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설교

감사절의 근대적 유래(출 23:16) <상>

공 상희 2011. 11. 19. 07:04

감사절의 근대적 유래(출 23:16) <상>

[ 2011-10-31]

 

조영엽 박사(Ph.D. 전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본래 감사절의 유래는 구약시대 맥추절에서부터 전래되어 왔다. 구약 시대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 )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밀(wheat) 추수가 끝날 무렵 우량품들로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감사제이다(출 23:16, 34:22). 그러나 그 근대적 유래는 북미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ilgrims)로부터 유래되었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지의 북미 대륙으로 온 경건한 신앙인들이었다. 「청교도란 영어로 Puritan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Purify(정화하다, 깨끗하게 하다, 순결하게 하다)에서 인출된 단어이다.」

 

Ⅰ. 청교도들이 북미로 오게 된 역사적 배경

 

헨리 8세(Henry8세, 1491-1547, 재위 1509-1547)의 박해.

헨리 8세는 자기 아내 캐터린(Catherine)과 이혼하고(1527), 앤 보레인(Anne Boleyn)과 재혼하였다(1533). 청교도들은 정당하지 못한 이혼과 재혼을 반대하였다. 헨리 8세는 그 일로 로마 천주교로부터 파문(성찬 참여 정지등)을 당하였으나 그의 생애에 천주교의 교리를 신봉하였다. 그는 또 1534년에 자신('자신은 영국의 왕인 동시에 또한 수장(首長)이 된다')을 영국 교회의 머리(the head of the Church of England)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로마 천주교의 교황청과 행정적인 관계를 단절해버렸다. 동시에 영국교회는 캔터베리와 요크 회의에서 헨리 8세를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모실 것을 결의하고 가톨릭 교황은 영적 문제에 대하여 권리가 없다는 것을 선언하게 되었다.

메리 여왕(Queen Merry, 재위기간 1553-1558)은 헨리 8세와 그의 첫 아내 캐터린(Catherine) 사이에 태어난 딸로 고집불통의 잔인한 여왕으로 폴(Pole) 추기경의 도움으로 천주교의 회복을 도모하였다. 그때에 개신교의 지도자들인 토마스 크램머(Thomas Crammer), 라티머(Latimer), 리들리(Ridley) 등을 포함한 약 200명의 감독들, 학자들 그리고 남녀 성도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화형(火刑)시켰다. 그 때에 청교도들은 제네바, 취리히,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망명을 하게되었다.

엘리자벳1세(Elizabeth 1, 1533-1603)는 메리 여왕에 이어 1558년 11월17일 왕위에 즉위한 후 1559년 4월 29일 수장령(The Act of Supremacy)을 공포하였다. 엘리자벳 1세는 헨리 8세와 둘째 부인 앤 볼레인(Anne Boleyn)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수장령이란 왕이 종교와 정치에 유일한 통치자임을 공포한 법령이다. 그리하여 왕이 국가의 머리도 되고 동시에 (영국)교회의 머리도 되었다.

영국교회(Anglican church)는 왕이 교회의 머리요, 교회의 감독들은 왕을 대신하여 교회를 다스리기 때문에 감독교회(Episcopal Church)라고도 부른다.

영국 정부와 영국 교회는 상호 결탁하여 정교분리의 원칙을 반대하는 청교도들을 반대 탄압 투옥 고문 등 심한 핍박을 가하였다.

그리하여 헨리 8세, 제임스 1세(1600-1649), 찰스 1세(1625-1649) 때 청교도들은 북 아메리카로 많이 떠나게 되었는데 1620년대부터 1640년대까지 북미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약 22,000명에서 50,000명에 이른다.

그들은 영국을 떠나기 전, '나라는 있어도 왕이 없는 곳, 교회는 있어도 교황이 없는 곳, 일상생활에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곳, 기름진 땅,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도착하도록' 기도하였고 그러기 위하여 북미 대륙으로 건너간 것이다.

 

Ⅱ. 102명의 청교도들과 메이플라워(102 Puritans and Mayflower Ⅱ)

 

북미 대륙을 발견한 것은 스페인의 콜럼버스(Columbus, 1446-1506)였고, 북미로 처음 이주해 간 사람들은 영국의 청교도들이었다. 이들을 가리켜 순례자의 조상들(Pilgrims Fathers)이라고 부른다.

