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신년설교

(송년설교)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공 상희 2012. 12. 25. 15:16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12:14~17)(16:3)

 

이제 내일만 지나면 숨 가쁘게 달려온 2012년도가 마무리되고.2013년도의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새로운 희망과 꿈은, 항상 과거의 뿌리를 가지고 그 위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대한 성찰과 새로운 결단이 없이는 미래에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경 (12:14~17)에 보면 세 가지를 살펴보라고 합니다.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가 있는지, 쓴 뿌리가 있어 다른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미치진 않았는지, 음행이나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진 않은지 두려움을 가지고 살피라고 합니다. 16:3 에 하나님께 경영을 맡기라고 합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살펴볼 것은

 

1,은혜를 포기하진 않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2:15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열심히 구했는데 받기가 어렵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는데도 거절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쏟아 부으시는 은혜를 자진해서 거절하고 포기하는 자가 없는지 살피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이런 사람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 방법으로만 사는 자들입니다.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아서은혜를 못 받은 것이 아니라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가려서 은혜를 못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문제, 가정문제, 회사문제, 직장문제, 물질문제, 인간관계 등이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 고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그 문제를 해결해주길 간절히 원하셨고 해결의 방법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았다면 나에게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십니다. 정말 세상일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했습니까?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정말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하며 성령을 구했습니까?

 

만일 아니라면 내 스스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복을 거절하고 포기한 것입니다.

아직도 시간은 충분 합니다, 2012년도가 지나기 전에 하나님께 죄를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끝없이 베푸시는 은혜를 큰 믿음의 그릇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2,쓴 뿌리는 없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2:15)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사이에 독초가 생겨나지 않도록 주의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뿌리에서 나온 싹은 고통의 원인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칩니다.”“여기서 쓴 뿌리는고집스런 기질로 인해서 생겨나는 불신앙과 배교가 없는지 살피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끊임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불평불만만 해 댑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고집이 세서 그렇습니다. 예전에 얻어들은 지식이 믿음을 방해합니다. 무엇을 일단 진리로 알고 있으면 그 어떤 참 진리가 와도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내가 최고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쓴 뿌리입니다. 그게 옳지 않은 진리라면 참 난감한 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고 난 후 자신의 박식한 초등학문을 쓰레기 취급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 합니다.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보이는 초등학문의 고집을 버리십시오. 알고 있으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이런 쇠고집과 쓴 뿌리는 자신도 문제지만 마음이 강퍅해져서 은혜를 끼치기는 커녕 험담하고 비방하므로 남까지 더럽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쓴 뿌리를 잘라 버리고 새해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3,이세상 것에만 관심을두지 않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6절에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음행하는 것과 먹을 것만 추구하는 동물적 삶을 같은 것으로 봅니다. 세상에서는 나만을 위하여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향해서 성공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나 먹을 것만을 추구하여 남이야 죽든지 살든지 나만, 내배만, 생각하는 육신적인 삶은 곧 땅의 일을 생각하는 것으로 음행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 대표가 에서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인 영적 사명을 판 사람입니다. 보이는 이익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영적인 복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살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잃으면 눈물로 호소해도 축복은 없습니다. 에서가 그 대표자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현세에만 관심을 갔다가 영적인 일을 등한시 했다면 회개하고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4, 우리의 경영을 하나님께 맡겼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잠언 163절에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희 경영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십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일에 100%성공 하신 분계십니까? 분명 이분은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분이므로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일원짜리까지 계산하고 1분 까지도 쪼개서 계획을 세워도 내 맘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 할 수 있을까요.

