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닮은 사람 (행 7:59-60)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 시간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라는 제목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청교도 작가인 나다니엘 호돈이 쓴 “큰 바위의 얼굴”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어느 마을 산마루에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인자한 사람의 얼굴을 닮은 바위가 있었는데 그 큰 바위에 얽힌 전설이 그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언젠가는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들에게 행복을 안겨 줄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소망을 가진 사람 중 하나인 어네스트라는 어린이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큰 바위의 얼굴을 흠모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하는 어떤 장군이 나타나서 마을 전체가 소동이 났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장군은 실망을 안겨준 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정치가도, 시인도 나타났지만 그들 역시 마을 사람들에게 상처만 남기고 떠나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실망은 컸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두 사람 그 희망을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네스트도 어느덧 나이 많아 늙었습니다. 그는 실망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합니다. “여러분, 조금만 더 기다립시다. 언젠가는 그 사람이 우리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를 본 마을 사람 중 하나가 외쳤습니다. “어네스트를 보셔요. 저 사람이 바로 큰 바위의 얼굴입니다.” 그러자 여기 저기서 "큰 바위 얼굴이 나타났다. 큰 바위 얼굴이 나타났다"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틀림없는 큰 바위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는 그 바위를 닮은 사람을 기다리면서 자랐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점차 그 큰 바위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이 독실했던 작가 나다니엘 호돈이 이 작품에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처럼 항상 예수님을 사랑하고 바라보고 살면 예수님을 닮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12:2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렇게 예수님을 바라보고 산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스데반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주님을 바라보았던지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길 원했든지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처럼 그 역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59-60절) 기도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사 53장에 나오듯 육신의 풍채는 내세울 것 없었어도 우리를 위해 죽으실 만큼 예수님처럼 사랑스럽고 예수님처럼 존귀하시고 영광되신 분은 이 우주에도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들도 이 주님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어떤 부분을 닮아야 할까요?
1. 마음을 닮으시기 바랍니다.
빌2:5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랬습니다. 우리가 가장 닮기 원해야 하는 부분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닮기 원한다면서 예수님처럼 머리를 길고 긴 세마포를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한 눈초리로만 보았지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당시 문화적 배경을 달으라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의 마음이요, 사랑의 마음이요, 순종의 마음이요, 충성의 마음이요, 의로운 마음이요, 밝고 깨끗한 마음이요, 아름답고 건강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만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산다면 어두운 세상이 얼마나 밝아지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면 참으로 어둡습니다. 발표에 의하면 자동차 사고 피해자 입원비율 일본과 비교해 미안하지만 9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고가 나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일단 병원 드러눕고 보자는 식입니다. 그 뿐 아니라 2018년 고소 고발 사건이 71만 4,000건으로 일본과 인구비례로 보면 약 100배입니다. 10년 전에는 170배였는데 100배로 나아졌지만 더 착해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예수의 공로를 강조하다보니까 윤리를 강조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서신의 절반은 교리이고 나머지 절반은 윤리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좀 더 예의 바르고 착해져야 하겠습니다. 세상 어느 도덕 종교 윤리보다 더 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슴에 예수의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하면 내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좋은 행동이 자동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장성한 것이다. 온전한 것이다. 밝은 것이다. 전부이며 항상 있을 것이고 그 중에 제일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도 닮으시기 바랍니다.
눅9:1-2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권세와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비록 그 능력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권능을 다 주시고 싶어하신다는 사인입니다.
그래서 요14:12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과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 일이 가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막16:17-18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권세를 인정할 때 닮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기적은 없느니라 하면서 부정하면 닮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뭔가 놀라운 일을 하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삶을 닮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낮에는 전도하시고 밤에는 기도하셨습니다. 경건생활이 그만큼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위대한 사도들이 된 것도 그들이 매일 예수님을 보고 들은 대로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제 개인의 역사가 아니라 사도행전의 연속입니다. 그 믿음 가지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 시작할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균형 잡힌 삶을 닮아야 합니다.
눅2:40에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했습니다. 눅2:52에도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했습니다. 이 얼마나 균형 잡힌 모습입니까?
이처럼 예수님은 육체도 건강하시고, 정신도 건강하시고, 지혜와 지식도 충족하고, 영적으로도 충만하셨습니다.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거나 모자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건강하셨습니다. 우리도 건강해야합니다. 건강하려면 우리 몸을 죄에 드리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고 건강의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몸이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끼만 먹여주지 않으면 비틀거립니다. 그러므로 건강의 복음과 아울러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마음도 건강하셨습니다. 그토록 많은 반대와 핍박 속에서도 상처 받지 않으시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주님의 마음이 건강하셨는가를 보여줍니다. 원수들은 주님을 모욕하고 채찍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주님의 마음에 한 점의 원한도 상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12:18-19에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또 지식도 풍부하시고 지혜로우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12살에 소년 예수님이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지혜로우려면 예수님처럼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며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늘 깨닫는 영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람에게도 사랑스러워가셨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사회성을 말씀합니다. 신앙이란 골방에서 기도만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이웃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성숙해 나가는 것입니다. 쌀을 씻을 때 대부분은 쌀과 쌀이 서로 부딪쳐서 씻어지듯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나의 문제를 발견하고 더욱 성숙해 나갑니다.
맥아더가 쓴 ‘아버지의 기도’가 있습니다. “내게 이런 자녀를 주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에 자신을 잃지 않는 담대함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주소서. 주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알게 하소서.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사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 아버지는 어느 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는 여기서 아버지의 심정, 그리고 하나님의 심정을 봅니다. 지상의 아버지도 이렇다면 이처럼 하늘 아버지께서도 우리에게 그런 혹은 그보다 더 아름다운 예수 닮은 자녀가 되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처럼 예수님을 닮으십시다. 그러기 위해서 스데반처럼 말씀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삶과 권능, 그리고 영육 간에 균형 잡힌 삶을 통해서 스데반처럼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행전-계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은 독사에 물렸지만 죽지 않았다, 사도행전 28:1-10 (0) | 2020.05.02 |
---|---|
그리스도인 (행 11:25-26) (0) | 2019.10.27 |
성령 받은 확실한 증거, 사도행전 2:1-4 (0) | 2019.03.23 |
오로지 기도에 힘쓰라 (0) | 2018.06.22 |
통성기도와 위기 극복, (0) | 2018.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