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부활하신 예수님
설 교 : 조 용 기 목사
말 씀 : 사도행전 1:1~5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콩트(Auguste Comte)와 영국 시인 칼라일(Thomas Carlyle)이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콩트가 의기양양하게 “나는 지금 기독교를 대신할 수 있는 완전한 종교를 창설하기 위해 구상 중에 있습니다. 그 새로운 종교는 완벽하고 분명한 종교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칼라일은 “새로운 종교를 만든다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당신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도 예수님처럼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당신이 만들려는 종교가 생명 있는 종교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 이후 무덤에 계시다가 3일 만에 부활하사 사십일 동안 확실한 증거로 살아계심을 제자들에게 친히 보이셨습니다. 십자가 후 지리멸렬하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모여 그들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부활해서 나타나신 사건이 대략 이러합니다.
<본론>
1.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
첫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부활한 첫날에 처음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에 바르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장사지낸 산언덕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햇빛이 비취고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은 뿌연 안개 속에 걸어가면서 그들은 걱정을 했어요. “누가 무덤 문을 막아 놓은 돌을 옮겨 줄 수 있을까? 로마 군인들이 과연 우리가 그리스도의 시체에 향품을 뿌릴 수 있도록 하락해 줄까?”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무덤에 가까이 오는데 큰 지진이 나고 하늘에서 빛이 비취더니 태양과 같이 빛난 천사가 와서 무덤의 돌을 옮겨 놓고 그 위에 앉아 있는데 수비하는 군인들은 혼비백산해서 사색이 되어 다 뿔뿔이 도망을 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이 떨면서 서있는데 천사가 하는 말이 “네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찾는구나. 그리스도는 무덤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그의 무덤을 보라.” 그래서 여제자들이 무덤을 들여다보니 무덤을 비어 있었습니다. 천사가 하는 말이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그중에 발이 빠른 막달라 마리아는 빨리 그 무덤 근처 동리에 있던 베드로와 요한의 집에 가서 고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무덤의 시체가 사라졌다. 또 다른 제자들은 다른 여제자들은 다른 제자들이 있는 곳에 이 소식을 전하려고 뛰어 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빨리 뛰어와서 무덤에 도달해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과연 예수님의 수의만 있고 시체는 온 데 간 데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떠나가고 막달라 마리아 혼자 앉아서 울고 있는데 햇빛이 쫘악 아침에 비취니까 앞에 그림자가 비취는데 사람이 뒤에 서있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가 산적인줄 알고 “만일 우리 주님을 당신이 가져갔으면 내게 알려 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원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마리아!” 그렇게 말씀하시자 그 음성에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인줄 알고 너무나 감격하여 돌아와 보니 예수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이여!”하고 주님을 잡으려고 하니까 주님께서는 “마리아여 내 몸에 손대지 말라. 나는 아직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였느니라. 너는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너희 하나님, 나의 하나님, 너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께로 내가 올라간다 하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주님은 사라졌습니다. 제일 먼저 주님께서는 무덤에서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주님은 서둘러 여제자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보고하러 뛰어가는 그 앞길을 막고 나타나셨습니다. 다른 여제자들이 뛰어 가다가 예수님이 앞에 나타나신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그 앞에 경배하고 그 발을 붙잡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난 다음 제일 먼저 여인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놀랍게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때도 하와가 먼저 먹고 아담에게 선악과를 준 것처럼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도 제일 먼저 부활을 보신 분은 여인들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먼저 보고 제자들에게 가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고 그는 무덤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다음 예수님께서는 좌절하고 낙심하고 절망에 처해있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고로 완전히 자책감에 짓눌려서 살 희망조차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것은 얼마나 큰 자비와 긍휼인 것입니까?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야, 네가 내 수제자로써 나를 세 번이나 무른다고 저주하고 맹세하여 부인할 수 있느냐? 그럴 수가 있느냐?” 그렇게 말씀하실 예수님이신데 주님은 좌절하고 상처 입은 제자들 찾아갔습니다. 부활하신 모습으로 격려하고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두 제자가 낙심해서 이제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엠마오로 내려가는데 대낮쯤 예수님께서 함께 그 일행에 참여하셔서 같이 걸어가는데 제자들이 너무나 낙심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들이 왜 그렇게 낙심했느냐?”