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신년설교

년말연시를 위한 설교 모음

공 상희 2012. 12. 14. 17:10

 

에벤에셀 (삼상7:1-14)

 

2012년도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아쉬운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름대로 내 힘과 능력을 다해 살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불리셋을 물리치고, 에벤에셀 이라는 기념비를 세웁니다,

 

에벤에셀의 뜻은 에벤과 에셀의 합성어로서 에벤큰 반석 에셀은 돕는다는 뜻으로 도움의 돌, 또는도움의 반석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에벤에셀 돌비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큰 우레를 발하사 블레셋을 물리쳐 주시되 끝까지 물리쳐 주신 것을 기념한 돌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누구를 도우주실까요.

 

1. 사모하는 자들을 도우십니다.

2절에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있은 지가 20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를 사모했습니다. 법궤를 사모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모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모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투기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면 천대까지도 복을 주시지만,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다 흩어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부부 같은 원리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 해야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가정에 파탄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부자 청년이 찾아와,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할 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했듯.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무엇 때문에 근심 할 수밖에 없다면 아직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사모함입니다. 143:6에 보면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라고 했고, 19:10에서는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한다고 했으며, 42:1에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주님을 사모했다고 했습니다.

 

가뭄에 갈라지는 마른땅이 단비를 사모하고, 많은 금보다 더 사모하고, 목마른 사슴이 물을 사모하는 것처럼, 사모하는 다윗에게

107:9에 보면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사랑하시고. 도우심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지 않을 리 없고, 돕지 않으실 리 없을 것입니다.

 

2. 회개하는 자들을 도우셨습니다.

4절에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신상을 제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던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겼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도움 받은 비결입니다.

 

2:38에 베드로는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했는데 성령이 우리의 도움이십니다. 그래서 롬8: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비 오고 천둥치는 날 쇠를 붙잡는 사람이 벼락 맞아 어리석듯, 를 붙드는 자가 가장 어리석습니다. 그것은 바로 만사불통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3. 기도하는 자들을 도우셨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 가장 많이 도우셨습니까? 기도할 때입니다. 그래서 50: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하셨습니다. 대하 14장을 보면 구스 사람 세라가 100만 군대를 거느리고 유다를 공격했을 때, 아사왕이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기게 하셨습니다. 역대하 20장에도 여호사밧왕이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과 마온 사람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처 들어왔을 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 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모든 백성과 함께 금식하여 기도할 때 승리케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히스기야왕도 앗수르 군사 185,000명이 성을 포위하고 위협할 때 성전에 나가 밤새도록 기도했더니 다음날 아침 앗수르 군사는 한사람도 살지 못하고 다 송장이 되어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기도할 때 승리했습니다, 사랑 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위해서는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대로 도우십니다.

 

4. 위기 중에 도우셨습니다.

7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하러 모였기 때문에 영토를 지키는 사람도 없고, 전쟁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절기를 만나 모이는 날은 위기 중에 위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러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눈동자처럼 지키시며, 도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진짜 위기가 닥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권능으로 나타내시고 우리를 위기에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위기에 처해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해 실패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어떤 위기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하게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5. 희한한 방법으로 도우셨습니다.

10절에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그랬습니다.

중동 6일 전쟁 때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신기하게 도우셨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불비가 내리고, 사막에서 땅벌이 날아와 쏘고, 대군의 환상이 적에게 보여 항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이 기묘자입니다. 달리 말하면 희한한 분이라는 말입니다.

 

중국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붙잡혀 28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신 목사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출소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건강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28년 동안 생쥐가 오리알과 사과를 날라다줘서 그것을 먹고 건강을 지켰다고 간증했습니다.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서 고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의 주인이시기에 우리 사람이 상상하지 못하는 희한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나는 약하고, 부족해도,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6. 계속해서 도우셨습니다.

14절에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운 후에도 계속해서 도우사 빼앗겼던 땅을 다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41:13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할 것임이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은 한번만 우리를 도우시고 끝내는 분이 아닙니다,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아름다운 것을 다 예비해 놓으시고, 돕고자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십시다. 사모할 때, 회개할 때, 기도할 때, 위기 중에, 희한한 방법으로 도우시는 그 은혜를 얼마 남지 않은 2012년이 가기 전에 아쉬움을 떨쳐내고, 하나님의 크신 도움으로 응답받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보내는 한 해에 대한 감사

100:1-5

 

사무엘 존슨은 "감사는 높은 인격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다. 저급한 인간들 사이에서는 결코 감사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감사"는 매우 쉬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한때 사형수 78명을 죽음 직전 구원해 주어 유명해진 변호사 사무엘 라이프위즈는 고백하기를 자신은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로부터 단 한 장의 성탄 카드로 받아보지 못했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해를 가만 돌이켜보면 참으로 다사 다난한 일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우리가 무사하게 한해를 마무리짓는 이 시점에 이르게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 덕분입니다.

시편100:1-5절에서는 한해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표현이 잘되어있습니다.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한해를 지켜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17:8절에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라고 했습니다.

1)이 세상에서 지키심에 감사합니다.

 

다윗은 시12:7절에서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언약하신 대로 자신을 험하고 유혹 많은 세상에서 영원토록 보호해 주실 것을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올 한해를 살아오면서 세상으로부터 많은 어려움과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앙을 상실할 지경에 이른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지키시사 한해를 무사하고 안전하게 지내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한해동안 이 세상의 온갖 악습과 유혹에서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아니었더면 성도는 벌써 죄악 세상의 악습과 정결치 못한 유행에 빠져 죄악의 종이 되었을 것입니다.

 

2)원수 마귀로부터 지키심에 감사합니다.

 

성도가 한해를 마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키셔서 원수 마귀의 손에 사로잡히지 않게 도와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실로 사도 베드로도 고백했지만, 원수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돌아다닌다 하였습니다. 벧전5: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만약 혼자 있다면 백 퍼센트 모두 마귀의 손에 사로잡혀 마귀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까지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며,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신앙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덕분입니다. 성도는 한해동안 마귀의 입에서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코 혼자 힘으로 한해동안 신앙을 지켰다는 오만한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2.고난 가운데 함께해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91:3절에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라고 했습니다.

 

1)고난에서 건시심에 감사합니다.

 

세상에 살다보면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위기와 역경에 처할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어 주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천국에까지 인도해 주실 것이라 확신하였습니다. 딤후4:18절에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 찌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도 전도 여행 도중 그렇게도 많은 위기와 역경을 당했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이 그 어려움에서 자기를 건져주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할 때 지진이 발생하여 옥문이 열리 는 놀라운 구원 체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16:26절에 "이에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고 했습니다.

이런 보호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며 우리 성도들을 모든 고난과 어려운 일들로부터 건져내어 주십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있었기에 우리 성도는 올 한해동안도 험함 세상을 무사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악한 일과 위기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를 바랍니다.

 

2)고난 중에 동행하심에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행여 고난이 닥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훈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시험을 주시되 성도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성도와 함께 하고, 시험 가운데서 성도와 동행하십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다이엘과 세 친구가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 그 가운데 천사를 보내 다니엘과 세 친구들과 동행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보듯이 하나님은 시련 가운데서도 반드시 성도들과 동행하며 지키십니다.

시련이나 고난은 하나님과 성도가 멀어지는 계기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 성도가 더욱 밀착되는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인내하며 승리케 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5:3,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습니다.

 

1)시련을 즐거워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이 온갖 시련을 이기고 능히 신앙 가운데 승리하게 된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도 바울은 롬5:3에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시련 가운데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도 불평은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사람이 어찌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성도가 시련을 당해도 불평하지 않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성도는 올 한해도 믿음 가운데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2)참고 기다리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인을 향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천국을 사모하고 소망하는 자는 시련 가운데서도 차고 기다린다 하였습니다. 8:25절에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토록 극심한 로마의 박해와 시련 가운에서도 잠시 잠간 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 할 것으로 확신하며 천국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고난을 참았습니다.

