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명자 (딤후 4:9-13)
이 시간에 “완전한 사명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제 어느 선배 목사님의 목사 은퇴예배에 참석하면서 깨닫는 바가 많았습니다. “언젠가 나도 은퇴할 날이 있겠구나.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날 동안 최선을 다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남은여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값지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노년기가 중요합니다. 세계 역사상 최대 업적의 35%는 60~70대에 의하여 성취되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23%는 70~80세의 사람에 의하여 완성되었고, 6%는 80대 인물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역사적 업적의 64%가 60세 이상의 인물들에 의하여 성취되었다는 통계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육신의 나이 잊어버리고 사명의 나이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진정한 사명자가 됩니다. 사명의 나이가 무언지 아세요? 나이를 잊어버린 것, 나이를 모르고 사는 것이 사명의 나이입니다. 그래야 우리 일생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수할 완전한 사명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이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까지도 완전한 사명자로 살았습니다.
완전한 사명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1. 환경을 탓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를 쓸 당시의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2차로 투옥되어 순교 당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죄수를 행복하게 해주는 감옥은 없습니다. 더구나 당시의 감옥은 지하에 춥고 어둡고 습기 차고 배고프고 인권유린 당하고 고통스러워 짐승이라도 생존하기에도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현재 로마의 유적으로 바울이 로마에 잡혀가 갇혔던 감옥은 그 입구가 불과 가로50 세로40 두 뼘 남짓인 좁은 문입니다. 거기다 화장실도 없고 한명이 겨우 누울 수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불가능한 환경입니다. 그러나 감옥이 불타는 바울의 사명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곳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악의 환경일지라도 사명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여건이 안 된다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환경 탓하면 안 됩니다. 가진 것 없고 도울 자 없어도 실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환경이 악하고 여건이 안 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말도 할 수 있습니다. 말도 못합니까?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말도 못하게 합니다. 왜 말을 못합니까? 또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준비는 할 수 있습니다. 준비는 할 수 있다는 것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기발한 생각이더라고요.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으니 왜 안 기발합니까? 여건이 안 되면 준비하고만 계세요. 준비하고 준비하면서 기다리시면 언젠가는 써주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은 금그릇도 은그릇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은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는 그릇입니다.
하나님이 쓰셨던 사람들 보면 거의 일생이 준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80년간이나 준비시켰습니다. 하나님과 동역하는 믿음을 준비시켰습니다. 모세만큼 하나님과 함께 일할 줄 아는 은사를 가진 사람 있나요? 출애굽기를 읽다 보면 그 믿음에 감탄합니다.
어느 기업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20대 중반 대학 졸업 후, 남들은 한참 유학 가고 직장 잡을 때, 병으로 자리에 누워 꼬박 2년을 집에서만 지내야 했던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된 미래를 믿고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면서 국내외에서 출판된 비즈니스 경영에 관한 책을 수백 권 넘게 읽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이랜드 그룹의 창업자 박성수 회장입니다. 그때 읽은 수많은 책들로 인해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지식 경영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고 큰 기업의 CEO(최고 경영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환경의 겨울입니까? 환경의 겨울에도 씨를 뿌리고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연약함과 부족함을 탓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13절을 보면 바울의 노년기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말했습니다. 외투를 가지고 오라. 추워서,, 가죽종이에 쓴 책을 가지고 오라. 시력이 약해서,,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몸에는 병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눈이 좋지 않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든지 고후 12장을 보면 세 번이나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고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몸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었어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몸을 드려 더욱 주를 위해서 충성했습니다.
장로교 창시자 죤 칼빈도 육신적인 형편을 보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는 고국 프랑스의 망명객으로서 고국으로 돌아가면 언제라도 처형될 죽음의 위험을 안고 제네바에서 나그네로 살았으며, 그의 부인은 칼빈의 나이 마흔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자녀들은 다 어려서 죽어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몸 역시 그의 초상화에 나타듯 질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고통이 없는 데가 없었다고 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일군들 치고 건강한 사람 누가 있습니까? 대부분 질고 속에서 부르셨습니다.