라고 묻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줄 모르고 “당신은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오늘 일어난 일을 모릅니까? 위대한 선지자요, 우리를 구원하실 줄 알았던 예수께서 억울하게 누명을 덮어 쓰고 십자가에 못 박여 죽으신 것을 모릅니까? 우리 중에 여제자들이 무덤에 갔다가 시체를 발견하지 못하고 부활했다는 말은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너무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성경을 인용해서 구약성경에 모세와 시편을 들어서 어찌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믿지 않느냐고 꾸짖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그들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습니다. 날이 기울어지자 그들이 여관에 들어가서 묵고 가자고 강요해서 이분과 같이 여관에 들어가서 식탁에 앉아 떡을 뗐는데 이분이 떡을 떼고 축사를 하는데 눈이 뜨이자 보니까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인줄 알아보자마자 예수님은 공기 속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두 제자가 너무나 놀래서 그길로 예루살렘으로 뛰어 오니까 열 제자들이 모여 있는데 열 제자들이 하는 말이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고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고 흥분해서 야단입니다. 그러니까 두 제자가 “우리도 길을 가다가 엠마오에서 주막집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해서 모두다 감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늦게야 찾아온 도마가 그들에게 “뭐 예수님이 나없을 동안에 이 자리에 나타났다고?” 왜냐하면 열 제자가 모였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와서 그것을 보고할 동안에 예수님이 그 가운데 나타나셨거든요. 예수님이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을 있을 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늦게 도마가 와서는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우리는 그 부활하신 모습을 보았다고 하니 껄껄껄 웃으면서 하는 말이 “모두다 여인들의 히스테리에 함께 동참 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여자들은 혹 히스테리에 걸려서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야단법석을 할런지 모르겠지만 당신들이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나는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고 그 못 자국에 손을 넣어 보고야 믿지, 그렇지 않고는 믿지 않는다.” 라고 그렇게 그는 비웃었습니다. 그런 후에 여드레 만에 또 주일날 오후에 제자들이 함께 모였는데 홀연히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도마를 보시고 “도마야, 내 못 자국에 손을 넣어 보아라.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아라. 그리고 믿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주여,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여 하나님이시니이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네가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열 한 제자에게 모두다 살아계신 것을 뚜렷이 나타내시고 난 다음 “내가 너를 갈릴리에서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모두다 갈릴리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일곱 제자들이 모여서 있는데 예수님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기 때문에 언제 어느 곳에서 나타날지 모르므로 그냥 앉아서 기다릴 수만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이 “나는 고기 잡으러 간다.” 그러니까 일곱 제자들이 따라서 “우리도 간다. 우리도 간다.” 함께 나가서 옛날 배를 끌어내고 그물의 먼지를 다시 털어서 그들은 갈릴리 바다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새벽녘이 되니까 안개가 뿌옇게 끼어 있는데 해변에서 어떤 분이 서서 “얘들아,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으니 제자들은 “아니요. 한 마리도 없습니다.”라고 하니까 그 분이 하시는 말이 “그렇다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보라. 고기를 잡을 것이다.” 그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니까 너무 고기가 많이 매워져서 그물이 찢어지려고 했습니다. 그때 요한이 하는 말이 베드로 보고 “주님이시다.” 베드로는 그대로 겉옷을 걸쳐 입고 물속에 뛰어 들어가서 헤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그 그물을 끌고 해변에 나와서 보니 예수님이 이미 숯불을 피워 놓으시고 떡을 구워 놓으시고 고기를 구워놓고 제자들을 기다리십니다. 제자들에게 떡을 주시고 고기를 주시고 그 다음 그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 부인했으니 세 번 시인하게 했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고 세 번 베드로로 하여금 내가 주를 사랑한다는 긍정을 하게 하시고 상처 입은 그 마음을 완전히 고쳐 주시고 다시 제자로써의 본직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주님께서 또다시 갈릴리의 어느 산에서 열한제자들 다 불러 모아 놓으시고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또다시 베다니에서 제자들을 만날 것을 종용하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열심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병 나은 사람들에게 연락도 하고 죄 사함 받은 사람에게도 연락도 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만날 때 약 5백 명의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구름떼같이 모였는데 예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셔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난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16:19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고 했고 누가복음 24:50~51에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으신 후에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를 확실히 증거 하시고 주님이 사망, 권세 이기고 부활하신 모습을 뚜렷이 드러내셨습니다.