영국의 템스 강변에서 한 거지 노인이 낡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때 웬 낯선 외국인이 그를 측은히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지금 제게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바이올린을 좀 다룰 줄 아는데 대신 몇 곡만 연주해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거지 노인은 바이올린을 건네주었습니다. 그가 활을 당기자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거지노인의 모자에는 순식간에 돈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를 쳤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저 사람은 바로 바이올린의 명연주자 파가니다!” 그는 바이올린의 명연주자로서 런던에 연수차 왔다가 잠시 산책하던 길이었습니다. 낡은 바이올린이지만 누구의 손에 연주되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우리의 삶도 악기와 같습니다. 내 손으로 내 인생을 연주하려고 들지 말고 전능자의 손에 감사함으로 맡깁시다.. 그러면 내 인생의 멜로디는 지극히 아름다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삶은 자신이 경영하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그들은 도움을 바라지 않으며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리나 대부분의 경우 실패의 눈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우리 삶을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십니다.

 

2012년도 한해가 마무리 되어 갑니다. 어떤 성도님은 하나님께 맡기지 못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 긍긍하며 실패한 경우도 있겠고 어떤 성도님은 앞이 캄캄하고 답답해도 하나님께 맡기는 삶으로 귀한 열매를 맺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동안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스스로 살펴보고 우리의 인생길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맡기고 모든 사람과 화목하고 구별된 삶을 전제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올해의 잘못을 정리하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은혜 베푸시기 원합니다. 먼저 주님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쓴 뿌리인 초등학문과 고집을 버리십시오. 현세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올해로 그만 두십시오. 그렇게 하기만 하면, 내년은 기대할만한 한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너희 묵은 땅을 갈고(송년)

[성경본문] 4:3-4

 

이 세상에 실패하기를 원해서 실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도 성공하기를 원했고 노력했건만 성공보다는 실패를 할 때가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더군다나 같은 실패를 반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더욱 없습니다. 잘못된 것은 한번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거듭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고 마는 가장 지혜로운듯하면서 가장 어리석음을 함께 가지고 있는 동물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실패의 악순환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말하기를<실패의 원인>을 아는 것이 성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합니다. 본의 아니게 실패를 합니다만 그 실패의 원인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스스로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원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원인을 부인하고 싶은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원인을 알고 빨리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빠른 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 실패의 원인을 우선 환경에 두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렇고, 여건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핑계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실패의 원인을 돌리기도 합니다. 이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아무개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에게 원망 돌리는 일은 일상에서 아주 흔하게 보는 일입니다. 심지어는 때가 되어서 주름살이 생기고 흰머리가 나는 것을 상대방 때문이라고 어거지를 쓰기도합니다. 특히 부부끼리 다툴 때 그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 보면 재밌습니다. 그 원인이 언제나 상대방에게 있습니다.“당신이 하도 속을 썩여서 내가 주름살도 늘고 머리가 다 쉬어 백발이 되었다.”...혹은내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건만 당신한테 코가 꿰어서 이 모양 이 꼴로 산다.”...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모습들입니다. 이런 인간의 모습을<종속인간>혹은<부속인간>이라고 합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예속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라는 정체는 전혀 없고,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내가 변하고,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하여 나의 존재는 아예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출발하는 사람입니다. 쓰리고 아프고 찢어지는 괴로움이 있어도 원인을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능만하면 실패의 원인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돌려서 잠시라도 내가 편해지고 싶은 책임전가의 심리를 일명<가인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이렇게 되면 실패는 계속되고 악순환은 그칠 시간이 없이 되풀이 되어서 구제불능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난주에도 신앙의 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신앙생활에서 성공 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신앙에 있어서 성공 자가 되는 방법을 일러 줍니다. 농사를 지어보신 분은 오늘 이야기를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농사에 성공하려면 몇 가지 기본조건이 있어야합니다. 첫째는 땅이 좋아야하고, 둘째는 종자가 좋아야합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씨앗에 문제가 있으면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는 정성어린 수고가 필요합니다. 넷째는 적당한 물과 바람과 햇빛이 중요한 조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토양과 씨앗은 좋습니다. 문제는 수고하는 농부에게 있습니다. 그가 게을러서 묵은 땅을 갈지 않아 잡초와 가시가 우거졌습니다. <문전옥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토질이 좋고 흙 속에 광물질이 풍부해서 무슨 씨앗을 뿌려도 잘되고, 혹 병이 돌아 다른 논밭들은 병들고 흉작이 되도 끄덕 없는 그런 논밭을 가리켜<문전옥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문전옥답도 농부가 게을러서 개간하지 못하면 잡초가 무성한 쓸모없는 풀밭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게을러서 가시덤불이 무성한 그 땅에서는 농사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묵고 가시덤불이 무성한 땅에 씨앗을 파종하면 첫째는 씨앗의 손실이요, 둘째는 노동력이 손실 되고, 셋째는 소망의 손실을 가져옵니다. 이제 우리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려고 합니다. 다시 신앙의 농사를 지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 이대로 다시 씨앗을 뿌릴 수 없기에 오늘 본문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으로만 치닫는 이스라엘에게 예레미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주변의 이방국가들로부터 타락한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여 우상숭배와 패역한 행위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자부하던 사실까지 내팽개치고 자신들의 어린아이를 우상의 제물로 바쳐가면서 까지 우상숭배에 광분했고, 이스라엘 전역에는 어디나 할 것 없이 우상 신전과 사당이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믿음의 열매는 찾아볼 수 없는 영적인 빈곤 속에서 살았고, 그 영적 빈곤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요시아 왕 이후로 정치, 사회, 종교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멸망을 향한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파멸의 소리가 들리는 깊은 밤의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묵은 땅을 갈아엎고,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마음의 가죽을 베어내는 할례를 받으라!”오늘 우리도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돌아보면 많은 것을 잃어버리면서 2004년 한 해를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아직도 비틀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때문에 우리는 오늘 말씀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 밭을 새롭게 하라 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먼저는 묵은땅을 갈아엎으라는 말씀입니다.

