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설교

요한으로 본 성품 변화 (요일 3:1-3)

공 상희 2019. 3. 3. 06:22

요한으로 본 성품 변화 (요일 3:1-3)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 시간에는 “요한으로 본 성품 변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2제자 중에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한 제자를 들라고 하면 베드로와 요한을 들 수 있습니다. 모든 제자를 다 사랑하셨지만 특별히 더 가까이하시고 사랑한 제자는 요한이었습니다. 잠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한 대로 누구보다 주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래 요한의 성품은 대단히 거칠고 불같이 격정적이었습니다.


눅9:52-55에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셨다고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를 우회의 아들이라 하셨겠습니까? 세베대의 두 아들 형제가 다 그런 것 보니까 타고난 성품이었습니다. 타고난 성품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는 특히 예수님의 제자이기 전에 세례요한의 제자였기 때문에 남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 정의감에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도 요한이 제자 중에서도 가장 온유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변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변화된다고 말씀합니다.


요한을 통해 본 성품변화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


막3:17에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우레는 뇌성벽력입니다. 우레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것은 늘 자기의 약점을 돌아보고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급하면 손해 보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인관계는 물론 사업적으로도 손해를 봅니다. 남미 사람들이 대부분 0형이라고 합니다. 성격이 얼마나 급하고 열정적인지 댄스와 스포츠에는 거의 광적인데 다들 못삽니다. 성급하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남미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 그 탄탄하던 국가가 지금은 거지가 따로 없다고 합니다. 사회주의적 선심정책으로 백성들을 속인 독제 정권 때문이지만 그것이 쪽박 차는 정책인 줄 모르고 독재의 선동에 성급하고 무지한 백성들이 속아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그 길로 가고 있어요. 우리 약점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별명을 지어주신다면 무엇이라 지으실까 각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행3:1에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좋은 전통이 있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9시, 12시 그리고 3시에 기도합니다. 제 구 시는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이스라엘을 방문하는데 그 때가 유월절 시즌이라 비행기 표를 구할 수가 없어서 겨우 밤 2시에 표를 구해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모두 유대인들이었는데 비행기 안인지 예배당인지 모를 만큼 탈릿을 두르고 기도문을 들고 기도하더랍니다. 그걸 보고 역시 아브라함처럼 기도하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에 중동을 능가하는 유전이 발견되어 중동국가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로 알았는데 2500억 배럴 매장량으로 세계최대의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매장량이 같아 미국과 함께 세계 최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동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가 이스라엘을 축복했고 예언한 말씀 때문에 절대 빼앗지 못합니다. 이 유전은 지보트 올람이라는 회사의 대표 토비아 루스킨이 성경을 읽다가 신명기 33장에 모세의 축복을 보고 탐사를 시작한 결과라고 합니다.


신33:18-19에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신 33:18-19) 24절에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러스킨은 바다의 풍부한 것은 천연가스이고 모래에 감추인 보배는 석유이며, 기름 역시 석유로 이해하고 팠더니 석유가 무진장 매장되어 있었고 지중해에까지 해저 천연가스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요한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세례요한의 제자였기에 광야에서 기도로 단련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그가 에센파(the Essenes)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보는데 에센파는 생활을 절제하며 기도와 복음전도에 힘썼습니다.


3. 예수님을 가까이 했습니다.


요13:23에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당시 유대인들의 식사습관은 비스듬히 누워서 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제자들은 서로 간격을 유지했지만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안겨 누웠습니다. 그만큼 평소 예수님에 대해 친밀감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소녀처럼 미소지으며 부드럽게 흰 손을 겹치고 있는 요한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십대의 말기에 주 예수를 만났을 때에는 비록 사도들 가운데서 나이가 10대 후반이라고 보니까 가장 어리며 나약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으나 요한은 용감하고 영적으로 강건하고 예수님께 친근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세베대가 대제사장 가야바와 친분을 가질 만큼 가버나움에서 유력한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요1:35에 보면 세례 요한의 소개로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에게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소원을 말하지 않고 “선생님은 어디에 사십니까?” 거처를 물었습니다. 이에 요1:39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가까이 하려는 마음이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성품이 변화되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교회를 가까이 하고 성경을 가까이 하고 기도를 가까이 하고 좋은 친구들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자꾸 성토하거나 비판적인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그와 같이 되거나 안 하려해도 반은 그렇게 됩니다.


4. 오순절의 체험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행2:1-4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 충만 받고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갈5:22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성품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게을러 기도 멀리하여 은혜 떨어지면 내 성품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5. 마지막으로 고난의 연단입니다.


계1:9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대로 그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였습니다.


전해 오는 역사에 의하면 요한을 독살시키려는 음모에서 하나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셨고, 끓는 기름 가마에서도 죽지 않아 죄수의 섬 밧모로 유배시켜 날마다 돌 깨는 일을 시켰는데 거기서 요한계시록을 받았고 풀려나 에베소로 돌아와 사람들이 그를 교회에 앉혀 놓으면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메시지로 간곡하게 설교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순교는 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교자보다 더 많은 고난을 받은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고난이 주는 은혜 때문에 어느 제자보다 신령한 제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를 원하십니다.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었지만 아담의 타락으로 만물보다 부패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감사하게도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그 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나아가 더욱 자기를 알고 근신하며 기도하고 예수님을 가까이 하며 성령을 체험하고 고난 속에서 주님 끝까지 붙잡아 온전히 하나님의 성품으로 거듭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