사도행전 1: 9에 보면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3년 반 동안 따라 다니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지리멸렬하여 뿔뿔이 헤어지고 전적으로 좌절하고 낙심한 제자들이 예수님이 40일 동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면서 나타나시고 그들에게 격려하시고 다시 용기와 힘을 주셔서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이후에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가서 열흘 동안 합심하여 기도하다가 오순절 날에 성령강림을 받고 성령의 침례를 받고 완전히 변화되어 온 천하에 다니며 만군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 역사가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2. 왜 우리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시는가?
둘째로, 사람들은 오늘날 묻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나타나지 않습니까? 왜 초대 제자들에게는 주님께서 그렇게 수 없이 나타나셔서 살아계신 증거를 뚜렷이 보여 주셨는데 우리에게도 좀 그렇게 해주시면 좋겠는데 우리에게는 왜 나타나시지 아니하시는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우리에게는 오늘날 살아계신 모습을 나타나지 아니할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이미 이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와서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아니하셨으므로 예수님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고 나타나셨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와서 우리 속에 임재 하여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기를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가지 아니하면 성령이 오지 않을 것이요, 내가 가면 그를 보내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20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성령이 바로 예수님의 영이신 것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가운데 계시므로 성령을 통하여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눈앞에 환상 가운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우리 속에 와서 계시므로 나타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이 자리에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은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 있으므로 오늘날은 옛날처럼 주님이 나타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이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가지 아니하면 성령이 오지 아니하겠거니와 내가 가면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이 너희와 함께 계시겠다.” 예수님이 몸으로 계실 때는 특정한 사람들과 같이 계셨지만 성령은 공기와 같이 오셔서 온 세상 만민과 함께 계시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 속에 와서 계시므로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는 고아와 같이 버림을 받지 아니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나타날 필요가 없는 것은 함께 계시는데 뭘 나타나신 것입니까?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은 나타날 필요 없이 우리는 매일같이 함께 살아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예수님이 나타날 필요가 없는 것은 완성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실 동안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말씀을 주셔서 신약성경을 완성했습니다. 왜 성경이 중요하냐. 성경은 바로 예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 하나님 말씀이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신약성경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즉,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을 읽으면 예수님을 읽는 것이요, 말씀을 모시면 예수님을 모신 것이요, 말씀을 깨달을 때 예수님이 계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예수님은 하나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 1~ 5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했으며 너희가 내 말이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이 없을 때는 우리가 육신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사모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말씀을 옷 입고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 안에 계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서 예수님은 거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옷 입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살므로 환상가운데 예수님이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만날 필요가 있으면 성경을 펼치면 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은 다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기록된 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을 모신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을 가진 개인도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고, 성경을 받아들인 나라는 예수님이 함께 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역사를 통해서 말씀을 받아들인 개인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말씀을 받아들인 나라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버린 사람마다 예수님을 버린 사람이 되고 말씀을 대적하는 나라마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말씀이 즉 예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이면 바로 예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므로 예수님을 다른 곳에서 우리가 찾아서는 안 됩니다.
영국 런던에 에드워드 모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무데도 없는 처지로, 어렸을 때부터 가구 공장에 들어가서 직공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런던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트는 무심코 한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말씀이 그의 심령에 확 다가오면서 말씀 속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환상을 본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 마음속에 들어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말씀을 통해서 크게 변화를 받고 그날부터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느끼고 마음속에 허무와 무의미와 공허를 다 극복하고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고 뜨겁게 열정적으로 기도하며 주님과 함께 그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점점 축복을 받아서 나중에 가구공장 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업도 크게 확장되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날이 갈수록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에 너무 감사하여 뜨거운 감격으로써 시를 지었습니다.