땅의 특성은 시간이 흐르며 비바람을 맞고 짐승의 발자국에 다져지게 되면 단단해져서, 씨앗을 뿌려도 뿌리가 뻗어 내리기 힘들어 집니다. 이럴 때는 그 땅을 갈아엎어야만합니다. 삽으로 하든, 쟁기로 하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될 수 있으면 깊이 갈아 굳어진 땅을 부드럽게 해야 그 땅에서 풍작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심령의 땅도 묵으면 굳어집니다. 억지로 하는 심령, 타성과 습관에 젖어버린 심령, 하기는 하는데 기쁜 마음이 없습니다. 이름 때문에 체면 때문에 합니다. 직분을 맡았으니까 하고 사명이니까 마지못해서 흉내만 냅니다. 이게 굳어진 심령입니다. 또 한 가지<타성에 젖는다>는 말은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버릇으로 굳어진다>는 뜻이거든요.<변화가 없이 죽어간다>는 말과 똑 같은 이야기입니다. 한 참 오래 전에 Video Artist[백남준씨]가 광고에 출연해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는 나이임에도 열정적으로 외치는 말이 있었습니다.“나는 청년이야! 끊임없이 창조! 창조! 창조!”그리고 화면으로 흐르는 자막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어제에 머물지 않고/오늘에 만족하지 않고/또 다른 내일을 꿈꾼다.”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이 청년이라고 주장하는 속에는<마음을 묵이지 않고 갈아엎는 생명을 잉태하는 땅>이라는 암시가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 묵은 땅은 열매를 맺어도 하등품의 열매밖에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쁜 종자를 심지 않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최상품의 씨앗과 묘목을 심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내 심령의 밭에 하등품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농부인 내 잘못이 큰 것입니다. 갈아엎는다는 것은 위아래를 뒤집어 고르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과 생각들을 아주 밑바닥의 것으로부터 뒤집어 뭉쳐있는 감정과 실패의 덩어리들을 곱게 부수어 내야하는 것입니다. 이 한해의 마지막 길목에서 묵은 심령이 있거들랑 깊이 갈아엎고 부드러운 심령으로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의 말씀은 가시덤불을 거두어 라는 말씀입니다. 가시덤불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 마디로<제 멋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시덤불이 자라는 것을 보셨습니까? 제멋대로 자랍니다. 뻗고 싶은 대로 공간이 생기면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립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그러면서 다른 모든 것은 죽이고 맙니다. 고로 심령의 가시덤불은<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 맘대로 한 적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내 시간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너무나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기분에 따라 결심이 달라지기도 하고, 환경에 따라 의지가 달라지기를 수차례 했으며, 시간과 장소에 따라 들쭉날쭉 했습니다. 이런 제멋대로의 가시덤불을 거두어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신앙이 좋아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하건만 더욱더 악해지고, 나약해지고, 부정적이고 기쁨이 없는 것은 바로 이 가시덤불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걷어내고 내년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의 말씀을 봅니다. 마음의 가죽을 베어내는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신의 양피를 베어내는 할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정하는 예식입니다. 그런데 할례예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에게 원하시는 더 깊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심령의 필요 없는 부분을 베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육신을 베어내는 것은 상징 일뿐입니다. 이스라엘이 베어내야 했던 것은 심령인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요, 참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육신의 양피는 베어내면서도 속사람의 양피는 베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같은 음성으로 명령하십니다.“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의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이름만의 성도, 이름만 있는 그리스도인은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사도바울]도 로마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말하기를 할례는 마음에 하라고했습니다. 이름이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요, 직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감수하면서 마음을 베어내는 할례를 경험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가오는 2005년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또 한번의 기회입니다.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 밭을 필요로 하십니다. 올 해는 어떠했을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이제 이미 지나버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이제 이런 다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하나님! 새해에는 더 많이 거름 주고 가꾸어서 좋은 심령의 밭을 일구어 나가겠습니다.”,“하나님! 마음을 묵이지 않고 수시로 깊이 갈아엎어서 옥토로 만들겠습니다.”,“하나님! 제 멋대로의 가시덤불을 성령의 불로 태워서 걷어내고 말끔히 하나님 앞에 서겠습니다.”,“하나님! 그리고 마음의 가죽을 베어내어 진정한 하나님 백성 된 것을 온 천하에 드러내며 살아가겠습니다. 새해에도 귀한 씨앗을 맡겨 주십시오. 충성하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이런 다짐 속에 2004년의 묵은 심령을 갈아엎고 2005년을 맞이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25:14-30)

