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때 (빌 3:10-12)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 시간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때”라는 제목입니다. 안개의 나라 영국에 날씨가 맑을 때면 온 나라는 순식간에 국민적 축제의 날로 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손을 잠시 놓고 공원으로 산으로 몰려간다고 합니다. 흐렸다가 매일 뜨는 해도 모습을 나타내면 이렇게 반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다면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영광의 비밀 만국의 보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곁으로도 나타나지만 우리 인격과 생명 안에서 나타나십니다. 영적 성장이란 나는 사라지고 주님이 우리에게서 얼마나 나타났는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한 사람을 들라고 한다면 창세기 5장의 에녹입니다. 에녹은 이렇게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300년이나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그럼 언제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까요?
1. 위기의 때에 자기를 나타내십니다.
요20:19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서 떨 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시고 평강을 축복하셨습니다.
이처럼 위기가 닥치면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평강과 위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배 타고 노 저어 갈 때 폭풍을 만나 죽어갈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유령이 나타난 줄 알고 놀랐지만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 배 안으로 오르시자 폭풍이 그쳤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우리 몸에 상처나 종양이 생기면 그 부위에서 전압이 일어나 플러스와 마이너스 전류가 끊임없이 오간다고 합니다. 몸 안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암세포를 파괴하기 위해서 천둥과 번개가 끊임없이 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백금인데 그래서 백금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좋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위기에 처할 때 천사들이 나타나고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우둔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위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어떤 아이에게 주님은 하루에도 수없이 나타나셔서 위로하시고 천국의 비밀을 보여주셨다는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혼자 두지 아니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고아처럼 혼자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을 때도 예수님은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확신 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기에 늘 감사한 존재들입니다.
2.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을 때 나타나십니다.
본문 빌3:10-11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랬습니다. 내가 사라지면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의지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율법에 보면 제사장이 제물을 산체로 드리지 않고 성전 북편에서 양을 잡아 씻은 다음에 제육의 부위별로 각을 떠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처럼 우리 기본이 예수를 나의 주로 믿고 하나님께 겸손하고 순복할 뿐 아니라 성경 말씀에 따라 더 구체적으로 순종하고 순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지하여 내 뜻대로 하는 일이 없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히4:12-13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순복하는 것이 각을 뜨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내가 죽지 못해서 야생마처럼 속박이 싫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못 견뎌합니다. 로데오 경기라 해서 미국 카우보이들이 길들이지 않은 말이나 소를 타고 누가 오래 버티는가를 겨루는 경기가 있는데 길길이 뛰는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길들여지면 그것이 오히려 편하고 그것이 행복입니다. 잘 길들여지면 주님이 타시는 명마가 됩니다. 그러나 완악한 인간은 야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26:14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딤후2:11-12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3. 헌신된 만큼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롬6:19에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했습니다. 자신을 드린 만큼 주님이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 “너희 지체를”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몸을 다해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섬겨야 하는데 여기에는 분명 마음의 요소와 몸의 요소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몸으로도 드려보세요. 발성으로도 기도하고 발성으로 성경보고 찬송해 보세요. 마음으로만 섬기던 것과는 또 다른 임하심이 있습니다. 강한 능력이 임합니다. 은사가 나타납니다.
물질로도 헌신해 보세요. 내 생각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 속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물질의 청지기로 사용해주십니다. 홍해 같거나 태산 같은 환경이 가로놓였거든 말로도 명령하세요. 예수님께서도 명령하셨습니다.
수 10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해와 달을 명령할 때 해와 달이 넘어가기를 멈추고 머물렀는데 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사랑의 목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몸을 드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 때 마음에 함께 하시던 주님이 우리의 삶속에 나타나 역사하시게 될 것입니다.
4.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나십니다.
막16:9에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그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늘 주님을 생각하고 경배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계명 따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4:21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계명입니다. 사58:8~9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금식에 대한 교훈이지만 자세히 보면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금식을 통해 자기 연약함을 깨닫고 겸손할 뿐 아니라 금식을 통해 가난하고 병든 자의 고통과 슬픔을 깨달아 사랑하는 것이 금식의 목적 중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웃과 지역과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사랑으로 품고 날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주님의 온전한 임재를 날마다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한 손양원 목사님의 주님 고대가처럼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임하신다 하셨습니다.
이 시간 주님은 우리 마음에도 오셔야 하고 우리 삶에도 오셔야 하고 이 혼란한 역사 속에도 오셔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야 모든 것은 정리가 되고 끝이 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응답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께 아버지가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사는 것이 어렵더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시면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주님의 나타나시면 만사는 문제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라면 우리는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말씀 앞에서 더욱 죽어지고 순종하고 헌신하고 사랑하십시다. 그래서 항구적인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함께 하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가장 평안하고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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