 

11:36-40절에 "또 어떤이들은 회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와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신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천국을 소망하고 기다리며 참을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런 인내와 기다림의 능력을 주사 능히 시련 가운데 승리하게 하십니다. 이런 능력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4.말씀을 정리합니다.

 

이렇게 보면 올 한 해가 무사히 지나가는 것이 결코 나의 능력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눈동자같이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름다운 결심에 복을 주신다 (9:51-53) 새해첫주

 

이 시간에 아름다운 결심에 복을 주신다.”는 제목입니다. 오늘은 2012년을 보내고 2013년 새해 첮 주일입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후회와 결심일 것입니다. 나이는 한 살 더 먹었는데 이룬 것은 없고 한 해 동안도 결심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마다 반복되는 후회입니다. 그렇다고 결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더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결심하니까 이만큼이라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심하는 것도 은혜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우리 주님도 결심하셨습니다. 그 결심은 잡히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결심이었습니다. 이 결심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인류 구원의 귀한 사역을 이루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결심은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결심을 사용하시고 그 결심에 복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복 주시는 아름다운 결심이란 어떤 것일까요?

 

1. 우리 주님처럼 변치 않는 결심입니다.

 

본문 51절에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그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결심이 변치 않아야 그 결심에 복을 주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결심을 한번 하게 되면 변치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 하실 때도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말이 그렇지 사랑하는 자식을 어떻게 번제로 바친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이삭을 바치기로 결심하여 변치 않았습니다. 그 결심이 변치 않기 위하여 아내 사라와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사라와 의논했다면 아브라함은 큰 시험을 만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환 두 명을 데리고 갔지만 모리아 산 아래 떼어 놓았습니다. 만일 사환을 데리고 올라갔다면 노인네가 노망한다면서 그들이 이삭을 보호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결심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세요. 그 마음은 곧 결심입니다.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너무나 굶는 것이 무서워서 어머니는 어린 록페러와 함께 동반 자살하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 외삼촌이 말려 록펠러는 외삼촌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에 어머니가 회개하고 록펠러를 특별한 애정으로 사랑할 때 감동을 받은 록펠러는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와 살겠어요.” 이 결심이 변치 않고 그가 53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결혼하였습니다. 성공자는 무언가 달라도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한번 결심하면 하나님 앞에서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복 주십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여 변치 않았고,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다니엘은 하루 세 번 기도하기를 변치 않았습니다. 뜨거운 풀무불이 기다린다 해도 사자굴에 굶주린 사자가 기다린다 해도 그 결심은 변치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뛰어난 이유도 이성을 근거로 합리적인 사고와 이론만 가르치는 헬라적 교육을 받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순종하는 히브리적 교육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수한 것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워서 순종 잘하는 민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헬라적 교육은 결심이 필요 없지만 히브리적 교육은 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결심을 하되 변치 않는 결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아름다운 결심은 넘어져도 또 일어나는 결심입니다.

 

24:16"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 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려지느니라" 했습니다. 의인이라고 해서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의인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뚜기 인생을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이 뭔데 완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쓰러지고 넘어지고 시행착오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인 것입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내하는 자의 편이다.” 영국의 정치가 불크는 말했습니다. “절대로 절망하지 말라. 만일 절망하더라도 일하면서 절망하라. 처음에는 성공하지 못 하였더라도 다시 시도하고 다시 도전하라.”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1831년 사업에 실패, 1832년 주 의회의원에 출마하여 낙선, 1833년 사업에 실패하여 그 빗을 17년간 갚았음, 1834년 처음으로 주의회의원에 당선, 1836년 신경을 많이 쓰다가 신경쇠약환자가 됨, 1838년 하원의장에 낙선, 1840년 또 낙선, 1843년 국회위원에 낙선의 고배, 1846년 국회위원에 당선, 1948년 다시 국회위원 출마하여 낙선, 1855년 상원에 낙선, 1956년 부통령에 낙선, 그러나 1860년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으로 당선, 그리고 흑인노해 해방 등 큰일을 함,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링컨의 일생은 실패로 얼룩진 생이지만 그를 믿음에 서서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요셉은 엄청난 시련을 당했으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형들이 그를 팔았어도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보디발 집의 종이 되었어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어도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청년은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내 꿈 내 꿈 하면서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 가운데서 건져 주셔서 훌륭한 부흥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넘어졌습니까? 일어나세요. 주님께서 넘어진 제자들을 다시 쓰신 것도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하셨습니다. 칠전팔기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결심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3. 아름다운 결심은 할 수 있는 일부터 최선을 다하는 결심입니다.

 

처음부터 큰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하는 것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25:21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시라는 말씀입니다.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가지고 고민하지 마세요. 할 수 있는 것에 최선하다 보면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어요. 우선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 기도하고 다윗처럼 말씀묵상과 찬송하며 살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청년이 년 초에 매일 성경을 15장씩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며칠 시행해 보니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15장에서 55장에서 1장으로 목표를 변동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펴고 손가락으로 아무 말씀이라도 짚이는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성경을 열어 짚어보니 마태복음 275절이었습니다. “그가 스스로 물러가 목메어 죽으니라그는 깜짝 놀라 다시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가복음 1037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그래도 그 청년은 다시 하나님! 다시 한 번만 뽑겠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다시 성경을 펼치니까 이번에는 요한복음 25절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었을까요?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 말씀대로라면 그 청년은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하나님 제가 잘못된 믿음을 가졌습니다.” 회개하고는 열심히 성경을 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큰일도 좋지만 작은 일부터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에 충성함이 성공하는 이유는 작은 일은 쉽기 때문입니다. 또 작은 일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아서 심히 크게 됩니다. 또 작은 일은 실패해도 실패랄 수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크게 벌리면 실패합니다. 그러나 작게 시작하여 경험을 쌓은 사람은 성공하고 혹 실패해도 후회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실행하기에는 작은 일입니다. 이 적은 일부터 잘해보세요. 말씀보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순종과 충성과 전도는 힘주시는 대로만 해 보세요. 이 작은 일이지만 이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결심에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일을 맡기십니다. 큰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의 아름다운 결심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들도 결심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결심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결심이 변치 않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며, 작은 일에 충성하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12:14~17)(16:3)마지막주

 

내일이면 숨 가쁘게 달려온 2012년도가 마무리되고.2013년도의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새로운 희망과 꿈은 항상 과거의 뿌리를 가지고 그 위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대한 성찰과 새로운 결단이 없이는 미래에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경 (12:14~17)에 보면 세 가지를 살펴보라고 합니다.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가 있는지, 쓴 뿌리가 있어 다른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미치진 않았는지, 음행이나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진 않은지 두려움을 가지고 살피라고 합니다. 또 잠16:3 에 하나님께 경영을 맡기라고 합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살펴볼 것은

 

1,은혜를 포기하진 않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2:15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열심히 구했는데 받기가 어렵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는데도 거절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쏟아 부으시는 은혜를 자진해서 거절하고 포기하는 자가 없는지 살피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이런 사람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 방법으로만 사는 자들입니다.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아서은혜를 못 받은 것이 아니라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가려서 은혜를 못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문제, 가정문제, 회사문제, 직장문제, 물질문제, 인간관계 등이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 고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그 문제를 해결해주길 간절히 원하셨고 해결의 방법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았다면 나에게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십니다. 정말 세상일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했습니까?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정말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하며 성령을 구했습니까?

 

만일 아니라면 내 스스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복을 거절하고 포기한 것입니다.

