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설교

죽음의 유익 (빌 1:20-24)

공 상희 2012. 5. 16. 15:30

죽음의 유익 (빌 1:20-24)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사도 바울은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를 만큼 확실한 천국 체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천국이 너무 좋아 천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어서 육신을 벗고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23절에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다고 말했을까요? 이처럼 바울은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욱 좋지만 지상의 맡겨주신 사명 때문에 떠날 수 없는 두 갈림길에서 방황했습니다.


행복한 방황입니다. 바울은 죽음의 공포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21절의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바울의 말을 잠시 묵상하고자 합니다.


왜 죽음이 유익할까요?


1. 죽음은 현세의 모든 악을 제거해 줍니다.


우리가 육신이 있는 동안은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얽매이기 쉽습니다. 혹은 서로 간에 다투고 싸우고 미워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벗으면 이 모든 시험에서 이별하게 됩니다.


구원 받은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그의 피로 깨끗이 용서되었으므로 형벌 받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죄의 형벌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하신 영적 훈련의 절정입니다.


2. 죽음은 고통과 슬픔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이 땅 위에는 슬픔과 고통의 한숨 소리가 그칠 날이 없습니다. 경제적 문제, 건강의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이 고통을 줍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시55:6에 시편 기자는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했겠습니까?


그러나 죽음의 너머로 가면 배고픔도 없습니다. 질병의 고통도 없습니다. 더위도 추위도 밤도 없고 어둠도 없고 죄도 없습니다. 마귀의 시험조차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불신자의 고통은 더 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죽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존전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강도처럼 죽음을 통해 가장 복된 이 행복을 선물 받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이 유익하지 않다면 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을까요?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아주 커서 죽음의 공포를 멀리 없애버릴 큰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믿고 천국 백성 될 뿐 아니라 바울처럼 사명이냐? 천국이냐? 두 갈래 길에서 방황하는 천국 확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