아빠가 말을 막았어요.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엄마가 집에서 잔치를 준비해놨거든.”
Ⅱ.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용서받을 때의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요. 용서받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죄가 크면 클수록 더 그렇죠? 아마 하나님께 용서받아본 친구들은 잘 알 거예요. 나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어요. 이렇게 내 마음대로 즐기며 사는 것이 너무 좋아요. 그러다 어려움이 오면 그제야 하나님 생각이 나요. 죽도록 힘들면 그제야 하나님을 찾아요. 참, 염치가 없지요. 그래도 하나님은 탕자의 아빠처럼 용서해주시고 말없이 보듬어주세요. 이때의 감격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져요. ‘나 같은 놈을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구나. 어쩜 이리도 나를 잘 아시고, 내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져주실까.’ 백 번이라도 절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이라도 내어드리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정말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어요. 이러한 마음이 진짜 감사하는 마음이에요.
오늘이 추수감사절이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나요? 정말 감사 제사를 드리고 있나요? 별로 안 그런 것 같죠? 율동도 하는 둥 마는 둥. 찬양도 하는 둥 마는 둥. 입 따로 마음 따로. 우리는 지금 누구를 위해 여기에 앉아 있나요? 누구를 위해 과일 바구니를 만들었나요?
Ⅲ. 말씀보기
다윗은 하나님께서 입이 찢어지도록 좋아하실 만큼 예배를 잘했어요. 마음껏 감사했기 때문이에요. 21절 말씀을 보세요.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뛰면서 춤추며 하나님께 예배했어요. 그만큼 감사가 넘쳤어요. 이렇게 마음껏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무척 좋아하세요. 그러므로 우리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해야 해요.
그렇다면 다윗은 뭐가 이렇게 감사했을까요?
Ⅳ. 생각하기
남자 친구들, 옆 반 남자애한테 내 여자 친구를 빼앗긴다면 기분이 어떨까? 더럽겠지? 자존심 상하겠지?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보다 더 한 수치를 당했어요.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긴 거예요.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목숨보다 중요한 보물이에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상징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바보같이 언약궤를 빼앗겼어요.
십자군전쟁을 기억하나요? 십자가를 들고 전쟁에 나가니 무조건 이기던가요? 1차 원정 때 예루살렘을 회복한 것 이외에는 모두 실패로 끝났어요. 실패한 전쟁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멍청한 짓을 했어요. 언약궤를 들고 전쟁에 나간 거예요. 당연히 크게 지고 언약궤까지 빼앗겼지요.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슬퍼했어요. 이것은 자녀가 부모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 큰 슬픔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잃어버린 언약궤를 다시 찾았어요. 그러니 얼마나 기뻐요? 애가 엄마를 잃어버려서 혼자 엉엉 울다가 엄마를 다시 만났어요. 그러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기쁘겠어요? 그래서 다윗이 기뻐하면서 언약궤를 옮겼어요.
하지만 한 번 실패했어요. 옮기는 방법이 잘못돼서 제사장 웃사가 죽고 말아요. 언약궤에 손을 댔거든요. 다윗이 크게 슬퍼했지요. 그리고 3달 뒤에 다시 옮겨와요. 그래서 드디어 예루살렘 성으로 가져와요. 다윗이 얼마나 기뻤겠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뛰놀았어요.
그런데 다윗의 아내 미갈이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참 한심하거든요. 왕이라는 사람이 체통을 지켜야지 그게 뭐냐고. 하지만 다윗은 오히려 당당했어요. 왜?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데 꼴사나워 보이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뛰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토록 사랑하셨어요. 그리고 이 예배를 기뻐 받으셨어요. 다윗이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하나님께 감사했기 때문이에요.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진짜 예배하는 모습이에요.
예배하는 사람의 마음은 행동으로 드러나게 돼 있어요. 마음껏 소리 내어 찬양하기도 하고, 힘을 다해 율동하기도 하고, 은혜에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의 모습을 한 번 보세요. 우중충 하잖아요. 왜 그래요? 감사가 없어서 그래요.
Ⅴ. 실천하기
헬렌 켈러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하지요?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할 제목이 많아요. 볼 수 있다는 것, 소리 내어 찬양할 수 있다는 것, 내 발로 걸어서 교회에 올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지요. 예배를 기쁨으로 드리기 위해서는 감사가 회복되어야 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마음껏 감사하는 예배를 좋아하세요.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세요. 일 년 동안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해보세요.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우리도 다윗처럼 마음껏 하나님께 감사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양제헌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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