찬송가 539장이 바로 그 시인 것입니다. 우리 함께 불러볼까요?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보잘 것 없는 일개 가구공장의 직공이 교회 가서 말씀을 통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과 함께 삶으로 대승을 하고 난 다음 그는 이 시를 지어서 이 찬송을 지어서 이 찬송을 부르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오늘날 꿈에 예수를 만나야 되겠다. 혹은 환상 중에 예수를 만나야 되겠다. 그렇게 방황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말씀 속에 있고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면 오늘날도 그리스도는 살아계셔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완성된 성경, 즉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오십니다. 말씀의 반석 되어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환상에나 꿈에 볼 필요가 없는 것은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성찬이 없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매일같이 예수님을 만나고 매 월초마다 예수님을 만나는 의식으로써 성찬을 주었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마지막 성찬 때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떡을 떼어서 이는 내 몸이니 받아먹으라. 그리고 잔을 기울여 주시면서 이는 내가 너를 위해서 흘리는 새 언약의 피니 받아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를 기념하라. 바로 성찬을 통해서 주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나를 위하여 장사지내시고 나를 위하여 부활하시고 나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찬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찬은 단지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고 죄를 다 청산하시고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해체하시고 사망과 지옥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생명이 된 것을 우리에게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53~57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성찬을 먹으므로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 안에 들어와서 주와 함께 거하게 되므로 무엇을 꿈에 보고, 환상에 볼 필요가 있습니까? 이 자리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으로 내가 살게 된 것이기 때문에 성찬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은혜를 직접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찬은 우리에게 큰 은혜와 능력을 주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패트 노벡은 보스턴의 교외에 위치한 병원의 목사로 봉사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찾아와서 한 환자를 보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환자는 60대의 존이라는 사람인데 병원에 어떤 검사를 해도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날로 쇠약해지며 2주 동안이나 음식도 넣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않고 그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패트 목사님이 존이라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마음속에 성령께서 말씀했습니다. ‘그에게 성찬을 받고 싶은지 물어라. 성찬을 받게 하라’ 하는 성령의 강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당신 밥도 안 먹고 물도 안마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인 성찬을 받겠느냐?” 그러자 존은 “그럴 수 없어요! 나는 죄가 너무 많아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룩한 성찬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지 의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의인을 불러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러 왔으므로 당신이 스스로 좌절한 죄인이라면 정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렸으니 다른 말하지 말고 성찬을 받아들이면 살아계신 예수님이 당신에게 들어와서 당신이 살아날 것이다.”라고 그렇게 권면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에 존이라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 죄를 자백하는데 가만히 들어 보니까 별 볼일 없는 죄거든요. 큰 죄도 아닌데 굉장한 죄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죄를 회개하고 난 다음에 목사님이 주시는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시고 난 다음에 갑자기 그리스도의 영광가운데 그 몸속에 들어온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모든 마음에 고통과 육신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해방되어 그 길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다음부터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건강을 회복해서 곧장 그는 병원에서 퇴원하여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성찬을 통해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이 그 속에 들어와서 그가 살아났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방송국의 카메라맨인데 수중에 카메라를 찍으려고 물속에 뛰어 들어갔다가 바위에 목이 부딪혀서 목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목만 살아있고 목 밑에는 다 전신마비가 되어서 절망에 처했었는데 병원 의사들은 살아날 수 없다고 살아나도 전신마비가 된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열렬한 우리교회 성도고 그 아버지는 예수를 안 믿었는데 그 사건을 당하고 난 다음 크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월 첫 주에 성찬 떼는데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와서 눈물로 회개하고 기도하고 성찬을 떼고 성찬의 잔과 떡을 하나 받아 가지고서 그 아들이 있는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 가서 이는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이요, 흘리신 피니까 목사님이 이미 축복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성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자고 그 아들과 함께 울고 기도하고 성찬의 떡을 아들에게 먹이고 그 잔을 마시고 난 다음에 곧장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만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목 이하에 전부 마비되었던 그가 손도 움직이고 발도 움직이고 오늘날에도 이제 방송국 카메라맨으로써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뛰고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이 성찬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가 주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성찬을 받을 때 그냥 형식과 의식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 속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임재 하여 계신 것입니다. 성찬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환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고 꿈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면서 우리가 만나는 절실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우리 생활에 극히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우리가 예수님을 꿈이나 환상으로 볼 필요가 없는 것은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의 몸이십니다. 