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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아버지의 눈물과 어머니의 그 사랑 (삼하18:31-33)

공 상희 2012. 5. 9. 15:40

아버지의 눈물과 어머니의 그 사랑 (삼하18:31-33

한국 최고의 문화 지식인을 들라면 단연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이름이 나올 것입니다. 그의 박학다식은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바였고 그가 쓴 책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스테디 셀러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이어령씨가 요즘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종교도 문화 현상의 한 부분으로 정의했던 그가 이렇게 전격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닥친 시련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민아라는 아주 자랑스런 딸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 딸은 공부도 잘 해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녀는 LA의 지방 검사로 청소년 마약 문제를 다루는 교민사회에서는 성공한 인물로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그런 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시련의 먹구름이 다가왔습니다. 1992년 갑상선 암에 걸려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습니다만 암이 재발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치원에 들어간 작은 아들이 특수 자폐아판정을 받았습니다. 자신도 암과 투병을 하면서 자폐아 아들을 키우기 위해 그녀는 모든 공직을 내려 놓아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사정을 해야 했던 일, 그리고 암이 재발하면서 서서히 시력을 잃어 조만간 시각 장애자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이런 딸의 모습을 가슴 아파하면서 지켜보던 아버지 이어령 씨가 딸을 한국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딸과 손자를 위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토록 고고하던 세계적인 지성이 성경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그 성경 말씀을 진리로 믿지 못했던 그가 사랑하는 딸에게 닥친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딸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버지의 이 애타는 간절한 심정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딸의 망막까지 재발된 암은 깨끗이 나았고 손자의 자폐증까지 치료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자식의 문제라면 불 속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1. 아버지의 가슴 깊이 흐르는 눈물


성경에도 이런 아버지가 나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아들이 솔로몬과 압살롬입니다. 두 아들은 여러모로 비교가 됩니다. 솔로몬은 그런대로 효자입니다. 다윗이 후계자로 생각할 정도로 모범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달랐습니다. 성격이 포악하고 권력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습니다. 다윗의 근심 덩어리였습니다. 결국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반역을 꾀했습니다. 불효막심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압살롬이 죽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토벌군과의 전투에서 압살롬이 전사를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아들이지만 원수같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잘 죽었다는 것입니다. 천벌을 받아 죽었으니 고소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패역한 아들로 인한 피해의 당사자인 다윗은 어떻습니까? “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사무엘하 18:31-33) 고 했습니다. 다윗이 몹시도 슬퍼했습니다. 진심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여러분은 다윗의 이 마음을 이해하십니까?

참으로 대조적인 반응입니다. 백성들은 기뻐했지만 다윗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도 슬펐습니다. 오죽 괴로웠으면 ‘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이라고 까지 했겠습니까?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압살롬의 죽음을 반기고 기뻐했습니다. 아비를 배신한 불효자인 아들 압살롬 그로 인해 나라가 시끄럽고 전쟁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기뻐했지만 다윗은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아버지는 효자나 불효자나 가리지 않고 사랑합니다. 효자만을 끔찍하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자식 편입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했든 무슨 짓을 저질렀든 자식을 보호하려 합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은 전쟁의 승리, 곧 이기는데 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관심은 오직 압살롬의 안부에 있었습니다. 다치지는 않았는지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닌지 이런 데만 신경이 쓰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능력과 재능 그리고 출세 성공 여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아내도 그렇고 자녀들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무능한 남편 무력한 아버지의 설 자리는 점점 없어져 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버이는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더 염려합니다. 아무리 불효 막심한 아들이라도 그에게 어려움이 닥쳤다면 잠을 못 이루는 분이 아버지이십니다. 세상에 아버지에게 반역하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패역한 압살롬은 마땅히 죽어 없어져야 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닙니다. 압살롬의 잘 못이 자기의 죄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내가 대신 죽었더라면....’

