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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윌리엄 팔레이(Williiam Paley)는 그의 저서 ‘자연신학’(Natural Theology·1802)에서 ‘시계공의 논증’을 펼쳤다. 그 핵심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풀밭을 걸어가다 돌멩이 하나가 발에 차이자 그것이 어떻게 거기에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것은 거기에 항상 놓여 있었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 답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만약 돌멩이가 아니라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 시계가 어떻게 그 장소에 있게 됐는지 답해야 한다면 앞에서 했던 것과 같은 대답 즉,시계와 같이 거기에 항상 놓여 있었다고 답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시계는 반드시 제작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혹은 여러 사람의 제작자가 존재해야 한다. 제작자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으며 제작법을 알고 있고 그것의 용도를 설계했다…시계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그것이 설계됐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돌멩이)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한 것이다.”
당시 시계는 지금과 달리 매우 대표적인 복잡한 기계로 인식됐다. 팔레이는 시계를 통해 그 복잡성을 생명(자연)의 복잡성과 비교하면서 생명이 설계됐음을 논증했다. 하지만 이 논증은 19세기 후반에 들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에 의해 반박됐다. 생명의 복잡성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으로 설명된다는 관점이 과학의 주류에 의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화론은 생물학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철학 등 사회 각 영역에 다층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다수의 인류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진화론적 사고에 길들여진 것이다.
이같은 설계 논증은 1980년대초 미국에서 등장한 지적설계 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창조과학이 신앙적인 관점과 대중적인 운동이라고 한다면 지적설계 운동은 신앙적인 관점을 제거한 지식인과 학문 분야를 겨냥한 유신론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양 진영은 ‘하나님의 창조’와 ‘반진화론’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지적설계 운동자에게 ‘교묘하게 포장된 창조론’이나 ‘종교적인 관점을 과학 교과서에 도입하려는 터무니없는 음모’라고 공격한다.
최근 10여년 동안 미국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지적설계이론의 핵심(표 참조)은 두 가지다. ‘지적설계가 과학인가’와 ‘지적설계가 진화론의 대안 이론으로 교과서에서 가르쳐야만 하는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지적설계가 과학인가라는 문제는 달리 말하면 지적설계가 종교적인 관점을 갖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와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만약 종교적인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면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을 담고 있는 미국헌법(수정 헌법 제2조)에 위배되기 때문에 생물학 교과서에 등장할 수 없게 된다.
지적설계론은 이미 2001년 미 의회에서 통과된 교육의안인 ‘샌토럼 법안’에 의해 과학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 법안은 1987년 창조과학이 종교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생물학 교과서에 이를 포함시킬 수 없다는 연방법원의 판결 이후 1990년대부터 창조론의 새로운 대안으로 지적설계 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져 드디어 2001년 중요한 법안으로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샌토럼 법안에 영향을 받아 미국의 여러 주교육위는 생물학 교과서에 지적설계론을 등장시키고 있다. 탄소 질소 등 무생물에서 ‘장구한 시간에 우연히’ 단세포 생물이 출현한 이후 인간을 포함,모든 종류의 생명체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됐다는 것이 현대 생물학에서 다루고 있는 기원에 대한 기본 내용이다. 이것이 서서히 깨지고 있다. 진화론에 영향을 받아 구축된 모든 학문의 기초가 지금 미국에서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도움말 주신 분 △이승엽 교수(서강대 기계공학부·지적설계연구회장) △조정일 교수(전남대 생물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