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사의 정의 (고전 12:1-7)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시간에는 성령의 은사란 무엇인가? “성령은사의 정의”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인간의 문명이 이토록 눈부시게 발달하게 된 것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경에서 보는데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추방 당한 후 바로 창 4장을 보면 그 때부터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것을 봅니다.
도구가 얼마나 귀합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같지만 문명의 발달이 오늘날 같은 현대사회를 만든 것은 도구의 발명입니다. 손으로 농사하는 것보다 호미가 낫고, 호미보다 괭이가 낫고, 괭이보다는 쟁기가 더 낫고, 쟁기보다는 경운기가 낫고, 경운기보다는 트랙터가 났기에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도구를 사는 것처럼 우리가 신앙생활하거나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때 은사는 상상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성령의 은사란 무엇일까요?
1.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엡4:8에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했는데 이 선물이 은사입니다. 영어성경에서 이 은사를 "gift"라고 표현합니다. 약1:17에도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라 했으니 받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그런 복된 선물입니다.
그런데 선물라 한 것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셨다"는 것은 예수 안에서 이미 주신 바 된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누구나 잠재해 있을 뿐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확신과 평안한 마음으로 임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안달하다가 사탄의 시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 은사를 받는다는 생각이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교회의 존경과 직분을 사려고 하면서 땅값 얼마를 감추고 거짓말을 할 때 두 사람이 모두 영혼이 떠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직분도 은사입니다. 능력이 되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지 거기 너무 치심하거나 자기 공로나 술수를 쓰다가는 큰 시험이 듭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는 마술사 시몬이 성령의 은사를 돈으로 사려고 하다가 저주 받은 사건이 나옵니다. 행8:20에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그러니까 24절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하나님 두려운 줄은 알았나 봅니다.
은사는 선물이니까 주시면 받고 안 주시면 안 받는 걸까요? 은사를 귀히 여기고 풍성해지기를 갈망해야 함은 선물은 주는 자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거절하면 주는 자를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족들의 예절에 그들이 권하는 것을 거절하면 생존이 위험하다고 합니다. 자기들을 거절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2. 은사는 재능입니다.
성경에 은사로 표현된 단어가 두 가지 어원에 근거하는데 첫째는 프뉴마티코스(πνευματικος) 즉 개역성경에 “신령한 것”(고전12:1)이라 번역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고전12:4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여기 은사는 카리스마(χαρισμα)인데 신비한 재능을 강조한 용어입니다. 마25:15에도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했습니다. 성령의 은사도 신령한 재능입니다.
그래서 은사가 나타나면 없던 어떤 재능이 나타납니다. 삼손에게 나타난 은사는 지혜와 능력의 은사였습니다. 삼손의 지혜로 낸 수수께끼를 블레셋 사람들이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힘이 세던지 젊은 사자를 비틀어죽이고, 겹겹이 결박된 포승줄을 불탄 삼 같이 끊고, 거대한 성문 두 짝을 그 문설주와 함께 메고 가고, 나귀의 턱뼈로 천 명을 죽여 두 더미를 쌓고, 나중에는 집힌 후 다시 머리가 자라나자 공연장의 두 기둥을 무너뜨려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어떤 재능일지 모르지만 재능 없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3:7에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은사충만해야 능력 있는 일군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은사를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잘못된 신비주의운동으로 잘못된 열매를 맺히니까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까지 부정해 버리는데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올바른 신앙운동으로 성령의 열매 맺힐 연구는 하지 않고 은사를 통째로 부정했으니 한국교회의 미래가 이렇게 고단한 것입니다.
사사시대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은사 받은 사사들을 일으키셔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처럼 이 시대에도 은사 받은 위대한 능력의 일군들이 교회를 구하고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어려운 때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의 전기를 보면 그 분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이 시대에 능력 있는 사람들이 대거 필요합니다. 성령의 은사 받은 위대한 교회지도자, 위대한 국가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3. 성령의 은사는 나타나심입니다.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나타난다."는 말씀에 주위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자동으로 은사가 나타납니다. 마치 계란을 부화시키면 씨가 자라나 병아리가 되고 그 병아리가 닭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운동이 활발해지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남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아8:8에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라 했습니다. 오빠가 누이를 좋은 곳에 시집 보내려고 걱정하는 말입니다. 여자 장성했는데 유방이 없다면 정상일까요? 이것이 있어야 결혼할 수 있고 자녀를 낳을 수도 있고 기를 수 있습니다.오래 믿었는데도 섬길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지체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점은 은사가 나타나려면 우리 몸까지도 드려야 합니다.욜2:28에 말세에 우리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신다 했는데 우리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면 은혜는 되지만 은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묵상기도만 하면 역동적인 은사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사랑하는데도 역동적 은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몸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고 열정을 다하고 몸을 다하여 발성적 기도와 찬송을 많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성령이 나타나신다는 것은 성령의 주권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령을 부리려는 태도는 기본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큰 능력 받아 큰 일하리라. 이 말은 맞는 것 같으면서도 위험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세요. 이렇게 쓰임 받은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기 시작합니다.
4. 성령의 은사는 덕입니다.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유익이 곧 덕입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성도 자신과 교회를 견고히 하시려고 내신 덕입니다. 그래서 은사가 풍성하면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너무 좋아서 은사는 덕 자체일 뿐 아니라 또한 은사는 덕을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고전12:2에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못하는 우상에게로 끌려 갔느니라" 왜 이런 말씀을 은사를 교훈하기 전에 했을까요? 교회가 성령의 은사에 무관심할 때 교인들이 귀신 들린 무당이나 점장이에게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은사로서 점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 성령의 은사가 활발하면 누구도 무당에게 가지 않습니다. 그만큼 성령의 은사라면 은혜가 되고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고전14:4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그랬습니다. 여기 방언이 나오네요. 성경은 방언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은사는 자기 덕과 교회의 덕을 세웁니다. 자기 덕을 세운다는 것은 자기 신앙을 세워나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고, 교회의 덕을 세운다는 것은 성도들에 은혜를 끼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란 좋은 거예요. 그러므로 은사는 덕의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합니다. 은혜가 되면 하시고 은혜가 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은사도 때와 장소에 따라 은혜가 되면 하고 되지 않으면 잠잠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기도 좋지만 공적기도는 너무 오래하면 은혜가 안 됩니다. 기도는 수식어를 적게 쓰고 단순할수록 좋습니다. 찬송도 좋아요. 그러나 찬송만 1시간 이상 계속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게 됩니다. 말씀도 그렇고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반대로 회중의 사모함이 클 때는 많이 하는 것이 덕이 됩니다. 모처럼 사모하던 부흥회를 열었는데 강사가 30분 설교하고 내려오면 되겠습니까? 모든 것을 덕 있게 하세요. 그러므로 은사 받았으니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압박관념 가질 필요 없습니다. 교회의 질서와 은혜 안에서 덕 있게 조절하면 됩니다.
그래서 고전14:26에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하면서 32-33에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복된 은사를 주시기 원하셔서, 예수님을 주셨고 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우리 모두에게 이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부정하거나 은사 받지 못한 사람처럼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재능이요 나타나심이요 덕이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려 열심히 하나님을 경외할 뿐 아니라 더욱 귀히 여기고 쓰임 받는 자세 가지고 덕 있게 사용하여 더욱 풍성한 은사로 충만한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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