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설교

감사는 기적이다 (요 6:11-13)

공 상희 2011. 11. 20. 06:20

감사는 기적이다 (요 6:11-13)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이 시간에 “감사는 기적이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의 빈들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는데 예수님께서 축사하시니 여자와 아이 외에도 오천 명이 먹고 부스러기가 열 두 바구니에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여기 축사는 헬라어 ‘유카리스데오’인데 ‘감사하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율로게오’라는 단어를 써서 ‘축복하다.’ 라는 의미로 썼습니다. 그래서 우리 개역성경에서는 한자어로 ‘축복하고 감사한다’는 의미로 "축사"(祝謝)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적이라 해서 조금도 잘못된 해석이 아닙니다.


감사는 어떤 기적일까요?


1. 생겨나는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실 때 생겨나고 생겨났습니다. 감사하시고 나누어 주시니 계속하여 생겨났습니다. 무려 오천 명이나 먹었습니다. 그리고 열두 광주리나 남았습니다. 주님은 감사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이적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그랬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원대로 더하여 넘치는 기적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고후4:15에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쳤다고 했습니다. 작은 것도 감사하세요. 그러면 더하여 넘칩니다. 보이지 않아도 감사하세요. 아주 보이지 않아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태산 같이 많은 은혜를 주셨지만 모두 숨겨져 있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보인다면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이 다 찾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게 숨겨 놓았습니다. 오직 그것을 믿음으로만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나에게 주셨다는 믿음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뭐 그런 것이 있느냐면서 관심을 끕니다. 그래서 천국은 믿는 자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신 것을 믿고 하박국처럼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합3:17-18을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내 처한 환경 심히 박할 지라도 예수 안에서 허락하신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믿고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받은 줄 믿으라 하셨습니다. 이미 주셨습니다. 예수 안에서 다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으세요. 이미 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자에게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분이 아니십니다. 알고 보면 은혜 받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천국 잔치에 믿음의 수저만 가지면 됩니다. 믿고 늘 감사하고 찬송하면 생겨납니다. 생겨나고 또 생겨납니다. 넘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할수록 더욱 더하여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빌헤름 웰러도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했습니다.


탈무드에도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 대로를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한 만큼 행복이 더하여 넘칩니다. 감사는 입으로 시인함으로 구원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일 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세 번 올라갔는데 모두 감사의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감사절기입니다. 오순절은 첫 번째 소산을 거두고 나서 감사한 절기입니다. 그리고 초막절은 모든 추수를 끝내고 드린 감사 절기입니다. 모두 감사, 감사, 또 감사였습니다.


이 세 절기는 구속사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셔서 믿는 자마다 구원해 주시고,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알곡 삼아 주시고,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재림으로 하나님 앞에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예수의 복음 앞에 늘 감사하고 영광 돌려서 영육 간에 생겨나는 기적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2. 동역하는 기적입니다.


11절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주님은 축사하시고 제자들은 나누어 주고 예수님과 함께 사람들에게 풍족하게 나눠줄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요? 예수님과 같이 일하면 일 할만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늘 감사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놀라운 일에 동참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늘 감사하고 찬송해 보세요. 날마다 예배 드려 보세요.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성령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많은 은혜를 사람들에게 끼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전3:9에서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고후6:1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세상일은 혼자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과 함께 해야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 없이 일하라는 것이 가장 큰 욕이랍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까요? 늘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됩니다. 늘 감사하고 늘 찬송하고 늘 기도하고 늘 예배하고 늘 순종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역사해 주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날마다 그리 했더니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셔서 모두 예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주님이 함께 역사해 주셔서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 앞에 돌아오고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성 안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늘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동역의 기적입니다.


3. 보너스의 기적입니다.


12절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작은 부스러기라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떡이 아까워서였을까요? 저는 누군가에게 주시는 보너스였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이 떡 가져가기를 잊었다는 말씀을 볼 때 제자들이 떡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볼 때 추측이지만 이 열두 광주리 가득히는 먼저는 오병이어를 바친 어린아이에 대한 보너스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보너스를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신령한 은혜만 주시는 것 아닙니다. 이 땅에 속한 것으로도 보너스를 주십니다. 건강으로도 주십니다. 체질이라는 것이 있어 체질에 맞지 않으면 얼마나 고약스럽습니까? 그러나 성령 받으면 체질도 바꾸어집니다. 병 오지 않는 체질로 바꾸어집니다.


영국 타임지(The Times)에 의하면 최소한 매주 한 차례라도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7년이나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흑인들은 하나님을 향해 감정이 풍부해서 14년이나 더 장수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처럼 날마다 경외하는 삶이 된다면 그 풍성함은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지혜도 생겨납니다. 똑똑한 사람이 됩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는데 은혜를 받고 나서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는 걸 보았습니다. 물질도 주십니다. 화평도 주십니다. 승리도 주십니다. 만족도 주십니다. 예수님이 축사하시지 않았다면 광야에서 모두 굶었지 어림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을 목숨 바쳐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잘 될 때나, 잘 못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감사하며 예배하는 생활을 계속하십니다.


감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상대적인 감사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상대적인 감사는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받는 것이고, 절대적인 감사는 어떤 환경과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던져진다 해도 하루 세 번씩 감사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세 번은 완전한 감사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사자굴일까요? 사자는 두려움 무서움의 상징입니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못합니다. 비가 오면 비 온다, 조금만 추우면 춥다, 조금만 아프면 아프다, 조금만 바빠도 바쁘다,, 왜 그렇게 두렵고 무서운 것이 많은지 그래서는 하나님 바로 섬길 수 없습니다. 절대적 감사의 예배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시84: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했습니다. 늘 에배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의 은혜와 아울러 지상의 보너스로도 풍성하게 안겨다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기적입니다. 우리 주님이 감사하시고 축복하실 때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날마다 감사하며 예배할 때 기적이 나타납니다. 우리 모두 절대적 감사생활로 생겨나는 기적, 동역하는 기적, 영육 간의 보너스로 가득한 기적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