아직도 시간은 충분 합니다, 20129년도가 지나기 전에 하나님께 죄를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끝없이 베푸시는 은혜를 큰 믿음의 그릇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2,쓴 뿌리는 없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2:15)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사이에 독초가 생겨나지 않도록 주의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뿌리에서 나온 싹은 고통의 원인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칩니다.”“여기서 쓴 뿌리는고집스런 기질로 인해서 생겨나는 불신앙과 배교가 없는지 살피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끊임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불평불만만 해 댑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고집이 세서 그렇습니다. 예전에 얻어들은 지식이 믿음을 방해합니다. 무엇을 일단 진리로 알고 있으면 그 어떤 참 진리가 와도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내가 최고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쓴 뿌리입니다. 그게 옳지 않은 진리라면 참 난감한 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고 난 후 자신의 박식한 초등학문을 쓰레기 취급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 합니다.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보이는 초등학문의 고집을 버리십시오. 알고 있으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이런 쇠고집과 쓴 뿌리는 자신도 문제지만 마음이 강퍅해져서 은혜를 끼치기는 커녕 험담하고 비방하므로 남까지 더럽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쓴 뿌리를 잘라 버리고 새해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3,이세상 것에만 관심을두지 않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6절에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음행하는 것과 먹을 것만 추구하는 동물적 삶을 같은 것으로 봅니다. 세상에서는 가족만을 위하여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었다.’고 말하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나 먹을 것만을 추구하여 남이야 죽든지 살든지 나만, 내배만, 생각하는 육신적인 삶은 곧 땅의 일을 생각하는 것으로 음행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 대표가 에서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인 영적 사명을 판 사람입니다. 보이는 이익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영적인 복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살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잃으면 눈물로 호소해도 축복은 없습니다. 에서가 그 대표자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현세에만 관심을 갔다가 영적인 일을 등한시 했다면 회개하고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4,마지막으로 우리의 경영을 하나님께 맡겼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잠언 163절에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희 경영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십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일에 100%성공 하신 분계십니까? 분명 이분은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분이므로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일원짜리까지 계산하고 1분 까지도 쪼개서 계획을 세워도 내 맘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 할 수 있을까요.

 

영국의 템스 강변에서 한 거지 노인이 낡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때 웬 낯선 외국인이 그를 측은히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지금 제게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바이올린을 좀 다룰 줄 아는데 대신 몇 곡만 연주해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거지 노인은 바이올린을 건네주었습니다. 그가 활을 당기자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거지노인의 모자에는 순식간에 돈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를 쳤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저 사람은 바로 바이올린의 명연주자 파가니다!” 그는 바이올린의 명연주자로서 런던에 연수차 왔다가 잠시 산책하던 길이었습니다. 낡은 바이올린이지만 누구의 손에 연주되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우리의 삶도 악기와 같습니다. 내 손으로 내 인생을 연주하려고 들지 말고 전능자의 손에 감사함으로 맡깁시다.. 그러면 내 인생의 멜로디는 지극히 아름다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삶은 자신이 경영하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그들은 도움을 바라지 않으며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리나 대부분의 경우 실패의 눈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우리 삶을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십니다.

 

2012년도 한해가 마무리 되어 갑니다. 어떤 성도님은 하나님께 맡기지 못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 긍긍하며 실패한 경우도 있겠고 어떤 성도님은 앞이 캄캄하고 답답해도 하나님께 맡기는 삶으로 귀한 열매를 맺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동안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스스로 살펴보고 우리의 인생길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맡기고 모든 사람과 화목하고 구별된 삶을 전제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올해의 잘못을 정리하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은혜 베푸시기 원합니다. 먼저 주님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쓴 뿌리인 초등학문과 고집을 버리십시오. 현세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올해로 그만 두십시오. 그렇게 하기만 하면, 내년은 기대할만한 한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송년] 다시 (30:8-9)

 

8)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사람에게 다시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엄청 축복입니다. 그 말이 없다면 형벌이며 불행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부족하여 실수를 잘 저지러기에 다시가 그 실수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개역)에도 다시라는 말이 모두 729번 나옵니다. 다른 단어에 비하여 매우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쓰는 내용이 다 똑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가 한번 더 기회를 주려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곧 다시의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의 책인데, 그 은혜가 곧 다시입니다. 잘못한 사람에게 다시 해!” 하는 것은 곧 용서요 회복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에덴의 두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의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지만, 그들의 역사를 끝나게 하시지 않고 다시뱀의 머리를 치게 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노아 시대가 홍수로 심판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 노아의 식구들로 다시 새로운 역사를 만들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이루어 연결되어온 것이 인간의 역사이기에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입니다.

 

다시의 은총의 법을 자연 속에 베푸셨는데 곧 사계절입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 후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8:21b-22)

 

사계의 변화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셨고, 그 기회를 통하여 지혜롭고 성실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의 풍성함을 얻도록 하였습니다. 사계뿐 아니라 일, 월과 년을 두어서 하루를 다시 시작하고, 한 달을 다시 시작하고, 한 해를 다시 시작하는 인생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물론 다시는 이전의 것을 없던 것으로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회복의 기회를 얻습니다.

오늘이 2012년의 마지막 밤이지만 끝이 아니라 우리 앞에 다시 새 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묵은 일들로 인하여 빗어진 많은 것들 중에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시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다시는 지난 것들 중 잘못한 일들을 털어 버릴 기회입니다

 

짐승들이 강을 건너면서 건넌 후 자기 몸을 크게 흔들어 물기를 터는 모습을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흔들어 털지 않으면 자기 몸에 있는 물기 때문에 무거워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 물기를 털어 버린 뒤 짐승들은 다시 가던 길을 진행해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지난 일들 중 필요 없는 것들이나 잘못된 일들을 털어 버려야 합니다. 이사를 갈 때에 적지 않은 쓰레기가 나옵니다. 그냥 살 때는 몰랐는데 옮기려고 하니 지금껏 같이 있었던 것들 중에는 필요 없는 것들과 함께 살아온 것들이 발견됩니다. 물론 필요는 없지만 애정의 흔적이 담겨져 있는 물건들은 버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치 않은 것들을 계속 옮겨 다닌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이 우리 몸을 흔들어 필요치 않은 것들을 찾아 털어 버릴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망년회 한다고 합니다. 인간 관계에 묵은 찌꺼기들이 있을 때 흔들어 털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지혜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의 표현으로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3:13)라고 했습니다. 물론 기억을 억지로 지워버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은 남아 있으나 그 기억에 지배당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요 곧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1:18)

 

나 자신의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면 되고, 다른 이에 대하여는 그를 주님의 형제로 보면서 변화될 것이란 소망으로 바라보면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울의 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6-17)

 

여러분! 이 말씀들을 의지하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십시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2. “다시는 처음을 회복하는 기회입니다

 

설교 본문은 바로 이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8절에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시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있었습니다. 19장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7)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19:5-8a)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는 것이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하며 거룩한 제사장이 되게 하겠다는 축복의 언약이었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 언약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언약을 기억하고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다시는 회복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새해를 그냥 맞이할 것이 아니라 회복의 날로 준비합시다. 처음을 회복하면 새해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이 약속을 본문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9b)

 

우리의 살길은 처음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새해의 비젼은 새로운 계획이 아니라 처음의 회복입니다. 새해에 시작할 목적이 이끄는 40특별기도회는 회복의 기도회입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지만, 그 내용은 새로운 목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있었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 그 목적을 우리의 삶에 회복하는 것입니다.