- 설교 : 유상현 목사

 

체코슬로바키아에프란쯔 카프카라고 하는 유명한 유대인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문 밖에서 일생 동안 문이 열리기를 가다리다가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문지기가 서 있는 문 앞에서 어떡하든지 이 문안에 들어가려고 일생 동안 애를 씁니다. 어떻게 하면 저 문지기를 피해서 문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애를 쓰다가 끝내 그 문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서 죽어 가게 됩니다.

 

그는 죽어 가면서 그 문지기에게 말하기를 왜 당신은 나를 그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토록 문을 이렇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때 문지기는 정색을 하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문은 당신을 위한 문입니다. 당신을 돕기 위해서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다시 묻기를 그런데 왜 당신은 내가 들어가려는 문 앞에 막아 서 있습니까?”라고 하자 문지기가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당신을 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어 드리기 위해서 여기서 서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번도 이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한 일이 없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는 문 밖에서 문에 들어오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 번도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하지도 못하고 그 문 앞에서 죽어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앞에는 기회의 문이 열려져 있습니다. 축복의 문이 있는데 한 번도 열어 보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그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주저 하다가 성공의 때를 놓치고, 축복의 때를 상실하고 삶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에 대한 말을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기에 기도해야겠다고 말은 많이 하면서도 기도한 번 진실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하지 못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말씀의 능력과 위대함을 알면서도 성경 한번 읽어보지 못하고 한 해를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의 내용은 달란트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능력에 따라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 각각 맡겼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돌아와서 계산을 하는데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은 열심히 일을 해서 다섯 달란트의 이득을 남겨 주인 앞에 내 놓았습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종도 두 달란트의 이득을 주인 앞에 내 놓았습니다. 그 때 주인은 기뻐하면서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 할지어다.”라고 하며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그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한 달란트를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당신의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두려워서 이 돈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인은 그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을 책망하시면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종에게 주시면서이 무익한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비유는 달란트의 양의 문제, 값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선용하는 것에 대한 교훈입니다. 얼마나 이득을 남겼느냐 하는 그것보다도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느냐? 어떻게 선용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2012년이라는 년 호의 종착역에 도착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간이란 말에 대하여 헬라어에서는 두 가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크로노스(Χρόνος)라는 말입니다.