3. 나이를 탓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제 황혼기입니다. 늙었습니다. 나이 많다고 하나님의 일 못하나요? 소년기가 인생의 봄이라면 노년기는 겨울입니다. 그렇지만 나이에 아랑곳없이 사명에 살고 있었습니다. 교회 직분은 헌법에 따라 때가 되면 은퇴하는 것은 좋습니다. 은퇴의 본을 보이기 위해 조기 은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명을 은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람들을 보면 나이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는 80세에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소포클레스가 <클로노스의 에디푸스>를 쓴 것은 80세 때였습니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0이 넘어서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70세에 완성했습니다.
베르디, 하이든, 헨델도 고희의 나이 70을 넘어서 작곡을 시작하였고 불후의 명곡을 남겼습니다. 콤모르도 빈더빌트는 대부분 모든 사람들이 은퇴하는 나이인 70이 넘었을 때 철도회사를 만들어 대성했습니다. 타티안은 98세에 거작 <르판트의 전쟁>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99세에 <마지막 만찬>을 그렸습니다. 미켈란젤로도 80살이 넘어서야 대작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네도 85세 이후에 거작을 그려냈습니다.
사명자는 자연 나이가 소용이 없습니다. 사명자는 달력 나이로 살지 않고 사명 나이로 살기 때문입니다. 사명 나이는 항상 청춘입니다.
너무 부러워서 얄미운 남자 유머 시리즈가 있데요. 50대에 사업을 시작한다고 대출받는 남자가 얄미운 남자랍니다. 60대에 이민 간다고 영어배우는 남자가 얄미운 남자랍니다. 70대에 골프 한다고 레슨 받는 남자가 얄미운 남자랍니다. 80대에 이가 아프다고 임프란트하는 남자가 얄미운 남자랍니다. 90대에 아프다고 종합진단 받는 남자가 얄미운 남자랍니다. 100세에도 아프지 않고 새벽기도 나오고 하나님 일 앞장서는 너무 너무 부러워서 얄미운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4. 멤버를 탓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바울이 감옥 밖에 있을 때는 많은 사람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옥에 갇히자 어떤 이는 자기 할 일 하러, 어떤 이는 세상으로, 어떤 이는 꼭 그렇게 해야 전도하는 거냐고 뜻이 맞지 않다고 다 가버렸습니다. 알렉산더 같은 사람은 바울에게 악의를 품고 피해를 주었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누가는 의사입니다. 다행스런 일입니다. 바울을 도울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은 하나님의 일군이었습니다.
5.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마가는 바울을 따라 선교하다 힘들다고 중도에 포기한 사람입니다. 이 일로 바울과 바나바는 둘도 없이 친한 동역자였지만 마가 때문에 갈라 설만큼 바울은 마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별로 유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20년 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말합니다. 약점투성이 마가에게서 유익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마가는 부유한 집 출신이라 고통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못 견디고 투덜대다 끝내는 돌아가버렸습니다. 이건 부자에게 어쩔수 없는 약점입니다. 선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마가의 그것만 보고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마가에게는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훌륭한 어머니를 가졌습니다. 최후의 만찬도 오순절 성령강림사건도 물질의 유무상통도 마가의 집에서 일어났듯 모든 것을 희생하고 섬기며 기도하는 어머니입니다. 그의 삼촌 바나바도 물질을 바치는 등 모든 일에 앞장 서고 포근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당시 마가의 다락방은 어머니의 품과 같았습니다.
마가 역시 그 박해 중에도 물동이를 들고 제자들을 안내하고 나름대로는 누구도 나서지 않는 선교에 그것도 수종 드는 일에 함께 하겠다고 바울을 따랐던 사람입니다. 단지 인내심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봉사의 사람이었습니다. 돌아가기 전까지는 잘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감옥에 갇힌 노년의 바울에게 가장 그리운 사람이 마가였습니다. 노년의 바울처럼 잘못을 시인하고 고칠 줄 아는 완전한 사명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완전한 사명자이셨습니다. 주님은 가장 악조건 속에서도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요9:4) 하셨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기회는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늘이 바로 하나님의 일할 때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돌아보십시다. 우리 모두 환경 탓 건강 탓 나이 탓 멤버 탓하지 말고 바울과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는 하나님께서 쓰시고 기뻐하시는 귀한 사명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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