 

새해에 시작하려는 제자화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본래 예수님이 분부하셨던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교인을 만들거나 신자를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제자를 삼으라”(28:19)는 것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새해엔 범어교회 목회의 2기에 접어듭니다. 새로운 10년을 출발하는 새해인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목회자의 본업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회복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다시 해봅시다. 부부의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가정이 행복한 안식처가 되도록 회복시킵시다. 사업과 직장에 대한 초심을 회복합시다. 그래서 직장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생활의 터전이 되도록 합시다. 교회 생활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지루하고 감동도 없는 종교생활이 아니라 영적 활력이 넘치는 부흥을 회복합시다.

 

3. “다시는 삶의 태도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9)

 

누구나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하는 것이 바로 태도입니다. 가는 길 그대로 가고 하는 일 그대로 하더라도 대부분이 변하는 것이 있는데 열정이 식는 것입니다. 방향도 내용도 그대로이지만 열정이 식으면 쭉정이가 되고 맙니다. 아무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돌아가더라도 열정이 없이 돌아가면 무엇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열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많은 능력을 갖고도 열정이 부족한 사람보다 작은 능력을 갖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신앙의 특징도 열정입니다. 기도도 열정적으로 합시다. 예배도 열정적으로 참여합시다. 맡은 사역도 열정을 갖고 감당합시다.

 

열정이란 순간의 뜨거움이 아니라 변함없는 성실을 바탕으로 한 열심입니다.

 

마치는 말

 

오늘이 2004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남은 며칠 동안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정리하는 것 보다 오히려 새해를 향하여 다시 해보자!”는 각오를 다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자리에 있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에겐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아니 사랑하실 것입니다.

 

 

 

 

 

 

 

 

 

 

 

 

 

 

 

 

 

 

 

더 깊은 데로 나가라 (5:1-7)

 

이 시간에 더 깊은 데로 나가라라는 제목입니다. 말씀을 드리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 영접한지도 오래되었고 꽤 열심히 영적성숙과 사역의 열매들을 갈망하는 데도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만족하지 못한 수준에 있지는 않습니까?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답을 말씀드리면 그것은 더 깊이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보니까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말씀을 마치시고 그물을 씻는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지고 두 배가 잠길 만큼 고기를 잡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 따라 더 깊은 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베드로가 노련한 갈릴리 어부이면서 고기를 잡지 못했을까요? 그 동안 배우고 터득한 기술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 고정관념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뜨리고 순종했을 때 큰 수확이 있었던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우리들도 더 깊은 데로 나아갈 곳이 많습니다.

몇 가지만 말씀 드리면

 

1. 기도의 깊은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22: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깊은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그렇게 깊이 기도하셨을까요? 아버지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의 음성 속에서 사시던 주님께서 꼭 그렇게 기도하셔야만 했는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옮겨달라는 다른 생각의 목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의 깊은 곳은 어디일까요?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느낌, 내 감정을 뛰어 넘는 아버지와 영적으로 주고받는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충분히 기도해야 합니다. 개인기도는 오래 그리고 간절할수록 좋습니다. 깊은 기도 속에 성령의 위로와 응답의 기쁨을 맛봅니다.

 

미국의 석유 왕이었던 록펠러가 그랬다 잖아요. 젊은 시절 광산업에 손을 대었다가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금광을 하나 인수받았는데 이미 캐내 갈 금은 다 캐내 간 폐광이었습니다. 은행에서 빚 독촉은 날아오지 광부들은 임금 달라 폭도로 변하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록펠러는 결심하고 광산 깊은 데로 내려가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전에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마음으로 식음을 전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 깊이 파라. 때가 되면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 그래서 더 깊이 파내려 간 결과 하면서 검은 물줄기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석유였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록펠러는 미국의 석유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대 제일가는 갑부가 되었습니다.

깊이 기도해서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렘33:2-3"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넓게 기도해서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기도의 봉사를 하는 자에게 큰 은혜를 주십니다.

 

2. 축복의 깊은 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아시죠? 예수님께서 한아이가 드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은 사건 말입니다. 주면 생기고 주면 생기는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난을 지셨으므로 이 복음 하나만 잘 믿어도 성도가 경제문제로 쓰러지는 법은 없습니다.

 

고후8: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외우고 또 외우고 또 믿고 또 믿으세요. 경제의 기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쓰면 생기고 쓰면 생기는 주신 것을 잘 쓰는 청지기직의 더 깊은 데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나눔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가난을 담당하셨다고 부유하게 살기만을 추구한다면 하나밖에는 알지 못한 사람입니다. 나눔이 없는 축복은 부덕으로 취급을 받습니다. 성공하여 부유하게 사는 사람도 좋지만 충분히 부유할 수 있지만 나누며 가난하게 살았던 한경직 목사님을 더 존경합니다. 지명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그러해야 하지만 모두가 그러해야 합니다.

바울이 고후 8:9을 말씀한 이유는 경제의 확신 뿐 아니라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자기를 비워 나눔에 참여하자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후8:10-15에 계속하여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어려울수록 더 구제하시기 바랍니다. 내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 여쭈어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면 더 깊은 경제의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3. 평안의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참 평안입니다. 그래서 요14:27에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진정 평안하려면 회개하는 것입니다.

 

중세 기독교사에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티토리우스라는 유명한 수도사에게 뱀에 물려 죽어 가는 아이를 부모가 데리고 왔습니다. “수도사님은 거룩하시고 깊은 기도를 하시니 고쳐 주시옵소서너무나 간절히 매달리는 부모를 보고 티토리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아이를 구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50년 간 수도를 했고 모두가 나를 존경하지만 정직히 말하면 나는 지금도 여자를 보면 음욕이 생기고 좋은 것을 보면 탐욕이 생기며 밤이 되면 불안합니다. 그러니 저는 가짜입니다.” 이 말이 그 수도자의 입에서 떨어지자 그 아이의 코에서 숨이 새어나오면서 살아나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저도 평생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제껏 번 돈의 절반은 속여서 번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의 입에서 떨어지자 코만 아니라 입에서 숨이 터져 나오더랍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저도 똑같습니다. 저는 남이 잘된 것을 보면 배가 아팠고, 기껏 낙이란 것이 남편이 돈을 벌어다주면 돈 세는 것을 낙으로 살았습니다.” 이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 아이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섰다고 합니다.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평안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고후11:23-27절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다면서 많은 고난을 나열합니다.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8절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이처럼 기도하다 보면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 많은지 여기 저기 바라보면 심령이 평안한 날이 없습니다. 아픈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때 정말 힘이 듭니다. 이 밤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자고 있는데 나는 어찌 그걸 알아 하나님 앞에 눈물을 쏟으며 영적으로 싸워야 할 것이 그렇게도 많은지 이것이 잘못된 것일까? 그러나 잘못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모두가 누릴 더 아름다운 평화를 위해서 자기의 평안을 잠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4. 구령의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고 그가 이루신 복음에 서야 합니다. 고후13:5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했습니다. 그만큼 구원의 확신이 중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더욱 풍성한 구원을 누릴 수 있을까요? 사랑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은 영혼 구원입니다. 죽어가는 불신의 영혼을 구령하는 것입니다. 전도로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나 혼자 천국 가려고 하면 천국이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으면서도 기쁨이 없어요. 그러나 나 혼자만 천국갈 순 없잖아요 하면서 전도하는 사람은 지금 부르셔도 천국 갈 자신이 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28: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전도자에게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은 다르다는 말입니다. 8:29에도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하셨습니다. 이 충만한 함께 하심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처럼 밤이 맟도록 그물을 던지지만 얻은 것이 없습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더 깊은 데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우리 주 예수님을 따라 기도의 깊은 데로, 나눔의 깊은 데로, 평안의 깊은 데로, 전도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 풍성한 은혜의 꼴을 먹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의 질문 (2:1-6)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 시간에 성탄절의 질문이라는 제목입니다. 성탄절이 오면 궁금한 것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궁금한가요? 어떤 사람들은 산타할아버지 언제 선물 갖고 오시나요?” 하는 유치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성탄절이 무엇인가요?” 묻는 초딩 같은 질문도 있고, “동정녀란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왜 오셨나요?” 묻는 제법 주일학생의 같은 질문도 있습니다. 우리 장년들은 무슨 질문을 하시렵니까? 더 수준 높은 질문이겠죠?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질문도 의문다 다 사라진답니다.

