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하늘 문이 열린 사람 (요 1:47-51)

공 상희 2020. 8. 30. 06:46

하늘 문이 열린 사람 (요 1:47-51)


이 시간에 “하늘 문이 열린 사람”이라는 제목입니다. 하늘문이 열린 사람과 닫힌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그 비교는 신 28장에 나타난 축복과 저주의 말씀과 같습니다. 신 28장의 주옥같은 축복의 말씀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하늘문이 열린 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늘문이 열리면 만사형통입니다. 영육 간에 한없는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약1:16-17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했습니다. 욕심낸다고 내 것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본문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늘 문이 열립니까?


1.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본문 51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51절) 하셨습니다. 사자들이 예수님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온갖 아름다운 은혜와 복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하늘문이 열린 꿈을 꾸었던 것처럼, 여기 돌베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 믿으면 하늘문이 열립니다. 우리가 하늘백성되는 것도 예수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요3:5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출생을 통해 왔습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거듭남을 통해서 하늘백성됩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볼 수도 없습니다.


마16:16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바로 천국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믿는 자에게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홍해도 열리고 요단강도 열리고 반석도 열려 생수가 터지고 하늘도 열려서 하늘양식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철학은 죽었고 신은 필요 없다. 물리학이 우주의 존재에 관한 본질적인 의문을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한 무지한 사람입니다. 눈에 안 보이면 없는 것이고 물리학으로 증명할 수 없으면 비진리라는 논리는 어디서 온 논리입니까? 우리 눈이 완전하지 못하고 물리학 역시 완전하지 못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진리의 척도가 됩니까?


그걸 비판한 것이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입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당시 인간 이성을 절대 시한 합리주의 철학이 대세를 이룰 때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최고 존재에 대한 탐구를 착수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 신랄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칸트의 이론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었든지 그 후로는 이성을 기초로 한 합리론 등이 합부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과학자 철학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지혜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 결과가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죄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늘문이 열립니다. 성령을 받습니다. 천국을 갑니다.


2. 주님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요1:50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메시아시대가 오기를 갈망하고 기도했다는 의미입니다.


미4:4에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사모하고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모셨으니 이제는 그 분을 기쁨으로 경외할 뿐 아니라 죄악이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하나님이지 그의 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구하면 온갖 아름다운 선물은 덤으로 따라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선물만 구하면 그것이 기복신앙이고 우상숭배입니다. 은사만 구하다가는 사탄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1-2) 했습니다.


3.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눅3:21-22에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했습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늘문이 열립니다.


야곱이 형의 축복을 대신 받고 원한을 사 하란으로 도망하다가 사막 한 복판 루스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루스’라는 뜻은 ‘길을 잘못 들다’는 뜻입니다. 이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절망에 빠져 그토록 울며 기도한 적은 없었습니다. 부모의 신앙의 그늘에서 부모의 도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야곱이 절망 속에서 부르짖고 기도할 때 꿈에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밧모 섬에 유배되어 기도하다가 하늘 문이 열려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엘리야도 기도로 하늘 문을 닫고 열었습니다.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자 하늘 문이 닫히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비가 오기를 구하였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초대교회도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120 문도들이 주님의 약속을 믿고 힘써 기도할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성령의 크신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능력의 사람이 되고 믿음의 사람, 사랑의 사람, 예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4. 회개하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사59:1-2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반면 시28:23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하늘이 막히면 다 막힙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니 돕자는 사람도 나타나는 것이지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세상에 그 누구도 돕지 않습니다.


5.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는 사람입니다.


말3:10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열고 복을 부어주십니다.


세계에서 십일조(혹은 10분의 1)를 제일 잘 하는 민족이 유대민족입니다. 그런데 현재 가장 부요한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세계적으로 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40대 재벌 중 24명이 유대인입니다. 부흥사 박재봉목사님이 십일조 드린 4,000명을 조사하였습니다. 3,990명이 복을 받았습니다. 10명은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란 계산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이요, 그 정신까지 올바른 것입니다. 십일조는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현으로서 그 중에서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드리면 십일조가 아닙니다. 내 것이라 생각하니까 아깝습니다.


유대인들은 십일조를 10원도 1원으로 나눌 만큼 계산적으로 드리지만 의(義,옳음)와 인(仁,사랑)과 신(信,믿음)이 없었습니다. 당연하고 감사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더 드리고 싶다는 사랑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걸 드리면서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사장이시며 복 주신다는 믿음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어떤 십일조는 9.883원 그렇게 동전까지 넣어서 드리는데 옳은 십일조가 아닙니다. 그냥 만원 채워 드리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헤아리지 않고 주시는데 우리가 헤아려서 드리면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생각하십니다. 눅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셨는데 이 어찌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겠습니까?


십일조는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십일조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으로 모시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상의할 줄 모르기 때문에 도우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충성되게 노력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응답과 지혜를 받아서 하나님과 함께 경영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다가 복 받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모두 성경 말씀대로 해서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28:12에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하늘의 보고는 하늘의 보물창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오늘 말씀대로 하늘문 되신 예수 잘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서 하늘의 보물이 쏟아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