 

크로노스(Χρόνος)란 흐르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연대로 보는 시간관념입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되고, 3년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모두 크로노스(Χρόνος)의 시간 개념입니다.

 

둘째는 카이로스(Καιρός)라는 말입니다.

 

카이로스(Καιρός)란 순간순간의 질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의미 있는 시간, 가치 있는 시간, 보람있는 시간, 기쁨의 시간, 감격의 시간은 모두 카이로스(Καιρός)의 시간 개념입니다. 때문에하나님의 집에서의 하루가 세상의 천 날보다 낫다.”고 하는 말은 세상의 천 날보다도 성전에서의 하루 곧, 카이로스의 시간은 크로노스의 시간 천년을 지내는 것보다도 더 값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성도의 삶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살았느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값있고 의미 있는 순간순간을 보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크로노스(Χρόνος)의 시간을 카이로스(Καιρός)의 시간으로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한해를 결산하고 대망의 한해를 맞이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서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012년 송년주일에새로운 출발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본문에 나타난어떤 사람은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하고, “그 종들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달란트는 재능, 은사, 직분을 의미합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왔다.”고 함은 주의 재림을 뜻합니다. “저희와 계산함은 행위에 대한 심판 곧 계산(결산)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이 시간에 받은 은혜를 계산하고, 받은 축복을 계산하며, 받은 은사와 직분에 대하여 계산을 해야 함은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함입니다.

 

1.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받은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본문 20절에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라고 했습니다. 22절에도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라고 했습니다. 24절에도한 달란트 받았던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는 주인이 타국으로 떠나면서 종들에게 맡긴 원금을 뜻합니다. 이들은 모두 주인으로부터 각각 재능대로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바 있습니다(15).

 

그러므로 그 원금은 모두 주인의 것입니다(14). 때문에 계산을 할 때에는 그 받은 것을 표준 하여 계산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각각 그 재능대로 받았습니다. 그 받은 내용은 다르지만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받은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내가 주께로 부터 받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부터 계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주인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놓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함은 2005년이라는 새로운 년 호를 받아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장사한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본문 16절에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라고 했습니다. 17절에도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주인께로 부터 받은 원금을 장사 밑천으로 삼아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했습니다. 이것은 원금에 대한 선용입니다. 그것은 각각 장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사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환경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 장사한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그 달란트로 장사하지 아니하고 땅에 묻어 두었으니 계산할 것이 없었습니다.

 

혹시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고 장사하지 아니하는 분이 계십니까? 받은 달란트를 선용하지 않고 묻어 두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캐내어 장사해야 합니다. 선용해야 합니다. 계산 할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일이든지, 영적인 일이든지 내게 있는 것을 잘 선용하면 됩니다. 주님은 최고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요구하십니다. 때문에 주님은 몇 달란트를 받았느냐? 고 묻기보다는 어떻게 장사했느냐? 를 묻고 계십니다. 아직도 기회의 문, 축복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부지런히 장사하여 장사한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남긴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본문 16절에다섯 달란트를 남기고했습니다. 17절에도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 같이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라고 했습니다. 20절에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남겼다.”는 말은 장사의 결과 계산된 이익을 뜻합니다. 얼마를 남겼든지 남긴 것을 가지고 와서 계산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남긴 것을 기준으로 하여 상급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은 다섯 달란트 남긴 자와 두 달란트 남긴 자에게 동일한 말씀으로 위로하고 축복하십니다.