 

성탄절의 질문, 이 말씀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성탄절에 던졌던 질문이 많았어요. 그만큼 예수님의 탄생은 놀랍고 신비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아기 예수님 나신 성탄 때에 던졌던 질문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를 위해 나신 예수님을 축하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탄 때 누가 먼저 질문을 던졌나요?

 

1. 마리아가 질문했어요.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인류의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이 날 것을 알려주었을 때 마리아는 너무나 궁금해서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질문했나요? 1:34에 그 질문이 나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그 때 마리아는 결혼하지 않은 아직 처녀였기 때문입니다.

 

처녀가 아이 낳는다는 말 들었어요? 아이는 결혼해야 낳는 거예요. 마리아는 처녀인데 아들을 낳겠다고 하니까 질문했던 거예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그러자 천사가 대답합니다.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1:35) 남자 없이도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낳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아이를 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남자 없이 하나님의 아들을 낳은 최초이자 마지막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혈통으로 나지 않으셨기 때문에 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속죄의 제물이 되시기에 합당하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성령으로 거듭 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나요? 천만예요. 성령이 임하시면 다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귀한 아들 딸들이 되는 것입니다.

 

2. 동방박사들이 질문했어요.

오늘 본문 보면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질문한 말이 있어요. 어떤 질문을 했나요? 1-2절 함께 읽어 봐요.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그랬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아기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저 멀리 페르시아에서부터 별을 연구하다가 이상한 별을 보고 찾아왔는데 갑자기 별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유대인의 왕이니까 틀림없이 헤롯 왕궁에 나셨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기관이 알려준 베들레헴이라는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동박박사들은 모두 네 명이었다고 합니다. 네 번째 박사의 이름은 '알타반'이라고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어느 장소에서 함께 만나 출발하기로 약속했답니다. 네 번째 동방박사 알타반도 함께 만나 새 왕께 경배하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박사들이 만나자고 한 약속 장소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 알타반은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알타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를 낙타에 싣고 주막을 찾았습니다.

 

주막 주인에게 죽어가는 사람을 맡기면서 새로운 왕을 만나 드리려고 준비해 간 세 가지 예물(루비, 청옥, 진주) 중 루비를 꺼내어 주며 그 사람을 잘 보아 달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서둘러 약속한 지점에 갔지만 세 명의 친구들은 벌써 떠나고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알타반은 홀로 낙타를 타고 별을 바라보며 베들레헴으로 갔지만 3명의 박사들은 사흘 전에 아기 예수께 경배한 후 돌아갔고 아기 예수는 애굽으로 피신하고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알타반은 아기 예수님을 찾아 애굽으로 유대로 이 집 저 집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하면서 아기 예수를 찾아다녔습니다. 이 집에 가서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계신가요?” 저 집에 가서도 혹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여기 계십니까??” 이 여관에 가서도 저 여관에 가서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으러 왔어요.” 왕궁에 가서도 시장에 가서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를 찾습니다." 하면서 예수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33년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많은 세월 동안 알타반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하는 질문을 하루도 해보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디서 만납니까?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 흘려 돌아가신 거기서 예수님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 후에 일어난 자세한 이야기는 다 못하지만 드디어 그 분을 찾은 것입니다.

 

우리들도 동방박사들처럼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갈망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어디 계실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고 어디든지 계시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 믿는 우리 마음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어디 계시냐?”고만 찾지만 말고 우리 안에 계심을 믿고 날마다 예배하고 원하신 뜻대로 살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또 누가 성탄절에 질문했나요?

 

3. 헤롯왕이 질문했어요.

어떻게 질문했나요? 2:7-8입니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이 말씀을 읽어보니까 헤롯왕 착한 사람이나요? 악한 사람이나요? 모르시겠어요. 다시 읽어 드릴께요.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무척 착하게 보이죠? 아기로 나신 왕을 찾으면 경배하겠나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기를 죽이려는 헤롯의 음모였습니다.

헤롯이 누굽니까? 헤롯은 유대인에 대해 무서운 증오심을 갖고 있는 에서의 후손인 에돔 사람입니다. 로마의 황제 안토니오 시이저는 유대 땅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임명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무렵 헤롯의 나이는 약 70세였습니다. 그는 헤롯 대왕이라는 칭호를 즐겨 사용했고 그 칭호를 보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든지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의심스럽다 싶으면 가족이든 누구든 모두 죽였습니다. 얼마나 죽였으면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말하기를 '헤롯의 아들이 되기보다는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했을까요?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 등 5,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고 합니다. 이 난폭한 왕이 통치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아기로 나신 유대인의 왕을 죽이려고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찾거든 알려 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요.

 

그래서 우리가 질문도 잘해야 합니다. 헤롯처럼 악한 마음 가지고 질문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예수님 생일이 1225일인가요?”라고 질문합니다. 알려고 착한 마음으로 질문하면 좋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악한 마음으로 질문하니 나쁜 사람입니다. 성탄절 축하를 방해하려고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예수님 생일도 알지 못하면서 성탄절을 지키냐고 방해해요.

 

그러나 날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셨다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성탄절을 방해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구주가 세상에 오심을 찬양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기 예수님 탄생할 때 별들도 반짝이고 천사들도 경배하고 목자들도 경배하고 동방박사들도 다 경배했습니다. 그런데 날자 가지고 늘어지는 사람은 1년 가도 10년 가도 성탄절만 비웃지 성탄을 감사하고 축하하지 않아요. 잘 한 겁니까? 잘못한 겁니까? 악한 마음으로 질문하는 헤롯의 후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헤롯과 같이 신앙인을 박해하는 나라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이 시간 전방의 애기봉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없는 저 북한에 성탄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7년 만에 다시 오색추리가 반짝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성탄절을 기념할 수 없지만 수십만 명의 기독교인이 가정과 지하교회를 통해 비밀리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이 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절에 질문이 많은 것은 그만큼 신비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고 성령으로 나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기쁜 마음으로 우리를 위해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념하고 그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어 영접하고 축하하는 복된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옥타브 낮추는 지혜 (15:1)

 

이 시간에 한 옥타브 낮추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옥타브(octave)란 아시는 바와 같이 음악 용어인데 어떤 음에서 완전 8도의 거리에 있는 음을 한 옥타브라 합니다. 가령 낮은음 도에서 높은음 도까지를 한 옥타브라고 합니다. 물리학적으로 진동수가 두 배가 되는 음정입니다. 목소리가 그 음을 내지 못한다면 욕심 내지 말고 한 옥타브 낮추어 부르면 원음은 아니지만 전체 하모니를 해치지 않으면서 무리 없이 노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도 이렇게 한 옥타브 낮추어 행동한다면 실수가 없을 뿐 아니라 지혜로운 생활이 됩니다. 우리 주님을 보세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자기를 낮추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지 않으셨다면 결코 세상에 오시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셨기에 우리 죄인들을 다 구원하시고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럼 무엇을 그렇게 낮추어서 해야 할까요?

 

1. 흥분과 감정을 한 옥타브 낮추어야 합니다.

12:16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했습니다. 이처럼 분노할 일이 있고 흥분할 일이 있어도 조금만 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낮추어야 합니다.