여러분이 오늘 참석해서 예배드리는 이 교회가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 그 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들이 회중으로 모인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임재 하셔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 안에 들어와서 지금 예배드리고 있는 것이지 무슨 환상이나 꿈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 예수님이 계셔서 우리 몸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의 용서와 의로움을 주시고 거룩함과 성령 충만을 주시고 이 자리에서 병을 고치시고 건강을 주시고 이 자리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고 부활과 영생천국을 허락하여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주님을 의지할 때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은총을 주님은 베풀어 주시고 계시며 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시고 주의 거룩한 나라 백성으로 만들어 주시고 소유된 자녀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2천 년 전에 계신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장차 오실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 안에 와 계시는 예수님, 부활해서 지금 현재 이 자리에 계신 예수님이신 줄 믿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 의심하는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의심하는 자와는 아무 관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와 계심에도 불구하고 믿지 아니하므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지상에 계실 때라도 믿지 않는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나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하나님 아들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아무런 기사와 이적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며 믿어주는 사람을 위해서 주님은 놀라운 기사와 이적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환영하지 아니하고 모셔 들이지 않고 믿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의 도우시는 손길을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믿으면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23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예수님이 교회 안에 계셔서 만물을 채우시는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 교회에 있어서 마음속에 의가 없어서 오는 사람 의로써 채워 주시고 거룩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거룩함으로 채워 주시고 건강이 없는 사람에게는 건강으로 채워 주시고 축복으로 채워 주시고 소망이 없는 자에게는 소망으로 채워 주십니다. 주님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충만으로써 와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서 세상 어느 곳에 찾아가도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돈이 만족을 주는 것 같지만은 돈이 있는 사람은 더 불만족하여 아편을 하고 술망나니가 되고 세속으로 타락하는 것입니다. 돈이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권력이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세상의 쾌락이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두 다 만족하게 해줄 수 없는 터진 웅덩이입니다.
성경 예레미야 2장에 말하기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하나는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과 둘째 스스로 물웅덩이를 팠는데 물을 저장할 수 없는 터진 웅덩이”라고 말했습니다. 돈도 터진 웅덩이요, 권세도 터진 웅덩이요, 부귀와 영화와 공명도 터진 웅덩이요, 쾌락도 터진 웅덩이입니다. 아무리 부어도, 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흐르듯이 다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만족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진실로 충만하게 하시는 분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오시면 우리는 모든 일에 충만하고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기쁨과 모든 평안과 모든 소망으로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 30에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이므로 오늘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에 살아계신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할 때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줄 때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병을 고칠 때 여러분이 고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해서 예수님이 고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에 소속한 예수님의 지체가 된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골로새서 1:18에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보다 더 확실하게 예수님을 모시고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조차도 우리를 보고는 두려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와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므로 확실하게 우리는 예수님의 영과 함께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을 옷 입고 우리 가운데 와 계시므로 말씀을 받아들일 때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들어오시고 우리와 더불어 먹고 마시면서 생활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고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들어가서 일체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 된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와서 그 몸의 지체가 되어 있으므로 예수님의 성령이 우리 몸을 통해서 흘러 넘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품안에 지금 들어와 있는데 오늘 예수님을 꿈으로 보고 환상으로 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과 말씀과 성찬과 교회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옷 입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과 동행했으나 깨닫지 못한 것처럼 깨닫지 못한 자만 예수님을 달리 보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도 예수님이 동행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신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말한 것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져도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떡을 떼어서 눈을 밝혀 주니 그때야 예수님인줄 알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몸 된 교회에 와있으면서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 품안에 들어와 있으면서 예수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은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알고 그리스도에게 손을 내밀어 그리스도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2천 년 전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셔서 모든 율법적인 요구를 다 충족하시고 율법을 폐하시고 모든 죄악을 다 청산해 주시고 죄로 말미암아 마귀의 권세를 주님께서 다 해제시켜 버리시고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여러분과 나에게 부활과 영생과 영원한 축복을 허락하신 예수님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동일한 예수님이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넘치도록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오늘 성령으로 충만하시고 말씀으로 충만하시고 여러분께서 성찬으로 확신을 얻으시고 여러분께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계시므로 이제는 외롭지 않고 버림받지 않고 홀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시고 오늘 주님과 함께 나와서 믿음의 기도를 하므로 죄를 벗어 버리고 세상을 벗어 버리고 병을 다 벗어 버리고 저주와 가난을 벗어 버리고 사망과 음부를 벗어 버리고 영원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사셨네! 사셨네! 내 주 예수 사셨네!”를 외치면서 승리의 신앙생활을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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