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사면초가, 예레미야 33:1-9
이 시간에는 진퇴양난, 사면초가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본문의 유다는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습니다. 유다왕 시드기야 10년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대군을 거느리고 유다를 침략해서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유다는 바벨론 군대를 이길 힘도 없었고, 그동안 의지했던 애굽은, 이미 바벨론에 패한 상태였습니다. 유다는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할 것이고, 시드기야 왕은 포로가 될 것이라고 예언 하면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리고 왕과 백성들은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왕은, 왕이 포로가 되고 유다는 멸망한다는 예레미야의 말에 심히 화가 났고, 예레미야를 체포하여 시위대 뜰 감옥에 가둬버렸습니다.(3차 침공)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성을 겹겹이 에워쌓았습니다. 18개월의 공성전 끝에 예루살렘은 불타고, 도시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시드기야왕은 전쟁에 패하고, 자기 자식들이 바벨론 군사들에게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군대는, 그의 두 눈을 뽑고, 쇠사슬에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유다가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유다의 상황을 보면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완전 절망의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 전개 되던 때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찾으셨고, 앞으로 먼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해주십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을 만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중에 어떤 분은 이미 이런 상황에 놓인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에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1절).
♣1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계시를 받았고,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미래의 소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조국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퇴양난, 사면초가에 놓인 유다에게 해답이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처신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시 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칠흑 같은 어두운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빛이 임하면 길이 보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나아가야 할 길과 개인의 앞날, 가정의 미래가 캄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임하면 나아가야 할 길이 보입니다. 방향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거나 기적을 일으켜주실 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100세 된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을 낳게 하실 때에도 먼저 말씀으로 약속을 해주셨고 그 약속의 말씀대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홍해를 가르실 때에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모세가 말씀에 순종하자 홍해 바다가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하고 분명한 방법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알아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경의 진리 위에 서서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성경에 있는 것은 성경대로 하고 성경에 없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말씀에 불순종하고 친애굽 정책을 펴고 바벨론에 대항하다가 나라도 망하고 자기가 보는 앞에서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고, 자신은 두 눈까지 뽑혀서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유다는 망한다.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받아드리지 않아서 당하게 된 고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생각과 달라도 받아드려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 그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죽을 것이니 죽을 준비를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지 않고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셨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그때 히스기야가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더 나을 뻔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일로 교만해졌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진노가 히스기야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명이 연장된 15년 동안에 낳은 아들 므낫세는, 유다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이 되었고, 므낫세 때문에 유다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렸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3절).
♣3절에 보면 하나님은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 있는 유다의 영적 지도자 예레미야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모든 상황에 합당한 지혜와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위기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외침을 들으시고 우리는 도와주십니다.
♣갓난아기에게 문제가 생기면 갓난아기는 으앙~ 하고 웁니다. 그건 엄마에게 “엄마! 나 도와주세요”라는 사인을 보내는 것입니다. 엄마는 아기의 으앙~ 하는 소리를 들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아기에게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아기를 도와줍니다. 아기가 배가 고프면 젖을 물려줍니다. 아기가 똥을 쌌으면 귀저기를 갈아줍니다. 으앙~ 하는 아기의 부르짖음에 엄마가 신속히 응답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 응답을 이론으로 알지만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것이고, 기도를 해도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술집이 생겨났습니다. 그러자 인근 교회에서는 이 술집이 없어지도록 철야 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상하게 술집은 손님이 줄고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술집 주인은 인근 교회가 자기 술집이 문을 닫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습니다. 술집 주인은 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교회의 기도 때문에 장사가 안 되고 문을 닫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법정의 심리가 시작되자 재판관은 목사님에게 “정말 술집 문이 닫히도록 기도한 일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기도했다고 술집이 문을 닫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판결이 어떻게 났을까요? 마지막 판결은 이랬다고 합니다. “술집 주인-기도를 믿음. 교회 목사-기도의 응답을 믿지 않음”
♣우리에게 무슨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우리는 기도 응답을 믿어야 한다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응답을 믿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기도교(祈禱敎)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에서 기도는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연애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약혼한 것이고 주님이 재림하시면 결혼식을 할 것입니다. 남녀의 사랑이 깊어지려면 대화가 필요합니다. 남녀가 만나서 대화를 하지 않으면 상대를 알 수 없고 상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이 싹틀 수 없습니다. 대화가 통해서 상대를 알게 되고 상대를 알게 된 만큼 사랑하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랑에 빠지려면 하나님과 대화가 많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깊어지는 만큼,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특별히 진퇴양난, 사면초과의 상황을 만났을 때,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3.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3절에 하나님께서는 부르짖어 기도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들을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들은, 그 다음 구절인 33:4-52:34까지의 말씀의 내용입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크고 은밀한 일들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①하나님의 심판(審判)입니다. 5절에“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유다가 뭉쳐서 바벨론에 대항하여 싸웠지만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셨고, 예루살렘 성에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유대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②하나님의 구원(救援)입니다. 7절입니다.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던 것처럼, 바벨론에 포로가 된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포로 된지 70년 만에 포로귀환의 복을 주셨습니다.
③하나님의 강복(降福)입니다. 9절입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포로가 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세계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되고, 찬송과 영광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열방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베푸신 복이 얼마나 큰지 그 모든 복을 듣고 두려워하며 떨 것이라고 하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려진 은밀한 것을 볼 수 있다면 큰 축복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퇴양난, 사면초과의 상황을 만난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크고 은밀한 일들을 봐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그 당시 유다가 당한 진퇴양난, 사면초과의 상황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나 다시 구원하시고 마침내 그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라는 은밀한 영적 진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상황 속에 있든지 그 상황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계획을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알아져야 표면적인 것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표면적인 것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견고한 심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복은 부르짖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에 들어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들을 보셔서 심지가 견고하고 평강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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