 

옛날 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단장이 연대에 순시 차 왔다가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연대장을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주고 구타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연대장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돌아서 나가는 사단장을 뒤에서 쏘았습니다. 하극상의 죄를 범한 연대장은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에 두 고급 장교의 부인들은 과부가 되고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 사단장도 그 연대장도 그 흥분된 감정을 한 옥타브 낮추었더라면 그런 비극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1:19-20) 말했습니다. 성내면 손해가 많지 성내서 이로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잠15:1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하였습니다. 잠언서는 지혜서입니다. 이대로 살면 우리의 삶이 참으로 지혜로워집니다.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고 했습니다. 목소리를 한 옥타브 낮추어 부드럽게 말할 때 싸움은 성립되지 않을 것입니다. 감정을 한 옥타브만 낮추는 습관을 들이면 우리의 삶은 더 부드럽고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2. 자기 위치를 한 옥타브 낮추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 어떻게 하셨나요? 2:6-8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중에 성자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높고 높은 자기 본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피조물의 몸을 입으시고 내려오신 것입니다. 한 옥타브가 아니라 수 억만 옥타브 내려오신 것입니다.

진짜 부자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다닌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옥타브 낮추는 것이 자유롭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허름한 옷차림에 벙거지 같은 모자를 썼다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고 합니다. 돈이 있어도 있는 체하지 말고, 공부 많이 하고 학위가 있어도 아는 체하면 안 됩니다. 높아도 낮게 처신하고 있어도 없는 자같이 처신하면 큰 실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높이면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4장에 예수님께서 잔칫집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 교훈하시기를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8-10) 그러시면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1) 하셨습니다.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낮추라는 교훈입니다.

 

또 고전7:31에 자기를 감추고 낮추어야 할 이유가 나타납니다. 이 세상의 형적은 다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들인데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이 세상에서 뭘 좀 있다고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좀 높으면 그게 얼마나 높고 낮으면 그게 얼마나 낮습니까? 그리고 가졌으면 그게 무슨 대단한 것이고 좀 가난하다고 그것이 무슨 상심할 이유입니까?

 

그래서 딤전6:17-18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없으면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어야 하며 있으면 있는 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자기를 높이면 작은 수치에도 모욕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낮추면 사탄의 공격을 확실히 피할 수 있습니다.

 

3. 욕심을 한 옥타브 낮추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다툼과 싸움이 욕심 때문에 생겨납니다. 욕심만 없다면 세상은 법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약4:1-2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했습니다.

 

12장을 보면 두 형제가 재산 분배 문제로 다투다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해결해달라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15) 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을 줄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대답이 명답입니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처럼 형님이 더 가지세요. 아우가 더 가져라. 아니요. 형님이 거느린 것이 많아 더 필요하시잖아요. 아니 네가 살림 시작했으니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동생은 형이 더 가지면 더 마음이 편하고 형은 동생이 더 가지면 더 가져서 좋고 이렇게 욕심만 줄이면 모든 일은 아름답게 끝날 일입니다.

 

재물이 많다고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부자가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큰소리칠 때 하나님께서 그날 밤에 그 영혼을 부르리니 그러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28:16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했습니다. 모든 고통과 악은 탐심 때문에 옵니다.

 

사람의 욕심은 무저갱과 같아서 끝이 없습니다. 명예욕도, 권세욕도, 물욕도, 너무나 큽니다. 식욕도 얼마나 큽니까? 좀 덜먹으면 편할 텐데 욕심이 병을 불러옵니다. 욕심을 한 옥타브 낮추어야 몸도 마음이 편합니다. 눈이 높아서 마흔이 넘도록 시집 못간 노처녀도 있습니다. 눈 높은 노처녀여 그대의 거울을 보라는 말이 있더군요. 30대 미만의 청년 중에 완전히 갖춘 남자가 과연 존재하겠습니까? 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한 여성은 없습니다. 한 단계 낮추어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욕심 품는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욕심은 만사의 방해물입니다.

 

4. 비판을 한 옥타브 낮추어야 합니다.

비판이 무엇일까요? 헬라어로 '크리노'라고 발음하는데 '정죄, 비난, 판단, 간주' 이런 뜻입니다. 성경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비판에는 사랑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내 가족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바꾸어놓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비판하는 자를 가리켜 작은 티는 보면서 자기 들보는 깨닫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 없음처럼 큰 흠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또 비판은 공개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도우면 좋을 것도 공개적으로 하면 상처가 됩니다. 또 비판은 감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악의적인 마음이 비판으로 나타납니다. 또 비판은 무지한 성질이 있습니다. 자기의 단점을 모르는 사람들이 남을 비판합니다. 또 비열성이 있습니다. 건실하고 훌륭한 사람이 비판하는 것 보셨어요? 훌륭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판은 성급한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하고 비난부터합니다.

 

비판하면 더 혹독하게 비판을 받게 됩니다. 남에게 손가락 하나 가지고 비판하고 흉을 보면 손가락 세 개는 나를 가리킵니다. 자기도 완전하지 못하면서 남을 비판함은 자기를 정죄함과 같습니다. 똑 같은 일을 하는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꼭 비판할 수밖에 없다면 내 눈의 들보부터 빼고 감정도 악의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를 위한 기도와 사랑으로 한 옥타브 낮추시기 바랍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비판하는 무리 속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판하는 무리와 가까이하면 비판의 논리가 생겨나서 항상 비판하는 사람이 됩니다. 마귀를 참소자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교만해서 자기 약점은 모르고 자꾸 비판하게 됩니다. 꼭 지적하고 싶다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비공개상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한 옥타브 낮출 때 그것은 귀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낮추시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주님을 하늘 끝까지 높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은혜 주시는 것은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려면 반대로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저 낮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자기를 온전히 십자가 아래 매장시키십시다. 어쩔 수 없다면 한 옥타브씩 낮추십시다. 우리 모두 흥분과 감정, 지위와 소유, 욕심과 비판을 한 옥타브씩 낮추어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가장 지혜롭고 선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인생을 사는 지혜 (16:1,3,9)

 

이 시간에 인생을 사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이 1216일 셋째 주입니다. 한해를 보내는 12월을 맞으면서 사람들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다가왔다고 아쉬워하며 너도 나도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이 살아가는 것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철부지한 사람들은 쉽다고 할지 모르지만 인생을 살아본 사람일수록 쉽지 않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혹시 긍정만을 이야기 하더라도 그 속에는 떨쳐 버리지 못하는 심각한 부정이 깔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 유명 인사들도 대부분 인생살이가 어렵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괴테는 눈물을 흘리면서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의 기간은 짧다. 그 짧은 인생도 천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너무나 길다.” 심지어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태어난 존재 자체가 악이라고 악평했습니다. 인생이 쉽다면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롭게 살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그의 도우심 속에 살면 너무나도 쉬운 것이 인생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사는 지혜일까요?

 

1. 응답 받고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1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마음의 고통이 어디서 옵니까? 답답함에서 옵니다. 되는 일은 없고 마음의 경영만 하고 있으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것들이 다 인간의 마음에 고통입니다.

 

잠수함의 생활이 힘들다고 합니다. 잠수함은 공간이 협소할 뿐 아니라 외부와의 교신이 끊겨 있기 때문입니다. 텔리비젼 시청도 전화도 할 수 없습니다. 물 속에는 전파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또 잠수함은 자기 정체를 숨기고 깊은 물 속에서 작전해야 하므로 맘대로 부상할 수 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수함처럼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받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않고 살기 때문에 고민이요 고통이요 실패입니다. 하나님께 늘 여쭙고 응답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여쭈면 응답을 가진 천사가 내려옵니다. 다니엘이 기도할 때도 응답의 천사가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문제가 있으면 오다가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하면 분명히 응답하셔요. 문제는 나의 영적 상태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십니다.

