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사단의 시기와 고발(욥기 1:6-12)

공 상희 2006. 8. 9. 13:03
사단의 시기와 고발(욥기 1:6-12)  

 

사단의 시기와 고발(욥기 1:6-12)


하나님의 사람 욥은 우스 지방에서 부유했고 명예가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와 그의 가정이 다 잘 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흠모하였습니다. 그가 누리는 형통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무서운 폭풍우를 동반한 짙은 구름이 그의 머리 위에 모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누구나 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폭풍우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저녁 읽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닥치는 환난이 어떻게 엄습해 오는지를 보게 됩니다. 인간 세상에 환난이 오기 전에 하늘의 영들의 세계에서 그것이 어떻게 합의되고 있는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보이지 않는 세상에 의해서 영향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모든 선한 것의 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사단이 하나님 앞에 선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임에 끼여들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구약 족장시대는 믿음을 고백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렀습니다. 그 당시 그들은 종교적인 회합을 가졌고 왕이신 하나님은 그의 손님들을 보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참석자들을 둘러 보셨습니다. 그러나 낙원에는 뱀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 사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함께 모였을 때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교란시키기 위해서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사단이 끼여듭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도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교인 열두 사람 중에 한 사람 꼴로 사단에게 붙들려 있다고 했는데, 꼭 그 비율로 사단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도들 사이에 사단이 끼여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임이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욥기 38장 7절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쁘게 소리하였다”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세상에서의 그들의 활동에 대해서 하나님께 보고드리고 새로운 지시를 받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사단은 원래 그들 천사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사야 14장 12절에 보면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했습니다.

교만한 천사가 타락해서 사단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단은 더 이상 회중 앞에 나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수처럼 소환되었거나 허락없이 끼여든 것을 잠시 묵인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단이 인류의 조상 아담을 타락시켰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담 그리스도를 사로잡아 죄 가운데 빠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사단은 사람의 마음의 눈을 복음의 빛에 대하여 멀게 합니다. 그리고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 밭에서 그 말씀의 씨앗을 앗아 가고자 합니다. 사단은 기독교의 분명한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만듭니다. 사단은 복음의 선포자를 훼방합니다. 사단은 인간의 육체에 질병과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 그리고 불안과 불만을 조성시킵니다.

욥기는 사단의 활동에 대해서 잘 말하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을 시기한 사단이 사람을 유혹하여 타락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욥기에서는 욥이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사단에게 있어서 시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합니다. 우리 중에도 남이 잘 되는 것을 보고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은 내 안에 시기하는 영, 사단이 들어 온 것으로 알고 몰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단도 다른 영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권위 아래 예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도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사단은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도록 정해져 있으나 그때가 이르기까지는 여전히 천사들 사이에서 활동하도록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들 모임 속에서 사단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 위에 사단이 끼여들 수 없는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물으셨습니다. 본문 7절에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셔서 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가 어디서 왔으며 무슨 목적으로 그곳에 왔는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천사들이 선한 일을 하려고 오는 것 같이, 사단은 나쁜 일을 하기 위한 허락을 받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에게 물으심으로 사단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은 하나님의 질문을 받고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단의 이 대답 중에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는 말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단은 비록 하나님의 사슬에 묶여 있지만 여전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도록 허락을 받고 있습니다. 그에게 내릴 영원한 심판이 아직 유보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게으른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항상 온 세상을 두루 다닙니다. 사람들을 불행 속으로 몰아 넣기 위해서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벧전 5:8).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두루 다닌다”는 말은 안정되지 못한 불안한 상태를 말합니다. 사단은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에게 영향을 받으면 불안과 초조에 빠지고 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데, 마귀는 우리에게 불안을 줍니다.

하나님의 질문에 사단은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행한 악이나 그가 행하고자 하였던 악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행한 일은 하나님께 대한 사람들의 충성심을 흔들어 놓고 모든 사람의 영혼을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 넣는 것 뿐으로, 그는 언제나 그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욥에 관해서 사단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하나님이 사단에게 하신 이 두 번째 질문은 선한 사람의 염탐꾼이자 적이요, 비난자인 사단의 성품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을 매우 높여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내 종이라.”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봉사를 기쁘게 여기시며 즐거워하십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명칭은 가장 명예롭고도 영광스러운 명칭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이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별 볼 일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가장 영화로운 자입니다.