 

본문 21절과 23절에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받은 것 가지고 충성하면 됩니다. 주님이 맡긴 것 가지고 충성하면 칭찬과 위로를 받습니다. 작은 것 가지고 충성하면 많은 것 주십니다. 풍족해 집니다. 어렵지만 감당하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Thomas Adams)재능이 많은 사람이 그 재능대로 일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죄도 크다라고 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실력 있는 사람이 실력대로 하지 않고, 공부 잘할 수 있는 학생이 공부를 안하여 겨우 낙제만 면한다면 그것도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거기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리더십 권위자인 스티븐 코비 박사가 전 세계의 성자들, 위인들, 성공한 사람들, 또 존경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그 중의 첫 번째가 자기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 승리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받은 것에 대하여 불만족해하고, 주신 것에 대하여 과소평가하고 장사하지 아니하여 남긴 것이 없는 자에게는 무서운 책망이 따릅니다. 있는 그것마저도 빼앗깁니다. 그는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그는 주인을 오해한 자입니다. 그는 무익한 종입니다. 그는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어느 대학교 직업 상담소에서 실패자가 되는 10가지 지름길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1. 난 틀렸다고 늘 넋두리를 하라.

 

2. 자기 자신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항상 비난하라.

 

3. 모든 일에 불평거리를 찾아라.

 

4. 날마다 없는 것과 부족한 것만 찾아라.

 

5.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단점을 부지런히 살펴라.

 

6. 조금만 어렵거나 힘들면 빨리 포기하라.

 

7.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더 이상 하려고 하지 마라.

 

8. 쉽게 포기해 버리고 적당히 변명하라.

 

9. 얼굴은 항상 용기 없고 낙심된 모습을 보여라.

 

10. 한 번 실패하면 이젠 끝장이라고 믿어라.

 

그러면 당신은 반드시 실패자가 될 것이다.

 

뭐든지 쉽게 포기하는 사람, 언어생활이 늘 부정적인 사람, 작은 일에도 쉽게 낙심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늘 실패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때로는 인생길에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 올 때도 낙심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은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늘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며, 소극적인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절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직분에 대하여 늘 불평하고 과소평가하며, 지도자에 대하여 원망과 험담을 일삼고 비판적이며 부정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악한 종입니다. 충성된 사람, 착한 사람은 원망할 시간이 없습니다.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신세타령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저 감사하며 죽도록 충성합니다. 기쁨으로 나아가 장사하기에 바쁩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인에게 내어놓을 이윤을 남기는데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한 해 동안 남긴 것은 계산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미국의 남부 지방의 한 가난한 마을의 작은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낡아 지붕에서 비가 새고, 깨어진 창문에서는 바람 소리가 요란했지만, 재정이 어려워서 수리할 엄두도 못 내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당연히 제직회 회계를 그 누구도 맡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연말이 되어 억지로 한 집사님에게 그 직을 맡겼습니다. 회계를 맡은 집사님은 다음해 연말 결산 전까지는 회계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붙여 재정부 회계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가 교회 살림을 맡은 뒤로는 눈에 띄도록 재정이 넉넉해져서 예배당 수리는 물론 모든 기관의 행사들이 계획한 대로 잘 진행되어갔습니다.

 