 

인생을 살 때 기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아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응답까지 걱정하지 말고 물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은 여쭙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은 이제 하나님께 넘어갑니다. 이 기도의 소통만 잘되면 인생을 사는 것은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2. 맡기면서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우리나라 최고의 경영자는 삼성 이건희 회장입니다. 1993년 질보다 양을 우선하던 삼성은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사건을 계기로 양에서 질로 돌아선 다음 기업은 급성장하여 25년간 시가총액이 303배 늘어나고 국내 수출의 28%를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 삼성은 인류 초인류기업이 되기 위해서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 “질 없는 양은 없다.”는 경영 철학을 가지고 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경영 잘하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우리를 도울 수 없습니다. 그는 경제만 잘 할 뿐입니다. 그러나 최고의 경영자는 누구실까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최고의 경영자 하나님께 맡기면 쉽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농사하여 100배나 얻고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거부가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두 배에 가득하게 잡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최선을 다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혜 주심과 인도대로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을 아시지요? 피에르 가르뎅 상표는 세계 유명상표입니다. 그런데 피에르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는 언제나 세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1단계 기도입니다. 먼저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2단계 제비뽑기 단계입니다. 이번 유행은 치마를 짧게 할 것인가? 길게 할 것인가? 빨강으로 할 것인가? 노랑으로 할 것인가? 제비를 뽑습니다. 16:33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했기 때문입니다.

 

3단계 일단 결정하면 성공할 때까지 끝까지 합니다. 쉬지 않고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같은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에디슨도 노력가였지만 그가 발명왕이 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아이디어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도 국가의 경영을 위해 여호와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라는 말씀입니다.

 

3. 인도 받아서 사는 인생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우리 모든 각인에게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라고 붙여준 천사가 있어요. 인도 받지 못한다면 우리 책임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폐결핵에 걸렸습니다. 그는 입으로 피를 쏟으면서 요양원 죽음의 병동에서 절망을 안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병실로 나비가 날아 들어왔습니다. 나비는 나가지 못하고 창문에서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나비를 잡아 밖으로 내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비는 잡히지 않으려고 맹렬하게 도망쳤습니다. 나비는 자기를 살려주려는 목사님의 계획을 모르고 날개를 상하면서까지 도망 다녔습니다. 목사님은 중얼거렸습니다. “저 모습이 내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계획을 가지고 계신데 나는 도망 다니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억만 배 더 현명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묻는 사람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7:6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그러므로 늘 여쭈시기 바랍니다.

 

광야 같은 세상이지만 사탄의 시험이 물러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여기도 천국입니다. 119:165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했습니다. 우리 인생길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한없이 평탄하지만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면 한없이 험악합니다.

 

그리고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을 하십시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 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하셨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하셨습니다.

 

혹시 고난이 주어지더라도 성도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연단일 뿐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10: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험하고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하나님께 응답 받고 항상 문제를 맡기고 인도하심의 도우심을 받아 우리 인생길에 가장 행복하고 많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가장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송구영신

(삼상 7:12-14)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가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 7:12)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정리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것입니까?

실로 묵은 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새해가 복된 해가 될 수도 있고, 불행한 해가 될 수도 있으며. 성공적인 해가 될 수도 있고, 실패의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불신자들은 송구영신회(망년회)라고 해서 밤새도록 부어라,. 마셔라 하며 정신을 잃고 죄를 물 마시듯 하며 한 해의 마지막을 뜻 없이 보냅니다,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은 묵은 해를 올바로 보내야, 오는 새해가 .더욱 발전적이며 밝고 복된 해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묵은 해를 옳게 보내고 새해를 바르게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의 세가지 마음을 가지고 송구영신할 때 분명히 오는 새해는 복된 해, 성공적인 해가 될 줄 믿는 바입니다.

 

1.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요 지도자인 사무엘은, 블레셋 나라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잃었던 땅의 회복하고 난 뒤에, 과거를 회상하며 돌을 하나 취하여 세우고 '에벤에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에벤에셀이란 본문에 있는대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감사의 표현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기쁨은 모래에 새기고, 고통은 돌에 새겨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쁜 일들은 쉽게 잊어버리고 나쁘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오래 간직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보다 더 인정받고 축복 받는 사람이 되려면 지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한 마음을 일깨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점점 더 큰 감사의 조건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지난 한 해 동안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받은 바 하나님의 크신 보호와 사랑과 은총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슬픔도, 고통도, 실패도 많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먼 훗날 지내놓고 보면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진정한 유익과 행복을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날이 반드시 오게 됩니다. 할레이 M 로젠버거(Harldigh M. Rosenbdrger)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절묘한 색깔을 가진 여러 타래의 실로 엮어 짠 한 폭의 금주단과 같다. 거기에는 성공의 금색깔도 있고, 고통의 진홍색깔도 있고, 슬픔의 침침한 색깔도 들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은 아름다운 모양을 이루게 된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랑과 지혜의 옷감을 짜도록 도우신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무슨 일을 당했든지, 모든 일을 합동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믿는다면, 과거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은 해를 보내는 사람에게 보다 큰 축복의 새해가 다가올 줄로 믿습니다.

 

2. 잊어버리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스름한 달밤에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고 밤새도록 노를 저었습니다. 팔이 아프도록 노를 저었는데 동틀 무렵 술이 깨서 보니 배가 제자리에 있더랍니다. 왜 그런가 하고 자세히 보니까 풀었어야 할 거룻줄(배의 밧줄)이 육지에 매인 채로 노를 저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해가 보다 진취적이고 성공적인 해가 되기 위해선 털어버리고, 청산하고, 잊어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억울했던 일, 분했던 일, 손해봤던 일, 수치스러웠던 일, 슬펐던 일들을 그대로 가지고 새해를 맞지 말고 깨끗이 털어버리고 잊어 버려야 오는 새해가 복된 해, 성공적인 해가 되는 것입니다.

 

48:18,19에 보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잊어야 할 것은 깨끗이 잊어버려야 하나님께서 새해에 새로운 일들을 나타내십니다. 불행했던 과거, 슬펐던 과거, 실패했던 과거를 되새기며 과거에 붙잡혀 사는 사람차고 행복한 생활, 복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노르만 빈센트 필 박사(Dr. Morman Vincent Peale)는 사람이 매일 세수하고 몇 차례씩 손을 씻듯이 하루에 두 번 이상 마음 을 세척, 정화를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노이로제나 정신분열증은 대개 마귀가 갖다 주는 병인데, 이러한 정신질환 환자의 대부분이 과거의 일들, 즉 돈 손해본 것, 실연해서 억울했던 마음, 수치스러웠던 일들을 빨리 씻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지난 일들을 잊어버리게 하는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놓습니다. 마귀는 불필요한 과거를 자꾸 생각하며 고민하게 만들고 잠 못 자게 합니다. 그러므로 찬송과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묵은 해의 좋지 못한 일들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청산하고,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스탠리 스타인(Stanry Stein)이라는 사람은 문둥병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했는데 눈까지 멀게 되자 자살하려 하다가 마음을 고쳐 먹고 살아야겠다고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되려는 결심을 하고 '작가가 되는 법'이란 책을 책방에서 사 가지고 왔습니다. 비록 눈이 멀어 읽지는 못하지만 읽어줄 사람이 있었기에 낙심하지 않았고, 손가락이 없어져 쓸 수는 없었으나 녹음기가 있기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잃어버린 것들을 슬퍼하는 대신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들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려 한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같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축복하셔서 복된 미래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3. 회개하는 마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향하는 첫 발걸음이요, 회개는 축복과 은혜의 전주곡 입니다. 회개가 없이 하나님께 가까이 간 사람이 없고, 회개가 없이 큰 은혜와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옛날 증기 기관차가 운행될 때의 일입니다. 한 기관차가 석탄불도 잘 타고 물도 충분하고 기름도 잘 쳤는데, 이상하게 움직이지 않더랍니다. 웬일인가 하고 기관차의 각 부분을 자세히 조사해 보니 어느 파이프에 독사 한 마리가 곡 끼어있더랍니다. 물을 담을 때 물에 빠져 죽은 뱀이 따라 들어가 그 파이프를 메워버렸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가 우리의 심령을 가로막고 있으면 기도가 막히고, 은혜가 막히고, 축복이 막힙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를 회개할 생각은 않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니 '이제는 하나님도 늙으셔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시고 우리를 도와줄 팔의 힘도 없으신가 보다' 하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59:1,2)고 하셨습니다.