청교도들은 1600년대 초반기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Atlantic Ocean)을 건너 미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Mayflower: 5월의 꽃)라는 배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으로 이주한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청교도들은 영국 남해안에 있는 플리못트(Plymouth) 항구에서 1620년 8월 5일(지금의 달력으로는 8월 15일) 스피드웰(Speedwell)이라는 배와 메이플라워(Mayflower)라는 배를 타고 미 대륙을 향하여 항해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항해 초에 배에 고장이 나서 물이 새므로 다시 귀항하였다. 한 달 후 1620년 9월 6일 메이플라워 배에 25명의 선원과 102명의 청교도들이 승선하여 미국 동해(대서양, Atlantic Ocean) 중부지방 버지니아(Virginia)를 목적지로 삼고 재차 항해를 하였다. 남자 78명 여자 24명 등 전체 102명이었다. 항해 도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탄생하였다.

그들은 그해 11월11일 미국 동해 중남부 지방인 버지니아 대신 미국 동북부 메사츄세츠 케이퍼 카드(Cape Cod) 해안가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5일 동안 주위를 답사한 후 11월 16일 현재의 플리못트(Plymouth)에 정착하였다. 63일간의 3400마일<5,440Km>)의 멀고도 긴 그리고 위험한 항해 끝에 돛을 내렸던 것이다. 영국을 떠날 때 항구 이름을 따라서 플리못트라고 명명하였다.

미국 동해안은 항상 북서풍의 바람이 불므로 남쪽 버지니아로 가려던 배가 북쪽 메사츄세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토요일에 도착하였으므로 주일을 지키기 위하여 그 길고도 지루하고도 위험한 항해 후에도 주일을 배 안에서 보냈다.

메리플라워 배를 타고 온 청교도들보다 먼저 미 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과 이주한 사람들이 묻기를 항해 동안 그 멀고도 지루하고 위험한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습니까? 라고 물었다. 청교도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찬송을 많이 불렀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시편을 찬송으로 불렀습니다. 주일날은 우리 모두가 찬송만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하였읍니다?라고 하였다.

그들(청교도 개척자들)은 11월 중순에 케이프 카드에 도착하여 형언할 수 없는 어려운 난관에 부딪혔다. 강풍과 눈보라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험, 거할 집 하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해(1620-1621) 겨울 2-3개월 이내에 102명 중 절반 이상이 운명을 달리하였다. 특히 1월과 2월 혹독한 겨울에는 하루에 2-3명씩 세상을 떠났다. 생존자는 50명뿐인데 그들 중 다수도 지치고 건강이 쇠약해지고 질병으로 신음하였다.

그러나 6-7명의 건장한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고, 침실을 만들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병자들과 노약자들의 옷을 빨아 입혀주고, 칠면조와 사슴 등을 사냥하여 고기를 조달하고… 자원 헌신하였다. 경건한 청교도들이야말로 굳건한 믿음 위에 마음을 하나로 통일한 불굴의 의지를 지닌 크리스챤들이었다. 추운 엄동설한도 지나고 따스한 봄날이 찾아와 생존한 청교도들은 땅을 개간하고, 싸를 뿌리고, 가꾸어 여름과 가을에 기대 이상에 넘치는 추수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감사하였다. 시편 126:6,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추운 엄동설한에 황무지에서 살아남은 것,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여 주신 것, 미 대륙 개척자들로 삼아 주신 것 등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렸다.

청교도들은 북아메리카로 건너온 다음 해인 1661년 가을에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한 첫 곡식들과 채소들 중 최고 우량품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기도 중에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하였다.

청교도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번째 추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첫날인 주일에는 온 종일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찬송부르고, 말씀 받아 묵상하고, 둘째 날에는 칠면조 요리, 감자, 옥수수 요리 등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고, 셋째 날에는 인디안 추장 마싸소이트등을 초대하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친교를 나누었다. 90명의 원주민들인 인디안들은 칠면조 구운 요리와 호박 파이(pumpkin pie)를 가지고 와서 나누어 들면서 같이 친교를 나누었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감사절기에는 칠면조 고기와 호박 파이를 먹는 것이 전래가 되었다.

청교도들은 통나무들을 잘라서 먼저 교회를 짓고, 그 다음에 학교를 짓고, 그 다음에 자기들의 집을 지었다. 그들이야말로 북아메리카의 개척자들이요, 믿음의 선조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한 성수주일. 십일조, 경건생활을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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