연말이 되어 재정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그는 먼저 모든 성도들이 올 한 해 동안 십일조를 빠짐없이 잘 드려서 재정이 넉넉하게 된 것을 감사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대부분의 교인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인이 구체적으로 회계 보고를 해달라고 요청을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목화로 솜을 만드는 제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우리 교인들이 목화솜을 타러 오면, 저는 여러분이 가지고 온 목화 뭉치 중에서 십분의 일을 떼고 나머지 면을 타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떼어놓은 십분의 일은 십일조 헌금이 되어 교회의 재정에 들어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보고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성도들에게는 박수를 받았으며, 교회는 큰 유익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숙명여자대학교의 총장이신 이경숙 박사가 1994년 숙대의 총장으로 취임했을 때, 친구들에게 당신 불쌍해서 어떻해?” 라고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 당시 숙대는 엄청난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합니다. 숙대의 땅은 본래 고종황제가 하사한 것인데 해방 후에 토지 정리를 해 놓지 않아 국유지로 묶여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고종이 하사한 땅문서를 손에 쥐고도 수억 원의 임대료와 벌금까지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땅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무원과 담당자들을 찾아다녔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문제는 풀리지 않고, 몸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갈 곳은 기도실뿐이었습니다. 기도실에 가서 얼마나 울며 기도했는지 얼마쯤 지나서 희미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그러면서 네가 언제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었느냐? 너 혼자 뛰어다니고 너 혼자 다 하지 않았느냐?” 그때 이 총장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그 음성에 따라 사람도 만나고 움직여야 했었는데, 순서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해 놓고 주님보고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능력도 체력도 부족해서 저는 기권입니다. 보잘것없지만 제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숙대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그날 이후 숙대의 총장은 하나님이라고 믿고 자신은 심부름하는 청지기가 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학교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기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사람 왜 왔느냐?”는 듯 무시하던 공무원들과 담당자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결국 그해 1231일 땅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2의 창학을 선언한 이후에, 기독교 학교가 아닌 일반 대학 정문에 여호수아 19절의 말씀을 새겨 넣게 하셨고, 숙대 역사상 최고 모금액이 2억 원에 그쳤던 것이, 1995년도에 64억이 작정되어 거의 모두가 동참하여 그 동안 11개의 새로운 건물이 완공되고, 4개의 건물이 더 지어지고 있는데, 건물이 지어질 때마다 모자람 없이 건축 대금을 치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도와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건물이 준공될 때마다 헌당 예배를 꼭 드리는 가운데 학교를 크게 성장시켰다고 합니다. 그 분은 지금도 매일 새벽 430분이면 일어나 새벽기도를 나가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기도를 쉬지 않았다고 합니다.

 

2004년이라는 연호는 저와 여러분의 생애에 또 다시 오지 않습니다. 때문에 2005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하여 개인의 삶을 계산하고, 가정의 삶을 계산하며, 교회에서의 신앙과 직분을 계산해야 합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원금을 표준 하여 장사한 것을 계산하고, 장사하여 남긴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계산의 결과 악하고 게으른 종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종, 더 많은 것을 맡아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는 종이라는 칭찬을 받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다시 (30:8-9)

- 설교 : 장영일 목사

 

8)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사람에게 다시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엄청 축복입니다. 그 말이 없다면 형벌이며 불행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부족하여 실수를 잘 하기 때문에 다시가 그 실수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개역)에도 다시라는 말이 모두 729번 나옵니다. 다른 단어에 비하여 매우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용례가 다 똑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가 한번 더 기회를 주려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곧 다시의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의 책인데, 그 은혜가 곧 다시입니다. 잘못한 사람에게 다시 해!” 하는 것은 곧 용서요 회복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에덴의 두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의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지만, 그들의 역사를 끝나게 하시지 않고 다시뱀의 머리를 치게 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노아 시대가 홍수로 심판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 노아의 식구들로 다시 새로운 역사를 만들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이루어 연결되어온 것이 인간의 역사이기에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입니다.

 

다시의 은총의 법을 자연 속에 베푸셨는데 곧 사계절입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 후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8:21b-22)

 

사계의 변화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셨고, 그 기회를 통하여 지혜롭고 성실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의 풍성함을 얻도록 하였습니다. 사계뿐 아니라 일, 월과 년을 두어서 하루를 다시 시작하고, 한 달을 다시 시작하고, 한 해를 다시 시작하는 인생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물론 다시는 이전의 것을 없던 것으로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회복의 기회를 얻습니다.