비록 사람들의 돌 팔매를 맞을 만큼 악하다 할지라도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자기 목숨과 바꿀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토록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바로 읽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말해 줍니다.
이사야 1장에 보면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 갔도다’ 라고 했습니다. (사 1:4) 그리고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3절) 라고 까지 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식 노릇은 커녕 짐승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압살롬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아니라고 항변할 사람 있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대 하십니까? 다윗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슬퍼했습니다. 내가 대신 죽었더라면 이라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범죄하는 우리를 가슴 아프게 지켜 보십니다. 그리고 그 범죄의 결과로 멸망의 길로 걸어가는 우리를 보시고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위해 대신 죽을 수가 없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베푸신 사랑과 은혜가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어디 아버지의 사랑만 그렇습니까?


2.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


김진호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자폐증을 가진 수영선수입니다. 아버지는 의사이고 그의 어머니는 아주 세련된 인테리 여성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자폐증 환자였습니다. 이 상황을 처음에는 진호 엄마는 인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왜 하필이면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혼란스러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측은해 하고 동정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의 병을 인정하고 그 치료를 받기 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는 중에 전도를 받고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기적만을 바라는 믿음으로 교회를 열심히 나갔지만 마음에 평안은 없었습니다. 도리어 왜 성경에는 그많은 기적들이 나타나는데우리에게는 하나님은 이리 무관심하실까 좌절도 되고 원망도 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 아들이,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이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로 무거은 짐을 안겨 준 이 아들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아 지금의 네 아들은 내 사랑하는 자녀이란다. 그럼에도 나는 네게 선물로 주었단다. 이 아들로 인해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원한다. 그는 내 아들이다 그를 향한 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거라‘

주님의 이 음성을 들은 진호 엄마는 밤새 통곡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의 아들인줄로만 알았는데 이 연약한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자 그동안의 모든 고통과 눈물이 다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어찌해서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시련을 주십니까?’ 하고 발 버둥치면서 원망 불평했던 그에게 평안이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일들이 기억이 났습니다. 진호 때문에 같이 죽을 계획을 세웠던 일, 정규학교에서 입학을 거절 당했을 때의 잊을 수 없었던 수치심, 그리고 시시 때때로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진호의 병 치레..... 이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진호보다 먼저 진호 엄마를 치료하신 것이었습니다. 진호가 자기 인생의 걸림돌로 여겨왔지만 이제는 축복의 통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호로 인해 어떠한 고통이 생긴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하나님의 아들인 진호를 내 마음대로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키우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나자 진호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지혜와 방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도 입학이 되고 아이도 순해지고 또 수영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고 건강해지기 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로 2005년 세계 장애인 수영대회에서 자랑스런 금메달까지 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기 까지 진호 엄마는 몇 번이나 진호와 함께 죽기를 원했습니다. 아니 진호가 건강하게 살 수만 있다면 자신은 수십 번 수백 번이나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세상의 어머니보다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식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악처’는 있어도 ‘악모’는 없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어머니들이 많이 나옵니다.

왕상 17장에 사르밧 지방에 사는 한 과부가 나옵니다. 남편은 없고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삽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과부가 살아가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생활은 궁핍할 대로 궁핍했습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힘겨웠습니다. 그러다가 양식도 다 떨어졌습니다.

자신은 굶어죽든 어떻게 죽은 상관이 없는데 이 아들만이라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에게 먹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거리에서 땔감을 주웠습니다. 아들에게 먹일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는 이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어머니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그 곳으로 보내서 과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과부의 집에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녀는 엘리야에게 자기가 먹을 양식 전부를 드렸습니다. ‘나는 굶어 죽더라도 이 아들만은 살려 주십시오’ 라는 심정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헌신 덕택에 아들과 함께 평생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주셨습니다.

그런 후에 이 아들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엘리야에게 목숨을 걸고 매달렸습니다. 결국 엘리야가 죽은 이 아들을 다시 살려 주었습니다. 비로소 이 과부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자식들 걱정으로 단 하루도 발을 편히 뻗고 살지 못하는 분이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이십니다.

