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의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디모데후서 4:6~8

공 상희 2020. 5. 2. 15:00

의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디모데후서 4:6~8

 

이 시간에는 의의 면류관을 받으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받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후 67년경 로마 감옥에서 디모데후서를 썼고. 그때 나이가 70세가 넘었습니다. 바울은 30대 중반에 회심하여, 40년 가까이 사역을 했고.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네로에 의해 처형당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죽음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이 세상을 육신으로 살아가는 삶의 종점이다.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믿는 자의 죽음 후에는 상급이 기다린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사후에 천국에 들어갑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두 종류입니다. 천국에 간다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서 겨우 천국에 입성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는 면류관은 없습니다. 천국 간 것만도 감사할 일입니다.

다음에는 세상에서 믿음으로 잘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서 면류관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대 올림픽에서 우승자가 받는 면류관을 통해서, 천국에서 얻게 될 면류관을 생각하게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자신은 천국에서 의의 면류관을 받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천국에 들어가는데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잘했다고 칭찬 듣고 면류관을 받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천국에 가서 의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7절에 보면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합니다.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웠기 때문에,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선한 싸움이란, 영적 싸움입니다. 바울의 영적 싸움의 대상은, 악한 영들입니다. 우상숭배자들입니다.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허탄한 이야기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육체의 정욕입니다.

 

바울의 선한 싸움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이일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많은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요소들에 저항하며 싸웠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싸웠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동기가 되어서 움직입니다. 다는 아니지만, 의사들도 돈이 동기가 되어서 수술합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의 한 젊은 외과 의사에게 질문합니다. 하루에 얼마나 많이 수술을 할 수 있나요?”, “그것은, 제가 얼마나 굶주려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은 배가 고프면 수술을 많이 한다는 말이 아니라, 돈이 궁하면 궁할수록 수술을 더 많이 한다는 말입니다. 미국 병원에서는 수술 횟수에 따라서 돈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 의사의 의료행위의 중요한 동기는 돈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동기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좋은 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할 수 없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겼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목숨을 던져야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초점은,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이 얼마나 내게 이익이 되느냐를 따지면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것도 포기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어려움과 방해가 있어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의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2. 받은 사명 따라 자신의 길을 가야 합니다.

7절에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이 달려야 할 길을 기웃거리지 않고, 자신이 달려갈 길을 달렸습니다. 남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사도행전 20:24에서도, 바울은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달려갈 길을 알고, 그 길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미라톤 선수는 아무 길로나 달리지 않습니다. 보기 좋은 길이라고 그 길로 달리면 안 됩니다. 난코스를 만날 때도 그 길이 어렵다고 쉬운 길로 가서도 안 됩니다. 선수는 정해진 코스로 달려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런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듯이, 남의 길이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남의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따라,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자기의 길을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위대한 비전이 위대한 인생을 만든다.”고 합니다. 여기서 위대한 비전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주신 비전입니다. 위대한 비전은, 큰 비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전의 크기와 상관없이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라면 그 비전은 위대한 비전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남의 비전을 붙잡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비전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적이며 성공적인 삶은, 큰일을 이룬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나의 길을 가는 사람이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의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3.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단어를 발견합니다.

달린다입니다. 달리기는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달려왔다는 말은, 열심히 살았다는 말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는 뜻입니다.

싸운다입니다. 이 말 역시 열심히 살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격투기 선수들이 혼신을 다하여 싸우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 시대에는, 5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원형 경기장에서 사형수와 맹수를 대결시켰습니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했습니다. 맹수와 싸워서 이기면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생명을 건 결사적인 싸움입니다. 사형수가 자기가 살려면 맹수와 싸우는데 최선을 다해서 싸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29에도 보면.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기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리고 힘을 다하여 살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역사만 바라보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서 최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일을 냅니다. 반면에 능력이 있고.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이 부르신 길을 갈 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흘러가는 대로 대충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살아야 합니다. 주 뜻 안에서 열심히 살 때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4.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7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은 믿음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진 후에는 반드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무엇을 얻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더 힘든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졌어도,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허사입니다.

 

미국의 알래스카주는,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7배나 큰 땅입니다. 이 땅은 1867년까지는 러시아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별로 가치가 없는 땅으로 여겨 720만 달러를 받고 미국에 팔았습니다.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약 86억 원입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산 지 13년 만에 무려 3억 달러어치의 황금이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3억 달러면 약 3,600억 원입니다. 러시아는 땅속에 3억 달러어치의 황금이 묻혀 있는 것을 모르고 당장에 손에 쥘 수 있는 720만 달러에 알레스카를 미국에 팔았습니다.

 

더구나 알레스카 땅 밑에는 금 못지않게 귀중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엄청나게 저장되어 있습니다. 러시아는 황금의 땅을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을 얻으면 다 얻은 것입니다. 구원도 믿음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도 믿음으로 됩니다. 기도 응답도 믿음으로 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도 믿음으로 됩니다. 천국도 믿음으로 갑니다.

그래서 믿음을 얻고 지키면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입니다. 반면 믿음을 잃으면 구원도,하나님의 자녀의 특권도,기도 응답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도, 천국도 잃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을 지키지 못해 망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스라엘의 사울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지키지 못해서, 망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지키지 못해서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귀신이 들렸고, 결국은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믿음을 지키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리 시대, 대한민국에서는,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유혹이 많습니다.

마귀는 세상의 화려함이나 영광스러움, 혹은 부요함이나 편안함으로 우리의 신앙을 유혹합니다. 우리는 세상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순간순간을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은, 성경적인 가치관을 지키는 것입니다. 적당히 타협하는 사람은, 믿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천국에서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5. 재림을 사모하라

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의의 면류관은 주님께서 주시는데, 자신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남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의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재림을 사모해야 합니다.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은, 경건하게 거룩하게 살려고 힘쓰며 삽니다. 그리고 경건하게 살기 때문에, 죽음 후에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신다면,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신앙생활 경건한 삶을 살아서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의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따라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주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 는 것입니다. 마치 격투기 선수가 힘을 다해서 싸우듯이 살고.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림을 사모하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천국을 믿고,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의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믿음으로 행하여90 예수님께서 씌워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