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왜 기도해야 하는가? / 마17:1-8

공 상희 2021. 6. 3. 08:57

왜 기도해야 하는가? / 마태복음 17:1-8

 

이 시간에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본문은 주님이 변화 산에 올라가셔서 변모되신 내용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고. 주님은 그곳에서 기도하시다가 변화 되셨는데. 주님의 얼굴은 해 같이 빛났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 나타나서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9장에 보니 대화의 내용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졸다가 깨어 그 모습을 보던 베드로가 놀라서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때 갑자기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하니 주님께서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눈을 들어보니 오직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왜 산에 올라가셨습니까? 산에 오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에는 산에 오르신 이유가 나와 있지 않지만  9:28에 보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기도하기 위하여 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산에 기도하러 오르신 예수님께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는가에 관한 하나님의 음성을 왜? 들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붙잡히셔서 고난을 당하시다가 결국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계셨고.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셨지만, 또 완전한 사람이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수난 앞에서 갈등과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 고민과 갈등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위기를 기도로 극복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간증집입니다. 성경은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인생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기도 응답으로 위기를 이겨낸 간증집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성경에 그렇게 많은 간증을 실어놓으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우리도 살다보면 많은 위기를 만날 것인데 그 때 우리도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처럼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이라고 믿습니다. 그 약속이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살길을 열어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힘든 세상을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도움을 받으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2. 변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2절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변형 되셨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해 같이 빛났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변화가 언제 일어났습니까?  9:29에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변화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은 하나님을 만난 후에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바꿔

주시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변화입니다. 아브라함의 변화는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세속적인 사람이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가장 먼저 행하신 표적은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표적이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맛의 변화요, 색깔의 변화요, 향기의 변화요, 가치의 변화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연인이 주님을 만나게 되면 인생의 맛도 변하고, 색깔도 변하고, 향기도 변하고, 가치도 변하는 것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변화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를 받으면 변화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또 교회를 오래 다니면 변화되는지 압니다. 또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변화되는지 압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으면 변화된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세례를 받고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직분을 받는 것이 변화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변화는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영의 변화입니다.
이솝우화에 [요술쟁이와 생쥐]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생쥐 한 마리가 요술쟁이의 집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고양이가 있었기 때문에 생쥐는 무서워서 살수가 없었습니다. 요술쟁이는 생쥐를 측은히 여겨 생쥐를 고양이의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개를 무서워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개의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호랑이가 무섭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망한 요술쟁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양만 바뀌어졌지 마음은 계속 생쥐의 마음이니 넌 가망이 없다. 다시 생쥐가 되어라
   

교회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그 생쥐와 같이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의 염려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는 무늬만 교인인 성도들이 많습니다.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니기는 해도 계속 옛날의 마음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교회를 10, 20년 다녔어도 옛날의 마음에 사로잡혀 있고.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염려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겉모습은 바뀐 것 같은데 생쥐가 생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교회를 다니며 종교적인 냄새는 나는 것 같은데, 여전히 옛 마음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속이 변하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겉만 변한 것입니다. 무늬만 교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의 본질적인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사람의 본질적인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일어나지만, 생활의 변화는 기도로 주님을 경험하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앞으로 10년 후에도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까? 혹시 내 생활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만약 변화를 원한다면 기도생활을 시작하십시오.

왜 기도해야 할까요? 기도하는 시간은 주님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12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치료가 되었던 것처럼, 기도하는 시간은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시간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나가 여인이 즉시로 고침을 받은 것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고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십자가로 고민하시던 주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주님은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고 그들과 주님이 별세하실 것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주님은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크게 율법과 선지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과 주님의 별세에 대해서 대화했다는 말은, 구약 성경 중 율법이 주님의 별세를 예언하고 있다는 말이고, 또 구약 선지서도 역시 주님의 별세를 예언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통하여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재차 확인하신 것입니다.
   

초막 셋을 짓겠다던 베드로는 구름 속에서 들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됩니다. 갑자기 빛난 구름이 덮이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음성입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대화는 기본적으로 2가지가 필요합니다. 말하기와 듣기입니다. 말하기와 듣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동전이 앞면과 뒷면이 다 있어야 완전한 동전인 것처럼, 기도는 말하기만으로는 부족하고 말하기와 듣기가 함께 있어야 완전한 것입니다.
   

제 아내가 저를 부르면 저는 아내에게 대답합니다. 제가 대답하지 않으면 아내와 저는 대화가 단절됩니다. 제가 대답해야만 우리의 대화는 계속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말을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응하십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대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산 아래로 내려가셔서 담대하게 사역을 하시다가 십자가를 받아드리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비전을 받게 됩니다. 비전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우리가 비전을 받으면 그 비전이 우리를 움직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가다보니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성령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역할을 하십니다.

 8:14에 보면,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님은 마치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인도를 받으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초행길은 네비게이션의 인도를 받습니다. 네비게이션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다보면 우리가 목적하는 곳에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다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참된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말은 어린아이들에게 지혜이듯이,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들에게 지혜인 것입니다.
   

인체 수술이 시작된 19세기에 수술환자의 90%가 수술을 받으면 죽었습니다. 그때는 세균이 있는지 없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쓴 칼을 또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쓰고 그 피 묻은 칼을 또 다른 사람에게 쓰고 하다 보니 세균을 전달시켜서 수술을 받았다면 90%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조지프 리스토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소독 학의 창시자입니다.

 

.그분이 주님을 잘 믿는 사람인데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 환자들이 수술만 받으면 죽는데 살리려고 한 수술이 왜 사람을 죽입니까?” 그 때 마음속에 조용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칼에 세균이 붙어 있어서 병을 옮기는 수단이 된다. 칼을 소독해라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다 비웃는데도 불구하고 조지프는 수술하기 전에 불에다가 칼을 소독시켰습니다.

활활 타는 불에 칼을 집어넣어서 칼을 소독시키고 난 다음 수술했는데 조지프가 수술한 사람은 80%가 다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할 때

반드시 수술 칼을 소독해야 된다는 것을 증명을 했습니다. 여러분! 조지프 리스토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물으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기도하셨으니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까?
첫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변화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세상 탓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 하셔서 늘 하나님의 응답 속에 살아가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