오늘이 2012년의 마지막 주일이지만 끝이 아니라 우리 앞에 다시 새 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묵은 일들로 인하여 빗어진 많은 것들 중에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시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다시는 지난 것들 중 잘못한 일들을 털어 버릴 기회입니다

짐승들이 강을 건너면서 건넌 후 자기 몸을 크게 흔들어 물기를 터는 모습을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흔들어 털지 않으면 자기 몸에 있는 물기 때문에 무거워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 물기를 털어 버린 뒤 짐승들은 다시 가던 길을 진행해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지난 일들 중 필요 없는 것들이나 잘못된 일들을 털어 버려야 합니다. 이사를 갈 때에 적지 않은 쓰레기가 나옵니다. 그냥 살 때는 몰랐는데 옮기려고 하니 지금껏 같이 있었던 것들 중에는 필요 없는 것들과 함께 살아온 것들이 발견됩니다. 물론 필요는 없지만 애정의 흔적이 담겨져 있는 물건들은 버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치 않은 것들을 계속 옮겨 다닌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이 우리 몸을 흔들어 필요치 않은 것들을 찾아 털어 버릴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망년회 한다고 합니다. 인간 관계에 묵은 찌꺼기들이 있을 때 흔들어 털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지혜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의 표현으로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3:13)라고 했습니다. 물론 기억을 억지로 지워버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은 남아 있으나 그 기억에 지배당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요 곧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1:18)

 

나 자신의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면 되고, 다른 이에 대하여는 그를 주님의 형제로 보면서 변화될 것이란 소망으로 바라보면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울의 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6-17)

여러분! 이 말씀들을 의지하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십시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2. “다시는 처음을 회복하는 기회입니다

 

설교 본문은 바로 이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8절에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시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있었습니다. 19장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7)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19:5-8a)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는 것이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하며 거룩한 제사장이 되게 하겠다는 축복의 언약이었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 언약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언약을 기억하고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다시는 회복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새해를 그냥 맞이할 것이 아니라 회복의 날로 준비합시다. 처음을 회복하면 새해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이 약속을 본문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9b)

 

우리의 살길은 처음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새해의 비젼은 새로운 계획이 아니라 처음의 회복입니다. 새해에 시작할 목적이 이끄는 40특별기도회는 회복의 기도회입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지만, 그 내용은 새로운 목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있었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 그 목적을 우리의 삶에 회복하는 것입니다.

 

새해에 시작하려는 제자화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본래 예수님이 분부하셨던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교인을 만들거나 신자를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제자를 삼으라”(28:19)는 것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새해엔 범어교회 목회의 2기에 접어듭니다. 새로운 10년을 출발하는 새해인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목회자의 본업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회복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다시 해봅시다. 부부의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가정이 행복한 안식처가 되도록 회복시킵시다. 사업과 직장에 대한 초심을 회복합시다. 그래서 직장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생활의 터전이 되도록 합시다. 교회 생활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지루하고 감동도 없는 종교생활이 아니라 영적 활력이 넘치는 부흥을 회복합시다.

 

3. “다시는 삶의 태도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9)

 

누구나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하는 것이 바로 태도입니다. 가는 길 그대로 가고 하는 일 그대로 하더라도 대부분이 변하는 것이 있는데 열정이 식는 것입니다. 방향도 내용도 그대로이지만 열정이 식으면 쭉정이가 되고 맙니다. 아무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돌아가더라도 열정이 없이 돌아가면 무엇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열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많은 능력을 갖고도 열정이 부족한 사람보다 작은 능력을 갖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신앙의 특징도 열정입니다. 기도도 열정적으로 합시다. 예배도 열정적으로 참여합시다. 맡은 사역도 열정을 갖고 감당합시다.

 

열정이란 순간의 뜨거움이 아니라 변함없는 성실을 바탕으로 한 열심입니다.

 

마치는 말

 

오늘이 2004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남은 며칠 동안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정리하는 것 보다 오히려 새해를 향하여 다시 해보자!”는 각오를 다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자리에 있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에겐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아니 사랑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