 

위대한 성도들은 하루도 회개하지 않고 지나는 날이 없이 그날의 죄를 그날 그날 회개했으며, 회개하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 없었습니다. 하물며 묵은 한 해를 보내는 이 마당에 회개하지 않고 어떻게 새해를 맞이하겠습니까?

 

복된 새해를 맞이하려면, 묵은 해를 깊이 반성하여서 자신을 하나님의 빛 앞에 적나라하게 내어놓고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51:10을 보면, 다윗은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했으며, 51:17에서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51:17)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회개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솔직해야 합니다. 거짓과 위선의 껍질을 뒤집어 쓴 사람은 회개와 거리가 멉니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자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개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애통하고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하는 찬송이 진정한 내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회개한 성도는 무엇보다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이며,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직도 마음과 생각 속에 죄악이 들어차 있지 않습니까? 생활 속에 죄악이 물들어 있지 않습니까? 복된 새해가 되려면 진실하고 간절하게 회개해야 됩니다. 보통 기도로 안되면 철야기도로 하든지, 금식기도로 하든지, 좌우간 철저히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8:13,14에 보면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니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요일 1:9에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복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며 우리의 죄를 자복할 때, 자복하는 그 순간, 예수님의 보혈로 다 씻어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묵은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불평, 불안, 원망의 요소가 되는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잊어버려야 될 것이며, 무엇보다도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부디 복되고 밝은 새해가 여러분들 앞에 펼쳐지시길 축원합니다. -아 멘-

은혜를 받읍시다 (103:1~4)

 

이 시간에 은혜를 받읍시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시편 103편은 참으로 아름다운 시편입니다. 이 시편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23편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귀하신 은혜가 주옥 같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은혜 받아야 좋은 성도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처럼 은혜를 받아야 좋은 성도입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만족함을 누릴 뿐 아니라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아 누려야 할 은혜는 어떤 것일까요?

 

1. 죄악을 사함 받는 은혜입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이 죄악을 사하신다는 것은 용서와 아울러 깨끗이 씻음 받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어 영원한 속죄를 받았지만 때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마음의 악은 진실로 뉘우치고 씻어야 합니다.

 

인간사의 모든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인간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악이 있습니다. 큰 죄, 작은 죄, 아는 죄, 모르는 죄, 단점, 결점, 허물, 이런 것들이 다 죄악입니다.

 

위대한 성인들도 죄가 있었습니다. 의인 노아도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벌거벗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약속을 믿지 못하고 첩을 얻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시골 목동에서 일약 왕이 되는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사악한 죄를 저지릅니다. 그리고 그 죄를 감추려고 사기죄를 범하고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자 충성된 부하를 최전방에 내몰아 죽게 만드는 살인죄를 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28:13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했습니다. 죄 사함 받는 은혜는 큽니다. 죄 사함 받아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모든 삶은 정상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아야 새 사람이 됩니다. 주홍 같은 죄라도 진홍 같은 죄라도 깨끗해집니다.

 

2.치유의 은혜입니다.

3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아프십니까? 아프다고 슬퍼 말고 치유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프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아프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이 육체를 가졌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육체를 주신 것은 은혜를 갑절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영혼으로만 아니라 육체로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인간 말고 어떤 피조물도 누릴 수 없는 은혜입니다. 세상 말로 따블의 복입니다.

 

그러나 또한 육체를 가졌기에 질그릇을 지고 가는 옹기장수와 같습니다. 항상 조심해야 하고 죄를 짓거나 함부로 해서 깨뜨리게 되면 고통이 따라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질그릇 같이 약한 육체를 주신 것은 늘 겸손하게 살라고 그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으면 건강합니다.

우리 몸에 의사가 있습니다. 뇌가 의사입니다. 뇌가 나서면 쉽습니다. 병든 신체의 부분은 신경과 혈류가 약해 스스로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늘 마사지하여 아픈 부분을 행복하게 하면 뇌가 그 부분의 문제가 해소된 줄 알고 신경과 혈류를 정상으로 내려 보내는데 그것이 기적의 치유입니다. 아픈 곳을 늘 마사지 해주세요. 무릎이 아프면 오금을, 고관절이 아프면 고관절에 마사지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천 번 만져도 하나님이 한 번 만지심보다는 못합니다. 주님이 만지실 때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걸으며 귀신이 쫓겨 나가고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주님이 만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만져 주셔야 온전합니다.

 

3. 인자와 긍휼하심을 받는 은혜입니다.

 

4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우리 인간은 당연히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 받아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지옥의 파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서 사셨습니다. 인자와 긍휼로 덮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과 긍휼이 끝난 건가요? 아닙니다. 지금도 성령으로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부어지는 사랑을 날마다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절망적 상황에 있다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자비와 긍휼의 히브리 원문은 '라함'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라함은 '레헴'이라고 하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레헴'이란 바로 자궁을 의미합니다. 어머니의 자궁 같이 따뜻하고 포근하고 자비롭고 은혜로운 곳이 있겠습니까? 성령의 은혜가 그와 같습니다.

2:13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했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긍휼을 베풀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채찍을 돌이키시는 것입니다.

 

4. 소원으로 만족케 하시는 은혜입니다.

 

5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늘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독수리와 같은 청춘으로 새롭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독수리의 수명은 보통 40~60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독수리가 40살 정도가 되면 부리는 구부러져 파고들어 쫄 수 없고, 발톱은 낡아 먹이를 낚아챌 수도 없고, 날개는 투박하고 무거워서 날기도 힘든 볼품없는 새가 됩니다. 이 때 대부분의 독수리들은 사냥하지 못해 죽음을 택합니다.

 

그러나 어떤 독수리는 높은 바위에 둥지를 틀고 거기서 150여일을 홀로 지내면서 구부러진 부리를 바위에 쪼아 새 부리로 바꾸고, 다시 그 새부리로 자신의 발톱을 뽑고 깃털을 뽑으며 150일을 보내면 독수리는 다시 청춘으로 하늘의 제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은혜 받으면 아무 쓸모없는 자일지라도 제 2의 생애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요? 아닙니다. 은혜를 받으면 귀한 사람이 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몰려옵니다. 멋진 제 2의 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은혜를 받습니까?

늘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1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송축이란 송영 혹은 영광의 노래를 말 합니다. 그러니까 늘 하나님과 그 말씀과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은혜를 받으려고 마세요. 잘못하면 시험 듭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높이시매 예수께서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부여주셨다 했습니다. 이처럼 나의 교만을 내려놓고 날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은혜를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잊어버릴수록 좋습니다. 나를 잊고 늘 하나님을 높이세요. 그것이 은혜를 받는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라.”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 우리 모두 은혜를 받으십시다. 하나님을 늘 송축하십시다. 그래서 죄 사함과 치유와 사랑과 긍휼과 만족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