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충성이다 1 (삼하 23:13-17)
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이 시간 “이것이 충성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충성은 아름답습니다. 런던의 켄더베리 성당에 니콜라이라는 집사가 있었는데 열일곱 살에 성당을 관리하는 성당집사가 되어 평생을 성당 청소와 심부름을 했습니다. 그는 성당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맡은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그가 하는 일 중에는 시간에 맞춰 성당 종탑의 종을 치는 일이 있었는데 종을 얼마나 정확하게 쳤든지 런던 시민들은 도리어 자기 시계를 니콜라이 집사의 종소리에 맞추었다고 합니다.
그가 그렇게 성당에 열심히 일하면서 키운 두 아들은 캠브리지 대학과 옥스포드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두 아들이 아버지 니콜라이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제 일 그만 하세요.” 그러나 니콜라이는 “아니야, 나는 끝까지 이 일을 해야 해.” 그가 노환으로 임종 직전에 이르자 가족들이 그의 임종을 보려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종을 칠 시간이 되자 일어나 옷을 챙겨 입더니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가 종을 쳤습니다. 얼마간 종을 치다 종 밑에서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 충성에 감동을 받고 영국 왕실의 묘지를 그에게 내주고, 그의 가족들을 귀족으로 대우해 주었으며, 모든 상가와 시민들은 그날 하루 일을 하지 않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떠했을까요? 천국의 종이 울리고 대 환영식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칭찬 받을 자신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칭찬 받을 때 충성된 자라는 칭찬을 받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칭찬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에 주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칭찬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영생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100배나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부푼 비전이 있습니다. 이 복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헬라어로 충성은 ‘πιστός’(피스토스)인데 믿음을 의미하는 ‘πίστις’(피스티스)와 어근이 같습니다. 그래서 갈5:22에는 피스티스를 충성이라고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충성이란 그만큼 믿음직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다윗의 세 용사에게서 그런 충성을 봅니다. 그들의 이름은 요셉밧세벳(8절), 엘르아살(9절), 삼마(11절)입니다.
충성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1. 충성은 죽기를 각오하고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13절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원래 아둘람 굴은 세상에서 상처 받고 환난 당한 자들이 모여오는 피난처였습니다. 그래서 아둘람이라는 뜻이 ‘피난처’라는 뜻입니다.
당시 상황은 블레셋이 르바임 골짜기를 장악하고 이스라엘과 전쟁하려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전쟁의 위기에 처한 다윗에게 왔다는 것은 다윗을 위해 목숨 건 각오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즉 세 사람은 다윗과 함께 죽고 함께 살기를 각오했습니다. 이처럼 주님과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떠나지 않는 것이 충성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충성됨을 성경은 어떻게 말씀합니까? 출33:11에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 죽는 데도 함께 가겠다고 한 것도 충성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처럼 충성이란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한문에서도 충(忠)이란 마음심 위에 가운데 중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섬기시기 바랍니다.
2. 충성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14-15절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소원하여” 그들은 다윗의 소원을 알고 반응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 우물은 베들레헴에서 1,2km 떨어진 곳으로 물이 깊고 시원했다고 합니다.
다윗은 격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말라 이 우물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이 블레셋에 점령당해 적군의 진영이 거기 있으니 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때 다윗의 용사들은 다윗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다윗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드리자 길을 나섰습니다.
이처럼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애타실까? 하나님 얼마나 원하실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고 시원하게 해드릴까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잠25:13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야 하나님께서도 충성된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민12:6-8에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눅12:49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하셨습니다. 이 땅에 성령의 불이 꺼져 있는 것을 탄식하시고 계십니다. 열심을 잃으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이 땅에 다시 불을 붙여줄 충성된 일군을 찾고 있습니다.
이건 보통 신앙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시간과 휴식과 취향과 권리까지도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는 사람이라야 가능합니다. 이 주님의 애타는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충성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3. 충성은 말씀 하나도 흘려듣지 않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15절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다윗의 그 말은 당장 물을 먹겠다는 뜻도 아니고 부하들에게 물을 떠오라는 명령도 아닙니다. 어떤 대장이 고향의 물을 마시고 싶다고 부하들을 적진에 보내겠습니까? 그런데 세 용사는 다윗의 지나가는 말 한 마디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마음에 담았다가 적진으로 들어갑니다.
이처럼 충성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말로 듣지 않고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듣습니다. 충성된 선지자 사무엘도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는 들음으로 충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충성된 신하는 주군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듣지 말고 그 말씀을 생명처럼 마음에 간직하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4. 충성은 작은 일조차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다윗이 원했던 것은 큰 일이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일입니다. 당시 다윗이 물이 없어 죽어가는 처지도 아닙니다. 단지 시원한 고향의 물을 마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 명의 부하들은 그 말을 듣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주인의 소원을 이루어드리자고 나섰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충성은 큰일만이 아니라 작은 일도 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16:10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큰일에는 관심 가져도 작은 일에는 무관심한데 그것은 성공의 법칙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알아주고 사람들도 알아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는 종으로서 충성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충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더욱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죽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충성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부족하나 은혜 받으면 가능합니다. 충성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의 열매 맺여 어떤 상황에서도 주를 떠나지 않고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하나님의 소원을 알아 그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고, 말씀하나도 흘려듣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고 실행하며, 큰일에도 작은 일에도 모두 충성할 수 있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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