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까?(훔3:16-19)
서론
1.산다고 다 사람이 아니다. 사람답게 살아야 사람이다.
2.어떤 사람은 동물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얼마전 신문에 대서특필된 개인택시 운전사는 집사라지 않는가? 그게 어떻게 사람으로서 할 일인가?
3.본문에는 앗수르의 비참함이 소개되어 있다.
I.어떤 인생이 될 것인가(15b-17).
A.메뚜기 같은 인생이었다.
1.마치 메뚜기들이 수많은 떼를 이루며 살듯이 앗수르는 떼를 지어 다니며 남을 괴롭혔다.
1)일제시대 만주에는 우리의 동포들을 괴롭히는 "비적"떼가 있었다.
2)지금도 수 많은 범죄 조직들은 "무리"를 짓고 있다.
2.돈을 벌기 위해서 모든 업종을 독점했으나 어느날 갑자기 메뚜기떼가 사라지듯이 모든 분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3.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해 파견한 관리들과 군인들 역시 메뚜기떼 처럼 오뉴월 만을 지낸채 추운 겨울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B.어떤 인생이냐가 중요하다.
1.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뛰어다니는 인생이라면 그것이 바로 메뚜기와 같은 인생이다.
2.메뚜기는 선량한 농부들을 괴롭힌다. "펄벅"여사의 대지라는 소설에 보면 메뚜기떼 한테 모든 농사를 망쳐버린 농민들의 아픔이 잘 묘사돼어 있다.
3.남에게 고통이나 주는 인생은 메뚜기와 다를바 없는 천한 인생이다.
II.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18-19).
A.망한 것이 당연하다는 평가였다.
1.나라의 살림을 도맡았던 공무원들은 모두 죽어버렸고, 난국의 어려움을 앞서서 해결하던 영웅 호걸들이 힘을 잃었으니 슬픈 일이다.
2.민심은 산산 조각이 나 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을 방법이 없어진 비참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3.나라의 지배자 역시 비참한 패잔병이 되어 버렸다. 죽지 않고 목숨만이라도 건진 것이 다행인 지경이 되었다.
4.이상과 같은 소식을 들은 자들이 듣고 기뻐하는 비참한 지경이 되었으니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5.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B.우리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1.기왕이면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2.결국은 심는대로 거두는 법이다. 무엇을 심었느냐가 중요하다.
3.그래서 성경은 선을 베풀수 있거든 기회를 잃지 말고 최대한 선을 베풀라고 하신다. 할 수만 있다면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것을 권하신다.
4.얼마나 많이 누리며 사는가는 성도의 목표가 아니다. 어떻게 나누며 사는가에 인생의 촛점을 맞추자.
5.모든 인생에게는 마지막의 심판이 있다. 믿는다는 것은 심판을 믿는다는 것과 일치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판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결론
1.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당연히 성도의 인생은 값진 인생이 되어야 한다.
2.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자기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을 평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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