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기도하면 외롭지 않다 (눅 22:39-44)

공 상희 2020. 9. 23. 06:09

기도하면 외롭지 않다 (눅 22:39-44)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이 시간 “기도하면 외롭지 않다”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가 고독입니다. 1954년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문호 헤밍웨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유서에는 "나는 전류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다." 고 썼습니다. 그 유명한 문인의 사인은 다름 아닌 고독이었습니다. 아무리 늙어지고 병들고 혼자 살아도 외롭지만 않다면 그런 삶은 살만합니다.

 

본문에 세상적으로 보면 가장 고독한 분이 보입니다. 우리 주님이십니다. 아무도 주님 가시는 길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부르짖고 기도하신 우리 주님, 제자들도 다 떠나고 사형장으로 홀로 십지가를 지고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외롭지 않았습니다. 요16:32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특히 기도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왜 기도하면 외롭지 않을까요?

 

1.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39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2절에는 “아버지여” 하고 부르셨습니다. 이처럼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자에게 무신론은 없습니다. 무신론자들이 빌리그래함 목사에게 "하나님 정말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러자 빌리그래함은 "그럼요, 오늘 아침에도 하나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기도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며 기도로서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성삼위 하나님께만 기도해야 합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 양심을 위해 기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양심에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퀘이커 교도들은 "내 속에 있는 광명을 찾기 위하여 광명에게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역시 정상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범신론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이며, 자연이 곧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며 기도하지 않거나 혹은 자기에게 기도하고 또 자연에게 기도하기도 합니다. 귀신에게 기도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악신과 접신되는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해야 합니다.

 

성막을 보면 분향단이 바로 법궤 앞에 있습니다. 기도의 분향단이 바로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 앞에 있다는 것은 기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J. C. 밀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란 기도의 황금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며 그 임재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기도에 깊이 빠져보십시오. 고독은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일 뿐입니다.

 

2. 기도하면 기도의 대상을 만납니다.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누구를 위한 기도였습니까? 십자가를 져야 하는지에 대한 기도였지만 결국은 저와 여러분과 온 인류의 생명과 죄악과 문제를 짊어지시고 부르짖으신 것입니다.

 

기도가 신기한 것은 기도의 대상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영혼으로도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평소 기도했던 사람은 처음 만났을지라도 순식간에 마음적 교제가 통하고 그렇게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문제 가진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그 문제가 느껴집니다. 아픔이 있다면 그 아픔이 느껴집니다. 기쁨이 있다면 그 기쁨도 느껴집니다. 마음의 고통 육체의 질고까지도 느껴집니다.

 

기도 대상의 문제가 가벼우면 기도자의 심령도 가볍고 문제가 중하면 기도자의 심령도 무겁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한 몸인 것을 체험합니다. 지금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운 현실지만 기도로서 만나시기 바랍니다.

 

3. 기도하면 이런 것도 만납니다.

 

53절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대제사장들과 유대의 장로들이 파송한 군인들이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처럼 기도하다 보면 시험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자가 기도로 바쁘면 천사는 기도와 응답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하느라고 바쁘고 하나님은 응답하시느라고 바쁘시고 마귀는 방해하느라고 바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귀 시험은 하나님의 은혜의 서곡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40일 금식기도 후에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시험하는 자 즉 마귀였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시험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현상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러나 알고 보면 그동안 숨어서 우리를 훼방 치던 사탄이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떠나기 위한 현상입니다.

 

사탄이 떠난 때와 머물 때 그 느낌이 다릅니다. 사탄이 떠나면 그렇게 평화롭고 안정되고 마음의 악도 사라집니다. 믿음이 넘칩니다. 그런데 다가왔을 때 그 느낌은 나의 믿음 없을 때 그 상태, 평소에 늘 시험 들던 꼭 그 상태입니다. 그것이 사탄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체험을 유심히 관찰하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군대귀신을 추방하실 때 그 귀신이 돼지떼에 들어가 호수에 몰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지방 사람들은 무슨 일이 발생할 줄 몰라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귀신이 나갈 때 그런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얼마나 시험이 많았습니까? 박해도 많았고 이상스런 시험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려면 온갖 시험을 각오하고 예수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어서 없던 시험이 다가온 것이 아니고 대대로 우리 민족과 조상들을 괴롭혀 왔던 사탄의 역사가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런 엄청난 싸움을 많이 했기 때문에 지금은 신자든 불신자든 근대화를 위해 아무렇게나 해도 귀신이 해코자 않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이 사마리아성에서 전도할 때 귀신들이 소리 지르며 나갔습니다. 시험을 두려워 말고 기쁨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4. 기도하면 천사를 만납니다.

 

43절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얼마나 간절했든지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듯 진액이 빠지는 기도였습니다. 그 때 천사가 예수님에게 나타나서 기도를 도왔습니다. 천사를 만났습니다.

 

이처럼 기도할 때 보이는 천사, 보이지 않는 천사가 돕습니다. 온갖 능력과 은사와 평안을 가진 영적인 천사나 혹은 우리를 도울 가족이나 재능이나 능력이나 기술을 가진 그런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야곱이 형의 원한을 사서 외갓집으로 피신할 때 루스에 이르러 길을 잃었습니다. 루스의 뜻은 “길을 잘못 들다.”는 뜻입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죽습니다.

 

창28:20의 야곱의 기도의 배경을 살펴보면 야곱이 길도 잃고 안내자도 없고 옷도 찢어지고 가진 양식도 물도 다 떨어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두려움 속에 돌 배개를 베고 잠들었습니다. 꿈에 하늘로 난 사닥다리가 보이고 천사들이 그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야곱을 외삼촌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해주셨고, 오는 길도 지켜주셨습니다. 아마 꿈에 약속하신 대로 누군가 천사 같은 사람들의 도움을 만나게 해주셨을 것이고 방황하지 않고 먹을 양식도 주시고 마실 물도 주시고 입을 옷도 주시고 맹수에서 지켜 주시고 순탄하게 갈 수 있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5. 기도하면 응답을 만납니다.

 

마26:44-45에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예수님께 아버지의 응답이 임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사 만민의 화목제물이 되심이 아버지 뜻임을 응답해 주셨습니다.

 

1857년 미국 전역을 휩쓴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부흥의 절정에서야 그 부흥운동의 진원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운동은 뉴욕의 어느 직장에서 한 사람이 점심시간 한 시간 가운데 밥을 먹고 30분간을 전국에 부흥운동이 일어나도록 날마다 기도하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진실로 기도했다면 응답은 있습니다. '예스'도 응답이지만 '노우'도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없으면 무엇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지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기쁨이요 만남입니다.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하나님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원수를 만나고 천사를 만나고 응답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외로움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사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 주님을 본받아 날마다 기도하므로 하나님을 만나고 대상을 만나고 자유를 만나고 천사를 만나고 응답을 만나는 기도의 승리자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