‘내 종 욥’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단의 마음을 찌르는 창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참된 성도는 사단의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내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욥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에 대해서 깊이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이 말씀은 “너는 내 종 욥과 얼마나 다르냐?”하는 뜻이 내포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하게 살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은 사단의 자녀들을 수치스럽게 하고 괴롭게 만듭니다. 사단은 아마 세상 여기저기 두루 다니며 행한 일들을 보고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을 것입니다.

“두루 다니며 보니 모두가 다 나의 영향권 아래 있습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도, 재물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별 수 없습니다”하는 보고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 욥은 나의 충성된 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사단의 고발을 앞질러 말씀하시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도 같았습니다.“사단아, 나는 네가 하는 일을 알고 있어. 너는 지금 욥에게 불리한 보고를 내게 하려고 왔지? 그러나, 네가 그를 유의해 보았느냐?”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대적하는 사단의 모든 악의와 그 수단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사단에게 고발당하기 전에 이미 우리를 위해 나서기로 준비된 대변자가 계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로마서 8장 31절 이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단이 아무리 우리를 정죄하려고 고발하고 송사하려고 해도, 예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대변해 주십니다. “아버지, 제가 이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지 않았습니까?”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를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극구 칭찬하시자, 사단은 욥을 헐뜯는 비열한 수단을 택했습니다. 사단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 대가를 바라는 위선적인 행위라고 비난했습니다. 본문 9절을 보십시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욥을 칭찬하신 분이 하나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욥을 칭찬하는 말을 듣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울도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하는 백성들의 말을 듣고 환장을 했습니다. 시기의 불이 타올랐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이 환영받으시는 것을 보고 분해 했습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 이 사단의 영이 역사하곤 합니다. 얼마 안 있어 흉 보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사단의 영의 지배를 받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사단은 시기와 질투의 영입니다.


사단은 욥을 고발할 구실을 찾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욥의 나쁜 점을 고발할 수가 없으니까 욥이 행하는 선에는 어떤 목적이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욥을 위선자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그가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교활하게 묻기만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비방자들과 아첨하는 자들과 험담꾼들이 사용하는 공통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정한 사람들이 사단에게 비방당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사단은 욥이 위선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는 돈만 바라는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말대로, 욥이 경건하게 살아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비방할 구실을 찾는 이들에게 그 구실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단의 말대로 세상의 것을 잃게 될 때는 하나님을 배반할 것입니다.


사단은 욥이 형통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진리가 자신의 목적에 부합할 때 그 진리를 악용합니다. 성도들의 행복과 그들이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은총은 사단의 시기와 미움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의 종들을 지켜 주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밤으로 낮으로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지켜 주십니다. 그 백성의 울타리가 되십니다. 사단은 그 울타리를 뛰어 넘어 들어가 성도들이 누리는 축복을 휘젓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의 승낙이 없이는 감히 그 울타리를 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울타리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29절을 보십시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이중 울타리로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마귀는 실망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울타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11절에 뭐라고 합니까?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사단은 하나님이 손을 펴서 욥의 소유를 다 치면 욥이 얼마나 위선자라는 것, 그리고 그의 믿음이 대가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를 가난하게 만드시고 그를 쳐보십시오. 그리고 그의 믿음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십시오. 그러면 그의 정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가 정녕 주를 대면하여 욕하지 아니하면, 그 후로는 절대로 나를 믿지 마시고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하시며, 거짓 고발자라고 하십시오. 그래도 주를 욕하지 않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사단은 욥이 만일 가난하게 되면 그의 믿음을 버릴 것이고, 하나님을 저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욥이 그 당시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고 자랑스럽게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사단이 욥이 위선자임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충성스러운 종은 하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참되고 진실하고 경건하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으며, 믿는다는 것도 사실상 다 거짓이고, 결국 사단이 모든 인류를 다스리는 왕이라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을 알고 계시며, 욥도 알고 계셨으므로 사단에게 속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욥이 모든 소유를 다 잃게 되어도 믿음을 지킨다면 사단은 욥이 심히 고통 당하는 것을 보고 만족해했을 것입니다. 사단은 선한 사람을 미워하고 그들의 슬픔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12절에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네가 할 수 있는 대로 그를 괴롭혀 보아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허락하신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욥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고, 모든 세대를 통하여 환난 당하는 그의 백성을 격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채질을 받도록 하셨던 것처럼 욥도 시험을 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욥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위한 시련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단은 쇠사슬에 묶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묻고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욥을 괴롭힐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시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지 않으십니다. 사단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이 될 범위 안에서 허락하십니다.

야고보 1장 12절을 보세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이 말씀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도 낙심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욕하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박조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