솔로몬에게는 아도니야라는 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도니야가 어머니 밧세바에게 간청을 합니다. 아버지의 후궁이었던 아비삭을 자기에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결국 자기가 왕이 되겠다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밧세바는 괴로워 합니다.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내용이 솔로몬에 귀에 들어갑니다. 당장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어떻게 합니까? 죽입니다.

권력 앞에 형 동생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가정적 비극에 가슴이 멍드는 사람은 어머니 한분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렇게 항상 가슴이 철렁 무너져 내립니다. 조마조마하고 편할 날이 없습니다.

요즘은 권력이 아니라 돈 앞에서 형제간의 다툼도 빈번합니다. 특히나 재산 문제 또는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로 많이들 다툽니다. 어떤 가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5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명도 노모를 모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회의를 한 답시고 한 자리에 모여서 하다가 서로 싸움이 붙었습니다. ‘네가 모셔라 무슨 소리냐 우리는 모실 수가 없다’ 그러다가 서로 주먹질이 오고 갈 정도로 험악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건넌 방에서 이 모습을 지켜 보던 어머니가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그만 아파트 10층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지 맙시다. 마 15장에 한 가나안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의 딸이 귀신이 들렸습니다. 고쳐주심을 바라고 주님께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오셨다는 말씀을 하시고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인 이 여인을 당시의 풍습대로 ‘개’로 취급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옳소이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개로 여기고 주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라도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자 그 즉시로 딸의 병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자녀의 일이라면 어떤 모욕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어머니입니다. 절대로 양보 못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자녀를 위해서 라면 자존심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버릴 수가 있습니다.

평생을 시각 장애로 살아가던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수술을 하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건강한 안구를 기증받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수술을 의뢰했더니 안구 기증자가 모자라서 한 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 년이 아니라 몇 십년이 걸릴지 기약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절망했습니다. 한 줄기 소망이 빛이 사라졌습니다. 자신의 삶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기증자가 나타났으니 수술 준비하라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대성공이었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제 붕대를 푸는 일만 남았습니다. 붕대를 푸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 감격적인 순간 그가 제일로 먼저 본 것은 어머니의 눈에 붕대가 감겨진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 합니다. “얘야, 미안하다. 내가 두 눈을 다 주었으면 좋겠지만 내 두 눈을 다 주면 실명한 이 애미를 데리고 네가 얼마나 고생이 많겠니? 그래서 하나밖에 줄 수 없구나”.
어머니의 사랑은 고통 가운데 주어진 사랑입니다.

우리가 외로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어머니입니다. 누구에게나 첫 사랑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항상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3. 우리의 참된 어버이이신 하나님


가정의 달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누구입니까? 어떤 분은 성령님이라고 합니다. 성령님의 사역이 여성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삼위 하나님은 성별이 없으십니다. 요즘은 여성단체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만 하지 말고 어머니로 표현하자고 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고 해서 남자의 성별로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더라도 우리는 어머니의 개념까지 포함된 어버이로서의 하나님을 의식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어머니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고아가 왜 불쌍합니까? 시험을 잘 쳐도 기뻐해 줄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도 아버지 ....어머니.... 마음 놓고 부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고아는 아버지를 부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서나 언제든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복음서에서만 아버지의 이름을 170번이나 부르셨습니다. 그토록 좋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을 소개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님을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부모님을 먼저 보내주셨다”

그분들이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향한 우리의 책임과 의무를 계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아버지 어머니를 공경합시다. 그래야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아니 하나님을 경외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이어령 씨나 진호의 엄마 보다 못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처럼 사르밧 과부처럼 가나안 여인처럼 자녀를 위해서 진심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고 나는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먹이시고 병을 고쳐주기 위해서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달게 받으시는 그런 분들이십니다. 이런 아버지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영원한 어버이가 되시는 하나님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어버이의 사랑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한 징검다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본분을 다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